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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작성자 한국복음서원   작성일 2007/03/09 14:53   조회수 13,446
  첨부파일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기도 - 주님께 간구함
 


찬송 해설

하나님은 영원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머리 아래 통일되게 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는 사탄의 반역과 사탄의 선동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사탄에 뒤이어 배역함으로써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합당한 조화를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것들을 한 머리 아래 통일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구속하고 거듭나게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을 통해 많은 아들들을 낳으셨고, 이 많은 아들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을 한 머리 아래 통일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습니다(참조 롬 8:19-23).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과 행함에 달려 있습니다. 신성한 목적에 대한 믿는 이들의 동역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기도 생활입니다. 매우 인격적인 하나님을 소유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친밀하고 다정하고 개인적으로 주님을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신성한 삼일성의 최종 목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기도의 효능과 달콤함을 말해주는 찬송들은 종종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광대한 원천을 향해 믿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지만, 그러한 찬송들 중 많은 것들이 기도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어린아이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은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이상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은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다루는 두 찬송을 보면서 각 찬송에 담긴 이상이 어떻게 다른지 상고해 봅시다.

첫째 찬송,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는 오랫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지고 사랑받은 찬송입니다. 1857년 조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이 쓴 이 찬송은 내용이 깊거나 시적이지는 않습니다.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스크리븐은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그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에 사는 그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이 찬송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에 이 찬송을 포함시켰습니다. 단순한 표현으로 쓰인 이 찬송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찬송의 주제는 ‘모든 것을 주님께 기도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 안에도 기본적이지만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러나 이 찬송은 기도를 어린아이의 초보적인 수준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찬송에서 기도는 어린아이가 다쳤을 때 사랑스런 부모님의 위로와 위안을 구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짐을 감당하시고 그분의 팔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구주-친구로서 나타나십니다. 이 찬송의 관점은 믿음의 성숙과 생명의 성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는 성숙한 믿는 이들이 드리는 기도의 특징인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사상이나 관심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먼저는 이 찬송의 긍정적인 방면을 보고 이후에 부족한 점을 보기로 합시다. 이 찬송의 가사와 곡은 모두 단순해서 배우기 쉽고, 어떤 환란을 체험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여 그분과 친밀하게 협력하지 못하는 새 신자나 젊은이들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이 찬송은 놀라우신 주 예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이것은 이사야서의 예언의 말씀을 참조한 것 같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4-5)
성도들의 마음은 우리의 사랑스런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십자가에 가져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항상 위로를 받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뿐 아니라 우리의 슬픔과 질병과 약함까지도 담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중재로 말미암아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중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하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시 103:12). 따라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크게 외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시편 103:2-6)
이것은 우리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구원이며, 기도는 우리가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주님의 구속의 일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뛰어난 특권을 갖고 있으며 기도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유익을 얻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요구를 주님께 가져가라는 초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빌 4:6-7, 막 11:24, 살전 5:17, 딤전 2:1, 8). 주님은 믿는 이들에게 기도하며 구한 것은 무엇이든 믿음을 통하여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막 11:24, 눅 18:1, 요 14:13-14, 15:7, 16:23-24).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의 근원과 공급으로 우리 생활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위로와 인도와 교정과 경고와 은혜를 받습니다.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 가져가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기도를 대체로 이따금씩 하고, 지속적이지 않으며, 거의 하지 않기도 합니다. 기도는 사실 큰 비밀입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많은 경우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은 다시 돌아오실 때 이 땅의 믿음이 문제가 있을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시며, 항상 기도하며 결코 낙심하지 말 것을 강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고 나쁜 상황에서도 그들을 위해 그들의 대적에게 복수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사실,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도 우리 대부분에게, 실재가 없는 실행입니다. 비록 우리가 자주 기도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는 피상적이고 주님을 참되게 접촉하는 실재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억에 의해 반복하는 독백으로 자주 퇴색됩니다. 결국, 구체적이고 상세한 간구는 소홀히 되고 완전히 중단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기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 특권인지를 상기하고 그러한 특권으로 스스로를 격려해야 합니다(빌 4:6).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에 평강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기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계속해서 2절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주님께 가져가기를 권하며,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기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합니다.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그러고 나서 저자는 우리의 모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신실한 친구에 대해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다시 한번 확신을 줍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여기서 저자의 사상은 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에 있는 격려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마지막 절도 여전히 우리의 평강과 안전을 요동하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언급합니다.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또한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 찬송의 저자는 우리의 환경이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의 소중한 구주께서 우리의 피난처라는 것을 앎으로 안전할 수 있다고 우리를 위로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끄시고 그분의 부드러운 가슴으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찬송은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합니다.

이 찬송의 느낌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고 가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위로와 확신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찬송의 적용과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성숙에 이르도록 돕지는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기도를 넘어서 전진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됩니다. 워치만 니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어떤 기도는 우리의 필요에서 시작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는 어떤 유익도 얻지 못하십니다. 시편 106편 15절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셨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약해졌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영문판, 453장)

초기 교회 시대에 찬송이 성도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는 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사도 바울의 글에서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9절에서 아주 조금 다른 형식으로 동일한 권면을 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송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강화되고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찬송에는 서로를 먹이고 가르칠 수 있는 진리가 매우 조금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본 것처럼, 이 찬송에는 기본적인 권면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주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도는 우리의 생명이 성장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찬송의 내용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언제 기도해야 하고, 기도할 때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은 믿는 이들이 이 땅에서 주님의 권익을 위해 주님과 협력하는 것에 기여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찬송을 살펴볼 것입니다.(또 다른 찬송은 다음 번 게시물에 실려질 예정)

확증과 비평중에서
게리 카이저(Gary Kaiser)
정병영
할렐루야 삭제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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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안에 교통하여 영 안에 주 뵙겠네 [1]
 참 기묘해 아버지, 아들,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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