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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생명의 교통 안에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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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1:2-3, 고후 13:13, 요일 1:7
교통(fellowship)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로서 공동 참여를 뜻한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흘러나옴이며, 사실상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고 소유한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의 흐름에 의해 예시(例示)된다(계 22:1). 그러므로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은 다 이 교통 안에 있다(행 2:42). 그것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신 그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령의 교통’(고후 13:13), ‘(우리)영의 교통’(빌 2:1)이라고 불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에 우리 믿는 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이다. 즉 우리는 그 영의 교통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를 누린다. 그러한 교통은 먼저 그 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을 누리고 있는 사도들의 분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도들의 교통’(행 2:42),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사도들)의 교통’(요일 1:3)이라 불린다. 그것은 하나의 신성한 비밀이다.
 
교통이란 공동 참여, 공통 참여이다. 그러므로 교통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에 단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신성한 생명의 흘러나옴이요, 흐름이다. 신성한 생명은 유기적이고, 풍성하고, 움직이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특별한 흘러나옴, 즉 어떤 종류의 결과를 갖는다. 신성한 생명의 흘러나옴 곧 결과는 생명의 교통이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계시록 22장 1절에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본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는 구속하시는 하나님 곧 어린 양-하나님의 보좌이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하나님이 나오지만 계시록 22장 1절에는 어린 양과 함께 있는 하나님이 나온다. 창세기에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나오지만, 계시록에서는 구속하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근원이신 이 구속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생명수의 강의 흐름은 생명의 교통이다. 이것은 교통이 구속하시는 하나님 속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생명의 넘쳐흐름임을 뜻한다.
 
계시록에 있는 그림에 의하면, 새 예루살렘의 강은 그 성의 열두 문에 도달할 때까지 나선형으로 흘러내려간다. 이로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 전체가 이 생수의 흐름에 의해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즉 성 전체가 생명의 교통에 의해 공급받는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서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성될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에게 도달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 흐른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 혹은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그 영의 교통이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근원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통로이고, 그 영의 교통은 그 통로의 흐름임을 본다.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 흐름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성령의 교통이라 불린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사이의 교통이다(요일 1:3하, 행 2:42). 이것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가운데 삼일 하나님의 공동 누림이 있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과 사도들은 서로 접촉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합당한 접촉이 있을 때 거기에 쌍방 왕래(two way traffic)가 있게 될 것이며, 이 왕래는 교통(fellowship), 곧 공동 참여이다. 이 쌍방 왕래를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이것은 우리가 교통을 가질 때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쌍방 왕래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더욱 좋을 것이다. 사도들을 접촉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사도들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은 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도들의 글을 갖고 있다. 사도들의 글을 대할 적마다 우리는 사도들과의 교통 안으로 인도되고 또 우리와 그들 사이의 쌍방 왕래를 누린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이 왕래 안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신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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