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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 주님의 이름을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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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21, 창 4:26, 롬 10:13
사도행전 2장 21절에서 베드로는 계속 말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약에서의 새로운 실행이 아니다. 그것은 창세기 4장 26절에서 인류의 셋째 세대인 에노스부터 시작되었다. 그 실행은 욥(욥 12:4, 21:10), 아브라함(창 12:8, 13:4, 21:33), 이삭(창 26:25),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신 4:7), 삼손(삿 15:18, 16:28), 사무엘(삼상 12:18, 시 99:6), 다윗(삼하 22:4, 7, 대상 16:8, 21:26, 시 14:4, 17:6, 18:3, 6, 31:17, 55:16, 86:5, 7, 105:1, 116:4, 13, 17, 118:5, 145:18), 시편 기자 아삽(시 80:18), 시편 기자 헤만(시 88:9), 엘리야(왕상 18:24), 이사야(사 12:4), 예레미야(애 3:55, 57)와 그 밖의 사람들(시 99:6)에 의해서 계속되었다. 구약 시대에 그들은 모두 주의 이름 부르는 것을 실행했다. 이사야도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그분을 부르라고 권면했다(사 55:6).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습관이 있음을 알았다(욘 1:6, 왕하 5:11). 북방에서 하나님에 의해 일으킴을 받은 그 이방인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사 41:25).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시 50:15, 렘 29:12), 갈망이다(시 91:15, 습 3:9, 슥 13:9).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우물에서 마시는 기쁨에 찬 방법이요(사 12:3-4),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욥 27:10), 즉 그분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매일 그분을 불러야 한다(시 88:9). 신약의 희년(jubilee)을 위해 요엘이 예언한 것은(욜 2:32) 바로 그러한 환희에 넘치는 실행(a jubilant practice)이다.
 
신약에서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오순절 날에 베드로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다. 이 성취는 하나님이 만유를 포함한 그 영을 그분의 선택한 사람들 위에 경륜적으로 부어 주는 것에 관계되는데, 이는 그들로 그분의 신약 희년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약 희년을 위한 요엘의 예언과 성취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분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시는 것이고, 우리 편에서는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달성하고 모든 것을 획득하신 승천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가 그분이 성취하고 달성하고 얻고 소유하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참여하고 그분을 누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고전 1:2). 그것은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우리로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 있는 주요한 실행이다(롬 10:10-13). 초기의 믿는 이들은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을 어디에서나 실행했고(고전 1:2),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핍박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보편적 표시가 되었다(9:14, 21). 스데반이 핍박당했을 때 이것을 실행했고(7:59), 그의 실행이 그를 핍박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던 사울에게 인상을 주었음이 분명하다(7:58-60, 22:20). 그때에 믿지 않던 사울은 이름 부르는 것을 그들의 표시로 삼고 이름 부르는 사람들을 핍박했다(9:14, 21). 그가 주님께 붙잡힌 직후에 그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안으로 인도한 아나니아는 그에게 침례 받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 그도 그렇게 이름 부르는 사람이 되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명했다. 디모데후서 2장22절에서 디모데에게 한 말을 통해 그는 초기의주님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부르기를 실행했음을 가리켰다. 분명히 그는 이것을 실행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같은 실행을 분부하여 디모데도 자기처럼 주님을 누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부르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피칼레오(epikaleo)인데, 그것은 에피(epi-위에)라는 말과 칼레오(kaleo-이름 부르다)라는 말로 구성된 합성어로서 그 의미는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7:59-60) 알아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21절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름은 인격을 의미한다. 예수는 주의 이름이고, 그 영은 그분의 인격이다. 우리가 “주 예수여!”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영을 받는다.
 
문맥에 따르면, 2장 21절은 17절에서 시작된 요엘의 예언을 인용한 것의 결론이다. 21절이 그 인용에 대한 결론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주신 결과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이 구원받는 것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부어주시는 것은 주님의 구원을 그분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은 이 영을 받는 것이고, 이 영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있어서 복음의 축복이다(갈 3:2, 5, 14). 이 영은 우리에게 호흡이 되고(요 20:22) 생수가 되는(요 4:10, 14) 주님 자신이다. 그분을 우리의 호흡으로 들이마시고 그분을 우리의 생수로 마시기 위해 우리는 그분을 불러야 한다. 예레미야 애가 3장 55절, 56절은 주님을 부르는 것이 호흡하는 것임을 가리키고, 이사야 12장 3절, 4절은 주님을 부르는 것이 마시는 것임을 가리킨다. 주님을 믿은 후에 우리는 구원받을 뿐 아니라 그분의 풍성을 누리기 위해 그분을 불러야 한다(롬 10:12-13). 그분의 풍성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분을 부름으로써 누려진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 경배이다(요 4:24).
 
21절을 그 문맥에 따라 살펴볼 때, 우리는 성령이 모든 육체, 즉 모든 인간 존재 위에 부어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받게 하려는 목적을 위한 것임을 본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누가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롬 10:12-13).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은 두 가지 문제-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구원받음-에 대해 말한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내적인 문제이고, 구원받는 것은 어느 정도 외적인 문제이다.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義)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과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중에서 일으키셨음을 마음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도울 때 우리는 그들이 “오, 주 예수여!”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격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주 예수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면 부를수록 그의 구원에 대한 체험이 더욱더 강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가령 복음 전파를 듣고 구원받기 원하는 어떤 이가 이렇게 부드럽고 약하게 기도한다 하자. “주 예수님, 당신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저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렇게 힘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인지(認知)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령 어떤 사람이 주 예수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하자. “주 예수여! 오, 주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그러나 당신이 저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주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구원받는다. 어쩌면 그는 그분의 구원으로 인해 주 안에서 기뻐서 심지어 제 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도행전 7장 59절에 의하면, 스데반은 돌에 맞고 있을 때 “그가 주님을 불러 말하되 주 예수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했다. 다소의 사울은 이 살인을 마땅히 여겼고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큰 핍박에 가담했다. 9장 14절에 따르면, 사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서 받았었다. 그가 다메섹에 가려고 의도한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을 체포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초기에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표시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이름 부름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부르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같이 그것은 하나의 표시가 되었다. 사울 당시에 믿는 이들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었다.
 
주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사울은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말했다(9:5). 나중에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와서 그에게,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들을 씻으라”고 말해 주었다(22:16). 여기서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사울 형제여, 당신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핍박자로, 즉 믿는 이들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체포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핍박자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당신이 한 형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당신을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침례를 받으십시오. 당신이 침례 받으면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성도들은 당신도 이 이름 부르는 것을 듣고 심히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믿는 이들이 주 예수의 이름 부르는 것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오직 전통적인 실행들만을 좇고 있는 어떤 이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을 비난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주의 이름 부르는 것은 새로운 실행이 아니며, 우리가 고안해 낸 것도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주의 이름 부르는 것은 창세기 4장에서 최초로 실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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