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ID/PW찾기
진리100선
성경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성경 난제
생명
봉사
성격
연회원이 되시면
진리와 생명 > 진리100선 > 안수
진리100선
065 안수
1page
행 6:6, 8:17, 13:3, 5-6
히브리서 6장은 사람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서 떠나 완전한 단계에까지 힘써 들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기초가 되는 몇 가지 진리가 있다. 믿는이들은 다시 반복해서 기초를 세울 필요는 없지만 기초는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는 무엇인가? 이는 곧 회개와 믿음과 침례와 안수와 부활과 심판이다. 그러므로 설경은 침례와 안수가 그리스도의 말씀의 기초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준다 만일 우리가 침례를 받은 뒤 안수를 받지 않았다면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한 가지 기초가 결핍되게 된다.



안수의 첫째 의미는 연합이다. 레위기 1장에서 말한 생축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는 것은 제물을 드린 사람이 제물과 연합한다는 뜻이다. 이제 한 가지문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물 곧 속죄제나 번제를 드릴 때에 왜 자신을 드리지 않고 소나 양을 드렸는가이다. 수많은 소와 양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소나 양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에게 소와 양들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이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을 드리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제단에 와서 나 자신을 드리기 위해 죽고 불태워짐으로 번제가 된다면 구약에서 몰록(Moloch)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 아닌가? 몰록을 숭배하는 자들은 소나 양을 몰록에게 드리지 않고 자기의 아들을 몰록에게 드렸다. 만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그분께 드리라고 요구했다면 우리 하나님은 몰록과 비슷하다. 몰록은 우리의 자녀가 피를 흘리도록 요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희생으로 드리라고 요구하신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자신을 불 속에 넣어야 한다면 우리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요구는 몰록보다 더욱 심한 것이다.
 
한면에서 하나님의 요구는 더욱 심하지만, 또 한면에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불태워지지 않고 희생이 되게 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다. 무슨 방법인가? 이는 곧 소를 데려와서 그 머리 위에 안수하는 것이다. 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이다. 또는 양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안수하는 것이다. 네 두 손을 소나 양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는 것은 입을 열든 묵도를 하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나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본래 내 자신이 제단 위에 올라가야 하고 불태워져야 하고 희생이 되어야 하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하고 내 자신을 당신 앞에 향기로운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주여, 이제 이 소 한 마리를 데려와 그것으로 나를 삼아 그 위에 안수합니다. 이제 내가 제사장에게 의탁하여 그것을 잡게 하는 것은 곧 나를 잡는 것입니다. 그 피가 흘려지는 것은 곧 내 피가 흘려지는 것입니다. 제단 위에 놓여진 희생은 곧 내 자신입니다.』
 
 


구약의 안수는 또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이삭이 그의 두 아들에게 안수하고 야곱이 그의 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안수하는 것을 본다. 야곱이 그의 두 손자에에 안수할 때 그는 한손씩 손자들의 머리에 두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축복을 그들 둘에게 전달해 주게 되었다. 이것은 곧 내가 너희를 위해 축복을 구함으로 이 복이 너희에게 임하고 너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안수가 하나는 연합이고 또 하나는 전달임을 보아야 한다. 하나는 연합이고 또 하나는 전달이다. 둘 다 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통은 나를 그와 합하게 하고, 교통은 내 능력을 그에게로 흘러가게 한다.(그리스도인의 50필수과정 1권, 7장)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삼천 명과 오천 명이 구원받고 또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부어지신 사례에서 성경은 전혀 안수의 일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령의 침례는 모든 지체를 다 한 몸 안으로 침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분명하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말했듯이, 믿는이들은 다 한 영 안으로 침례받아 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이러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에베소(행 8:14-17, 19:6)에서는 안수의 일이 있었는데, 이는 그 두 번이 다 특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 유대인들과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그곳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안수로 말미암아 그들을 몸의 교통 안으로 인도해야 했다. 에베소에 있었던 몇몇 제자들이 받은 것은 요한의 침례였기 때문에, 안수로 말미암아 그들을 몸의 교통 안으로 이끌어야 했다.
되돌아가기
한국복음서원 이용안내 개인정보보호정책 사이트맵
E-Mail : kgbr@kgb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