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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100선
070 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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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25:10-15


성경이 제오십 년을 희년이라 칭한 것은, 그 해가 되면 잃었던 기업이 원주인에게로 돌아오고, 몸을 팔았던 노예들이 다시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 거기에서 기업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애굽 왕 바로에게 괴롭힘과 노역을 당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한 폭의 그림은 타락한 사람의 상태를 묘사한다.
 
타락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이다. 자신의 몸까지 팔아 노예 된 자이다. 사람은 이 땅에서 대개 두 가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면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다. 그러나 각 사람의 소유물은 같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가옥과 땅, 증권, 은행통장, 처자식, 손자들로 가득한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소유물이다. 사람이 소유한 물건이 얼마만큼이든 간에 대략 이 두 부류로 나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땅에서 노예 된 애굽 땅으로 내려갔을 때,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이 없어졌다. 가나안 땅이 사라진 것이 아니요, 그들이 버려두고 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가나안 땅의 유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먼저 좋은 땅과 유업을 잃었고, 후에는 그들 자신까지 잃어버렸다. 자유가 없이 바로의 노예가 되었다. 이것은 성경에 묘사된 타락한 인류의 가장 완전한 예표이다.
 
우리 타락한 인류는 두 가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들 자신과 우리의 소유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타락한 인류가 우리의 기업을 잃어버렸고, 우리 자신 역시 팔아버렸으며, 결국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팔린 노예가 되어버린 한 폭의 그림을 보여 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의 상태이며, 또한 그들이 예표하는 일반적인 세상 사람의 상태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 가련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택하신 백성을 구속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속해 내셨고, 그들 자신으로 자유를 얻게 하셨다. 그들이 홍해를 건넌 후, 대적이 홍해 가운데 떠있는 것을 보고서 그들은 미칠 듯이 기뻐하며 환호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는 중국 문자에 근거해 희년에 하나의 중국어적인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생각대로 응하고 만사가 뜻대로 됨’이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응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고 구속없이 자유롭고, 미칠듯이 기뻐하며 뛰는 것이다.
 
영어에서 희년은 쥬빌리(Jubilee)로서, 그 뜻은 미칠듯이 기뻐하며 환호하는 것이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요발(yobal)로서, 그 뜻은 ‘환호하다’, ‘크게 외치다’, ‘나팔을 불다’, ‘사람이 외치다’, 심지어 ‘호각과 나팔을 사용하여 외치다’이다.
따라서 희년이라는 이 말의 원뜻은 외침, 환호함, 나팔을 붊, 선포함 등이다. 비애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요, 애가(哀歌)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요, 바로 복음을 선포하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실 때, 그분은 큰 기적을 베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여 그들로 건너게 하셨다. 그들은 미리암의 인도로 홍해 바닷가에서 미칠 듯이 기뻐하며 노래했다.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고, 찬송하는 것은 여인들의 특기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닷가에서 미칠 듯이 기뻐하며 찬송했을 때 바로 미리암이 주도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여인이 되어야 한다. 기뻐하면 할수록 좋다. 옛것을 지키려 하지 말고, 그저 규례대로 예배하는 전통적인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뻐 뛰어야 한다. 시편에서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100:1)라고 말한다. 원문의 의미는 당신도 부르고, 나도 외치며, 모두 다 여호와를 향하여 부르짖고 외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감히 이렇게 번역하지 못하고 ‘여호와께 환호하다’라고 번역했다.
 
성경 에스라서에도 환호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포로 된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성전의 기초를 세운 후 온 백성이 큰소리로 환호한 것이다. 거기서는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3:11-13).
 
어떤 사람은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모든 것을 질서 있게 순서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고린도 전서 14장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시편도 있다. 시편에서 여러 구절의 말씀이 환호하고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기뻐할 뿐 아니라 기뻐 뛰라고 한다. 희년이 다가왔을 때,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은 천만 명이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끊임없이 환호했을 것이다. 천만 명이 넘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동시에 외치는 것을 보라. 오늘날 합창단이나 성가대는 모두 죽은 방식으로 노래하고 전혀 기뻐 뛰지 않으므로 질서정연하다. 만약 기뻐 뛰며 노래한다면, 질서정연할 수가 없다.
 
희년은 바로 미칠 듯이 기뻐하는 해이다. 신약 시대는 바로 미칠 듯이 기뻐하는 시대이다. 무엇이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은 바로 기뻐 뛰는 자들이다. 오십 년 전 나는 니 형제님이,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만약 미쳐 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없다.”라고까지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미쳐 뛰어야 하며, 사람 앞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 말만을 붙잡고서, “보라! 니 형제님이 조심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물론 당신은 사람 앞에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미쳐 본 적이 있는가? 성경에는 여러 방면이 있다. 우리는 한 면만을 볼 수 없다. 사람 앞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도 옳지만, 조심하는 것이 반드시 조용히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집회 중에서 환호하지만 여전히 조심한다. 우리는 정신 이상이 되어 미친 듯이 외치고 마구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면으로 기쁘게 환호하며 또 한 면으로는 조심하여 적당한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제까지 한 번도 미칠 정도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만약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기뻐 뛴 적이 없다면,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누림이 적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충분히 하나님을 누린다면 반드시 기뻐 뛸 것이다. 당신이 내적으로 하나님을 누린다면 반드시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상태이고,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삼갈 필요가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미칠 정도로 누려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나는 늘 하나님 앞에서 미치곤 하는데, 내 자매조차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매일 엄숙하고 출입이 항상 순서대로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노인이 항상 미친다는 것을 아신다. 미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 안에 기쁨이 없다면 미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누린다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누렸기 때문에, 홍해를 건넌 후, 그들은 모두 기뻐 뛰며 외쳤고, 큰소리로 찬미하며 노래하고 환호해 마지않았다. 이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이끌어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좋은 땅 가나안을 그들에게 분깃으로 주셨다. 지파마다 한 분깃의 땅을 얻었고, 매지파 내의 족속마다 또한 한 분깃의 땅을 얻었다. 각 족속 내의 각 집 역시 한 분깃의 땅을 얻었다. 따라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집집마다 한 분깃의 땅을 소유했다. 빈궁한 자도 없고 부한 자도 없이 집집마다 균등했으며, 모두 한 분깃의 땅을 소유했다. 모두가 다 지주(地主)였으므로, 사람들은 노예로 갈 필요가 없었다. 소지주도 아니요, 그렇다고 대지주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다 지주였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땅을 나눈 후 점점 내리막길로 가고 게을러졌다. 어떤 자는 게걸스럽고 게을러서 점점 궁하게 되었고, 따라서 소유물을 팔기 시작했으며 땅조차 팔아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몸까지도 팔아 노예가 되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므로, 곧 간단한 조례를 세우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사십구 년이 지난 후, 제사십구년 칠월 십일에 전국에 나팔을 불어야 했다. 칠월 십일은 바로 속죄일로, 그날에는 구속에 근거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자유가 선포되어야 했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토지를 팔았다면, 그 토지는 당신에게로 되돌려질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몸을 판 노예가 되었다면, 그날에는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을 팔고 몸도 팔았으리라 믿는다. 기업을 잃었던 모든 자들, 노예 된 자들이 희년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춤을 추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미칠 듯이 기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희년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실로 광대하시고 또한 사람으로 믿기 어렵게 하신다. 일단 제오십년이 되면, 땅을 판 사람도 몸을 판 사람도 없게 된다. 모든 집은 또다시 새로이 땅을 갖게 된다. 오십 년마다 한 번씩 평균케 되는 이것이 가장 공평한 평균지권(平均地權)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이런 종류의 평균지권을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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