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ID/PW찾기
진리100선
성경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성경 난제
생명
봉사
성격
연회원이 되시면
진리와 생명 > 진리100선 > 새 예루살렘 3
진리100선
099 새 예루살렘 3
1page 2page 3page 4page 5page 6page 7page 8page 9page
계 21:2, 18-21, 22:1-2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첫째 항목은 이 성이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세대들을 거친 하나님의 건축의 일의 최종적인 결론이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그의 이상 가운데서 처음 본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계 21:1). 그것에 이어 그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을 대표하고,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건축하시는 일을 대표한다. 이것은 창조의 첫 번째 일에 이어 하나님께서 많은 세대들을 통하여 그분의 최종적인 건축을 성취하기 위해 계속 일하셨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기록하지만, 창세기 3장부터 성경의 끝까지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그분의 건축을 위하여 일해 오셨다. 하나님의 건축의 중요한 의미를 회상해 보자.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안으로, 사람을 그분 자신 안으로 건축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모든 세대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하여 오직 이 노선을 따라 일해 오고 계신다. 성경은 주로 창조 이래 하나님의 온 일이 그분 자신을 사람과 하나로 연합하시는 것임을 계시한다.
 
하나님 자신인 말씀이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을 때, 이것은 산 장막의 표현이었고, 하나님과 사람의 실제적인 연합이었다. 이 시간 전에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었고, 사람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육신의 때와 그때 이래로 이 땅 위에서 무언가가 발생했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과 연합하신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이사야 9장 6절과 친밀하다. 그러나 한 아기가 태어났고 그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렸다는 것에 인상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만약 성경에 이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그 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 아기가 장막과 성전이었고, 바로 하나님의 건축이었다(요 1:14, 2:19). 신성이 인성과 연합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건축의 실제적인 정의이다.
 
하나님께서 성육하신 때로부터, 특히 삼년 반 동안에 이 땅에 그분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한 사람이 있었다. 예수는 참 사람이요,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 안으로 오셨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또한 사람 안으로 오셨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 예수는 또한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셨다.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은 이것을 성취하셨다. 오늘 하늘 위에,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오셨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 안으로 인도되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던 동안 그분은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한 사람이었다. 오늘 예수께서 하늘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바로 그분 안에 사람이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의 연합이고, 하나님의 건축의 의미이다. 이 연합은 이미 성취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 연합의 대량 재생산이다. 우리 모두는 체험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성육신하시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분명히 이끄실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 안에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충분히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땅에서 그분의 건축의 일을 하고 계시는 이유이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성육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다음 즉시 우리는 건축의 일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하나님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대량 생산품이 된다. 이렇게 재생산하는 일이 충분히 완성되어 함께 구성될 때, 그 결과는 확장된 장막, 새 예루살렘이다.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지난 육천 년 동안 그분의 최종적인 건축을 출현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를 말해 준다. 성경 연구가들은 하나님께서 한 시대에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시대에는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말하는 많은 시대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모든 세대들을 통한 하나님의 모든 일의 최종적인 결과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시대들을 해석할지라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의 모든 다양한 방법들은 결국 어떠한 종류의 결과, 즉 새 예루살렘을 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그러한 그림이 성경 육십육 권의 마지막에 있다는 것은 참 논리적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역사의 초기 단계에 한 작은 제단과 함께한 장막이 있었음을 보았다. 많은 시대들을 통하여 그 장막이 최종적으로 커다란 장막이 될 때까지 증가되어 왔다. 새 예루살렘이 여전히 장막이라 불리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모른다(계 21:3). 이 장막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총체이다.


왕국을 나타내는 성
 
둘째 주요 항목은 이 하나님의 일의 최종적인 완성이 다만 하나의 장막이나 성막일 뿐 아니라 하나의 성이라는 것이다. 장막은 그렇게 강하거나 영구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장막은 또한 한 성이다. 성경적인 의미에 의하면 성은 권위를 행사하기 위한 중심이다. 그러므로 그 성은 왕국을 상징한다. 새 예루살렘은 거처인 장막일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왕국의 중심인 성이다. 역사의 초기 단계에 한 작은 장막이 있었다. 그 뒤 성막이 왔고, 결국 성전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가장 강하고 모든 것 중에 가장 견고한 구조인 한 성이 있을 것이다.
 
장막이나 성막이나 심지어 성전에 의해 상징된 권위를 가시화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성은 권위가 행사되고 있는 중심을 적절히 상징한다. 그것은 왕국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새 예루살렘에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이 하나님의 권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의 앞 장에서는 성으로부터 분리된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계시한다(계 4:2―3). 그러나 결론적인 장에서 하나님은 성 안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 21:5, 22:3). 이것은 마지막 때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성 안에서 보좌에 앉으실 것임을 의미한다. 그분은 지금 보좌 위에 계시지만, 그때에는 전체 왕국 위에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실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의 영역이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이 중요한 원칙에 대해 말한다. 로마서 12장은 그리스도의 몸을 계시한다. 그러나 로마서 14장은 왕국에 대해 말한다. 합당한 교회 생활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영역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합당한 교회 생활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교회 생활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중심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과 같아야만 한다.


질서 있게 건축된 성
 
셋째 주요 항목은 새 예루살렘이 완전한 질서 가운데 건축된 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보석더미가 아니고, 보석으로 건축된 성이다(계 21:10―11). 우리는 건축을 위한 많은 이상적인 재료들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 재료들이 단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을 뿐이라면, 그것들은 분명히 하나의 건물을 구성할 수 없다. 심지어 교회 생활 안에 있다 할지라도, 참된 건축이 있어야 한다. 단지 훌륭한 믿는 이들이 함께 모인 집단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첫째 필요는 보석으로 변화되는 것이고, 그다음 우리는 하나의 건축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건축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참된 건축을 가질 때 그 성이 질서 있게 나타날 것이다. 교회 생활에서 우리 모두는 단지 재료 무더기로만 쌓여 있어서는 안 된다. 질서 가운데 있어야만 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나의 집에 초대한다면, 나는 그를 목재 야적장으로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를 훌륭하고 합당한 질서대로 건축된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합당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의 성이 될 것이다.
장로훈련 (2) - 주의 회복의 이상 /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 새 예루살렘 / 위트니스 리
되돌아가기
한국복음서원 이용안내 개인정보보호정책 사이트맵
E-Mail : kgbr@kgb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