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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새 예루살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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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 18-21, 22:1-2
새 예루살렘에서 성은 진주문과 열두 층의 보석으로 건축된 벽옥의 성곽이 있는 금으로 된 산이다. 금은 신성한 본성 안에 있는 하나님을 표현하며, 진주는 죽음과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며, 보석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인한 그분의 변화시키는 역사 안에 계시는 그 영을 표현한다.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신성한 모든 풍성의 근원인 아버지와 신성한 모든 풍성의 체현인 아들과 신성한 모든 풍성의 실제화이신 그 영의 삼일의 표현을 본다.




우리는 신성한 모든 풍성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내적 내용을 보아야 한다. 신성한 모든 풍성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표현은 금으로 예표된 그분의 본성에 근거한다(계 21:18하). 새 예루살렘 전체의 기본은 금인데 이는 성 자체가 금으로 된 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바로 성의 기본이며 기초이며 터이다. 아버지의 삼일의 표현은 그분의 본성에 근거할 뿐 아니라 그분의 영광에 근거한다(계 21:11). 하나님 자신이 성의 빛이시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에는 자연적이거나 사람이 만든 빛이 필요없다.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분의 내적 본성에서 금으로 상징되며, 하나님이 빛이심은 그분의 표현에서의 본성을 말한다. 이 빛이 비췰 때 이 비췸은 그분의 영광이 된다. 새 예루살렘에 관하여 먼저 뚜렷한 두 가지는 금과 비취는 영광이다. 신성한 모든 풍성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삼일의 표현은 그분의 비취는 영광 안에 있는 금의 본성에 근거한다.
 
이 이상은 오늘날 우리의 실제적인 생활 안에 적용되어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에게 성 자체가 금이며(계 21:18) 성의 길은 투명한 유리 같은(계 21:21) 정금임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 안에 있는 금으로 된 산이 우리의 방법과 길이 됨을 뜻한다. 순수하고 투명한 신성한 금이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길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 생활 안에서의 길은 하나님의 순수하고 투명한 신성한 본성이다. 교회 생활 안에서 당신은 순수해야 하고 투명해야 하며 솔직하고 곧아야 하며 열려 있어야 한다. 당신은 신성해야 한다. 정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금의 본성이 우리의 길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길인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 안에서 걷고 행동하고 당신 존재를 이 본성 안에 놓는다면 하나님의 빛이 당신 안으로부터 비출 것이며, 이 비춤이 그분의 영광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집에 올 때 영광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의 일상생활과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과 교회 생활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신성한 금, 즉 신성한 비추는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영리하고 인간적이며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행동에서 어떤 신성한 본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행동 안에 비추는 영광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당신의 행동 전체가 불투명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정치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의 정중함은 사실상 대부분이 정치이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행동하고 걸으며 생활하는가? 심지어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신성한 본성 안에서 살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에는 금의 길이 없다. 지난 오십오 년 동안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솔직하게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자신이 뱀의 본성 안에서 행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앞에서는 정중하게 행동하지만 서로의 뒤에서 말하는 ‘뒤에서 무는 사람’들이다. 이런 종류의 행동은 새 예루살렘의 금의 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긍휼로 주의 회복 안에서 약간의 금의 길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신성한 영광의 비춤이 조금 있다.
 
성경은 천연적인 방법으로 윤리적인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걸어야 할 걸음을 보여 주는 계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걸어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신성한 영광이 우리 안에서 비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금이시며 빛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표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신성한 모든 풍성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체험한 나의 매일의 체험에 따른 것이다.
 
 


삼일의 표현의 둘째 면은 신성한 모든 풍성의 체현이신 아들의 표현이다. 근원의 모든 어떠함과 근원이 소유한 것은 아들 안에 체현된다. 신성한 모든 풍성의 체현이신 아들의 이 삼일의 표현은 그분의 인격 안에 있으며 그분의 역사와 함께 있다. 요한 계시록에서 어린양은 구속하시는 인격이시며 인격이신 이 구속자는 등이시다(21:23). 등이신 어린양은 전적으로 표현을 위한 것이다. 모든 전구는 그들 안에 담은 빛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새 예루살렘 전체는, 등이시며 인격이신 그리스도의 표현 아래 있다. 등은 마치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약 1,346마일(약 2,172 킬로미터)인 성을 비출 수 있는 큰 전구와 같다. 그렇게 큰 존재가 오직 하나의 등을 갖는데, 이 등은 그리스도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금이시며 또한 빛이시지만 이 빛은 등이 필요하다. 적절한 등이나 전구가 없다면 전기 빛이 밝게 비추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린양이시며 등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은 밝게 비출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본 바대로 어떤 경치에든지 첫째로 필요한 것은 빛이다. 만일 하나님이 빛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금의 본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등이신, 구속하시는 어린양 안에서 밝게 빛난다. 그분의 인격 안에서 어린양이신 아들은 빛이시며 신성한 풍성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을 표현하기 위한 등이시다. 신성한 모든 풍성이 이 등 안에 체현된다. 전구는 전기 빛의 체현이며 전기의 풍성의 체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신성한 모든 풍성의 체현이신 아들의 비춤 아래 있기 때문에 이 풍성을 누릴 수 있다. 빛은 삼일 하나님의 체험 안에서 우리를 정착시키며 견고하게 한다.
등 안에는 삼일 하나님을 비추며 표현하는 아들의 인격이 있으나 진주 안에는(계 21:21) 아들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가 있다. 우리는 진주가 죽음의 물 안에서 조개에 의해 산출됨을 보았다. 조개가 모래 알갱이에 의해 상처를 받을 때 조개는 모래 주변에 생명의 즙을 분비하여 귀한 진주를 만든다. 조개의 상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며 조개의 생명 분비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분비를 상징한다. 그분의 인격은 등 안에 있으며 그분의 역사는 진주 안에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제는 더 이상 그가 살지 않고 오직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심을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일상생활에서 당신 자신에 의해서 살지 않고 절대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 때 그리스도께서 등으로서 거기에 계신다. 이제 사는 것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사신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그들 자신을 따라 살고 그리스도를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주 말다툼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둘 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선포한다면 등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결혼 생활 안에서 빛날 것이다. 당신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할 때 당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상처와 죽음 안에 머문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표현을 위해서 그분의 부활 생명을 당신 주변에 분비하여 당신을 진주로 만드신다. 당신이 그분의 죽음 안에 머무르며 당신의 구속자를 당신의 생명으로 취해 삶으로써 자신을 부인할 때 등이신 그리스도는 당신 안으로부터 비추고 계시며 그분의 구속의 죽음에 근거하여 당신을 진주로 만들기 위해 당신 위에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분비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인격 안에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등은 아들의 인격을 가리키고, 진주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가리키며, 나무는 그분의 양육하심을 가리킨다. 그분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을 진주로 만들고 계실 뿐 아니라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모든 풍성으로 당신을 양육하기 위한 생명나무이시다(계 22:2). 신성한 나무에서 달마다 맺히는 생명나무의 열두 가지 실과는 당신을 양육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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