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집회

2023년도 7차 정기집회

  • 개요

    봄 수요 사역 집회 : 바울 서신서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메시지1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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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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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국제 중국어 집회 :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메시지1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고 현시대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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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딤후 4:8, 10, 18, 롬 12:2, 요일 2:15, 5:19하, 계 17:14, 22:20

      Ⅰ.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우리에게 소중하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할 것이다 — 딤후 4:8.
      A.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과 주님 자신을 사모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 고전 2:9, 딤후 4:8.
      B.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살전 1:10, 딤후 4:8.
      C.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것, 곧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것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고, 우리를 격려하며,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 딤후 4:1, 18.
      1.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해야 하며, 간절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 계 22:20.
      2.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신실할 수 있다 — 딤후 4:8, 계 17:14.
      Ⅱ.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 요일 2:15.
      A. 세상은 사탄에 의해 조직적으로 배열된 악한 체계이다 — 요일 2:15-17, 약 4:4.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셔서 땅에 살게 하신 것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강탈하기 위해서 문화와 교육과 산업과 상업과 오락과 종교로 사람들을 체계화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 체계를 형성했다 — 엡 3:11, 창 1:26-28, 2:8-9, 4:16-24.
      2.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특히 인류와 관련된 것과 공중에 있는 모든 것은 사탄이 그의 어둠의 왕국으로 체계화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사람들을 점유하고 좌절시키며, 그들을 하나님에 대한 누림에서 빗나가게 한다 — 요일 2:15-17.
      3. 세상은 아버지 하나님을 반대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 요일 2:15-17, 약 4:4.
      B. ‘온 세상’ 곧 사탄적인 체계는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 — 요일 5:19하.
      1. ‘온 세상’은 사탄적인 세상 체계와 세상 사람들, 곧 타락한 인류로 구성된다.
      2. ‘놓여 있다’는 것은 악한 자에게 강탈당하고 조종받는 영역 안에 수동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인 사탄의 강탈하고 조종하는 손 아래 수동적으로 놓여 있다.
      3. 요한일서 5장 19절에서 ‘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치명적이고 해악을 끼치는 자를 가리킨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어 사람들을 사악하고 악독하게 만드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악한 자가 바로 사탄 마귀이며, 온 세상이 그 안에 놓여 있다.
      C. 사탄은 물질적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결국에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모든 것을 그의 머리 아래로 통일할 것이다. 바로 그때에 세상 체계는 그 정점에 이를 것이고, 세상 체계를 이루는 모든 단위가 그리스도인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 살후 2:3-12.
      Ⅲ.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은 현시대를 사랑하는 것과 대조된다 — 딤후 4:8, 10.
      A. 시대는 사탄의 세상 체계의 한 부분이나 한 단면 혹은 한 방면이다. 이것은 사탄이 사람들을 강탈하고 점유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사용된다 — 요일 5:19, 2:15.
      B.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서 ‘현시대’는 우리를 둘러싸고 매혹하고 유혹하는 세상을 가리킨다. 우리가 세상의 현시대를 접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접할 수 없다.
      C. 데마는 현시대를 사랑했다. 그는 현시대에 매혹되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버렸다 — 딤후 4:10.
      D. 로마서 12장 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라고 권면한다.
      1. 2절에서 ‘이 시대’는 세상의 현존하는 실지적인 부분을 나타낸다. 이것은 몸의 생활과 대립되며 몸의 생활을 대치한다 — 롬 12:4-5.
      2. 이 시대를 본받는 것은 현시대의 현대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되는 것은 유기적인 요소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지도록 하여, 내적이며 신진대사적인 변화를 산출하는 것이다 — 롬 12:2, 고후 3:18.
      3. 현시대는 하나님의 뜻인 교회를 반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현시대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 롬 12:2.
      4.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시대를 따르지 말아야 하며 이 시대를 본받거나 닮지 말아야 한다 — 롬 12:4-5.
      E. 현시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세상 편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한다면,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권익을 위해 주님과 함께 싸울 것이다 — 딤후 4:1-2, 4-8, 10.
      Ⅳ.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이들은 승리할 것이다 — 고전 2:9, 딤후 4:8, 계 22:20, 17:14.
      A.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보상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된다 — 딤후 4:8, 18.
      B.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할수록, 우리는 오늘 더욱더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 마 24:40-42, 살후 1:10, 3:6-12, 딤전 5:8.
      C.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며, 그분을 살고, 그분을 확대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고 주님의 하늘에 속한 왕국 안으로 구원받으며 의의 면류관을 받기를 바라는 이들로서,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마음의 갈망과 생활이 되게 해야 한다 — 딤후 4:8, 18.
    • 메시지2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름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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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히 6:1, 엡 4:13, 골 1:27-29, 4:12, 계 14:1-5

      Ⅰ.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농부가 오래 참으면서 땅의 귀중한 열매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예시로 사용한다 — 약 5:7.
      A. 주 예수님은 사실상 참된 농부, 유일한 농부이시다 — 마 13:3.
      B.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동안, 참된 농부이신 주님도 밭의 첫 열매와 곡식인 우리가 생명 안에서 성숙하기를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 계 14:4, 14-15.
      C. 우리가 “주님, 속히 돌아오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너희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희가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성숙해야만 내가 돌아가는 것이 앞당겨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D.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우리가 진지하게 기다린다면,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Ⅱ. 성숙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속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 갈 4:19.
      A.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갔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태어나셨다(요 3:6, 15-16). 이제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도록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시며(갈 2:20하), 우리가 성숙할 때 우리 속에 그분의 형상이 이루어질 것이다(4:19).
      1.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a.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우리가 변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창 1:26, 골 1:28, 2:19, 4:12.
      b. 성숙은 우리가 생명의 충만함을 얻을 때까지 신성한 생명을 거듭해서 우리 안으로 분배받는 문제이다 — 요 10:10하.
      2. 성숙은 용량이 증가하는 문제이다 — 시 4:1.
      a. 생명의 성숙은 성령의 징계를 받은 것의 총합이다 — 히 12:5-11.
      b. 다른 사람들은 생명이 성숙한 한 사람을 보겠지만, 그 사람이 수년에 걸쳐 남모르게 매일 받아 온, 축적된 성령의 징계는 볼 수 없다 — 고후 1:8-10, 창 47:7, 10.
      3. 하나님은 우리를 채운 모든 것을 비워 내시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시기 위해, 주권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과 사건을 사용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우리의 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 눅 1:53, 마 5:6.
      B. 우리가 신성한 아들의 자격에 있어서 성숙하고 성년이 된 아들들이 되려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 갈 4:4-5, 롬 8:15, 엡 1:5.
      1.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해 오셨다 — 고후 3:18, 롬 8:29.
      2. 주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우리 안으로 완전히 일해 넣으시고 우리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실 때, 우리는 생명이 성숙할 것이다 — 엡 3:16-17.
      C. 신약의 용법에 따르면, ‘성숙’이라는 단어는 믿는 이들이 거듭났을 때 받은 하나님의 생명이 완전히 자라고 성숙하고 온전해진 것을 가리킨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즉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기를 추구함으로써,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 빌 3:12-15.
      2. 영적 생명이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성한 생명이 계속 자라는 것이다 — 엡 4:15.
      3.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한 것의 궁극적인 결과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된다. 곧 성숙한 사람으로 자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된다 — 엡 4:13.
      Ⅲ. 바울의 사역의 목표는 한 새사람을 위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 곧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 골 1:28-29, 3:10-11.
      A. 골로새서 1장 28절에서 ‘충분히 성장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또한 ‘온전한’, ‘완전한’, 혹은 ‘성숙한’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B.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함으로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어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 엡 4:13.
      C.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갈수록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더 들어오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더 들어오실수록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간다. 바로 이러한 순환에 의해 우리는 생명이 자란다 — 골 1:27-28.
      D.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과 교통하는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그들 안으로 공급함으로, 그들이 생명이 성숙하여 그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드려지게 하는 것이다 — 골 3:10-11, 엡 4:13-14.
      Ⅳ. 휴거될 준비가 되려면 우리는 생명이 성숙해야 한다 — 마 24:40-41.
      A. 휴거는 생명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결 단계로서 우리 몸의 변형, 우리 몸의 구속이다 — 롬 5:10, 8:23, 빌 3:21.
      1. 우리가 받아들인 신성한 생명의 요구와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강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생활을 추구하기를 갈망한다 — 살전 1:10, 2:19, 3:13, 4:15, 5:23.
      2.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주님의 임재 앞으로 휴거되기를 소망한다 — 마 24:40-41, 눅 17:31-36, 21:36.
      B. 성숙하게 되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 안에서 자라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휴거되도록 성숙되어 있을 것이다 — 계 14:1-5.
      C. 성숙의 표시에는 다음의 항목이 포함된다 — 히 6:1.
      1. 우리를 변화시키는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짐 — 엡 3:19.
      2.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 — 롬 5:17.
      3.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음 — 히 5:12-14.
      4.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성장함 — 고전 14:20.
      5.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온전하게 됨 — 마 5:48.
      6. 몸을 보고, 몸을 알고, 몸 안에서 몸을 위해 살고, 몸을 돌보고, 몸을 존중함 — 엡 4:13-16.
    • 메시지3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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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벧후 1:19, 시 119:105, 130, 계 2:28, 말 4:2, 살전 5:4-6

      Ⅰ. 믿는 이들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벧후 1:19상.
      A.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언들을 알기를 요구하시며, 믿는 이들은 예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벧전 1:10, 벧후 3:2, 눅 1:70.
      B.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언들을 이해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믿는 이들이 반드시 성경에 있는 예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마 24:15, 비교 단 9:24-27.
      C. 교회가 이 예언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많은 믿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믿음을 잃고, 거짓말에 속고, 예언에 대한 지식이 없어 멸망하고, 깨어 있지 않아 주님의 오심을 잊어버릴 것이다 — 호 4:6, 살전 5:4-6, 마 24:42, 벧전 5:8.
      D. 믿는 이들에게 성경의 예언들이 없다면, 그들은 어둠 속에 빠질 것이다 — 행 26:18, 요 12:35-36, 엡 5:8-9.
      1. 현시대는 밤중이다 — 롬 13:12, 살전 5:4-8.
      2.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날이 밝을 것이고(벧후 1:19하), 다음 시대인 왕국 시대는 낮 시간일 것이다.
      Ⅱ. 베드로는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했다 — 벧후 1:19중.
      A. 이것은 이 시대가 어두운 밤(롬 13:12)이자 어두운 곳이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행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비교 행 26:18).
      B.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은 믿는 이들을 비추는 등불로서 (다만 정신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문자로 된 지식이 아닌) 영적인 빛을 전달하여 그들의 어둠을 비추며, 그들이 밝은 낮에 들어가도록 안내할 뿐 아니라, 어두운 밤을 지나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이 밝을 때까지 안내한다 — 벧후 1:19하, 딤후 4:8, 1:12.
      C. 햇빛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까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는 빛인 이 말씀이 필요하다 — 말 4:2, 시 119:105, 130.
      D. 만일 우리가 어두운 곳을 등불처럼 비추는 성경의 예언의 말씀에 주의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떠오르셔서 어둠을 비추실 것이다 — 벧후 1:19하.
      Ⅲ. 우리는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벧후 1:19하.
      A. ‘어두운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또한 ‘아주 음산하고 어두컴컴한 곳’, 즉 ‘지저분하고 메마르고 방치된 곳’으로 번역될 수 있다.
      B. 날이 밝는 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빛으로 충만하게 될 장차 오는 때를 설명하고 있으며, 동트기 전 샛별이 떠오르면서 날이 밝는 것처럼, 샛별이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믿는 이들은 성경에 있는, 빛을 비추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함으로써 비춤을 받고 밝아진 사람들이다.
      1.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믿는 이들은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추구하고 깨어 있도록 동기를 부여받고 격려받아, 주님께서 도둑처럼 오실 때에 그분께서 오시는 것(파루시아)의 은밀한 방면을 놓치지 않고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마 24:27과 각주 1, 42-43절, 살후 2:8과 각주 5.
      2. 이 비유는 의의 해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오실 때)에 밝아 올 날인 오는 시대, 곧 왕국 시대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의의 해의 빛은 캄캄한 밤과 같은 이 시대의 암흑을 뚫고 빛을 비출 것이다 — 말 4:2.
      C. 샛별은 동트기 전인 가장 어두운 시간에 나타난다 — 계 22:16하, 비교 민 24:17, 마 2:2, 9-10.
      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가 끝나기 전인 가장 어두운 시기에 빛나는 샛별로서 나타나실 것임을 가리킨다 — 계 22:16하.
      2. 주님께서 샛별로 나타나시는 것과 의의 해로 나타나시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계 2:28, 말 4:2.
      a. 샛별은 날이 밝기 전에 나타나며, 해가 나타나는 것은 날이 밝은 후에 일어난다.
      b. 날이 밝은 후에 뜨는 의의 해로서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 말 4:2.
      c. 날이 밝기 전에 뜨는 빛나는 샛별로서 그리스도는 깨어 있고 준비하고 그분을 기다리는 이기는 이들에게 은밀히 나타나실 것이다 — 계 22:16하.
      d. 그리스도는 그분을 사랑하고 깨어서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샛별이신 그분 자신을 은밀하게 나타내 주실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그분께서 오랫동안 이 땅에 계시지 않다가 돌아오실 때, 그분의 임재의 신선함을 가장 먼저 맛보는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 — 계 2:28.
      D. 우리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성경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 속의 상태는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처럼 될 것이다 — 벧후 1:19하.
      1. 비유적으로, ‘날이 밝는 것’은 밝아 오는 대낮과 같은 다가올 왕국 시대를 가리킨다 — 비교 마 13:43.
      2. 그리스도의 예표들과 관련해서, 성경 전체는 빛이신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샛별이신 그리스도로 끝마친다 — 창 1:3, 계 2:28, 22:16하.
      3. ‘샛별’은 왕국 시대가 밝아 오기 전인 가장 어두운 밤 시간에,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이들의 마음에 은밀하게 떠오르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계 22:16하.
      4. 우리가 빛을 비추는 성경 말씀에 계속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리스도께서 밝은 샛별로서 실지로 나타나시기 전에, 우리 안에서 낮처럼 밝아 오는 왕국과 우리의 마음속에서 샛별처럼 떠오르시는 그리스도를 얻게 될 것이다 — 벧후 1:19, 계 2:28.
      5. 샛별이신 그리스도는 이기는 이들에게 첫 번째 보상으로 주어지실 것이다. 우리는 샛별이신 주님의 은밀한 나타나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 계 2:28-29.
    • 메시지4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가 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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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마 24:45-51

      Ⅰ.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가 되어, 주인이 맡긴 집안 식구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눠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인이 와서 노예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 노예는 복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입니다.” — 마 24:45-47.
      A.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가정’ 경영, 즉 그분의 가정 행정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어 자신을 표현하는 집을 얻으시는 것인데, 이 집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 딤전 1:4, 3:15, 엡 2:19.
      B.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는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이자 가정 관리인으로서,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분배한다 — 고전 9:17, 엡 3:2, 고전 4:1, 벧전 4:10.
      1. 신실함은 주님께 보이는 것이지만(고전 4:2, 7:25), 현명함은 믿는 이들에게 행하는 것이다(비교 골 1:28, 대하 1:10, 빌 4:5).
      2. 주님은 천국의 출현 안에서 신실한 노예에게 그분의 모든 소유를 맡기실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노예에게 주시는 보상일 것이다 — 마 25:21, 23.
      C. ‘양식을 나눠 줄’은 교회 안의 믿는 이들에게 생명 공급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양식으로서 생명의 말씀 안에 체현되시고 실재화되어 계신다 — 마 24:45, 요 6:57, 63, 68.
      1.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영적 양식으로 누려 이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기 위해서는 온갖 기도를 통해,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읊조림으로 즉 깊이 숙고하며 크게 말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 엡 6:17-18, 시 119:15(각주 1 참고), 48, 148, 수 1:8, 레 11:2-3, 겔 3:1-4, 골 3:16.
      2.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 행 6:4, 비교 히 7:25, 8:2.
      3. 우리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신언해야 한다. 즉 이 생명의 살아 있는 말씀과 우리가 본 것을 성령의 즉각적이고도 신선한 감동과 기름바름과 빛 비춤 아래서, 우리의 영을 사용해 말해야 한다 — 고전 14:4하, 행 5:20, 4:20, 22:15.
      4.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돌봄 아래 있는 이들을 먹이려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함으로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의 공급 곧 영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눅 11:1-13.
      5. 우리는 생명을 주는 ‘구하는 사람’, 곧 생명 주시는 영의 통로로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이가 되어야 한다 — 요일 5:16.
      6. 우리는 ‘신선한 기름의 아들들’, 곧 즐거움의 기름이신 신선하시고 현존하시며 완결되신 영으로 계속 충만하게 되어, 등잔대의 빛나는 증거 곧 예수님의 증거를 위해 등잔대 안으로 그 영을 흘려 보내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슥 4:6, 12-14, 빌 1:25, 계 3:18, 마 25:9.
      a. 우리는 날마다 대가를 지불하여 신성한 본성을 지닌 금기름이신 하나님을 더 많이 얻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금으로 된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해 순수한 금등잔대가 될 수 있다 — 벧후 1:4, 계 3:18, 1:20, 21:18, 마 25:8-9.
      b. 이것을 오늘 우리의 체험에 적용해 볼 때, 우리는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영께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금이신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어 그들에게 기름을 공급해 줄 때, 우리는 사실상 그들에게 하나님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흘러나오셔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 슥 4:12-14, 요 7:37-39, 고후 3:3, 6, 8, 눅 10:34.
      Ⅱ. “그러나 그 악한 노예가 마음속으로 ‘나의 주인이 더디 오실 것이다.’라고 하며, 동료 노예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면, 예기치 않은 날, 알아채지 못하는 시각에 그 노예의 주인이 와서, 그를 엄하게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 마 24:48-51.
      A. 마음속으로 우리의 주인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한 현시대를 사랑하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지 않는 것이다 — 딤후 4:8, 10.
      1. ‘오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임재’를 의미하는 ‘파루시아’이다.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즉 주님께서 오시기를 사모한다면, 오늘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 그분의 임재를 사모해야만 한다 — 마 24:3, 37, 행 26:16, 고후 2:10, 찬송가 290장.
      2. 우리에게 오늘이 있는 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면서,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오심을 경고와 격려와 동기 부여로 삼아야 한다 — 딤후 4:8, 빌 3:20, 계 22:12.
      3. 우리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마 25:13, 24:44, 계 19:7.
      4. 우리는 탐심을 주의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해야 한다 — 눅 12:16-20, 고후 6:10, 엡 3:8.
      5. 우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철저히 멸하실 악한 세상을 사랑하거나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 눅 17:28-32.
      6.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우리에게 닥치지 않도록 깨어서 간구해야 한다 — 눅 21:34-36, 비교 마 2:3.
      7. “주 예수님, 오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염원과 부르짖음과 지속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 계 22:20, 딛 2:12-13.
      B. 우리의 동료 노예들을 때리는 것은 동료 믿는 이들을 학대하는 것이다 — 비교 행 9:4.
      1. 우리는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을 판단하거나 유죄판결 해서는 안 되며, 친절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해야 한다 — 눅 6:37, 엡 4:31-32.
      2.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보다 그들을 더 낫게 여겨야 한다 — 고전 6:10-11, 빌 2:3, 29.
      3. 우리는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 위에 (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이) 군림해서는 안 되며, 노예로서 그들을 섬김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여야 한다 — 벧전 5:3, 마 20:25-28, 비교 민 17:8.
      C.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적인 것들로 취해 있는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다.
      1. 믿는 이들은 신성한 본성과 거룩한 위치가 있으므로, 믿지 않는 이들과 멍에를 함께 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결혼이나 사업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사이의 모든 친밀한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 고후 6:14, 고전 15:33, 비교 잠 13:20.
      2. 우리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추구해야 한다 — 딤후 2:22.
      D.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는 왕국이 출현할 때 다스리는 권위를 보상으로 받을 것이지만, 악한 노예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의 영광과 왕국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에서 끊어질 것이다 — 마 24:47, 51.
      1. 왕국의 출현에서 끊어지는 것은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이다.
      a. 바깥 어둠은 왕국의 출현 안에 있는 밝은 영광 바깥에 있는 어둠이다 — 마 16:28, 25:30.
      b. 슬피 우는 것은 후회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를 가는 것은 자책하는 것을 가리킨다.
      2.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민족들을 다스리는 것은 그분의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들에게 주어지는 상일 것이다 — 계 2:26, 눅 19:17-19.
    • 메시지5
      부흥된 생활을 하고 목양하는 수고를 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고후 4:16-18, 요 21:15-17

      Ⅰ.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려면, 우리는 부흥된 생활 곧 매일 새로워지는 생활을 함으로써(고후 4:16-18) 우리의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새롭게 됨이 매일 아침 신선해져야 한다(마 13:43, 눅 1:78-79, 잠 4:18, 삿 5:31).
      A. 날마다 새로운 출발을 가지려면 우리는 아침 일찍 주님을 누려야 한다 — 시 119:147-148.
      B. 매일 아침 우리는 우리의 해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떠오르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하며, 그럴 때 새로워질 수 있다 — 눅 1:78-79, 말 4:2, 삿 5:31.
      1.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주님과 교통해야 하며, “주님, 새로운 시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날이 저의 생애에 기념이 될 만한 날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아침마다 부흥되는 것’이다.
      2. 새로운 시작을 갖기 위해, 매일 아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해야 할 뿐 아니라, 달콤한 방식으로 깊은 속에서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 — 레 6:12-13.
      3. 매일 아침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사신 분이시자 우리가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취하는 것이다 — 레 1:9, 6:12-13, 요 5:19, 30, 6:38, 7:18, 8:29.
      C. 부흥된 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극도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는 것을 하루의 목표로 삼아 그분을 향해 사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고전 2:9, 고후 5:14-15, 빌 3:14.
      D. 우리는 제단과 천막의 생활을 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창 12:7-8, 13:3-4, 18.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결과로 우리는 헌신을 하게 되며 제단을 쌓게 된다. 제단은 우리의 온 존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분께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제단을 쌓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을 위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이시며, 우리의 생활의 의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 창 8:20-21상, 출 29:18-22.
      2. 천막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체류자로서 더 좋은 고향을 찾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건축하신 성인 새 예루살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 히 11:9-10, 13, 16.
      E. 날마다 새롭게 부흥되는 것은 매일 신선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평생 이렇게 변화되는 상태로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생명 안에서 성장하여 성숙에 이를 것이다 — 롬 12:2, 고후 3:18, 히 6:1상.
      F. 우리는 네 가지 항목을 통해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그것은 십자가(고후 4:10-12, 16-18), 우리를 신성한 생명으로 재조정하시고 다시 만드시고 개조하시는 성령(딛 3:5), 우리의 연합된 영(엡 4:23),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엡 5:26)이다.
      G. 우리는 새로움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아와야 한다(마 26:29). 주님은 절대로 낡은 상을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새롭게 될 필요가 있다.
      H.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매일 아침 주님의 새로운 자비를 얻어 그분에 의해 새로워지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고, 우리가 통과한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 애 3:22-24, 고후 4:16-18.
      Ⅱ.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려면,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교회인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는 것이다 — 요 21:15-17, 벧전 2:25, 5:1-4, 히 13:20-21.
      A.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그분의 사역에서 보여 주신 본에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마 9:36, 요 10:11, 히 13:20, 벧전 5:4.
      1.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구주의 목양하고 찾는 영이 없는 것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이다 — 눅 15:1-24.
      2.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며(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야 하며)(마 9:10, 눅 7:34),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양해야 한다(세 단계의 사역 안에 계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여야 한다)(마 24:45-47).
      3. 그리스도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시다가 의도적으로 우회하여 수가라는 동네에 가셔야 했는데, 그것은 부도덕한 한 여인을 얻으시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심으로써 그녀를 보살피셨는데, 이것은 생명수의 강이신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그녀를 보양하시기 위해서였다 — 요 4:3-14.
      4. 죄가 없는 분이신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유죄판결 하지 않으시고, 법리적으로 그녀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유기적으로 그녀를 죄들에서 해방하심으로써 그녀를 보살피셨다(요 8:1-11, 32, 3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 첫 번째로 구원하신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은 강도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눅 23:42-43).
      5. 주님은 세리장인 한 사람을 방문하여 얻으시려고 여리고에 가셨으며, 이러한 주님의 복음 전파는 일종의 목양이었다(눅 19:1-10). 주님은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심으로써 그들의 부모들을 보살피셨다(마 19:13-15).
      6. 금등잔대들인 교회들을 돌보시는 데 있어서, 승천하신 주님은 ‘거니시는 그리스도’이시고 ‘말씀하시는 영’이시다. 교회들 가운데를 거니심으로써 그분은 각 교회의 상태를 알게 되시고, 그런 후에 그분께서 보신 것에 따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그분의 이기는 이들이 되게 하시려는 목표를 위해 그들을 신진대사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변화시키시려는 것이다 — 계 1:12-13, 2:1, 7.
      B. 우리는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권유하는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목양한 사도 바울의 본에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살전 2:7-8, 11-12, 딤전 1:16, 행 20:28.
      1. 바울은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행 20:20) 에베소의 성도들을 가르치고, 삼 년 동안 눈물로 성도들 각 사람을 훈계하며(31, 19절), 하나님의 모든 의결을 그들에게 선포함으로써(27절) 그들을 목양했다.
      2.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친밀한 관심을 가졌고(고후 7:2-7, 몬 7, 12), 연약한 사람들을 얻을 수 있기 위해 그들의 수준에까지 내려갔다(고후 11:28-29, 고전 9:22, 비교 마 12:20).
      3.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그가 가진 것, 곧 그의 소유물을 기쁘게 소비하고, 그의 존재, 곧 그 자신까지도 기쁘게 소비하고자 했다(고후 12:15). 그는 전제물로서, 곧 포도주를 생산하는 분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인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였다(빌 2:17, 삿 9:13, 엡 3:2).
      4. 바울은 그 영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존귀하게 했으며, 그 결과 그 영을 공급함으로 사람을 존귀하게 할 수 있었다 — 고후 3:3, 6, 8, 갈 5:16, 25, 삿 9:9.
      5. 바울은 그의 가르침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양육하는 가정이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병원이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는 학교임을 시사했다 — 엡 2:19, 살전 5:14, 고전 14:31.
      6.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가장 뛰어난 길이 사랑이라는 것을 계시했다. 즉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계시했다 — 고전 8:1, 12:31, 13:4-8상, 엡 1:4, 3:17, 4:2, 15-16, 5:2, 6:24, 계 2:4-5, 골 1:18하, 살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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