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집회

2023년도 7차 정기집회

  • 개요

    가을 수요 사역 집회 : 바울의 서신서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고린도전서

    • 메시지1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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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하여 우리를 영적인 사람들로 만드는 십자가의 일을 통해 교회 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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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하나님의 깊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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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4
      최고의 영성을 갖기 위해 주님과 한 영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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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5
      하나님의 경작지와 하나님의 건축물인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비밀들을 맡은 청지기들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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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6
      하나님의 경작지와 하나님의 건축물인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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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7
      무교절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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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8
      왕국의 보상을 얻기 위해 경주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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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9
      우상숭배를 피하여 지성소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고 종교의 진영 밖으로 나아가 주님과 친밀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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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0
      교회 안의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답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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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1
      주님의 상과 주님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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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2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흡수함으로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에 복종함으로 그분의 보좌 아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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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3
      그 영께서 나타나심 ― 신성한 일과 사역과 은사 안의 신성한 삼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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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4
      그리스도의 몸의 섞임과 실재 안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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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5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한 가장 탁월한 길과 가장 탁월한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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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6
      부활 ― 신성한 경륜의 생명 맥박과 생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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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봄 수요 사역 집회 : 바울의 서신서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메시지1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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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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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하나님의 내적이고 영적인 새 창조물 안에서 우리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에 대한 그림인 하나님의 외적이고 물질적인 창조물 안에 나타난 그분의 능력과 특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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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4
      화해 장소 ― 속죄 덮개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의 내재적인 의미와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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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5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의 신성한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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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6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불러내시는 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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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7
      육체 안에서와 그 영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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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8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우리의 영 안에 설치되신 생명의 영의 법이 되시기 위해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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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9
      세 부분으로 된 사람 안으로 자신을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
      +
    • 메시지10
      맏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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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1
      인성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유기체가 되기 위해 그분을 담고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선택된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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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2
      접붙여진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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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3
      시대를 전환하는 사람들인 주님의 이기는 이들이 되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고 주님의 생명 안에서 구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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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4
      하나님의 왕국 ― 교회생활의 실재 ― 의와 화평과,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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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5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에 수고하는 제사장들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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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6
      로마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깊은 사상 ― 절차인 지방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실지적인 생활을 하여 목표인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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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겨울 훈련 :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왕국의 실재와 출현을 가져오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신부가 자신을 준비하도록 함

    • 메시지1
      좋은 땅을 얻기 위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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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수 1:2-6, 13, 엡 2:2, 6:12, 골 1:12-13
      Ⅰ.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우리는 좋은 땅을 얻기 위한 전투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 수 1:2-6, 13.
      A.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이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힘을 다하고 있다 — 엡 2:2, 6:12.
      B. 구약에 있는 모든 전투는 좋은 땅과 관련되었다 — 수 1:2-6, 5:11-6:27.
      Ⅱ.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과 가나안에서의 전쟁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가나안이 성경의 예표에서 두 방면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골 1:12, 엡 1:3, 2:2, 6:12.
      A. 긍정적인 방면에서 가나안은 풍성한 땅으로서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가지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신 8:7-10, 골 1:12, 엡 3:8.
      1. 좋은 땅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궁극적인 예표이다 — 신 8:7.
      2. 좋은 땅인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엡 3:8.
      3. 성경에서 땅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이자 상징이다 — 창 1:9, 벧후 3:5.
      a. 창세기 1장 9절과 10절과 13절에서 셋째 날에 죽음의 물에서 드러난 땅은 셋째 날에 죽음에서 나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b.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땅이 되셔야 한다는 것이다 — 신 8:7-10.
      B. 부정적인 방면에서 가나안은 사탄의 어둠의 왕국의 하늘 부분인 공중, 곧 사탄의 세력들로 가득 차 있는 하늘들의 영역을 상징한다 — 엡 2:2, 6:12.
      1. 사탄은 권세를 가지고 있고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사탄의 부하들로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이다. 따라서 사탄은 그의 왕국, 곧 어둠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 행 26:18, 마 12:26, 25:41, 엡 6:12, 골 1:13.
      2. 오늘날까지도 악한 세력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보지 못하도록 너울로 가리고 있다 — 골 2:8, 18, 고후 4:4.
      3. 에베소서는 하늘들의 영역에 여러 층이 있음을 보여 준다 — 엡 1:3, 2:2, 6:12.
      a. 그리스도는 가장 높은 층인 셋째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의 좋은 땅으로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 — 신 8:7-10.
      b. 하늘들의 영역에는 더 낮은 층인 공중이 있다. 그곳에서 사탄은 공중 권세의 통치자로서,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던 가나안 족속으로 예표된다 — 엡 2:2.
      4. 가나안 족속은 사탄을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 곧 반역한 천사들의 예표인데, 이들은 사탄의 왕국에서 능력자들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 곧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 세력들이 되었다 — 계 12:4, 7, 엡 6:12.
      Ⅲ.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여러 이방 족속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의 여러 방면을 의미한다.
      A. 이방 족속의 신들(우상들, 출 23:24)과 그 배후에 있는 귀신들(비교 고전 10:20)은 악한 영적인 세력들을 나타낸다(엡 6:12).
      B. 악한 영적인 세력들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의 배후에서(비교 마 16:23 각주 1) 타고난 생명의 각 방면들을 이용하고 조종하고 지시하여,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분의 풍성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다.
      C. 타고난 생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누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미워해야 하며(눅 14:26),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수록 기꺼이 그것을 쫓아내야 한다.
      D. 하나님은 이방 족속으로 상징된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한 번에 모두 잘라 내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우리가 내적으로 비어 있게 되어 들짐승들로 상징된 귀신들에게 사로잡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출 23:29, 비교 마 12:43-45.
      1. 하나님은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란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조금씩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잘라 내신다 — 출 23:30.
      2.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증가하실수록 그분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더 대치하실 것이다.
      E. 하나님께서 이방 족속들을 쫓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출 23:29-30),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데 앞장섬으로써 그분과 동역해야 했다 — 출 23:31-33, 비교 롬 8:13, 갈 5:24, 골 3:5, 빌 2:12-13.
      F.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증가하실수록, 우리는 타고난 생명을 쫓아내는 데 하나님과 더 동역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좋은 땅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사탄의 세력들을 패배시켜야 한다 — 수 6:21.
      A. 우리는 영적 전쟁, 곧 사탄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 사이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마 6:10, 7:21, 12:26, 28, 사 14:12-14.
      B.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땅은 귀신 들린 사람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네피림으로 가득하였다 — 민 13:33.
      C. 타락한 천사들과 타락한 사람의 혼합인 네피림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있는 온갖 생명체를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류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 신 7:1-2.
      1. 신성한 사상에 따르면, 가나안 땅의 민족들은 마귀적이고 귀신들과 혼합되었기 때문에 진멸되어야 했다 — 신 7:2, 수 11:21-22, 14:6-14.
      2. 가나안 족속은 타락한 천사들뿐 아니라, 악한 영들 곧 공중에 있는 사탄의 어둠의 권세와 연합한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 — 민 14:45.
      D. 아랏 왕(민 21:1)과 아모리 족속의 왕(21절)과 바산 왕(33절)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문지기들’로서 사탄을 위해 가나안 땅 곧 어둠의 왕국을 지키고 있었다.
      1. 하나님의 군대에 패배당한 왕들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을 상징하며, 우리는 반드시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 엡 6:12.
      2.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왕들이 통치하는 영토를 지나가야 했으며, 그들과 싸우고 그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해야 했다.
      3.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아랏 왕과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으로 상징되는 영적인 원수들을 반드시 산산이 부서뜨려야 한다 — 엡 3:8, 6:10-12.
      E. 이스라엘이 그 땅의 주민들과 맞서 싸운 것은 땅 위의 보이는 장면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묘사한다 — 단 10:10-21, 엡 6:10-20.
      1. 우리가 장면 뒤에서 영적인 싸움, 곧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더하여, 하나님과 공중에 있는 사탄의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있다 — 엡 2:2, 6:12.
      F.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누리기 위하여 가나안 족속과 맞서 싸운 것은 성도들이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지체를 포함한 교회 전체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엡 6:12)과 맞서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이다.
      G. 그리스도는 우리의 좋은 땅이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기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와 좋은 땅 사이를 마귀와 귀신의 세력들의 층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좋은 땅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사탄의 세력들을 패배시켜야 한다 — 골 1:12-13, 2:15, 엡 3:18, 6:11-12.
      1. 우리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지극히 실지적인 영적 전쟁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새사람이자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반드시 전투를 해야 한다 — 엡 6:10-12, 딤전 6:12상, 딤후 2:3-4, 골 1:13, 18, 2:19, 3:10-11.
      2. 우리가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를 소유하려면, 반드시 단체적인 전투원,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어 사탄의 세력과 맞서 싸워 그들을 패배시켜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얻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확장하여,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땅을 상속받으시게 할 수 있다 — 엡 3:8, 4:16, 마 24:14, 계 11:15.
    • 메시지2
      그리스도의 충고와 경고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분의 새로워진 훈련을 받아 우리의 속사람이 매일 새로워짐으로써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상속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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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히 3:12, 16-19, 4:2, 6, 11:1, 고전 10:1-14, 시 106:24-25, 신 8:3, 마 4:4
      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신 목표는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그 땅의 풍성을 누려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하나님의 표현이 되는 것이었다 — 출 3:8, 14, 17.
      A. 비록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통해 구속받고 이집트의 학정에서 구출받고 하나님의 산으로 이끌려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는데(히 3:7-19), 이는 그들의 악행과 불신 때문이었다.
      B. 이것은 우리가 비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고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계시 안으로 이끌렸을지라도, 하나님의 부름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여전히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부름의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현시대에 그분의 표현이 되고 왕국 시대에 그리스도를 최고도로 누리는 것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 마 25:21, 23.
      C.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 그 목표에 이르렀고 좋은 땅에 들어갔다.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우리 신약의 믿는 이들은 ‘상(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최고도로 누리는 것)을 위하여’ ‘푯대(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는 것)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 민 14:27-30, 빌 3:12-14.
      1. 모세가 그 땅을 정탐하도록 보낸 열두 명 중 열 명은 악하게 보고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불평하고 주님의 말씀을 거스르게 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온 회중에게 “다만 여러분은 여호와를 거스르지 말며 그 땅의 백성(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라고 말했다 — 민 14:9.
      2.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떡이고(마 4:4),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음식이며(요 4:34), 아낙 자손 역시 우리의 밥이다(민 14:9). 아낙 자손은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 정복할 수 없는 장애물과 불가능한 상황을 상징한다.
      3. 사탄이 우리의 길에 둔 모든 어려움과 유혹은 우리를 위한 밥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진보를 위해 정하신 수단이다(딤전 4:15-16). 우리가 승리를 위해 주님을 의지하고 있고 그분의 이기는 생명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도록 허락한다면, 우리는 신선한 양식을 발견하고 활력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수 14:11-15).
      4. 하나님의 지켜 주는 능력을 얻기 위해 우리는 우리 믿음의 영을 사용하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향하게 하여 온 마음으로 그분의 약속들을 믿고(고후 4:13, 3:16, 1:20),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심을 믿으며, 그분의 백성이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수 14:12-15, 민 13:30). 우리는 우리의 혼을 신실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맡기고(벧전 4:19), 우리 자신을 그분께 넘겨드리며,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시기를 그분께 의탁해야 한다(딤후 1:12).
      5. 우리가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그분께 의탁한다면, 우리는 오늘부터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날까지 지켜질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그분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큰 기쁨을 가지고 서게 하실 수 있다 — 유 24.
      6.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려면, 불신의 악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주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 신 1:25-26, 28, 35-39, 9:23, 히 3:12, 16-19, 4:2, 6, 11:1, 비교 고후 4:13, 갈 3:2, 5, 롬 10:17, 행 6:5상, 민 13:25-33, 14:4-10, 32:11-12, 수 14:6-12, 고전 10:1-13.
      7.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려면, 반드시 불평하지 않도록(불만족스러워서 은밀히 중얼거리고 투덜거리며 원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불평하는 것은 불만족스럽고 불만을 품어 원망하며, 낮은 어조로 불분명하게 속삭이듯 투덜대는 것이다 — 고전 10:10, 시 106:24-25, 빌 2:14.
      Ⅱ.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려면,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자손이 금송아지를 숭배함으로 우상숭배 한 것(출 32:1-6)을 언급하며 말한 것처럼 반드시 ‘우상숭배를 피해야 한다’(고전 10:14).
      A. 금송아지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이 만든 우상이었다. 뛰노는 것은 흥청거리며 노는 것(혹은 떠들썩하게 즐기는 것)에 빠지는 것이다. 무엇이든 우리 안에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며 우리의 생활에서 주님을 대치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우상이다(겔 14:3). 참되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인 우리는 우상들, 곧 우리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대치하고 대신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요일 5:21).
      B. 우리는 반드시 금송아지 우상의 원칙에 경고를 받아야 한다. 이 우상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이 만든 것인데,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진영이 되었다. 우상숭배는 다섯 가지 원칙과 관련된다 — 고전 10:5-7.
      1. 자기 치장은 우상숭배로 이어진다(출 32:1-4, 33:5-6, 창 35:1-4).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름다움이시며, 그분은 자신이 아름답게 되시도록 그분의 아름다운 집인 교회를 아름답게 하고 계신다(사 60:7, 19, 21, 엡 5:26-27). 우리 자아의 표현에는 분열이 있지만,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곧 신성한 영광에는 하나가 있다(요 17:22-24). 우리의 일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즉 표현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요 17:4, 고전 10:31, 사 43:7). 따라서 우리가 말할 때 우리 자신을 전파함으로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과 우리 자신은 믿는 이들을 섬기는 노예들이라는 것을 전파해야 한다(요 7:17, 고후 4:5).
      2.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사탄이 강탈하여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오용하고,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금은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금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 전에, 사탄이 그 금을 강탈했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금을 사용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 출 11:2-3, 12:35-36, 25:2-8, 35:4-9.
      3. 우상숭배는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숭배하는 것, 곧 오락과 유희를 숭배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주님을 누리지만, 이 누림은 세상적인 오락이나 유희의 형태는 아니다 — 출 32:6, 18-19, 비교 시 36:8-9.
      a.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성경에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나서 뛰놀았다.’라고 기록된 것같이, 여러분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처럼 우상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고전 10:7, 출 32:6) 코츠(C. A. Coates)는 그들이 놀았다고 말한다. 주말마다 많은 사람이 다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b. ‘뛰노는 것’은 흥겹게 떠들며 뛰노는 것, 농담하는 것, 진지함이 거의 없이 행동하고 활동하며 말하는 것이다. ‘뛰노는 것’은 장난스럽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이며, 흥겨운 일 곧 들뜨게 하는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4. 우상숭배는 참되신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가면을 쓴다 — 출 32:4-6, 왕상 12:26-30, 비교 마 4:8-11, 요 4:23-24.
      5.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에 무언가를 혼합시킨다 — 출 32:4-6, 21-24, 비교 고전 3:12.
      C. 이스라엘 자손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후에, 모세는 주님의 임재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천막을 옮겨서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쳤다. 그런 다음 그의 천막은 하나님의 천막이 되었는데, 이것은 주님의 임재와 말씀하심이 모두 모세의 천막에 있었기 때문이다 — 출 33:7-11.
      D. 모세가 자신의 천막을 옮겨 우상을 숭배하는 진영에서 분별시킨 후에, 주님은 마치 사람이 자기 동반자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 대하시고 말씀하셨다(출 33:11, 14). 하나님과 모세는 위대한 사업에서 함께 일을 하며 이익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이자 동료이자 동업자였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Ⅲ. 이스라엘 자손의 긴 방황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의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워진 훈련을 주셨다. 이 훈련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땅에 들어가 그 땅을 그들의 소유로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첫째 세대가 모두 죽은 후에, 둘째 세대는 좋은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할 준비가 되었다.
      A. 첫째 세대는 우리의 옛사람을 예표하고, 둘째 세대는 우리의 새사람을 예표한다 — 신 2:14, 8:6-10, 출 3:8, 골 1:12.
      1. 우리는 생명이 자라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변화는 옛사람이 소멸되는 것과 새사람이 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의 옛사람(겉사람)이 소모되고 우리의 새사람(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 고후 4:16.
      2.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 새로워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성장하고 변화됨으로써, 하나님의 건축물과 왕국을 위해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 안으로 이끌리기 위한 것이다 — 고후 3:18, 롬 12:2.
      B. 우리가 생명 안에서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할 때 일어난다(골 3:16). 신명기 8장 3절은 “이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대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모든 말씀’으로 대치되었다.
      1.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요 1:1, 계 19:13)의 총체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신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은 신성한 숨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요 6:57, 63, 20:22).
      2. 성경은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 곧 숨을 내쉬신 것이기 때문에(딤후 3:16), 우리는 온갖 기도로(엡 6:17-18)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을 들이쉬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는 동안에 사람들 안으로 하나님을 계속 내쉬어야 한다.
      3.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우리에게 새롭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받음으로써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선함과 새로움을 유지해야 한다(애 3:22-24, 신 34:7, 롬 7:6, 렘 15:16). 우리는 그 땅에서 오래 살게 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신 4:25). ‘오래 살다’라는 말은 “관습의 영향을 받거나 한곳에 오래 거주함으로써 영적 신선함을 상실하고 원래의 느낌이 무뎌지는 것을 암시한다.”(S. R. 드라이버)
      4.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낮추며, 주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그분의 기록된 말씀 안에 계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신 주님께 나아간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그 영의 적용된 말씀이 되신다. 그분의 즉각적인 말씀은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되어 우리에게 공급을 주고 우리를 양육하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실질을 주입받고,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다 — 요 5:39-40, 6:57, 63, 엡 5:26-27.
      Ⅳ. 하나님의 새로워진 훈련은 하나님께서 아홉 가지 문제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신 명령이다.
      A.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경외해야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잃어버리며 다음 시대에 그분을 우리의 보상으로 얻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는 주님의 미소를, 다음 시대에서는 주님의 보상을 놓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 잠 1:1, 7, 엡 4:30, 고후 5:9-10.
      B.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길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어떤 것이든 그것은 우리에게 길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의 모든 길로 삼고 이러한 길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사는 것, 곧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길로 삼는 것은 그분을 사는 것이고, 그분을 사는 것은 그분을 표현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 요 14:6, 빌 1:19-21상.
      C.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요 20:28)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애정을 품어 오셨으므로(신 10:15, 렘 31:3), 우리 또한 이에 반응하여 그분께 애정을 품고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고전 2:9).
      D.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온 마음과 온 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영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영의 기능의 한 부분인 양심(롬 9:1)이 우리 마음의 기능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히 10:22).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온 마음과 온 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의 영(딤후 1:7)인 우리의 영으로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나타낸다(롬 1:9).
      E.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그분의 계명과 율례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오늘날 하나님의 계명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지키고 우리에게 공급된 그리스도의 풍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신 10:13.
      F.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서 살고 봉사함으로써(롬 1:9, 2:28-29, 7:6, 8:4, 16) 육체, 곧 우리의 온 존재와 타고난 존재에 있는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갈 5:24)을 의미한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빌 3:3)이 된다.
      G. 우리는 더 이상 목을 곧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곧은 목은 우리의 완고하고 반역적인 의지를 상징한다(신 31:27). 이러한 의지는 반드시 변화시키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굴복되고 부활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우리의 아름다움이 되어야 한다(아 1:10, 빌 2:13).
      H.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강하게 되고, 더욱 전진하여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록 격려받을 것이다(신 11:8, 24).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을 것임을 의미한다(빌 3:8). 더욱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날이 길 것이고(신 11:9, 21),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어 우리는 그분의 돌봄을 받으며 그분의 임재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12절). 또한 우리는 하늘에 속한 비, 곧 그 영께서 물 주시는 것을 누리게 되며 그리스도를 수확하게 될 것이다(14-15절).
      I.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합니다. 그분은 그대의 찬양이시며, 그대의 눈으로 본 대로 그대를 위하여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들을 하신 그대의 하나님이십니다.”(신 10:20하-21) 신약의 용어와 체험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분의 유기적인 구원과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롬 10:12-13).
    • 메시지3
      밀과 보리의 땅
      +
    • 성경: 신 8:8상, 요 11:25, 12:24-25, 고전 15:20, 엡 1:20
      Ⅰ. 신명기 8장 8절 상반절에 나오는 밀은 육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요 12:24.
      A. 그리스도는 그분의 충만한 사역의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끄셨다 — 요 1:1, 14.
      1.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유한한 사람으로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으셨다 — 요 7:6, 10.
      a. 주님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셨지만, 시간에 제한받으시며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사셨다 — 요 7:6.
      b.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서 박해를 받으셨고 행동하실 때에 제한받으셨다 — 요 7:10.
      2.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유한한 사람으로서 지식에 있어서 제한받으셨다 — 마 24:36, 눅 2:40, 52, 비교 요 7:15, 막 6:1-3.
      3.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유한한 사람으로서 타고난 인간 생명을 가지셨고 의존하는 삶을 사셨다 — 요 10:11, 15, 17, 6:57상, 마 14:19.
      B.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으로 얻으신 인성은 그분의 신성을 감춤으로 그분의 영광을 감추는 일종의 껍질이 되었다 — 요 1:14, 12:23-24, 눅 12:50.
      1. 주 예수님은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인성의 껍질에 의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답답하시고 억압받으셨으며, 그분의 신성의 영광을 해방하시기 위해 죽음이라는 침례로 침례 받기를 열망하셨다 — 눅 12:50.
      2. 주님은 신성한 생명을 지니신, 무한하시고 한량없으신 그분의 신성한 존재가 그분의 육체에서 해방되시기 위해 육체의 죽음을 겪으셔야 했다.
      3. 주 예수님은 땅에 떨어져 죽으셨고, 그 죽음은 그분을 그분의 인간 껍질에서 해방했다 — 요 12:24.
      a. 그분께서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그분의 신성한 요소 곧 그분의 신성한 생명이 그분의 인성의 껍질 속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b. 한 알의 밀로서 땅에 떨어지신 주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혼생명을 잃어버리심으로써 자신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다.
      C. 우리를 제한하고 억누르는 상황들에서도 우리는 한 알의 밀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 요 12:24.
      1. 우리가 주님의 주권으로 제한받는 상황 곧 억눌리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밀이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 롬 8:28.
      2. 우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환경에서 주님을 접촉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유한한 사람이 되신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분 안에 어떤 종류의 제한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빌 4:13.
      3.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육체 되신 분 곧 제한받으신 분의 생명을 사신다 — 골 1:27, 3:4.
      4. 우리가 주님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한 알의 밀이신 그분을 체험할 것이고, 그분 안에서 우리의 상황에 만족할 것이다 — 빌 4:11-12.
      5. 밀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가 기꺼이 제한받고 기꺼이 죽고 기꺼이 장사되고 기꺼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게 하신다. 이것이 밀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 요 12:24-25.
      Ⅱ. 밀은 육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지만, 보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신 8:8상.
      A. 좋은 땅에서 보리는 다른 어떤 곡식보다도 더 일찍 익는다. 그러므로 보리는 첫 열매이다 — 고전 15:20.
      1. 보리는 일찍 익기 때문에 수확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시고 무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고전 15:20.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보리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것을 배우고, 그분께서 모든 상황에 대처하실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기쁘다.
      3.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 되시어 몸의 머리가 되셨다(골 1:18, 엡 1:20-23). 몸의 머리이신 그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몸인 우리 또한 부활할 것이다.
      4.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 되셨다. 따라서 보리떡은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음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요 6:48.
      a. 숫자 5는 책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책임을 지실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b. 우리가 보리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을 때, 우리는 보리떡이 되어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
      5. 주 예수님은 다섯 개의 보리떡으로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었으며,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이것이 부활이다 — 마 14:14-21, 요 6:9, 13.
      B. 보리로 예표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무한하시다 — 빌 4:13.
      1. 밀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죽음과 장사를 가리키고, 다음에 나오는 보리는 그분의 부활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요 11:25, 엡 1:20.
      2. 한 면에서 우리는 밀로 상징되는 제한받으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고, 다른 면에서는 보리로 상징되는 무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 요 12:24, 6:9, 13.
      a. 육체 되심 안에서 예수님은 극도로 제한받으셨지만, 부활 안에서 그분은 무한하시다 — 눅 12:49-50, 24:5-6, 26, 34, 46.
      b. 밀은 죽음의 골짜기이지만, 보리는 부활의 산이다.
      3. 밀 곧 제한받으신 예수님을 체험하려면, 우리는 보리 곧 무한하신 그리스도를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제한받으신 예수님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따른다 — 히 13:12-13.
      4.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그분께서 부활하시고 무한하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 빌 4:13.
      5. 우리는 밀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때마다 보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뒤따를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 신 8:8상.
      6. 사실상 밀알이신 그리스도 곧 제한받으신 예수님을 체험하려면, 보리이신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 요 12:24-25.
      7.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없지만, 우리 안에 있는 보리떡, 곧 무한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한 몫이 모든 필요를 채우고 심지어 여분을 산출할 수 있다 — 요 11:25.
      8.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보리떡이시다. 어떤 것도 그분을 방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
      9.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보리이심을 기억한다면, 집회에 올 때 우리는 기도나 간증을 통해 보리이신 그분을 적용함으로 다른 이들을 먹일 수 있다.
    • 메시지4
      좋은 땅, 곧 골짜기와 산에 시내가 흐르고 샘이 솟으며 원천이 있는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
    • 성경: 신 8:7, 11:11-12, 렘 2:13, 17:7-8, 사 12:3-6, 요 4:14하
      Ⅰ. 갈라디아서 3장 14절은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이를 수 있도록, 즉 약속하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A.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물질적인 방면은 좋은 땅이었으며(창 12:7, 13:15, 17:8, 26:3-4), 그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골 1:12). 그리스도는 결국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으로 실재화되셨으므로(고전 15:45, 고후 3:1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의 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복과 일치한다.
      B. 사실상, 우리의 체험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신 그 영은 우리가 누리기 위한, 하나님의 넘치는 공급의 근원인 좋은 땅이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의 공급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이다 — 빌 1:19.
      Ⅱ.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골짜기와 산에 시내가 흐르고 샘이 솟으며 원천이 있는 땅’이시다 — 신 8:7, 11:11-12.
      A. 시내와 샘과 원천은 흐르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요 4:10, 14, 7:37-39, 계 22:1), 골짜기와 산은 우리가 흐르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하는 여러 종류의 환경을 상징한다.
      B. 성경 전반에 걸쳐 물이신 삼일 하나님에 관한 노선이 있다 — 창 2:10-14, 출 17:5-6, 시 36:8-9, 46:4, 요 4:10, 14, 7:37-39, 고전 10:4, 계 7:17, 22:1.
      1. 창세기 2장 10절에 나오는 강은 생명수의 강을 상징하며, 이 강을 따라 생명나무가 자란다. 이 강은 사람의 목마름을 해소해 준다.
      2. 시편 36편 8절과 9절에서 원천은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가리키고, 강은 생명수의 강이신 그 영을 가리킨다 — 요 1:4, 7:37-39.
      3. 시편 46편 4절에서 강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을 통해 생명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흐르시는 것을 상징한다.
      4. 생명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이 되셔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구속하신 사람들 안으로 흘려 보내시어,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갈라진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로 예표되었고(출 17:6, 민 20:11), 창에 찔린 주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로 상징된다(요 19:34).
      5.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 나오는 생명수의 강,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까지와 시편 46편 4절과 에스겔서 47장 5절부터 9절까지에 나오는 강들은 그 흐름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가리키는 것처럼, 풍성을 지닌 이 하나의 강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영의 풍성을 여러 방면에서 체험할 때에 많은 강이 된다 — 롬 8:2, 15:30, 살전 1:6, 살후 2:13, 갈 5:22-23.
      Ⅲ. 물이 ‘골짜기와 산에서 흐르는 것’(신 8:7하)은 생수이신 그리스도께서 여러 가지 환경에서 흐르신다는 것을 가리킨다(비교 왕상 20:23, 28).
      A. 골짜기는 십자가에 대한 체험, 곧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체험이고, 산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체험이다 — 고후 1:9, 4:11, 14.
      B. 질그릇인 우리 안에 보배로 계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공급의 신성한 근원이시고, 우리가 부활 생명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이시다 — 고후 4:7, 빌 4:13.
      1. 바울은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이 ‘힘에 겹도록 극심한 압박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져 …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고후 1:8-9.
      2. 사실상 부활이 나타나려면 죽음과 낙심과 절망이 필요하다(고후 1:4, 7:5-6). 십자가가 하는 일은 우리가 부활의 하나님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자아를 끝내는 것이다.
      C. 바울은 그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임 아래서 부활 생명을 살았다.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을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고후 4:10.
      1. 긍정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살리시기 위해 항상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죽이신다 — 빌 1:19, 비교 출 30:23-25.
      2. 우리가 아침에 하나님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자신을 거절할 때, 온종일 우리는 죽이는 과정이 우리 안에서 계속되는 것을 느낀다 — 비교 잠 4:18.
      D.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고후 4:11.
      1. 십자가에 죽는 것은 결과적으로 부활 생명이 나타나도록 한다. 이렇게 매일 죽는 것은 부활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 고전 15:31, 고후 4:16.
      2. 사도들은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생활하셨던 것과 같은 생활을 했다. 주님의 생활은 부활 생명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면서 살았던 생활이다. 또한 주님의 생활은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사역이 하나였고, 그분의 생활이 곧 그분의 사역이었던 그러한 생활이었다 — 요 6:14-15, 12:13, 19, 23-24.
      E.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고후 4:12) 우리가 주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게 될 때, 그분의 부활 생명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 안으로 분배된다.
      1. 교회가 산출되고 증가하는 길은 사람의 영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의 불을 해방하는 십자가의 죽음에 의한 것이다 — 눅 12:49-50, 요 2:19, 12:24-26.
      2. 한 알의 밀이신 주님은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그분의 혼생명을 잃으셔서, 부활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많은 밀알들에게 해방하실 수 있었다. 많은 밀알들인 우리 또한 반드시 죽음을 통해 우리의 혼생명을 잃어야 부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Ⅳ. 예레미야서 2장 13절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다. /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 나를 저버렸고 / 자기들을 위해 저수조들을 팠는데 / 그것들은 물을 담아 둘 수 없는 / 새는 저수조들이었다.”라고 말한다.
      A. 하나님의 백성이 행한 악은 그들의 원천 곧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린 것과 하나님 아닌 다른 근원을 향해 돌아선 것이었다.
      B. 저수조들을 파는 것은 이스라엘이 사람의 노력으로 애쓰면서 하나님을 대치하는 어떤 것(우상들)을 만드는 모습을 묘사한다. 저수조들이 새서 물을 담아 둘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생수로 분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우리를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증가로 만들 수 없음을 가리킨다 — 요 4:13-14.
      C.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인 곧 악을 행하는 이는 바로 그분을 마시기 위해 그분께로 나아오지 않는 사람이다(사 55:7). 악인의 악한 상태는 주님을 먹고 마시고 누리려고 주님께 나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일을 하지만, 주님을 접촉하고 취하고 받아들이고 맛보고 누리려고 나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보다 더 악한 것은 없다(사 57:20-21, 비교 55:1-2).
      Ⅴ. 생명수를 마시고 흘려 보내기 위해 우리는 구원의 샘들에서 물을 긷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 사 12:3-6, 요 7:37-39, 잠 11:25.
      A. 우리는 주님께 말씀드림으로써 주님에 의해, 주님을 위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구원의 샘들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야 한다 — 사 12:3-6, 빌 4:6-7, 12, 비교 찬송가 210장.
      B.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항상 감사하고, 주님께 노래해야 한다 — 살전 5:16-18, 빌 4:4, 히 13:15, 시 119:164, 엡 5:18-20.
      C.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 행 2:21, 고전 12:13, 3, 살전 5:17, 고전 1:2, 삿 15:18-19, 애 3:55-56, 찬송가 65장.
      D.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 롬 1:16, 요 4:32-34, 빌 2:9, 벧전 2:9.
      E. 우리는 우리 존재 안에서 주님께 으뜸의 위치를 드리며, 모든 것을 신성한 본성에 따라 해야 한다 — 계 22:1, 골 1:18하, 벧후 1:4.
      Ⅵ. 하나님의 경륜에 따르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생수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 그 나무는 물에 담긴 모든 풍성을 흡수하여 강가에서 자란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분배로 수행되는 하나님의 경륜의 그림이다 — 렘 17:7-8.
      A. 신성한 분배를 받기 위해 나무들인 우리는 물이신 하나님을 흡수해야 한다(비교 고전 3:6, 골 2:7상). 나무들인 우리 안으로 분배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풍성은 우리를 하나님의 신성으로 조성하여 하나님의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골 2:19). 이런 방식으로 우리와 하나님은 동일한 요소와 본질과 조성과 모양을 갖게 되어 하나가 된다(계 4:3, 21:11).
      B. 기도의 의미는 하나님을 흡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접촉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흡수할 것이고, 하나님을 더 흡수할수록 하나님을 더 누릴 것이다.
      1. “내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찬송이 있다(찬송가 724장). 이것은 우리의 상태를 개선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고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렇게 받아들였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행해야 한다 — 골 2:6-7상.
      2.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내적 상태를 그분 앞에 내어놓고, 우리가 모든 방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그분께 말씀드려야 한다. 비록 우리가 약하고 혼란스럽고 슬프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내적 상태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그러한 상태를 하나님께 가져가야 한다.
      3. 우리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을 주목하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며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을 흡수함으로써 그분을 접촉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을 누리고, 그분의 달콤함을 맛보며, 빛과 능력이신 그분을 받아들이고, 내적으로 평화롭고 밝고 강하고 능력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는 중에도 그분께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공과를 배우게 될 것이다 — 벧전 4:10-11, 고후 2:17, 13:3.
      Ⅶ. 요한복음 4장 14절 하반절은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솟구쳐)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A. 이것은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을 계시한다. (1) 아버지는 원천 곧 근원이시고, (2) 아들은 샘, 곧 원천의 출현이시며, (3) 그 영은 강 곧 흐름이시다. 삼일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을 통해 우리 안으로 흐르고 계시며,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다른 이들 안으로 흐르고 계신다 — 고후 13:14, 요 7:37-38.
      B. 삼일 하나님의 흐름은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요 4:14하). 새 예루살렘은 영원한 생명의 총체이며, ‘-에 이르다(into)’라는 말은 ‘-로 귀결되다’ 혹은 ‘-이 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원천이신 아버지와 샘이신 아들과 강이신 그 영은 우리 안으로, 우리와 함께 흐르시어 영원한 생명의 총체인 새 예루살렘이 되신다.
    • 메시지5
      포도나무의 땅
      +
    • 성경: 빌 2:17, 창 35:14, 딤후 4:6
      Ⅰ. 포도나무는 희생하시는 그리스도, 곧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새 포도주를 산출하셨다 — 신 8:8, 삿 9:13, 시 104:15상.
      A. 그리스도는 포도주 생산자로서, 그분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포도주를 산출하신다.
      B.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쁨을 산출하신다.
      Ⅱ. 우리가 포도나무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한다면, 그분은 우리가 희생하는 생명을 살도록 우리에게 활력을 주심으로써 다른 이들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산출하게 하실 것이다 — 롬 12:1, 엡 5:2, 고후 1:24.
      A. 주님의 주권 아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 롬 12:1, 엡 5:2.
      1.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주님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포도주를 산출하는 포도나무로, 곧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시는 분으로 체험할 것이다 — 빌 3:1상.
      2. 그리스도를 포도나무로 체험한 결과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에 의해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무언가를 산출하는 포도나무가 된다.
      B.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이 방면을 체험한다면 마실 포도주를 많이 갖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로 ‘취하고’ ‘제정신을 잃어’ 주님 안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 요 15:11, 행 5:41, 13:52, 빌 3:1상, 4:4.
      C. 우리 자신 안에서는 희생하는 생명을 살 수 없는데,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타고난 생명, 이기적인 생명이기 때문이다 — 욥 2:4, 마 16:25.
      1.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희생하는 생명이다.
      2. 희생하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시면서 우리에게 활력을 주셔서,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하여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그들을 기쁘게 하도록 하신다 — 고후 4:12, 엡 5:2.
      3. 우리가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고 우리를 강화하시어,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게 하실 것이다 — 요 1:29, 20:22, 고전 15:45하, 6:17, 빌 4:13, 롬 12:1, 엡 5:2.
      a.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활력적이 되어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이다.
      b. 우리는 행복으로 ‘취하여’ 가장 행복한 사람이 가장 이타적인 사람임을 깨달을 것이다.
      c. 우리는 우리를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며, 하나님께 힘을 북돋아 드릴 것이다 — 고후 1:24, 5:13상.
      Ⅲ. 포도주를 산출하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새 포도주이신 그분으로 충만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전제물이 될 수 있다 — 창 35:14, 출 29:40-41, 빌 2:17, 딤후 4:6.
      A. 전제물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참포도주로 쏟아부어진 분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출 29:40-41.
      1. 전제물은 기본 제물들에 더해지는 것으로서 기본 제물들 중 하나 위에 부어졌다 — 민 15:1-10, 28:7-10.
      2. 전제물인 포도주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부어졌다. 전제물은 하나님께서 마시실 수 있도록 부어졌다 — 출 29:40-41.
      a. 그리스도는 그분의 존재를 하나님께 부으셨다 — 사 53:12.
      b.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께 부어진 하늘에 속한 영적인 포도주이시다. 그분은 자신을 포도주로 부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다.
      B. 전제물은 그리스도 자신의 예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누림과 만족을 위해 또한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쏟아부어질 때까지,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적시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마 9:17, 빌 2:17, 딤후 4:6.
      1. 전제물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누리는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가득 채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포도주가 되게 한다 — 빌 2:17.
      a. 제물들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적셔진 사람들이 된다 — 엡 3:17, 갈 4:19.
      b. 우리가 제물들로 주관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포도주가 되시어 우리를 뛸 듯이 기쁘고 즐겁게 하신다 — 마 9:17, 고후 5:13상.
      c. 결국 우리는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포도주와 하나 되며 심지어 포도주가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전제물이 될 자격을 갖는다 — 마 9:17, 고후 5:13상, 엡 5:2, 빌 2:17.
      2. 야곱은 벧엘에서 기둥 위에 전제물을 부었는데, 이것은 전제물이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 창 35:14.
      a. 벧엘에서 부어진 포도주는 포도즙 틀에서 직접 나온 포도주가 아니다. 그것은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로 적셔진 사람들에게서 간접적으로 나온 포도주이다.
      b. 벧엘인 하나님의 집,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결국 전제물로 부어져야 한다 — 고후 12:15상.
      Ⅳ.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 위에 부어지는 전제물이 되었다 — 빌 2:17, 딤후 4:6.
      A. 빌립보서 2장 17절과 디모데후서 4장 6절에 나오는 전제물인 포도주는 바울을 적시셔서 포도주로 만드신 마태복음 9장 17절의 그리스도(포도주)이다.
      B.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전제물이 되었다. 이것은 전제물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C. 전제물이 기본 제물을 필요로 한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바울은 믿는 이들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를, 자신을 전제물로 부을 수 있는 기본 제물로 여겼다 — 빌 2:17.
      1. 여기서 믿음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체험하고 누린 모든 것을 포함하며, 궁극적으로는 믿는 이들 자신의 어떠함을 포함한다.
      2. 바울이 자신을 전제물로 부을 수 있었던 기본 제물은 빌립보에 있는 믿는 이들의 믿음이었다.
      a. 희생 제물은 믿는 이들의 믿음이지 믿는 이들 자신이 아니다.
      b. 믿음과 말씀과 그 영은 하나이다 — 롬 10:17, 8:9.
      3. 빌립보서 2장 17절의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얻은 것의 총합이다.
      a.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얻은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달콤한 희생 제물이 된다.
      b.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얻고 소유하며, 우리의 존재가 그리스도로 조성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믿음은 희생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고, 그 위에 전제물이 부어질 수 있다.
    • 메시지6
      가나안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우리의 안식일의 안식이신 그리스도
      +
    • 성경: 히 3:7-4:13
      Ⅰ. 히브리서에 나오는 안식일의 안식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 언급된 안식일의 안식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 창 2:2-3.
      A.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완성하시고 만족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통치권을 포함한 그분의 권위가 그분의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 행사되려던 참이었다 — 창 1:26.
      B.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상황이 이 땅에 있을 때, 그러한 상황이 하나님께 안식일의 안식이 된다. 안식일의 안식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 만족된 것이다 — 창 1:26-28, 히 2:6-8상.
      C. 하나님의 일곱째 날은 사람의 첫째 날이었다. 사람은 창조된 후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 비교 마 11:28-30.
      D.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준비하셨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모든 일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일을 멈추고서 하나님을,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모든 것을 우리의 누림과 안식과 만족으로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 출 20:8.
      E.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영원한 안식일의 안식일 것인데, 이는 새 예루살렘에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이 영광 안에 계신 하나님을 완전히 표현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 — 계 21:10-11, 22:1, 4상, 5하.
      Ⅱ. 안식일의 안식은 가나안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우리의 안식이신 그리스도이다(신 12:9, 히 3:7-4:13). 그리스도는 세 단계로 성도들에게 안식이 되신다.
      A. 교회 시대에서,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표현하시고 대표하시고 만족하게 하셨으며,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시면서 하늘들에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서, 우리 영 안에서 우리에게 안식이 되신다(마 11:28-29). 히브리서 4장 9절에서 안식일의 안식은 가나안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우리의 안식이신 그리스도이다(신 12:9, 히 4:8).
      B. 천년왕국에서, 사탄이 이 땅에서 제거된 후에(계 20:1-3)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이기는 성도들에 의해 표현되시고 대표되시며 만족을 얻으실 것이다. 그럴 때 왕국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는 이기는 성도들에게 더욱 충만한 안식이 되실 것이며, 이기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왕들이 되어(계 20:4, 6) 그리스도의 안식에 동참하여 누릴 것이다.
      C.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포함한 모든 원수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된 후(고전 15:24-27),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모든 백성에게 영원토록 가장 충만한 안식이 되실 것이다.
      D. 히브리서 4장 8절과 9절에 언급된 안식일의 안식은 처음 두 단계에서, 특별히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의 안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안식은 우리가 부지런히 추구하여 들어가야 할 남아 있는 안식이다.
      1. 처음 두 단계의 안식은 주님을 부지런히 추구하는 사람들, 곧 그분을 충만하게 누려 이기는 이들이 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다. 세 번째 단계의 안식은 상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이들에게 할당되는 완전한 몫이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안식이 되시는 두 번째 단계에서, 그분은 천 년 동안 온 땅을 그분의 왕국으로 만드시어 그분의 유업으로 소유하실 것이다 — 시 2:8, 히 2:5-6.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안식이 되시는 두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를 첫 번째 단계에서 자신들의 안식으로 추구하고 누린 그분의 모든 이기는 믿는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다(계 20:4, 6, 딤후 2:12). 그들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고(마 5:5, 시 37:11, 눅 19:17, 19), 그들의 주님의 기쁨에 참여할 것이다(마 25:21, 23).
      Ⅲ. 우리는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까지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A. 수고하는 것은 율법의 계명과 종교적인 규정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수고를 가리킬 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 성공하려고 분투하는 수고를 가리킨다. 그렇게 수고하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B. 안식은 율법이나 종교 혹은 어떤 일이나 의무로 말미암은 수고와 짐에서 해방되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온전한 평안과 충만한 만족을 가리킨다.
      C.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나 종교의 어떤 의무에 규제되거나 통제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의 뜻에 제한받는 것이다.
      D. 주님은 그렇게 사시면서 다만 아버지의 뜻만 주의하셨다(요 4:34, 5:30, 6:38, 사 42:4상, 비교 53:2, 11:1-4상).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다(마 26:39, 42).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엡 4:20-21).
      E. 온유하다 혹은 온화하다는 것은 반대에 저항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겸허하다는 것은 자신을 높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안식이 있으셨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만족하셨다.
      F.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움으로써 우리가 얻는 안식은 우리의 혼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만 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인 안식이다.
      G. 주님의 멍에는 아버지의 뜻이고, 그분의 짐은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는 일이다. 그런 멍에는 편하여 결코 괴롭지 않으며, 그런 짐은 가벼워 결코 무겁지 않다 — 비교 말 3:14.
      H. 그분의 멍에가 편하다는 것은 그분의 멍에 곧 아버지의 뜻이 ‘어렵고, 엄하고, 날카롭고, 괴롭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좋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온화하고, 유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Ⅳ. 출애굽기 31장 12절부터 17절까지는 성막을 건축하라는 명령 이후에 안식일이 나오는 것을 계시한다.
      A. “너희는 반드시 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시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고,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한다.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우는 영원한 표시이다. 이는 여호와가 육 일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해졌기 때문이다.” — 출 31:13, 16-17.
      B.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안식하시며 상쾌해지셨다’. 사람은 하나님을 상쾌하게 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동반자와 배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C. 우리는 다음의 신성한 원칙, 곧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누림을 공급하시고, 그런 다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원칙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누려야 한다.
      D. 어떤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군.”(행 2:13)이라고 말한 것처럼, 오순절 날 제자들은 주님에 대한 누림으로 충만했다. 그런 다음 베드로와 열한 사도는 일어서서 주님과 함께 일했다(행 2:14).
      E. 하나님께 이것은 일하시고 안식하시는 문제이지만, 사람에게는 안식하고 일하는 문제이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됨으로써 주님과 함께 일한다.
      F.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힘과 에너지와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표시를 지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한다 — 고전 15:10, 58.
      G. 우리가 지니는 표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하나님을 누리고 하나님으로 상쾌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런 다음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 바로 그분과 함께 그분과 하나 되어 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맺은 영원한 언약, 곧 영원한 계약이다.
      Ⅴ.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수단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효력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양날이 선 어떤 칼보다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고, 심지어 마음의 생각과 의도도 분별해 낼 수 있다’ — 히 4:12.
      A.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 참여하는 우리, 곧 신약의 믿는 이들에 대한 예표이다(고전 10:6상, 11).
      1.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구출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구속받아 세상에서 구출되었다.
      2.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방황했던 것처럼, 주님을 따르다가 방황하는 이들이 되었다. 우리의 방황은 항상 혼 안에서 일어난다.
      3. 세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의 풍성에 참여하고 이 풍성을 누렸던 것처럼, 완전하게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그리스도를 누린다. 이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4. 히브리 믿는 이들은 그들의 히브리 종교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안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 안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 안에서 방황하는 것이었다.
      B.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 믿는 이들에게 혼의 방황 가운데 머뭇거리지 말고, 영 안으로 힘써 나아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그분을 누리라고 권면했다.
      1.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롬 8:34) 자신은 지금 우리 안에도(10절), 즉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엡 2:22) 우리의 영 안에도 계신다(딤후 4:22).
      2.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처소, 곧 하늘의 문인 벧엘에서 그리스도는 땅을 하늘과 연결시키시고, 하늘을 땅으로 이끄시는 사다리이시다(창 28:12-17, 요 1:51). 오늘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처소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영이 하늘의 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사다리로서 땅에 있는 사람들인 우리를 하늘로 연결시키시고 하늘을 우리에게로 이끄신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하늘의 문을 통해 들어가서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있는 은혜의 보좌를 만진다 — 히 4:16.
      4. 머뭇거리는 히브리 믿는 이들은 그들의 혼 안에서 방황하며 그들의 영을 무시했지만, 신약은 전적으로 우리의 혼이 아닌 우리의 영 안에 있는 문제이다 — 롬 8:16, 딤후 4:22, 갈 6:18.
      C. 히브리 믿는 이들의 혼, 즉 머뭇거리는 생각과,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의심하는 것과, 혼 자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을 포함한 혼은 살아 있고 효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찔려 파쇄되어야 했다. 이것은 그들의 영과 혼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 히 4:12.
      1. 골수가 관절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영도 혼 안의 깊은 곳에 있다. 관절과 골수를 쪼개려면 주로 관절을 깨뜨려야 하는 것처럼, 영과 혼을 나누려면 혼이 파쇄되어야 한다 — 벧전 3:4.
      2.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성경은 우리의 영과 혼을 나누고 우리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며, 어느 것이 자아에 속하고 자아를 위한 것이며, 어느 것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를 드러낼 정도로 충분히 살아 있고 활동적이며 날카로워야 한다. 말씀이 살아 있고 효력이 있기 위해서는 영 안에서 온갖 기도로 말씀과 믿음을 결합해야 한다 — 히 4:2, 엡 6:17-18.
      3.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우리의 존재를 찔러 쪼개고 우리의 머뭇거리는 생각과 방황하는 혼에서 우리를 구출하여, 우리의 영 안에서 안식일의 안식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혼의 방황 가운데 머뭇거리지 말고, 혼을 부인하며, 천년왕국에서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의 안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영 안으로 힘써 나아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그분을 누려야 한다.
    • 메시지7
      승천을 앎
      +
    • 성경: 행 2:36, 히 2:9, 4:14-15, 7:26, 12:2, 엡 1:19-23, 2:6
      Ⅰ. 사람-구주의 승천은 그분께서 창조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구속자와 구주와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그분의 하늘에서의 직무에 취임하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집행하고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Ⅱ. 우리는 주님의 승천의 객관적인 방면을 보아야 한다.
      A.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 히 2:9.
      1. 영광은 예수님의 인격과 관련된 광채이고, 존귀는 예수님의 가치와 관련된 귀중함이다 — 벧전 2:7.
      2. 그리스도는 상태에 있어서 영광스러우시고, 지위에 있어서 존귀하시다. 그분은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 위에 계시는데, 이것이 그분의 존귀이다.
      B.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행정을 위해 보좌에 앉으셨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한다.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은 빛이 등 안에서부터 등을 통하여 빛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우주의 행정을 집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계 22:1, 3, 비교 21:23.
      2. 그리스도는 이제 보좌에 계시면서 온 우주의 행정을 집행하고 계신다. 그분은 유일한 행정관, 곧 모든 왕의 왕과 모든 주인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시다 — 계 1:5, 17:14, 19:16.
      3. 그리스도께서 행정을 집행하시는 것은 우주와 연관된 것이지만, 그분께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는 것은 그분의 재생산을 위해 그분 자신을 번식시키심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귀결될 그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 비교 행 5:31.
      C.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6) 이 절에서 ‘되게 하셨습니다’는 ‘취임시키셨습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를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 취임시키셨다.
      1. 승천 안에서 사람-구주는 모든 것을 소유하시기 위해 주님이 되셨다. 그분은 이제 온 우주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과 모든 긍정적인 사물들과 일들과 사람들을 소유하신 주님이시다.
      2. 승천 안에서 사람-구주는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 곧 그리스도가 되셨다(히 1:9).
      D. 이제 우리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이다(엡 2:6). 그 결과, 우리에게는 부활 안에 있는 생명과 능력이 있고 승천 안에 있는 권위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을 접촉할 때,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인식해야 한다. 곧 그분의 신분과 지위와 직무를 인식해야 한다.
      Ⅲ. 우리는 주님의 승천의 주관적인 방면을 보아야 한다 — 비교 시 91:1, 아 4:7-8, 6:10.
      A.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승천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인) 음부와 (타락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움직이고 있는 곳인) 땅과 (사탄과 그의 어둠의 세력이 하나님을 거슬러 행동하고 있는 곳인) 공중과 (사탄이 갈 수 있는 곳인—엡 1:20-21, 4:8-10, 히 7:26, 욥 1:6-12상, 2:1-6) 모든 하늘들을 초월하셨다.
      B. 그리스도는 승천하실 때 하늘들을 통과하셨다(히 4:14). 그러므로 지금은 하늘에 계실 뿐만 아니라(9:24), 하늘들보다 더 높이(7:26), 즉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더 위에 계신다(엡 4:10).
      C. 에베소서 1장 19절부터 23절까지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어떤 전달이 있음을 계시한다. 22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 위의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교회에게’라는 표현은 승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그분의 몸인 교회에게 오는 전달을 보여 준다.
      1. 하나님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의 권위를 큰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무언가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셨다. 즉 그것은 교회에게 전달되고, 교회는 그것을 함께 나눈다.
      2. 에베소서 1장 20절부터 22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다음의 네 단계로 그분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운행되게 하신 것을 보여 주는데, 이 네 단계는 첫째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이고, 둘째로 그분을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신 것이며, 셋째로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시키신 것이고, 넷째로 그분을 만물 위의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신 것이다.
      D.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 골 1:18, 엡 1:23, 3:19.
      1. 머리와 몸은 하나이며 우주적인 한 사람을 이룬다. 이 신성한 일에는 공간의 요소도 없고 시간의 요소도 없다. 몸은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영 안에서 머리와 하나이다.
      2. 신성한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이고, 그분의 승천은 또한 우리의 승천이다(엡 2:6). 바로 이 승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 안에서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초월하신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기 때문에(골 2:9), 그분의 초월하는 전달에는 우리를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충만이 되게 하는, 삼일 하나님의 모든 풍성한 분배가 포함되어 있다(엡 1:22-23, 3:19, 8).
      E.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또한 하늘들에서 대제사장이 되시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돌보신다.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제사장 직무에 취임하셨다 — 히 2:17-18, 4:14-15, 시 110:1-4, 히 5:6, 7:26.
      1. 한 면에서 그리스도는 교회들을 위해 하늘들에서 중보기도 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히 7:25-26, 롬 8:34). 또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는 교회들 안에서 움직이시며 교회들을 돌보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에서 그리스도는 발까지 닿는 그분의 옷, 곧 제사장의 의복이 보여 주듯이(출 28:33-35) 대제사장으로 묘사되신다.
      2. 요한계시록 8장에서 그리스도는 금향단에서 향을 드리는 제사장으로 계시되신다. “다른 천사께서 오셔서, 금향로를 가지시고 제단 곁에 서셨습니다. 그분은 많은 향을 받으셨는데, 그것은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향을 보좌 앞에 있는 금향단에 드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절)
      Ⅳ.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승천 안에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 엡 2:6.
      A. 은혜 시대 전체가 주님의 승천의 때이다 — 엡 1:20.
      B. 그리스도는 승천 안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도 계신다 — 골 1:27.
      C.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분의 승천 안에서 움직이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승천 안에서 사시고, 거하시며, 머무시고, 사역하시며, 섬기시고, 일하시며, 활동하고 계신다.
      1. 그리스도는 그분의 승천 안에 계시면서 우리 안에 계신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그분과 함께 앉아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 것이다 — 엡 2:6.
      2. 우리의 존재 안에는 비범한 한 인격, 바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계신다 — 골 1:27, 엡 2:6.
      3. 오늘날 주님은 그분의 승천 안에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 딤후 4:22상.
      4. 이러한 승천 안에서 삼일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며,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역사가 된다.
      5.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승천 안에서 이러한 체현의 일부분이다 — 롬 8:10, 고후 13:5, 갈 2:20, 4:19, 골 2:9.
      6. 우리가 그분의 이름 안으로 함께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는 승천 안에서 그분의 모든 지체들과 그곳에 함께 계시며, 이것이 사람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 마 18:20, 골 3:1, 3-4, 엡 1:20, 2:6.
    • 메시지8
      좋은 땅, 곧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
    • 성경: 골 1:12, 2:6-15, 19, 신 8:9, 창 17:1, 빌 1:19
      Ⅰ. 으뜸이시며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해 빛 가운데에서 성도들에게 할당된 몫이시다 — 골 1:12.
      A. 할당된 몫이란 이스라엘 자손들이 좋은 땅 가나안을 그들의 유업으로 할당받은 것처럼, 성도들이 받은 유업의 한 몫을 가리킨다 — 수 14:1.
      B. 신약의 믿는 이들이 할당받은 몫은 물질적인 땅이 아니라 생명 주시는 영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이다 — 골 2:6-7, 갈 3:14.
      1. 좋은 땅의 풍성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그분의 믿는 이들에게 넘치는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의 여러 방면을 보여 주는 예표이다 — 신 8:7-10, 엡 3:8, 빌 1:19.
      2.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그 땅의 풍성을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왕국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된다 — 엡 1:22-23, 2:21-22, 딤전 3:15, 마 16:18-19, 롬 14:17.
      C. 우리는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빛 가운데’ 있어야 한다. 빛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 골 1:12, 벧전 2:9, 사 2:5, 요일 1:5.
      1. 하나님은 빛이시다 — 요일 1:5.
      2.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다 — 시 119:105, 130.
      3. 그리스도는 빛이시다 — 요 8:12, 9:5.
      4. 그리스도의 생명은 빛이다 — 요 1:4.
      5. 믿는 이들은 빛이다 — 마 5:14, 빌 2:15.
      6. 교회는 빛을 비추는 등잔대이다 — 계 1:20, 시 73:16-17.
      Ⅱ. 골로새서 2장 6절과 7절은 좋은 땅, 곧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땅(신 8:9)이신 그리스도께서 풍성한 토양이시며, 우리가 이 토양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이 토양에서 흡수하는 요소들로 성장하기 위한 것임을 계시한다(엡 3:17하).
      A. 하나님은 참농부이시고, 바울은 그분의 동역자 중 한 명이었다(고전 3:6-9, 고후 6:1상). 바울은 믿는 이들을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심었다.
      B.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심어졌고, 날마다 이 그리스도를 흡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신 주님을 누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풍성한 토양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요소를 우리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체험적으로 그분 안에서 충만해질 수 있다 — 골 2:10상, 4:2.
      1. 우리가 토양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흡수하려면 부드러운 새 뿌리를 가져야 한다 — 왕하 19:30, 사 37:31, 렘 17:7-8, 비교 막 4:16-17, 고후 4:16.
      2.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상태와 실패와 약함을 잊어버리고 다만 시간을 들여 주님을 흡수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 주님을 흡수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심으로 자라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된다 — 눅 8:13, 마 14:22-23, 6:6, 골 2:7상, 19.
      C. 우리는 주님을 접촉할 때 서두르면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무르며 주님을 흡수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주님을 흡수해야 한다. 곧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님께 자유롭게 말씀드려야 한다 — 시 27:4, 출 33:11, 14, 마 6:6, 14:22-23, 막 1:35, 비교 엡 4:20-21.
      D. 몸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매우 주관적인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자라시는 것, 곧 증가하시는 것에 달려 있다. 몸의 성장은 하나님의 건축물의 성장이다. 교회의 실지적인 건축은 믿는 이들의 생명의 성장에 의해 이루어진다 — 골 2:19, 엡 2:20-22, 4:16.
      Ⅲ. 골로새서 2장 8절부터 15절까지는 토양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묘사하고 정의하는데, 이러한 토양 안에서 우리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신 그분을 흡수할 때, 이 절들에 있는 사실들이 우리의 체험이 된다. 사실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체험은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다.
      A.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 골 2:9.
      1. ‘충만’은 하나님의 풍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의 표현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풍성뿐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의 풍성의 표현도 거한다 — 골 2:9, 1:15, 18, 3:10-11.
      2.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충만해진다. 우리는 모든 신성한 풍성으로 채워져서 그분의 표현이 된다 — 엡 3:8, 19.
      3.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채워지고, 완전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고, 만족하게 되고, 완전한 공급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 비교 빌 1:19.
      B. 토양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 — 골 2:10.
      C.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육체를 죽음에 넘기는 죽이는 능력이 있다 — 골 2:11.
      D.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를 장사 지내는 요소가 있다 — 골 2:12상.
      E.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를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 — 골 2:12하.
      F.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요소가 있다 — 골 2:13.
      G.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규례들이 적혀 있는 증서를 지워 버림이 있다 — 골 2:14.
      H. 토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공중의 악한 영들에 대한 승리가 있다 — 골 2:15.
      Ⅳ. 더 나아가 토양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역사(歷史)와 비밀로서,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께서 통과하신 과정들의 모든 풍성을 담고 계신다 — 골 2:2.
      A.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 요 1:1, 20:28-29, 사 9:6, 요 14:9-10, 고후 3:17, 고전 15:45하, 행 2:36.
      B. 그리스도는 사람이시다 — 딤전 2:5.
      1. 그분은 사도이시다 — 히 3:1.
      2. 그분은 신언자이시다 — 행 3:22-23.
      3. 그분은 조언자이시다 — 사 9:6.
      4. 그분은 선생님이시다 — 마 23:8, 10.
      5. 그분은 인도자이시다 — 히 2:10.
      6. 그분은 주인이시다 — 눅 5:5.
      7. 그분은 노예이시다 — 사 42:1.
      8. 그분은 목자이시다 — 요 10:11.
      9. 그분은 증인이시다 — 계 1:5.
      10. 그분은 제사장이시다 — 히 7:25-26.
      11. 그분은 중보자이시다 — 히 8:6.
      12. 그분은 보증이시다 — 히 7:22.
      13. 그분은 왕이시다 — 마 2:2.
      14. 그분은 신랑이시다 — 요 3:29, 고후 11:2.
      C.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이시다 — 요 14:6.
      1. 그분은 우리의 빛이시다 — 요 8:12.
      2. 그분은 우리의 공기이시다 — 요 20:22.
      3. 그분은 우리의 물이시다 — 요 4:14.
      4. 그분은 우리의 음식이시다 — 요 6:35.
      5. 그분은 우리의 옷이시다 — 갈 3:27.
      6. 그분은 우리의 거처이시다 — 요 15:5.
      7. 그분은 우리의 누림과 안식이시다 — 골 2:16-17, 마 11:28.
      D.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신성한 공급이시다 — 고전 1:30.
      1. 그분은 우리의 능력이시다 — 고전 1:24하.
      2. 그분은 우리의 지혜이시다 — 고전 1:24하, 30하.
      3. 그분은 우리의 의이시다 — 고전 1:30하.
      4. 그분은 우리의 거룩하게 함이시다 — 고전 1:30하.
      5. 그분은 우리의 구속이시다 — 고전 1:30하.
      E. 그리스도는 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분이시다.
      1. 그분은 몸의 머리이시다 — 골 1:18.
      2. 그분은 머리의 몸이시다 — 고전 12:12.
      3. 그분은 교회의 기초이시다 — 고전 3:11.
      4. 그분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모퉁이 돌이시다 — 엡 2:20.
      5. 그분은 새사람의 모든 지체이시다 — 골 3:10-11.
      Ⅴ. 우리에게 할당된 몫이신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우리의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한 좋은 땅으로서,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자 위대한 ‘나는 –이다’이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분을 날마다 체험하고 누릴 수 있다. 그분의 어떠하심은 그분의 몸인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고 그분의 돌아오심을 위해 그분의 신부인 그분의 교회를 준비하기 위한 그분의 필요를 채우도록,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운다 — 골 1:12, 신 8:9, 창 17:1, 빌 1:19, 요 8:58, 히 11:6, 마 16:18, 계 19:7-9, 21:2.
    • 메시지9
      석류의 땅
      +
    • 성경: 신 8:8, 출 28:33-34, 왕상 7:18-20, 아 4:3하, 13상, 벧후 1:3-8
      Ⅰ. 성경에서 석류는 생명의 충만, 생명의 풍성함과 아름다움, 생명의 풍성의 표현을 상징한다 — 신 8:8, 출 28:33-34, 왕상 7:18-20, 아 4:3하, 13상.
      A. 씨가 가득한 익은 석류는 생명이 충만하고 풍성하며 아름답다는 인상을 준다.
      B. 우리가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린다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함이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에워쌀 것이다. 이것이 석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다.
      C. 우리가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른다면, 우리는 석류가 될 것이다 — 골 2:19, 1:28.
      1. 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그분께 다스림을 받고 제한을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생명이 자랄 것이다 — 골 1:13, 28.
      2.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광대하시다는 이상을 본다면,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께 우리 전 존재를 집중시킬 것이며, 그분은 우리를 채우시고 적시실 것이다 — 골 1:12, 2:9, 16-17, 3:10-11.
      a. 우리의 존재는 광활하시고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시며 광대하신 그리스도로 점유될 것이다 — 엡 3:18.
      b. 우리에게 있어서 삶은 우리를 소유하시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채우시고 점유하신 그리스도일 것이다 — 빌 1:20-21상, 엡 3:17상.
      3.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적셔지며 침투되는 것이다 — 골 1:28.
      a. 이것은 우리 존재의 각 부분이 그리스도로 점유되게 하는 것이다 — 엡 3:17상, 갈 4:19.
      b. 이것은 골로새서에 계시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결과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 골 2:9, 19, 3:4, 10-11.
      Ⅱ. 대제사장 겉옷의 옷단에는 석류와 금방울이 달렸는데, 이 겉옷은 교회를 상징한다 — 출 28:33-34.
      A. 교회는 그 인성에 있어서 생명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아마실로 만들어진 석류의 의미이다.
      B. 교회에는 생명의 충만을 표현하기 위한 인성이 있고, 금방울 소리를 내기 위한 신성도 있다.
      1. 생명의 충만은 교회의 인성 안에서 표현되지만, 경고의 음성은 교회의 신성(금방울) 안에서 표현된다.
      2. 우리는 먼저 생명의 충만의 표현을 갖고, 그런 다음에 금방울 소리, 곧 교회의 신성에서부터 나오는 말씀하심을 갖는다.
      3. 우리의 인성 안에서 표현된 생명의 아름다움과 금방울에서 들리는 신성한 소리는 합당한 교회생활의 표시이다.
      Ⅲ. 성전 기둥 꼭대기의 기둥머리를 두르고 있는 석류 이백 개는 생명의 풍성의 표현을 상징한다 — 왕상 7:18-20, 대하 3:15-16, 렘 52:22-23.
      A. 자신을 심판하고(놋)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이들은 얽혀 있고 복잡한 상황(격자무늬 그물과 사슬 모양 고리) 가운데서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그들이 자신에 의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백합 모양)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명의 풍성(석류)을 이백 배로 표현한다 — 왕상 7:15-22.
      B. 백 개의 석류마다 구십육 개의 석류는 대기를 향해 드러나 있었고, 네 개는 덮여 있었다 — 렘 52:22-23.
      1. 생명의 풍성의 표현은 영원토록 완전하고, 부활의 신선함 안에 있으며, 그 영 안에 있다.
      2. 백 개의 석류마다 네 개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타고난 존재와 타고난 생명과 자아가 반드시 감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3. 우리의 타고난 존재가 사라질 때, 우리는 구십육 개의 석류, 곧 영적인 공기의 실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한 표현을 갖는다.
      Ⅳ. 아가에 따르면, 석류는 개개인의 믿는 이가 그리스도와 나누는 사랑의 교통에 대한 점진적인 체험과 관련하여 영적인 의미가 있다 — 아 4:3하, 13상, 6:7, 11, 7:12, 8:2하.
      A. “너울 뒤 그대의 뺨은 / 석류 한쪽 같다오.” — 아 4:3하, 6:7.
      B. “나는 견과 과수원으로 내려갔어요. / 골짜기의 싱그러움을 보려고, / 포도나무 움이 돋았는지 / 석류나무 꽃이 피었는지를 보려고요.” — 아 6:11.
      C. “우리 일찍 일어나 포도원들로 가서 / 포도나무 움이 돋았는지 / 꽃망울이 터졌는지 / 석류나무 꽃이 피었는지 보아요. / 거기서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칠게요.” — 아 7:12.
      D. “내 석류즙으로 만든 / 향긋한 술을 드시게 하련만.” — 아 8:2하.
      E. “그대의 새싹들은 / 가장 좋은 열매가 달린 석류 과수원.” — 아 4:13상.
      1. 그리스도의 누림이 되는 그분의 연인은 속생명의 각양 표현인 다채로운 색과 성숙한 생명의 풍성한 표현인 다양한 향기를 지닌 온갖 식물이 자라는 잠긴 동산이다 — 아 4:13-14.
      2. 이것은 주님 앞에서 그 연인의 아름다움이 된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이제 생명에 있어서 풍성하여,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도록 자양분을 공급하고 신선하게 하는 열매를 산출하며,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아름다운 색채를 띤다.
      Ⅴ. 베드로후서 1장 3절부터 8절까지에서 우리는 신성한 본성을 누림으로 탁월한 미덕들이 발전하는 것을 본다.
      A. ‘생명과 경건에 관련된 모든 것’은 신성한 생명의 여러 방면으로서, 좋은 땅의 풍성한 소산으로 예표되었다 — 벧후 1:3.
      1. 생명은 속에서부터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며, 경건은 안에 있는 생명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
      2. 생명은 내적인 에너지 곧 내적인 힘으로서 외적으로 경건을 산출하며, 이 경건은 영광으로 인도하고 또 영광을 가져온다.
      B. 믿음은 생명의 모든 것을 포함한 씨로 여겨질 수 있으며, 사랑은 생명의 씨가 완전히 발전한 열매로 여겨질 수 있다 — 벧후 1:3, 8.
      C. 결국 우리는 믿음이라는 씨로부터 시작하여 미덕과 지식이라는 뿌리들과 자제의 줄기와 인내와 경건이라는 가지들을 거쳐서 형제 사랑과 신성한 사랑의 꽃과 열매에 이르는, 생명의 충만한 발전과 성숙을 갖게 될 것이다 — 벧후 1:5-8.
    • 메시지10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가 보고 체험해야 하는 통제 원칙들
      +
    • 성경: 골 2:6, 고전 6:17, 12:12-13, 행 9:3-5, 출 13:21-22, 골 4:2
      Ⅰ. “여러분이 그리스도, 곧 주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행하십시오.” — 골 2:6.
      A.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므로 그분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분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좋은 땅에 살면서 그 땅의 모든 풍성한 소산물을 누렸던 것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행동하고 처신하는 것이다.
      B. 좋은 땅은 오늘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신(갈 3:14)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면서(딤후 4:22, 롬 8:16) 우리의 누림이 되신다.
      * 성경 본문의 ‘그 영을 따라’라는 표현은 ‘그 영에 의해’라고도 번역할 수 있음—역자 주
      C. 영(spirit)을 따라(롬 8:4) 그 영(Spirit)에 의해(갈 5:16)* 행하는 것이 신약의 중심이며 중점이다.
      Ⅱ.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면, 즉 영을 따라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 영에 의해 행하려면, 우리는 거듭난 세 부분으로 된 믿는 이들과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영적 교통의 열쇠가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라고 말하는 고린도전서 6장 17절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A.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영 하나님께 경배한다 — 요 4:24.
      B. 우리는 그 영이신 하나님으로 거듭나 영이 되었다 — 요 3:6.
      C. 그 영은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언하신다 — 롬 8:16.
      D.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되고, 그 영은 거주자이시다 — 엡 2:22.
      E.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자 생명 주시는 영이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 딤후 4:22, 롬 8:10.
      F.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실 것이다 — 롬 8:11.
      G. 우리가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 롬 8:13하.
      H. 우리는 생명과 평안을 위해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둔다 — 롬 8:6.
      I.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영에 의해)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 갈 5:24.
      J. 그 영에 의해 행할 때, 우리는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않을 것이다 — 갈 5:16.
      K. 우리가 그 영에 의해 산다면, 또한 그 영에 의해 행하도록 하자 — 갈 5:25.
      L. 우리는 영(연합된 영) 안에서 영(연합된 영)을 따라 행하여(처신하여) 율법의 의를 이룬다 — 롬 8:4.
      M.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고 확대한다 — 빌 1:19하-21상.
      N. 우리는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한다 — 엡 6:18.
      O. 우리는 그 영 안에서 거룩하게 된다 — 롬 15:16.
      P.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그 영에 의해 새로워진다 — 딛 3:5, 엡 4:23.
      Q. 우리는 주 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된다 — 고후 3:18.
      R.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신 그 영과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인 신부는 결국 신성과 인성의 연합인 영적인 한 부부(계 22:17상), 곧 완결된 새 예루살렘이 된다. 새 예루살렘은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확대와 표현을 위한 것으로서 영광스럽게 된 인성 안에서 신성한 영광을 나타낸다(21:10-11).
      Ⅲ. 우리는 우리가 그 안에서 행해야 하는 분께서 세 단계로 된 충만한 사역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보아야 한다.
      A. 하나님의 중심적인 계시는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점진적인 계시인데, 그것은 바로 ‘미혼이신’ 하나님, 육체 되신 하나님, 구속하시는 하나님, 복합되신 하나님, 강화되신 하나님, 내주하시는 하나님, 합병되신 하나님에 대한 계시이다. 합병되신 하나님은 몸-그리스도이시다. 몸-그리스도는 ‘결혼하신’ 하나님이자 최종적으로 합병되신 하나님인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결된다.
      B. 주님의 회복은 세 단계, 곧 육체 되심과 포함과 강화로 이루어진 충만한 사역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주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고, 육체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며, 생명 주시는 영은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되시어 교회를 건축하시고,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고’는 ‘미혼’이신 하나님께서 육체 되신 하나님과 구속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 — 요 1:1, 14, 29.
      2. ‘육체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며, 생명 주시는 영은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되시어’는 복합되신 하나님께서 강화되신 하나님이 되시고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 — 고전 15:45하, 계 1:4, 3:1, 4:5, 5:6.
      3. ‘교회를 건축하시고,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것’은 합병되신 하나님인 몸-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몸-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과정을 거치고 완결된 세 부분으로 된 교회의 궁극적인 연결과 연합과 합병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요 17:21, 엡 4:4-6, 16, 골 2:19, 계 19:7-9, 21:2, 9-10.
      Ⅳ. 주님의 현재의 회복은 교회생활 안에서 몸-그리스도(그 그리스도)를 회복하는 것이며, 몸-그리스도는 합병되신 하나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은 합병되신 하나님인 몸-그리스도이신 그분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 고전 12:12-13, 행 9:4-5, 15, 골 2:19, 엡 4:1-6, 15-16, 요 14:23, 17:21.
      A.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절에서 ‘그리스도’는 직역하면 ‘그 그리스도’인데, 개인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자신의 모든 지체들과 합병되신 그리스도이다.
      B. 이 그리스도께서 바로 단체적인 ‘나’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 정복되어 회심했을 때 이 ‘나’를 보았다. 그는 주 예수님과 그분의 믿는 이들이 위대한 한 인격, 곧 놀라운 ‘나’라는 것을 보았다 — 행 9:3-5.
      C. 우리는 우리가 오늘날 그 안에서 행해야 하는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인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놀라운 ‘나’, 곧 합병되신 하나님인 몸-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D.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은 몸-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몸-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단체적인 몸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더 이상 단지 개인적인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머리와 몸이시다. 우리가 단체적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E. 주님의 회복은 ‘그리스도화’의 회복, 곧 교회생활 안에서 몸-그리스도의 실재를 얻기 위해 순전하고도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 살전 5:23, 빌 1:19-21상, 3:8-14, 고후 2:10, 골 3:10-11.
      F. 오늘날 주님은 교회생활 안에서 몸-그리스도를 건축하고 계신다. 몸-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지체들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그분의 모든 지체들은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생명 안에서 자라고 변화됨으로써 그분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 골 2:19, 롬 12:2, 고후 3:18, 고전 12:12-13.
      1. 몸-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누린다 — 고전 12:3하, 13.
      2. 몸-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체들의 기능이 있다 — 고전 12:14-22.
      3. 몸-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들은 삼일 하나님의 하나 안에서 함께 섞인다 — 고전 12:23-27, 요 17:21, 엡 4:1-6.
      Ⅴ. 좋은 땅의 실재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생활과 일 모두에서 주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의미함을 보아야 한다. 출애굽기 33장 12절부터 17절까지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과 백성과 함께하도록 하나님과 교섭했다. 하나님은 “나의 임재가 너와 함께하며, 내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시며 반응하셨다 — 출 33:14.
      A. 주님은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그곳에 가실 것이지만, 그분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갈 것인가? 많은 경우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지 모르지만, 우리에 대해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다. 우리는 본인이 체험하여 얻은 주님의 직접적인 임재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
      B. 주님의 임재 곧 미소가 우리가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이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한 통제 원칙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보여 주는 길 곧 ‘지도’이다.
      C.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림에 따르면, 주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 앞에 가면서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시어 그들이 밤낮으로 갈 수 있게 하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 출 13:21-22.
      1. 성경의 예표에서 구름은 그 영을 상징하고(고전 10:1-2), 빛을 내는 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시 119:105, 렘 23: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는 그 영이나 말씀을 통하여 즉각적이며 생생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2. 두 기둥은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그 영이실 뿐 아니라 말씀이시기 때문이다(요 4:24, 1:1). 더욱이 말씀은 그 영이시기도 하다(요 6:63, 엡 6:17).
      3. 따라서 하나님과 말씀과 그 영은 하나이시며, 밤낮으로 계속하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안내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낮과 밤의 차이가 없는데, 왜냐하면 불 기둥이 내는 빛이 밤을 낮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D. 출애굽기는 또한 하나님의 천사(Angel of God)이신 그리스도께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의 천사께서 움직이실 때에 기둥도 움직였는데, 이것은 천사와 기둥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와 인도하시는 영은 분리되실 수 없다(출 14:19, 요 14:17-20, 16:13, 고후 3:17, 계 5:6). 더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반대에 직면할 때마다, 안내하는 빛은 자동적으로 보호하는 빛이 된다. 그러나 이 보호하는 빛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둠이 된다(출 14:20).
      Ⅵ. 좋은 땅의 실재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생활과 봉사에서 많고도 철저한 기도를 통해 제사장 체계의 실재 안에서 살고 봉사해야 한다 — 벧전 2:5, 9, 골 4:2.
      A. 교회가 살아 있고 신선하고 풍성한지의 여부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 영으로 채워지는 이 한 가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 영으로 채워지려면 뜻을 세우고, 비어 있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골 4:2, 빌 2:13, 마 5:3, 8, 눅 1:53, 엡 5:18.
      B. 교회를 건축하는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기술이 되시는 분은 분명 그 영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 자신의 거처를 건축하실 수 있다 — 출 31:1-3, 슥 4:6.
      C.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에 꾸준히 힘쓴다면, 회복은 크게 풍성해지고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주님과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즉각적이고도 지속적인 기름바름을 누릴 것이다. 온종일 그들은 주님의 얼굴의 미소를 누릴 것이며,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인격이 그들의 체험과 누림이 될 것이다.
    • 메시지11
      좋은 땅의 여분의 소산과 진실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단체적으로 경배함
      +
    • 성경: 신 8:7-10, 12:6-7, 11-12, 18, 16:15-17, 엡 3:8, 요 4:23-24
      Ⅰ. 우리가 ‘여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땅을 경작하여 얻은 소산 중 일정 분량을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따로 두었기 때문이다 — 신 12:5-15, 17-18, 20-22, 26-27, 14:22-23, 15:19-20, 16:16-17.
      A. 좋은 땅의 여분의 소산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신 8:7-10.
      B.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과 함께 이 소산을 누렸다.
      C. 좋은 땅의 여분의 소산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로서 그리스도를 단체적으로 누리는 것을 예표한다 — 엡 3:8.
      D. 이 예표에 대한 신약의 성취에 따르면, 우리가 단체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러 올 때 반드시 우리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를 가져와야 한다 — 엡 3:17-18, 골 1:27, 3:3-4, 11.
      Ⅱ.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신실하게 수고한다면, 그리스도의 풍성을 소산으로 얻어 교회 집회에서 그리스도를 전람할 것이다 — 엡 3:8, 고전 14:26.
      A. 그리스도인들의 합당한 생활은 매일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함으로 풍성한 여분의 그리스도를 얻어 집회에 가져와서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전람하는 것이다 — 고전 14:26.
      1.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람하기 위해 교회 집회에 함께 모인다 — 골 1:18, 27.
      2.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을 매일 체험하는 것을 통해, 이 풍성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소산의 전람이 될 것이다 — 엡 3:8, 17-18, 골 2:6, 9-10, 17.
      3. 우리의 집회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소유하고 계시며,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전람이 되어야 한다 — 히 1:3, 2:9, 14, 요일 3:8, 4:9, 15, 행 2:24, 32-33, 계 1:17하-18.
      B. 우리가 집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전람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산출한 그리스도, 곧 우리가 수고하고 체험한 그리스도를 전람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가 함께 모여 전람하는 그리스도이다 — 골 1:12-13, 빌 3:10.
      C.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한다면, 풍성한 여분의 그리스도를 얻어 집회에 가져와서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전람할 것이다 — 고전 1:24, 30, 10:3-4, 14:26.
      D. 어떤 종류의 집회를 하든 우리는 함께 모일 때마다, 우리가 체험한 여분의 그리스도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 또한 온 우주와 원수에게 이 그리스도를 전람하여 원수를 부끄럽게 해야 한다 — 요 4:23-24, 엡 3:10, 17, 4:15.
      1. 그럴 때 우리의 집회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기 때문에 풍성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 골 3:4, 10-11.
      2. 이러한 교회생활이 바로 그리스도의 전람, 곧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 엡 3:21.
      3. 우리는 매 집회에 여분의 그리스도를 가져와서 그리스도를 전람해야 한다 — 엡 3:8.
      4.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또한 함께 모여서 그분을 전람해야 한다 — 벧전 1:8.
      E.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집회를 하려면, 우리는 매일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에서 주님을 접촉해야 하며, 그런 다음 그리스도를 전람하고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집회에 온다는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집회에 와야 한다 — 고전 14:26.
      F. “그리스도를 가져와 모일 때 풍성 다 바쳐 / 하나님 음식 되도록 주를 전람하세 / 다 주를 전람해 다 주를 전람해 / 다 함께 주 풍성 가져와 다 주를 전람해” — 찬송가 624장 1절과 후렴.
      Ⅲ. 우리는 여분의 그리스도를 얻어서 교회 집회에 가져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단체적으로 경배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한다 — 요 4:23-24, 엡 3:21.
      A.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경배에 관하여 싸운 지 사십 년(1982년 기준)이 넘었다. 나는 이 전쟁에서 아직 이기지 못했다.” — 위트니스 리 전집, 1982년, 2권, 요한의 글에 있는 성막과 제물들의 성취, 247쪽.
      B. 우리가 아버지께 경배하는 것과 관련하여, 아버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수확한 것을 가지고 그분께 오기를 요구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가지고 교회 집회에 와야 한다 — 요 4:23-24, 엡 3:8.
      C.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수확하여 그것을 교회 집회에 가져와서 하나님 아버지께 단체적인 경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매일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는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며, 아버지는 기뻐하시고 만족하실 것이다 — 신 12:6, 16:15-17, 고전 14:26, 요 4:23-24.
      D. 우리가 부지런히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여 두 손에 그리스도를 가득 담은 다음 교회 집회에 와서, 이렇게 풍성하시고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또한 하나님 아버지 자신과 함께 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고전 10:31, 14:26, 요 4:23-24, 롬 15:6.
      E. 주님을 기념하고 아버지께 경배하기 위해 주님의 상 집회에 올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함으로 산출한 그리스도의 풍성을 가지고 와야 한다 — 신 16:15-17.
      1. 그리스도로 아버지께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서로 함께, 또한 하나님과 함께 누림으로써 단체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 고전 14:26.
      2. 우리는 그리스도를 충분히 산출해야 한다. 그럴 때 여분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우리가 산출한 것 중 최상의 부분을 하나님 아버지께 제물로 드려 그분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드릴 것이다 — 신 15:11, 18:3-4, 12:11.
      F.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건축되고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집회에서 그리스도의 여분의 풍성을 드리도록 그리스도를 참되게 체험하는 것을 회복하실 것이다.
      Ⅳ. 요한복음 4장 23절과 24절에 따르면, 우리는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A. 진실함은 계시된 신성한 실재,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 안에 분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됨과 성실함이 되신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신성한 빛(요일 1:5)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고, 또 하나님의 존재에 따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경배를 하기 위한 것이다(요이 1, 요삼 1).
      B. 신성한 실재를 누린 결과로 인간적인 진실함과 성실함과 참됨이 산출된다 — 요 4:23-24, 요일 3:18, 요이 1, 요삼 1.
      C. 진실함은 인간의 참됨, 성실함, 정직함, 신뢰할 만함, 신실함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미덕이며, 신성한 실재가 흘러나온 것이다 — 요 14:6.
      D. 요한복음 4장 23절과 24절에서 ‘진실함’은 하나님께 참되게 경배하기 위하여, 신성한 실재가 사람에게 참됨이 되고 성실함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E. 이 신성한 실재는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믿는 이들이 참여하고 마신 생수의 원천, 곧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믿는 이들 안에서 실재가 되시는 분이시다. 이 실재는 결국 믿는 이들에게 참됨과 성실함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경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 요 4:10, 14, 23.
      F. 우리가 신성한 실재이신 삼일 하나님을 체험하고 누림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를 적시시어 우리의 개인적인 실재가 되셨으며, 우리가 진실함으로 아버지께 경배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의 실재가 되신 그리스도로 아버지께 경배하는 것이다 — 요 4:23-24.
    • 메시지12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을 하여, 그 결과로 성전인 하나님의 거처와 성인 하나님의 왕국을 산출함
      +
    • 성경: 고후 13:14, 1:12, 4:15, 6:1, 8:1, 9, 9:8, 14, 12:9
      Ⅰ. 고린도전서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신약의 믿는 이들에 대한 예표로 삼지만(5:7-8, 10:1-13), 고린도전서에는 좋은 땅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것은 영적으로 말해서, 좋은 땅의 실재가 고린도후서에 있기 때문이다.
      A.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좋은 땅의 실재는 신성한 은혜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고린도후서의 중심 사상이자 주제이다 — 고후 13:14, 1:12, 4:15, 6:1, 8:1, 9, 9:8, 14, 12:9.
      B.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의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이제는 더 이상 내가 … 아니라, 그리스도”와 동일하다. 사도를 밀어내고 사도 안에서 운행했던 은혜는 어떤 사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요 1:16-17), 즉 하나님 아버지의 체현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골 2:9, 요 14:7-11). 그분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고(고전 15:45하, 고후 3:17) 사도 안에 거하심으로써 사도에게 능력을 주는 누림이 되셨다(딤후 4:22, 2:1).
      C. 은혜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지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활력과 능력을 주고, 우리를 지지하며, 우리를 강하게 하여 온갖 어려움에 대처하게 하고, 모든 상황에 적응하게 하며, 온갖 대우를 견디게 하고, 온갖 환경을 받게 하며, 어떤 조건에서도 일하게 하고, 온갖 기회를 붙잡게 함으로써,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다른 이들 안으로 분배함으로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한다 — 고전 15:10, 고후 1:3-12, 12:7-9, 벧전 4:10, 엡 3:2.
      Ⅱ. 우리는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게 해 줄,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그러한 생활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 골 1:12, 2:6-7상.
      A.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생활, 곧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단체적으로 그분을 함께 누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자 집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할 수 있다 — 고전 3:17, 딤전 3:15.
      B.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히 10:5-10, 고전 1:9).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기를 추구해야 한다(빌 3:7-14).
      C. 그리스도는 한량없이 풍성하시지만 주님의 자녀들이 나태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빈곤 가운데 허덕이고 있다 — 잠 6:6-11, 24:30-34, 26:14, 마 25:26, 30.
      D. 우리는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집회에 올 때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 우리의 두 손은 그리스도의 소산으로 가득해야 한다 — 신 16:15-16.
      1.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충분한 소산을 내야 한다. 그럴 때 가난한 이들과 빈곤한 이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남겨진 여분의 몫과 주님 자신을 위한 최상품이 있을 것이다 — 신 15:11, 18:3-4, 12:11.
      2. 그리스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서로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단체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 고전 14:26.
      E. 이기는 이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한다. 즉 우리의 누림이신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1. 매일 아침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는 이 단순한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 — 비교 빌 3:13-14.
      2. 매일 우리는 홀로 은밀하게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분과 친밀한 교통을 나누어야 한다 — 마 14:22-23, 6:6, 출 33:11상.
      3.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말씀 안에서 주님을 누림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출발을 가져야 한다 — 시 119:147-148.
      4. 우리는 죄들을 철저히 처리함으로써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해야 한다 — 요일 1:7, 9, 비교 겔 1:22, 26.
      5. 우리는 기도 생활을 함으로써 매 순간 주님과의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 — 고후 13:14, 빌 4:6-7, 애 3:55-56, 비교 마 11:25-26.
      6.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아끼고 우리의 힘을 들여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적셔지고 잠겨야 한다 — 딤후 3:16-17, 골 3:16.
      7.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써, 시간을 아껴 영 안에서 충만해져야 한다 — 엡 5:18, 살전 5:16-19.
      8.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에 의해 지배받고 통제받고 지시받고 움직이고 인도받아야 한다 — 고후 2:13.
      9.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인격, 임재, 얼굴 안에서 살아야 한다 — 고후 2:10, 4:6-7, 3:16-18, 12:2상.
      a.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인격 곧 그분의 임재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 — 출 33:14.
      b.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변함없는 분(고후 1:17-20)이시고, 온유와 관대(10:1)와 진실성(11:10)과 능력(12:10, 13:4)과 은혜(13:14)이시며, 바울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13:3, 비교 2:17)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했다.
      10. 우리는 성령의 파쇄하시고 조성하시는 일을 통해 은혜, 곧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우리의 내적 존재가 신성한 삼일성으로 재건축된다 — 고후 12:7-10, 13:14.
      Ⅲ. 우리는 함께 모여 우리가 경작한 그리스도, 곧 우리가 누리고 체험한 그리스도를 전람해야 한다 — 신 14:22-23.
      A.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누림으로써 집회 생활에서 그분을 단체적으로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는 그분의 거처와 왕국이 된다.
      B. 우리가 이러한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누릴 때 교회 집회는 하나님으로 충만할 것이며, 집회의 모든 활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달하고 전해 주어 하나님을 주입받게 할 것이다 — 고전 14:25.
      C.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빛나며 자신이 경작한 그리스도를 전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참된 경배를 드린다.
      D. 모든 집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참석자들에게 드릴 자원 제물로서 말할 무언가를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 고전 14:26.
      1. 집회에 오기 전에 우리는 주님께 속한 무언가를 가지고 집회에 올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나 그분의 말씀을 누리고 기도 가운데서 그분과 교통하는 것을 통해서 준비할 수 있다.
      2. 집회에 온 후에 우리는 영감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고 우리의 훈련된 생각을 사용하여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우리가 준비한 것을 주님의 영광과 만족을 위해 주님께 내놓으며, 참석자들의 유익을 위해 즉 그들이 빛 비춤 받고 영양 공급을 얻고 건축되도록 그들에게 내놓아야 한다 — 고전 14:31-32.
      Ⅳ. 우리는 단체적인 경배를 드리기 위해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에서, 즉 우리의 영 안에서와 하나라는 유일한 터 위에서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 신 12:5, 11, 13-14, 18, 16:16, 요 4:24.
      A. 먼저, 하나님의 성소 곧 그분의 처소는 우리의 영 안에 있으며(엡 2:22), 또한 하나님의 성소는 교회이다(딤전 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야 하며 교회 집회에 가야 한다.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계시를 받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시 73:16-28).
      B. 우리는 하나라는 진정한 터 위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1. 교회생활의 실행은 한 도시에 한 교회를 갖는 실행, 곧 한 도시에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는 실행이다 — 행 8:1, 13:1, 고전 1:2, 계 1:11.
      2. 하나라는 진정한 터 위에서 우리는 주님을, 바르는 기름과 신선하게 하는 이슬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생명의 축복으로 누린다 — 시 133편.
      C.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1.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어떤 이름도 있어서는 안 된다 — 신 12:5, 계 3:8.
      2.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은 영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만하다 — 엡 2:22, 요 4:24, 딤전 4:7, 고전 14:32.
      3.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장소이다 — 신 12:7, 18, 시 36:8-9.
      4.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은 기뻐하는 장소이다 — 신 12:7, 12, 18, 시 42:4, 122:1.
      Ⅴ.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한 풍성을 누린 결과는 성전인 하나님의 거처와 성(城)인 하나님의 왕국, 곧 교회이다 — 엡 2:21-22.
      A. 성전과 성이 있는 그 땅이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이다 — 왕상 8:48과 각주 1.
      1. 그 땅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성전과 성은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분의 몸, 곧 교회이다 — 엡 1:22-23, 2:21-22.
      2. 성전은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것이고, 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한다 — 창 1:26.
      B.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거처의 주된 방면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말해 준다.
      1.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인데, 하나님의 임재는 곧 하나님의 영광(시 26:8, 29:9)과 하나님의 아름다움(27:4, 8)과 하나님의 풍성(36:8-9)이다.
      2. 하나님의 집은 계시와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곳이다 — 시 73:16-17, 3:4, 18:6.
      3. 하나님의 집은 우리의 은신처이다 — 시 27:5, 비교 31:20, 84:3.
      4.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심어지고 번성하고 열매 맺을 수 있는 곳이다 — 시 92:13-14.
      5. 하나님의 집은 샘들이 있는 곳이다 — 시 87:7.
      6.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이다 — 시 68:35, 96:6.
      7.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는 곳이다 — 시 92:10.
      8.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몫이 되시는 곳이다 — 시 73:26.
      C.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성, 곧 하나님의 왕국의 주된 방면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말해 준다.
      1. 하나님의 성은 강한 성, 곧 크신 왕의 성이다 — 시 31:21, 48:2.
      2. 하나님의 성안에는 강이 하나 있어 그 흐름이 성을 즐겁게 한다 — 시 46:4-5.
      3. 하나님은 성안에서 자신을 알리시고, 성안에서 피할 높은 산성이시다 — 시 48:3.
      4. 이 성은 원수를 두렵게 한다 — 시 48:3-6, 76:2-3.
      5. 이 성은 더없이 아름답다 — 시 50:2.
      6. 이 성은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목표이다 — 시 51:18.
      7. 하나님은 성안에 심판의 보좌들을 두신다 — 시 122:5.
      8. 주님은 그 성에서부터 다른 이들을 축복하시며, 그 성에서부터 찬양을 받으신다 — 시 134:3, 135:21.
      Ⅵ.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린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와 왕국인,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의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이다 — 계 21:3, 22, 22:5.
  • 개요

    추수 감사절 특별 집회 : 그리스도를 누리며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이 자람

    • 메시지1
      교회 안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림
      +
    • 성경: 고전 1:2, 9, 2:9-10, 13:1-8, 렘 2:13, 애 3:22-24
      Ⅰ. 고린도전서는 교회 안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갖고 계신 의도는 하나님의 경륜의 유일한 중심이시자,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몫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회복하시는 것이다 — 고전 1:2, 9, 24, 30.
      A.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통 곧 누림 안으로 부름받았다(고전 1:9). ‘교통’이라는 단어는 누림의 사상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에게 할당해 주신 우리의 몫이시다(고전 1:2, 골 1:12).
      B.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의 의도는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 특히 분열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C.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에 주의를 집중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중심으로 세우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럴 때 믿는 이들 가운데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고전 1:9, 골 1:17하, 18하.
      D.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히 누리고 가장 충만히 얻는 것이다. 이것의 결과로 우리는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최고도의 누림을 우리의 상으로 얻게 된다 — 빌 3:14, 마 25:21, 23.
      E. 우리는 ‘한 가지 것’을 생각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빌립보서에서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알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추구함으로 그분을 얻고 소유하는 것이다 — 빌 2:2, 5, 1:20-21, 3:7-14, 4:13.
      F. 한 가지 것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반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한 가지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가 한 가지 것을 생각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교회생활 곧 몸의 생활을 위해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에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으로 채워져야 한다.
      G. 고린도전서는 하나님께서 적어도 스무 가지 항목의 풍성을 소유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몫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의 비결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 고전 1:9.
      1.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으로 누려야 한다 — 고전 1:2.
      2.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또한 우리에게 의와 거룩하게 함과 구속이 되는 하나님의 지혜로 누려야 한다 — 고전 1:24, 30.
      3.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영광의 주님으로, 심지어 영광의 왕으로 누려야 한다 — 고전 2:7-8, 롬 8:30, 시 24:6-10.
      4.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깊이들(깊은 것들)로 누려야 한다 — 고전 2:10.
      5.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건축물의 유일한 기초로 누려야 한다 — 고전 3:11.
      6.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월절(고전 5:7), 무교병(8절), 영적인 음식, 영적인 음료, 영적인 반석(10:3-4)으로 누려야 한다.
      7.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고전 11:3, 골 2:19, 엡 1:19-23)와 몸(고전 12:12, 24-25상, 엡 4:15-16)으로 누려야 한다.
      8. 우리는 그리스도를 첫 열매(고전 15:20, 23), 둘째 사람(47절),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마지막 아담(45절)으로 누려야 한다.
      Ⅱ.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아들의 교통 안으로, 곧 그분의 아들에 대한 누림 안으로 부르신 것에 신실하시지만, 많은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의도 안으로 부르신 것에 신실하지 않다 — 고전 1:9, 렘 2:13, 애 3:22-24.
      A.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분의 의도는 그분께서 생수의 원천 곧 근원이 되시어 우리 안에 분배되심으로써 우리의 만족과 누림이 되시는 것이다. 이러한 누림의 목표는 하나님의 증가이자 하나님의 확대인 하나님의 배필 곧 교회를 산출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는 그분의 충만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요 3:29-30, 엡 3:16-19, 21.
      B. 생수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취하는 유일한 길은 매일 그분을 마시고 흘려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노래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계속해서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 시 36:8-9, 사 12:3-6, 고전 12:13, 요 7:37-39, 4:10, 14, 롬 10:12-13, 살전 5:16-18.
      C. 하나님을 마심으로 하나님을 누리는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은 두 가지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다. /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 나를 저버렸고 / 자기들을 위해 저수조들을 팠는데 / 그것들은 물을 담아 둘 수 없는 / 새는 저수조들이었다.” — 렘 2:13.
      1.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의 누림을 위한 그들의 원천 곧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렸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아닌 다른 근원들을 향해 돌아섰는데, 이 근원들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고, 그들을 하나님의 확대 곧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충만이 되게 할 수 없었다.
      2. 저수조들을 파는 것은 이스라엘이 사람의 노력으로 애쓰면서 하나님을 대치하는 어떤 것(우상들)을 만드는 모습을 묘사한다. 저수조들이 새서 물을 담아 둘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안에 생수로 분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우리를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증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 요 4:13-14.
      D. 악인의 악한 상태는 주님을 먹고 마시고 누리려고 주님께 나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일을 하지만,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을 취하며,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맛보며, 주님을 누리려고 나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보다 더 악한 것은 없다 — 사 57:20, 비교 55:1-2, 6-7.
      E. 우리는 신실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지만 그분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천연적인 이해나 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들을 제거하시는 데 신실하시다.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 우리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나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대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이다 — 겔 14:3, 요일 5:21.
      2. 우리 환경의 외적인 평안, 우리 개인의 편안함과 안락함, 우리의 소유물이 우리에게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우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생수의 원천이신 그분을 마실 수 있도록 그러한 것들을 빼앗아 가시는 데 신실하시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어려움을 겪도록 허락하시는 데 신실하시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경륜 안으로 이끄셔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흡수하고, 그리스도를 마시고,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동화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증가하시어 그분의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다 — 렘 17:7-8, 고후 1:8-9, 요 16:33, 고전 10:3-4, 12:13.
      4.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으시다. 우리는 실패 때문에 우리 자신이 소망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낙심하는 법이 없으시다. 우리의 실패는 다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 우리를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이끄실 수 있게 한다 — 롬 8:28-29, 히 6:1상, 창 37:1과 각주, 47:7과 각주.
      Ⅲ. 고린도전서는 주님을 누리는 길이 그분을 사랑하고(2:9-10, 16:22) 서로 사랑하는 것(13:1-8상)임을 계시한다. 주님의 회복은 첫째가는 사랑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계 2:4, 요일 4:19)과 서로 사랑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엡 4:16).
      A. 우리가 주님의 마음 안에 들어가 그분의 마음의 모든 비밀을 이해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정하시고 예비하신 깊고 감추어진 것들을 깨닫고 그것에 참여하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필수 요구 조건이다 — 고전 2:9-10, 마 22:37-38, 시 73:25, 116:1-2.
      1. 교회생활의 내용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릴수록 내용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서는 첫째가는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요구된다 — 계 2:4-5, 7.
      2. 우리가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을 버릴 때, 교회의 타락이 시작된다. 첫째가는 사랑 곧 제일 좋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주님께 으뜸의 위치 곧 첫째 위치를 드리며, 그분의 사랑에 강권되어 우리의 생활에서 그분을 모든 것으로 여기고 취하는 것이다 — 계 2:4-5, 골 1:18하, 고후 5:14-15, 막 12:30, 시 73:25-26.
      3.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을 때 받아들인 바로 그 생명은 인격이며, 이 인격을 적용하고 누리는 유일한 길은 첫째가는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주 예수님께서 인격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이 순간 그리고 날마다 그분을 새롭게 접촉하여 그분의 현재의 임재를 누려야 한다 — 요 11:25, 14:5-6, 딤전 1:14, 요 14:21, 23, 고후 5:14-15, 계 2:4-7, 골 1:18하, 롬 6:4, 7:6.
      4. 우리는 홍수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잠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신성한 사랑은 분명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큰 파도와 같아서, 우리를 강권하여 우리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를 향하여 살고 극도로 그분을 사랑하게 한다 — 고후 5:14.
      5. 우리가 주님을 극도로 사랑하려면 일평생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사랑스러움, 즐거움, 유쾌함)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분께 여쭙기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여쭙는 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점검받는 것이다 — 시 27:4.
      B. 사랑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가장 뛰어난 길이다 — 고전 12:31하-13:8, 13, 비교 14:1, 3, 4하.
      1. “지식은 교만에 빠지게 하지만, 사랑은 건축합니다.” 우리는 사역의 메시지들을 듣고 단지 지식만을 얻어 교만에 빠질 수도 있다 — 고전 8:1하, 비교 고후 3:6.
      2. 사랑의 법인 생명의 영의 법(롬 8:2, 갈 6:2-3)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될 때,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수고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행 20:35, 살전 5:14) 사랑의 수고가 된다(고전 15:58, 살전 1:3). ‘약한 사람들’은 영이나 혼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이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3.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엡 5:25)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그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교회생활은 형제 사랑의 생활이고(요일 4:7-8, 요이 5-6, 요 15:12, 17, 계 3:7, 엡 5:2, 비교 유 12상),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된다(엡 4:16).
      4.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거듭난 영은 사랑의 영이다. 오늘날의 교회의 하락을 정복하려면 우리에게 불타는 사랑의 영이 필요하다 — 딤후 1:7, 롬 12:10-11.
      5. 우리가 하나와 건축과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함께 섞이는 것에 대한 체험과 누림 안으로 더욱더 들어갈 때,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에게 실재가 된다 — 고전 12:14-27, 롬 16:1-16, 골 4:16, 요 12:24, 레 2:4-5.
    • 메시지2
      삼일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됨
      +
    • 성경: 롬 15:13, 14:17, 요 15:4, 11, 갈 5:22
      Ⅰ. 삼일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다.
      A. 로마서 15장 13절은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과 평안으로 여러분을 충만하게 하시어”라고 말한다.
      1. 이것은 기쁨이 하나님의 속성들 중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은 누림의 하나님이시다.
      3.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가 은혜이신 하나님을 누린다면 평안을 갖게 되고, 평안을 갖게 되면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B. 그리스도는 또한 믿는 이들에게 기쁨이 되신다.
      1.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주님은 “내가 이러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내 기쁨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고,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2. 주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들에 대한 말씀의 맥락에서 이 절을 말씀하셨다.
      3. 우리가 신성한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라는 것은 기쁨의 문제, 곧 기쁨이 가득한 생활의 문제이다.
      4. 우리의 기쁨은 언제나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 곧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에서 온다.
      5. 바로 이러한 생활에서 우리는 기쁨이 가득하게 된다.
      6. 이러한 기쁨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그분의 기쁨이 우리 안에 거하여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되고, 그 결과 우리는 기쁨이 넘쳐 나고 충만하게 되며,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C. 성령 안에 기쁨이 있다 — 롬 14:17.
      1.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누리며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살기 원하신다 — 느 8:10, 엡 3:11.
      2. 삼일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고, 사도들은 성도들의 기쁨을 위해 성도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 롬 15:13, 요 15:11, 17:13, 행 13:52, 갈 5:22, 고후 1:24, 빌 1:25, 2:17-18.
      3.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 렘 15:16.
      4.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달콤한 한 가지 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은혜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누림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 요 1:14, 16-17, 고후 13:14.
      a.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관하여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에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음식으로 사람에게 제시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하심이 우리가 그분을 누리는 것임을 보여 준다 — 창 2:7, 9, 시 16:11, 렘 15:16.
      b. 하나님의 갈망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누림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 느 8:10.
      c. 그리스도인 생활의 비결은 그분을 위해 얼마나 많이 일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분을 얼마나 많이 흡수하고 누리느냐에 있다 — 요 15:4-5, 골 2:6-7.
      Ⅱ. 삼일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있다.
      A. 그리스도 그분의 인격이 우리의 기쁨이다.
      1.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그분 안에 계속 거한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 요 15:10-11.
      2. 주님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상실된 것들을 회복하고 계시는데, 주님을 누리는 것은 이러한 상실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 벧전 1:8.
      3. 주님을 먹고 누리는 문제는 요한복음 6장 57절에 근거한다.
      4.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주님을 먹고 마시며 누리는 생활이다 — 요 6:57, 고전 10:4.
      5. 신실하고 정상적이며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상이 되어야 한다 — 잠 29:18, 행 26:19.
      6. 주님을 누리는 것에서 우리의 영이 앞장서야 한다 — 히 4:12.
      a. 우리는 즉시 우리의 영을 사용하기를 배워서, 혼이 우리의 영을 따르게 해야 한다.
      b. 주님을 누리는 것에서, 우리의 영이 반드시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7.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에서, 아들은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 안에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셨다 — 요 17:13.
      a. 충만한 기쁨은 참된 하나 안에 있다.
      b.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아버지의 생명에 의해 하나 되어 아버지를 함께 누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 요 17:13.
      B.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린다 — 골 1:12-13, 27, 2:9, 16-17, 3:1, 4, 11.
      1.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할당된 몫 곧 우리의 좋은 땅으로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신성한 유업이시다 — 골 1:12.
      2. 그리스도는 우주 안의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재이시다 — 골 2:16-17.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다 — 골 3:1.
      4.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 골 1:27.
      5.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다 — 골 3:4.
      6. 그리스도는 한 새사람의 조성 성분이시다 — 골 3:10-11.
      C. 베드로전서 1장 8절에 따르면, 믿는 이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한다’.
      1. 이 기쁨은 영광이신 주님 안에 잠겨 있다. 따라서 이 기쁨은 주님의 표현으로 충만하다.
      2. 우리는 주님 안으로 믿어 들어가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큰 기쁨을 얻는다.
      3.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상태는 영광이 가득 찬 기쁨을 갖는 것이다.
      D. 주님을 누리는 것에는 많은 방면이 있는데, 예를 들면 주님의 임재의 기쁨(시 16:11), 신성한 로맨스 안에 사는 기쁨(아 1:1-4),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를 받는 기쁨(고후 13:14, 엡 3:14-21), 하나님의 기쁨의 강을 마시는 기쁨(시 46:4상, 36:8하),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기쁨(갈 2:20, 롬 8:38-39),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기쁨(시 40:8상), 모든 환경에서 만족하는 기쁨(빌 4:11), 왕국 안에서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마 25:21, 23) 같은 것이다.
      E. 그리스도인은 기쁨이 가득한 사람, 곧 그 영 안에서 기쁨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갈 5:22.
      1.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신다 — 롬 14:17.
      2.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기쁨이 가득하고, 어떤 어려움이든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기쁨이 더 깊어지게 한다 — 요 15:4.
      3. 성령은 기쁨의 영이시다 — 롬 14:17.
      a. 우리가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이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도 기쁨이 가득하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 갈 5:22.
      b. 바깥 환경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사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쁨이시다 — 골 1:27.
    • 메시지3
      생명에 속한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씨가 자라 우리가 생명의 성숙에 이르도록 우리의 마음을 처리함
      +
    • 성경: 마 5:8, 13:3-9, 18-23, 잠 4:23, 렘 32:39, 엡 3:16-17
      Ⅰ.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씨가 자라 우리가 생명의 성숙에 이르도록, 우리는 주님의 임재의 빛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처리해야 한다. 마음은 사람의 속부분들의 집합체이자 사람의 총대표이자 사람의 행동하는 대행자이다.
      A. 우리의 마음은 우리 혼의 모든 부분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마 9:4, 히 4:12, 행 11:23, 요 14:1, 16:22)와 우리 영의 한 부분인 양심(히 10:22, 요일 3:20)이 더해져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B. 우리의 마음이 활동적일 때에만 영을 사용하는 것이 유효하다. 사람의 마음이 냉담하면, 영은 안에 갇혀서 그 역량을 나타낼 수 없다 — 마 5:3, 8, 시 78:8.
      C. 혼은 사람 자신이지만, 마음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마음은 우리 전 존재의 행동하는 대행자, 행동하는 위원이다.
      D. 우리의 신체의 활동과 움직임은 신체의 심장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매일의 생활, 곧 우리가 행동하고 처신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정신적인 심장 곧 어떤 종류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E. 마음은 생명의 입구와 출구, 곧 생명의 ‘스위치’이다.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영 안에 있는 생명은 방해를 받고, 생명의 법은 장애 없이 자유롭게 작용하지 못하여 우리 존재의 각 부분에 도달하지 못한다. 비록 생명이 큰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 큰 능력은 우리의 작은 마음의 통제를 받는다 — 잠 4:23, 마 12:33-37, 비교 겔 36:26-27.
      Ⅱ. 우리의 생명의 성장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한다. 교회 건축은 생명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자라실 때 일어난다(요일 3:9, 벧전 1:23, 골 2:19, 엡 2:21, 4:15-16, 마 13:18-23).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처리함으로써 주님께 협력해야 한다.
      A.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기를 원하신다.
      1.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처리하실 때, 우리 육신에서 돌 같은 마음을 없애시고 고기 같은 마음, 곧 부드러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 겔 36:26.
      2. 부드럽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거나 반역적이지 않고, 주님께 복종하고 온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비교 출 32:9.
      3. 부드러운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아무 장애 없이 자라실 수 있는 좋은 땅이다. 부드러운 마음은 세상적인 통행으로 굳어지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이 세상의 염려도 없고 재물에 속지 않는 마음이다 — 마 13:3-9, 18-23.
      4.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을 사용하여 우리를 감동시키심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신다.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다면, 그분은 환경을 통해 그분의 손을 사용하여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우리를 징계하신다 — 고후 5:14, 4:16-18, 히 12:6-7, 비교 렘 48:11.
      B.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기를 원하신다.
      1. 순수한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다. 순수한 마음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사랑하거나 선호하거나 갈망하지 않는다 — 마 5:8, 시 73:25, 비교 렘 32:39.
      2.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단일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 시 86:11, 사 11:1-2.
      3.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단일한 목표를 갖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히 누리고 얻는 것이어야 한다 — 빌 3:7-14.
      4.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해야 한다 — 딤후 2:22, 딤전 1:5, 시 73:1.
      C.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1.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원하고 하나님을 목말라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주님과 개인적이고 애정 어리고 내밀하고 영적인 관계를 갖는 마음이다 — 시 42:1-2, 아 1:1-4.
      2.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거듭 주님께 돌이키고 계속 새롭게 하여, 주님을 향한 새롭고 신선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 — 고후 3:16.
      3. 모든 영적인 체험은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영적인 체험도 가질 수 없다 — 엡 6:24, 계 2:4-5.
      4.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가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격을 주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장비시킨다. 우리가 주님을 극도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주님으로 충만하여 넘쳐흐를 것이다 — 요 21:15-17, 마 26:6-13, 28:18-20.
      D.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기를 원하신다.
      1. 평안한 마음은 거리낌이나 유죄판결이나 책망이 없는 양심을 가진 마음이다 — 행 24:16, 요일 3:19-21, 히 10:22.
      2.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빛 안에서 우리의 죄들을 자백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용서와 깨끗하게 하심을 받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통을 누릴 수 있다 — 요일 1:7, 9, 딤전 1:5, 3:9.
      3.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실행한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인데, 이 평안은 사실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수비하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고요하고 안정되도록 지키시는 평안이신 하나님이다 — 빌 4:6-7.
      4. 한 새사람을 입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용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 골 3:13-15.
      Ⅲ.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직면하는 장애물들을 보아야 한다.
      A.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인간 관념들의 어둠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 고후 3:14, 4:4.
      1.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오직 한 가지뿐임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얼마나 주의하는가이다 — 갈 1:16, 2:20, 4:19, 빌 1:19-21, 고후 3:18.
      2.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 영적인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생명의 길을 모르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생명으로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 롬 8:6.
      B.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직면하는 두 번째 문제는 위선이다 — 마 6:2, 5, 7:5, 23:13-29.
      1. 사람의 영성은 밖으로 보이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얼마나 주의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2. 우리의 타고난 선은 거짓된 영성이며, 사실상 생명에 커다란 방해물이다. 생명의 표현은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기질과 선호를 거절하는 것과 다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고 우리를 파쇄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과 관련된다.
      3. 우리가 항상 우리의 기질과 타고난 존재에 따라 일들을 한다면, 그 결과는 항상 위선일 것이다.
      C.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직면하는 세 번째 문제는 반역이다 — 고후 10:4-5.
      1. 그리스도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과 요구에 관하여,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처리하시는 것에 관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고 움직이신다.
      2. 그러나 우리가 내적인 느낌에 순종하지 않고 거스르면서 그분의 인도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꺼리고 반대하는 것이 반역이다.
      3. 우리가 가장 자주 범하는 가장 심각한 죄는 외적이고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느낌에 불순종하는 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내적인 생명의 느낌을 주고 계신다 — 롬 8:6, 요일 2:27, 비교 엡 3:1, 4:1, 6:20, 고후 2:12-14.
      D.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직면하는 네 번째 문제는 우리의 천연적인 역량이다.
      1. 많은 형제자매들이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며, 매우 경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역량과 재능이 강하고 크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는 그들 안에서 입지나 길을 얻지 못하신다.
      2. 우리에게 역량과 은사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죄나 더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역량을 멸시하기보다 매우 귀하게 여긴다. 우리의 천연적인 역량이 파쇄되지 않은 채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문제가 될 것이다.
      E.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의 파쇄를 체험하고, 이 장애물들이 처리되고 제거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 마 16:24-25.
      Ⅳ.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직면하는 주관적인 장애물들을 보아야 한다.
      A. 첫 번째 주관적인 문제는 우리 생각의 문제이다.
      1. 우리가 하기 원하는 것들이 우리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성공을 거둘지라도 종교적인 활동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영에서부터 살아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증거가 아니다 — 비교 빌 2:5, 고전 2:16, 엡 4:23, 롬 12:2.
      2. 비록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협력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생명은 우리에게서 살아 나타날 수 없다.
      3. 생각을 영에 둘 때 우리의 외적인 행동은 속사람과 일치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일치되지 않는 것이 조금도 없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평안이 있고, 적대감이 없게 된다(롬 8:7). 그 결과 우리는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 롬 8:6.
      B. 두 번째 주관적인 문제는 우리 의지의 문제이다.
      1. 비록 우리의 생각이 자주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의도를 이해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복종하거나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2. 주님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 알고 인지하고 깊이 감지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는 복종하고 굴복하기를 거절하며,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린다.
      3.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는 둘 다 하나님의 생명에 방해물이다. 처리받은 의지는 주님께 정복되고 주님에 의해 부활하여 강하면서도 유연하다.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는 의지를 갖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 빌 2:13.
      C. 세 번째 주관적인 문제는 우리 감정의 문제이다.
      1.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의 감정을 가져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감정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한다 — 살후 3:5, 빌 1:8.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미워해야 한다. 우리의 감정과 그분의 감정은 반드시 하나의 감정이 되어야 한다 — 엡 5:25, 고후 12:15, 고전 16:24, 계 2:6, 빌 1:8.
      D. 우리는 속사람에 이르도록 매일 강하게 됨으로써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주요 부분인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엡 3:16-17.
      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중심적인 일이 사람이 그분의 생명을 얻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자라며 성숙하게 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일은 주님의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분의 생명에서 나온 일만이 그분의 영원한 표준에 이를 수 있고 그분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 요 7:37-39상, 고후 4:10-12, 요일 5:16상, 고후 3:3, 6.
    • 메시지4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람
      +
    • 성경: 골 1:18, 27-28, 2:2-3, 3:1-4
      Ⅰ. 우리가 골로새서에 계시된 대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A.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 이것은 그분 자신께서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골 1:18.
      1. 옛 창조물과 새 창조물 모두에서 그리스도는 첫째이시고 첫째 위치를 차지하신다.
      2. 우주와 교회 모두 안에서 그리스도는 으뜸인 분이시다.
      B.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 골 1:27.
      1.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생명과 인격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2. 그분께서 오실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3. 이것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온 존재를 적시심으로 우리의 몸이 변형되어,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상이 될 것을 의미한다.
      C.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가리키는 중요한 많은 구절이 있다.
      1.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 — 골 1:27.
      2.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 — 골 1:28.
      3. “그분 안에서 행하십시오.” — 골 2:6.
      4. “그리스도를 따른 것” — 골 2:8.
      5.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골 2:13.
      6.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 골 2:20.
      7. “머리를 붙들지” — 골 2:19.
      8. “머리로부터” — 골 2:19.
      9.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 골 2:19.
      10.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체험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제시해 준다.
      11. “하나님의 비밀이신 …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 골 2:2-3.
      a. 골로새서는 하나님의 비밀, 곧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b. 참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 — 골 2:3.
      c.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신성한 경륜에 대한 영적인 지혜와 지식이다.
      d. 지혜는 우리의 영과 관계있고, 지식은 우리의 생각과 관계있다 — 엡 1:8, 17.
      12.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졌습니다.” — 골 2:9-10.
      a.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풍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의 그 풍성의 표현이 거한다.
      b. 신격의 모든 충만이 사람의 몸을 지닌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D.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다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 골 3:1.
      1. 골로새서 3장 1절부터 4절까지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위치, 한 생명, 한 생활, 한 운명, 한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
      2. 하늘들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영역이 되셔야 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살아야 한다.
      Ⅱ. “머리를 붙(듭)…니다. 온몸은 … 머리로부터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 골 2:19.
      A.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더해지시게 하는 것이다 — 고전 3:6-7, 갈 4:19.
      B. 몸이 자라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에 달려 있다 — 엡 4:15-16.
      1. 몸이 머리를 붙듦으로 공급을 받을 때, 몸은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란다 — 골 2:19.
      2. 몸은 머리로부터 자라 나오는데, 이것은 모든 공급이 머리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 엡 4:15.
      C. 몸이 자라는 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라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더해지시고 증가하시는 것에 달려 있다 — 골 2:19.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관적인 방식으로 주심으로써 우리를 자라게 하신다.
      2.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더 많이 더해지실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더 많이 자라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방식이다 — 고전 3:6-7.
      3.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실 수 있으며, 그분이 없다면 우리는 자랄 수 없다 — 고전 3:6-7.
      a.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더해지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b.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것은 사실상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 롬 8:11.
      D. 몸이 자라는 것이 곧 몸이 건축되는 것이다 — 엡 4:16, 골 2:19.
      1. 에베소서 4장 12절부터 16절까지는 신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이 절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에 관한 비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증가하시는 것이다. 그 결과 몸이 스스로 몸을 건축한다 — 엡 3:17상.
      a.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들어오셔서 그들 안에 사실 때, 성도들 안에 계신 그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되신다 — 골 3:10-11.
      b.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심으로 자라며, 이런 식으로 몸이 건축된다 — 골 1:18, 2:19.
      3.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데, 이 사랑은 우리 자신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며, 이 사랑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또 함께 몸의 지체 된 사람들을 사랑한다 — 요일 4:7-8, 11, 16, 19, 롬 5:5, 8:39.
      a. 사랑은 하나님의 내적인 실질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실질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누리고 신성한 사랑의 달콤함 안에서 그분의 임재를 누리며,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 엡 5:25.
      b. 우리는 이러한 사랑 안에서 참된 것,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을 붙잡는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사랑 안에서 가르침의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몸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가져오지 않는다 — 엡 4:14-15.
    • 메시지5
      요셉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성숙한 생명의 다스리는 방면
      +
    • 성경: 창 41:39-44, 51-52, 45:5-8, 47:14-23, 50:15-21
      Ⅰ. 영적 체험에 따르면, 야곱과 요셉은 한 사람이다. 요셉은 성숙한 이스라엘의 다스리는 방면, 곧 야곱의 성숙한 본성 안에 조성되신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온전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로 조성된 성숙한 성도인 야곱은 요셉을 통해 다스렸다 — 창 41:39-44, 히 6:1상, 갈 6:8, 5:22-23.
      A. 요셉으로 예표된 다스리는 방면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이다 — 갈 4:19.
      B. 요셉은 ‘꿈쟁이’(창 37:19)였으며, 하나님의 관점에 따라 그분의 백성이 생명이 충만한 곡식 단이고 빛이 가득한 천체라는 꿈을 꾸었다(5-11절). 요셉의 두 가지 꿈(창 37:7, 9)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었고,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본성과 위치와 기능과 목표에 관한 하나님의 신성한 관점을 그에게 밝혀 주는 것이었다.
      1. 우리는 ‘신성한 망원경’을 사용하여 시간을 관통해서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 한다. 새 예루살렘에는 오직 생명이 충만한 곡식 단들과 빛이 가득한 별들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성숙한 생명의 다스리는 방면은 성도들이나 교회에 관해 결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 비교 창 38:27-30, 마 7:1-5, 벧전 3:8-9.
      2. 요셉의 꿈은 그의 삶을 통제하고 그의 행동을 지시했다. 그가 그토록 탁월하고 놀랍게 행동한 것은 그가 꿈에서 본 이상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비교 행 26:19). 요셉의 형들은 분노를 터뜨렸고(창 37:18-31) 정욕에 빠졌다(38:15-18). 그러나 요셉은 분노를 억제했고 정욕을 정복했다(창 39:7-23). 그는 생명이 가득한 곡식 단으로서 처신하였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늘의 별처럼 행동했다.
      C. 하늘에 속한 이상 아래 있었던 요셉의 생활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에 묘사된 천국 생활이었다. 그러한 생활을 함으로써 요셉은 왕으로서 다스리기 위해 완전히 준비되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에 계시된 하늘에 속한 왕국의 헌법에 따르면, 우리의 분노는 억제되어야 하고 우리의 정욕은 정복되어야 한다(마 5:21-32).
      D. 성숙한 생명의 다스리는 방면은 항상 주님의 임재를 누리는 생활이다(행 7:9).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마다 권위, 곧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창 39:2-5, 21-23).
      1. 주님의 임재 안에서 요셉은 주님에 의해 모든 일이 잘되었다. 요셉은 학대를 받는 동안에도 주님의 주권으로 자신에게 임한 주님의 번영을 누렸다.
      2. 주님의 임재 안에서 요셉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축복을 받았다. 요셉이 번성을 누렸을 때, 요셉과 그와 연관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았다 — 창 39:4-5, 22-23.
      E. 요셉은 비록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두 동료 죄수의 꿈을 해몽할 믿음과 담대함이 있었다(창 40:8). 결국 요셉은 술 맡은 시종의 꿈을 해몽하는 일에서 믿음으로 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났고(41:9-13),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는 일에서 담대하게 말함으로써 직접적으로 보좌로 인도되었다(14-46절). 요셉은 말함으로써 감옥에서 풀려났고 권위를 얻었다.
      1. 앤드루 머리(Andrew Murray)는 “훌륭한 말씀의 사역자는 언제나 자신이 체험한 것 이상의 것을 공급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상이 성취된 것에 따라서 말하기보다, 그 이상 자체에 따라서 더 많이 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비록 우리의 이상이 성취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이상이 성취될 때가 올 것이다. 요셉의 꿈은 결국 요셉이 술 맡은 시종의 꿈을 해몽함으로써 성취되었다.
      3. 우리는 우리의 느낌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이상에 따라서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 즉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본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진리의 절대성에 따라서 말해야 한다 — 행 26:16-19.
      F.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아 나타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생명을 가져가거나 죽음을 가져갈 것이다(고후 2:14-16). 요셉은 술 맡은 시종에게는 복직을, 떡 맡은 시종에게는 처형을 가져갔다(창 41:12-13).
      G. 우리가 주님을 추구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지하 감옥’ 안으로 넣으실 것이다. 지하 감옥이 없으면 우리는 보좌에 오를 수 없다. 우리는 ‘지하 감옥에서 중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졸업하여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반드시 지하 감옥에 머물러야 한다 — 엡 3:1, 4:1, 약 1:12.
      Ⅱ. 열매 많은 큰 가지인 요셉(창 49:22)은 많은 가지들(요 15:1, 5)인 믿는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뻗어 나가는 가지이신(사 11:1-2)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창세기 49장 22절에서 샘은 열매 맺음의 근원(시 36:9, 렘 2:13)이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가지들이 담을 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지들인 믿는 이들이 모든 제한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확장하며, 모든 환경에서 그분을 확대하는 것을 상징한다(빌 1:20, 4:22, 몬 10).
      A. 요셉은 보좌에 오를 때 영광과 선물을 받았다. 이 점에서 요셉은 승천 안에서 영광(히 2:9)과 선물(시 68:18, 행 2:33)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창 41:42).
      1. 반지와 옷과 금사슬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을 때에 받으신 선물들을 묘사하며, 그리스도는 이러한 선물들을 교회에게 전달해 주셨다 — 창 41:42.
      a. 인장 반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안에 그리고 그들 위에 도장 찍으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 행 2:33, 엡 1:13, 4:30, 비교 눅 15:22.
      b. 옷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우리의 객관적인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고전 1:30, 비교 시 45:9, 13, 눅 15:22), 또한 어린양의 결혼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얻도록 우리가 살아 낸 주관적인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빌 3:9, 시 45:14, 계 19:7-9).
      c. 금사슬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져 그들의 복종으로 표현되는 성령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비교 행 5:32). 금사슬을 건 목은, 하나님께 정복되고 굴복되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된 의지를 상징한다(창 41:42, 비교 아 1:10, 잠 1:8-9).
      2. 영적 체험의 순서에 따르면, 우리는 먼저 구원을 위하여 그 영의 도장 찍으심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의의 옷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살기 시작한다(갈 2:20, 빌 1:20-21상).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려면 목에 금사슬이 걸려서 의지가 성령께 정복되고 굴복되어야만 한다.
      B. 죽음의 감옥에서 부활하고 승천의 위치로 이끌린 후에 요셉은 아스낫과 결혼했다. 아스낫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거절당하시는 동안 이방 세계에서 얻으신 교회를 묘사한다(창 41:45). 요셉은 그의 맏아들의 이름을 (‘잊게 하다’를 의미하는) 므낫세라고 불렀고, 둘째 아들을 (‘열매가 배나 많은’을 의미하는) 에브라임이라고 불렀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과 나의 아버지 집의 모든 일을 다 잊게 해 주셨구나. … 내가 고난당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은 내가 자녀를 (배나) 많이 낳도록 해 주셨구나.”(51-52절)라고 선포하였다.
      Ⅲ. 요셉의 삶에 대한 기록은 그 영의 통치에 대한 계시이다. 왜냐하면 그 영의 통치는 성숙한 성도의 다스리는 방면이기 때문이다. 그 영의 통치(하나님의 왕국의 실재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제한과 규제를 받으며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생활)는 그 영의 다른 어떤 방면보다 더 높다 — 롬 5:17, 21, 14:17-18, 비교 고후 3:17-18, 딤후 4:22, 계 4:1-3.
      A. 비록 요셉은 자기 형제들을 향하여 인간적인 느낌과 감정이 가득했지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느낌을 그 영의 통치 아래 두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이 온전하게 되고 건축되도록 그들을 합당하고 지혜롭고 분별력 있게 다루었으며,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을 훈련시켰다. 이것은 그들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증거로서 함께 사는 단체적인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셉의 이야기에 나타난 생명은 부활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다 — 창 42:9, 24, 43:30-31, 45:1-2, 24.
      B. 하나님의 제한 아래 산 요셉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러한 생활은 신성한 생명의 성숙함과 온전함을 나타내었고,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왔다 — 요 5:19, 30하, 7:16, 18, 14:10, 마 8:9-10.
      C.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을 다루는 것에서, 우리는 그가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평온한 생활, 깨어 있는 생활, 분별 있는 생활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자아를 부인하는 생활, 곧 왕국 생활을 실행하는 것이다 — 창 45:24, 마 16:24, 대하 1:10, 사 30:15상, 빌 1:9, 딤전 5:1-2, 살전 3:12, 4:9, 살후 1:3, 롬 12:10, 요일 4:9, 히 13:1.
      D.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을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아 부인이고 참되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 마 16:24, 비교 26:53, 고후 2:12-16.
      E.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보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형님들은 나에게 악한 일을 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선을 이루시어”라고 말했다(45:5, 7, 50:19-21, 비교 41:51-52). 이것은 로마서 8장 28절과 29절에 있는 바울의 말의 실재이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한 모든 일을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였고, 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위로하였다(창 45:5-8, 50:15-21). 그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가 있었는지! 그의 영은 얼마나 탁월했는지!
      Ⅳ. 요셉은 고난을 당하고 자신을 부인하였기 때문에 풍성한 생명 공급을 얻었다(찬송가 465장).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에게서 양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네 종류의 대가, 곧 그들의 돈, 그들의 가축, 그들의 땅, 그들 자신을 지불해야 했다 — 창 47:14-23, 비교 계 3:18.
      A. 돈은 편익을 나타내고, 가축은 생계 수단을 상징하며, 땅은 재산을 나타낸다. 우리가 분배하는 분이신 주님에게서 생명 공급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그분께 우리의 편익과 우리의 생계 수단과 우리의 재산을 드려야 한다. 주님께 드리면 드릴수록 우리는 더 많은 생명 공급을 그분께 받게 된다.
      B. 궁극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만족을 위한 양식과 다른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산출하는 씨앗을 비롯하여(창 47:23) 가장 좋은 몫을 주님께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우리 자신, 곧 우리 존재의 각 부분을 그분께 넘겨드려야 한다(레 1:4).
      C. 우리가 우리 존재의 각 부분을 주님께 넘겨드림으로 최고의 대가를 지불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 중 최상의 몫을 누리게 된다.
      Ⅴ. 요셉에게 주어진 우주적인 축복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며,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 창 49:25-26, 신 33:13-16, 계 21:5.
      A. 변화는 신성한 생명의 새로움으로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성숙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의 새로움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며, 축복은 생명의 넘쳐흐름이다. 요셉과 함께한 야곱의 삶의 마지막은 그의 빛남의 절정으로서 축복하는 삶이었다 — 잠 4:18, 히 11:21, 창 47:7, 48:15-16.
      B. 오직 하나님만이 새로우시다. 무엇이든 하나님을 떠난 것은 낡은 것이지만, 무엇이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새롭다(고후 5:17).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께 속한 무언가가 우리 안에 넣어져, 우리가 몸의 생활을 위해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후 4:16, 롬 12:1-2).
      C. 하나님을 우리의 새로움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비결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져가고 그분께서 모든 것 안으로 들어가시도록 하는 것이다. 요셉에게 주어진 우주적인 축복은 축복이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찬양으로 인하여 타락에서 온 저주에 속한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바뀐다 — 엡 5:20, 살전 5:16-18.
    • 메시지6
      그리스도 앞에 있는 기쁨과 우리 앞에 있는 기쁨
      +
    • 성경: 히 12:2, 골 2:15, 계 19:7-9, 느 8:10하
      Ⅰ.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은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셨다’ — 히 12:2.
      A.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 엡 5:25.
      B. 십자가에서 주님은 죄들에 대한 희생 제물로 그분 자신을 드리심으로써, 많은 사람의 죄들을 짊어지셨고, 믿는 이들을 위해 죄가 되셨으며, 이 세상의 통치자를 쫓아내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셨으며, 한 알의 밀로서 죽음 안으로 떨어지시어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다 — 히 9:28, 벧전 2:24, 고후 5:21, 요 12:24, 31.
      C. 골로새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시점에 일어난 전쟁을 묘사해 준다.
      1.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리스도는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셨으며, 아버지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셨다.
      2. 동시에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일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로 분주했다 — 골 2:15.
      3.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사탄의 부하로서 사탄을 위해 일하는 악한 천사들, 즉 타락한 천사들이다 — 엡 2:2.
      4.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동안, 악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거기에서 매우 활동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주위에 몰려들어 그분께 바싹 달라붙어 압박하고 있었다 — 골 2:15.
      a. 그들이 바싹 달라붙어 압박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벗기실 수 없었을 것이다.
      b. ‘벗기시어’라는 말은 우리의 옷이 우리의 몸에 밀착되어 있듯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그분께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5.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벗기심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그들이 수치당하게 하시며,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 — 골 2:15.
      Ⅱ. 우리 앞에 있는 기쁨은 자신을 준비한 신부를 맞이하러 오시는 신랑이신 주 예수님이다 — 계 19:7-9.
      A. 신부의 성숙 — 계 19:7-9, 엡 4:13-15.
      1. 단체적인 신부가 준비되는 것은 이기는 이들의 생명의 성숙에 달려 있다 — 계 19:7, 히 6:1, 빌 3:12-15, 엡 4:13.
      2.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지만,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어 주는 신성한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 히 6:1.
      B. 신부의 건축 — 마 16:18, 엡 2:21-22, 4:15-16.
      1. 하나님의 건축물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 엡 1:5, 출 25:8, 비교 1:11, 40:2-3, 34-35.
      2. 주님의 회복의 목표는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회복함으로 우리가 건축되도록 하는 것이다 — 엡 3:8, 4:16.
      3. 하나님의 건축물은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이다 — 딤전 3:15-16, 요 17:22, 엡 3:19하, 21.
      C. 신부의 의 — 계 19:7-9, 마 5:20, 22:11-13.
      1. 우리의 주관적인 의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고 항상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생활을 하시는 분이시다 — 마 5:6, 20.
      2.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올바른 생활은 분명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표현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 고후 3:9, 엡 4:24, 골 3:10.
      3. 성도들이 그들의 주관적인 의로서 살아 나타낸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결혼 예복이 되신다 — 계 19:8.
      4. 마태복음 22장 11절부터 13절까지에서 결혼 예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살아 내고 우리를 통해 우리의 뛰어난 의로 표현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마 5:20, 계 3:4-5, 18.
      D. 신부의 아름다움 — 엡 5:25-27.
      1. 신부인 교회에게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5장에서 아름다움은 신부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2. 신부의 아름다움은 교회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다음 교회를 통해 표현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다 — 엡 3:17상.
      a. 우리의 유일한 아름다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부터 빛나시는 것이다.
      b.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감상하시는 것은 그분 자신의 표현이다.
      E. 에베소서 6장과 요한계시록 19장은 신부인 교회가 분명히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전투원이기도 하다는 것을 계시한다.
      1. 영적 전쟁은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전투를 하는 단체적인 군대이다 — 계 17:14, 19:14, 비교 딤후 2:4.
      2.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은 영양 공급을 위한 것으로서 신부를 아름답게 하는 결과를 낳지만, 6장에서 말씀은 죽이기 위한 것으로서 교회가 단체적인 전투원으로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 엡 6:17-18.
      3. 그리스도는 싸우는 장군으로서 그분의 군대인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와 싸우실 것이다 — 계 19:11-21.
      4. 결혼 예복은 우리가 우리의 매일의 의로서 살아 나타낸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결혼식에 참여할 자격을 줄 뿐 아니라,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적그리스도에 맞서 싸우는 군대에 참여할 자격을 준다 — 마 22:11-12, 계 19:7-8, 14.
      Ⅲ.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 느 8:10하.
      A. 느헤미야기 8장 10절에 따르면, 우리의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1. 이것은 우리에게 힘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분의 기쁨이 우리를 붙들어 준다 — 살전 5:16.
      2. 주님의 기쁨은 환경과 아무 상관이 없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뻐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에 기쁨이 있었다.
      3. 우리는 주님을 모방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기쁨을 받아들여야 한다.
      a. 우리는 주님께 속한 무언가를 분배받을 수 있다.
      b.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가질 수 있다. 그분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B. 워치만 니 형제님은 그의 삶의 마지막에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나는 나의 기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워치만 니 전기, 개정판, 21장, 300쪽.
      C. “나는 나의 기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그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라고 한 그 말씀을 실행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D.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통해 우리 모두가 우리의 힘인 주님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쁨을 유지할 수 있기 바란다.
  • 개요

    가을 국제 장로 훈련 :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생활하고 봉사함 (LSM 방침에 따라 앞으로 장로 훈련 영상&오디오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 메시지1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에 따라 생활하고 봉사함
      +
    • 성경: 딤전 1:3-4, 엡 1:4-5, 3:2, 9, 5:26-27, 히 2:10-11, 살전 5:23, 행 26:18-19
      Ⅰ. 주님의 회복 안에서 초점을 맞추고 강조하며 공급해야 하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이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경륜이고,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이다 — 딤전 1:3-4, 엡 1:10, 3:2, 8-9, 16-19, 행 26:18-19.
      A.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그분 자신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분께서 창조하신 존재인 우리를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 그분은 ‘인화(人化)’되시고 우리는 ‘신화(神化)’되는 것이다.”(신성한 분배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 보충하는 말씀(1), 72쪽)
      B.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시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시는 것이다 — 요 1:1, 14, 고전 15:45하, 계 4:5, 5:6, 21:2, 10-11.
      C. 오늘날 우리는 오직 한 이상, 곧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다 — 행 1:14, 고전 1:9-10, 렘 32:39.
      Ⅱ. 우리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 과거에 우리를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시고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위한 신성한 거룩하게 함은 신성한 경륜의 중심이며, 신약에 있는 계시의 중심 사상이다 — 엡 1:4-5.
      A.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분별되고, 거룩하신 분 곧 속된 모든 것과 다르고 구별되는 분이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것이다 — 벧전 1:15-16, 엡 1:4-5.
      B.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엡 1:4). 하나님만이 거룩한 분이시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는 것이 필요하며, 이 거룩한 본성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데 사용하시는 거룩한 요소가 된다(벧후 1:4, 히 12:14).
      C. 우리가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생명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엡 1:5).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분배됨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야 한다(요 1:12-13, 3:6, 요일 5:11-12).
      1.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목적을 위해서였음을 계시한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과정 혹은 절차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목적 혹은 목표로서 우리의 몸을 포함한 우리 전 존재(롬 8:23)가 하나님에 의해 ‘아들화’되는 것이다(계 21:2, 9-11).
      2. 히브리서 2장 10절과 11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대장, 창시자로서 많은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영광 안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3. 신성한 거룩하게 하심은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붙잡아 주는 노선이며, 이 신성한 경륜은 우리를 신성하게 ‘아들화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함으로써,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 하나님의 표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은 신성한 아들화이다.
      4. 우리가 거룩하게 하심을 붙잡아 주는 노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일의 각 단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은 그 영의 거룩하게 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 살전 5:23, 요 17:17, 엡 5:26-27, 고전 6:11, 12:3하, 히 12:4-14, 롬 8:28-29, 엡 4:30, 살전 5:19, 계 2:7상, 시 73:16-17, 25-26, 계 21:2, 10.
      Ⅲ. 신성한 기질적인 거룩하게 하심은 생명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말씀하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수행된다 — 고전 15:45하, 살전 5:23, 엡 5:26.
      A.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신성한 관념에 따르면 여기에서 ‘물’은 하나님의 흐르는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흐르는 물로 예표되었다(출 17:6, 고전 10:4, 요 7:37-39, 계 7:17, 21:6, 22:1, 17).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지금 우리는 이러한 씻는 과정에 있다.
      B.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씻는’에 대한 헬라어는 직역하면 ‘물두멍’이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땅에 속한 더러운 것들을 씻기 위해 물두멍을 사용했다(출 30:18-21).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성경 앞에 나와서 말씀 안에 있는 물두멍의 물로 깨끗이 씻어져야 한다.
      C. 바울은 말씀과 말씀으로 씻는 과정에 대해 말할 때 ‘레마’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한다(엡 5:26). 로고스는 객관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레마는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막 14:72, 눅 1:35-38, 5:5, 24:1-8).
      D.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시는 영이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씻겨 주는 말씀이다. 이것은 항상 있는 말씀인 ‘로고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말씀, 곧 주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의미하는 ‘레마’를 가리킨다 — 마 4:4, 요 6:63, 계 2:7, 22:17상, 비교 사 6:9-10, 마 13:14-15, 행 28:25-31.
      E. 레마는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우리에게 계시해 준다. 레마는 우리가 무엇을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것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놋 물두멍은 비추고 드러낼 수 있는 거울이었다 — 출 38:8). 우리 각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가?’이다 — 계 2:7, 삼상 3:1, 21, 암 3:7.
      F. 우리가 항상 보배롭게 여기는 한 가지는 오늘 주님께서 여전히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성장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직접 말씀을 받는 것에 달려 있다. 오직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하신 말씀만이 참된 영적인 가치를 지닌다 — 히 3:7-11, 15, 4:7, 시 95:7-8.
      G. 우리의 기도의 중심 요점은 주님의 말씀하심을 갈망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하심을 갈망할 때, 우리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따른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를 성취하여 그분의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 눅 1:38, 10:38-42, 엡 1:5.
      H. 매우 실지적인 의미에서 주님의 임재는 주님의 말씀하심과 하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의 말씀하심이 곧 생명 주시는 영의 임재이다 — 비교 출 33:12-17, 히 11:8.
      I.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씻는 물이다. 이러한 씻는 물은 새 요소를 우리 안으로 넣어 둠으로써 우리의 본성과 기질에 있는 옛 요소를 대치한다. 이러한 신진대사적인 씻음은 참되고 내적인 생명의 바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기질적인 거룩하게 됨과 변화의 실재이다.
      Ⅳ. 사도행전 26장 18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에 따라 봉사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위임의 내용들을 계시해 준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기도하면서, 주님께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체험과 실재가 되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이러한 체험과 실재 안으로 이끌 수 있다.
      A.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1. 우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 신성한 경륜을 위한 신성한 분배에 대하여 더욱더 이해하고 볼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한다 — 엡 1:17, 3:5, 비교 계 4:6, 3:17, 마 6:6.
      2. 우리는 주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이상이 없이는 전진할 수 없다 — 행 26:16, 빌 3:8하, 10상, 13, 비교 신 4:25.
      3. 우리의 위임은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밝히는 것’이다 — 엡 3:9.
      B. “어둠에서 빛으로 … 돌아가게 하고”.
      1. 빛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는 빛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사 2:5, 요일 1:5, 눅 11:34-36.
      2. 우리는 바로 ‘빛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이신 그리스도를 누린다 — 골 1:12, 요 8:12, 1:4, 시 119:105, 130, 마 5:14, 계 1:20.
      3. 우리는 세상에서 발광체들이 되어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한다(빌 2:14-16). 우리는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자신의 기묘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미덕들을 널리 알려야 한다 — 벧전 2:9.
      C.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1. 우리의 영적 체험의 최고점은 맑은 하늘과 함께 그 위에 있는 보좌를 갖는 것이다. 맑은 하늘 위의 보좌를 갖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존재 안에서 으뜸이 되시도록 하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높고 가장 탁월한 위치를 가지시도록 하는 것이다 — 겔 1:22, 26, 골 1:18, 비교 겔 14:3.
      2. 우리가 위에 보좌가 있는 맑은 하늘 아래 있다면, 진정한 권위가 우리와 함께하여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권위 아래로 이끌 것이다 — 고후 10:4-5, 8, 13:3, 10.
      3. 주님에 대한 우리의 최고도의 사랑이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격을 주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장비시킨다 — 비교 요 21:15, 17.
      D. “죄들이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1.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들이 철저하게 용서받도록 주님께 가야 한다 — 요일 1:7, 9.
      2.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잘못을 지워 주시고, 그의 죄악에서 그를 철저히 씻겨 주시며, 그의 죄에서 그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했다 — 시 51:1-2, 7, 9.
      a. 다윗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철저하고 진정한 회개와 자백을 하여 하나님에게서 완전한 용서를 받아야 한다.
      b.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가질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원하는 영을 주시어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범법자들에게 그분의 길을 가르칠 수 있고, 죄인들이 그분께로 돌아올 것이다 — 시 51:12-13.
      E. “나를 믿음으로써 …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있는 유업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이 유업은 삼일 하나님 자신과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과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것과 그분께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실 모든 것이다.
      1. 삼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셨고, 이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그들의 유업으로 할당된 몫이시다 — 골 2:9, 1:12.
      2.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즉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 가운데 있는(딤후 2:22) 우리의 유업의 보증(엡 1:14)이신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린다.
      3. 우리는 사람들을 교회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로 이끌어야 한다. 그럴 때 그들도 우리처럼 그리스도를 누리고, 자신의 영을 훈련하여 기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으로 거룩하게 될 수 있다 — 히 2:10-11, 고전 1:9, 고후 4:13.
      Ⅴ. 우리가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위해 거룩하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계 21:2, 10)이자 신성한 아들의 자격의 총체(7절)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그 영 안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인 그분의 영광을 위해(11, 23절) 단체적이고 위대한 한 하나님-사람(3, 22절)을 얻으시는 것의 최종 완결이다.
    • 메시지2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
    • 성경: 딤전 1:11, 행 7:2, 55, 고후 4:3-4, 6, 요 12:31
      Ⅰ.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 곧 찬란하게 표현되신 하나님이다 — 출 40:34, 행 7:55, 벧후 1:3, 계 21:11.
      Ⅱ.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경륜과 내재적으로 관련된다 — 엡 1:6, 10, 12, 14, 3:21, 5:27.
      A. 삼일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 행 7:2, 엡 1:17, 3:14, 16, 고전 2:8, 고후 4:6, 벧전 4:14.
      B. 사람은 영광 안에 계신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 창 1:26, 골 1:15, 고후 4:4, 6.
      C.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쓸 그릇들, 곧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그릇들로 창조하셨다. 우리는 영광 안에 계신 그분의 존재를 표현하도록 그분의 주권에 따라 그분의 그릇들로 미리 정해졌다 — 롬 9:21, 23.
      D.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영광에 의해,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 고후 4:4, 딤전 1:11, 살전 2:12, 벧전 5:10, 벧후 1:3.
      Ⅲ. “그들 안에서 이 시대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을 눈멀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고후 4:4.
      A. 이 시대의 신은 사탄, 속이는 자, 현시대의 통치자이다 — 요 12:31, 14:30, 16:11, 엡 2:2.
      1. 사탄 마귀는 그의 왕국에 더해 자신의 종교를 갖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일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신이다 — 마 12:26, 요 12:31, 고후 4:4.
      2. ‘이 세상의 통치자’는 사탄이 사람들을 통치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 시대의 신’은 사탄이 오늘날 사람들에게서 경배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2:31, 고후 4:4.
      3. 미개하든 높은 문화 수준을 가졌든,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시대의 신에 의해 눈멀어 있다 — 고후 4:4.
      B. 우리가 우리의 관념들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돌이킨다면, 너울들이 벗어지고, 이 시대의 신은 우리 존재 안에서 어떤 입지도 얻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출 것이다 — 고후 4:4, 6.
      Ⅳ.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 인간 생활,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승천, 다시 오심과 연관된다.
      A. 말씀께서 육체가 되셨고, 그분의 신성의 영광은 그분의 인성의 껍질 속에 감추어졌지만, 제자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 요 1:14, 마 17:2.
      B. 주 예수님은 그분의 생활과 일에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셨다 — 요 7:18, 8:50, 54.
      C.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은 그분의 죽음에 의해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깨짐으로 해방되었다 — 요 12:23-24.
      D.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셨다 — 눅 24:26, 요 7:39, 17:5, 행 3:13, 벧전 1:21.
      E. 그리스도는 승천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주 예수님은 ‘강을 건너’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간 사람의 본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 히 2:9-10, 6:19-20, 9:24.
      F.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오실 것이다 — 마 16:27, 눅 21:27.
      G.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서 그리스도, 곧 등이신 어린양은 빛이신 하나님으로 빛을 비추어, 신성한 빛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새 예루살렘을 밝게 하실 것이다 — 계 21:11, 23, 22:5.
      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밝게 하고 빛을 비추는 그분의 영광의 복음이다 — 골 1:15, 히 1:3, 고후 4:3-4, 계 6:2.
      A.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다 — 딤전 1:11.
      1.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는 표현은 디모데전서 1장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경륜을 가리킨다.
      2. 사도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다 — 히 1:3, 롬 1:25, 9:5.
      3. 이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하나님의 선민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비춘다. 이 영광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찬송을 받으신다 — 고후 1:3, 엡 1:3, 6, 12, 14.
      B. 복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으로서, 우리의 마음속을 밝게 하고 빛나게 하고 비춘다 — 고후 4:4, 6.
      1.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빛을 비추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시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해 주는 빛 비춤으로 귀결된다 — 고후 4:4, 6.
      2.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하나님’, ‘형상’, ‘그리스도’, ‘영광’, ‘복음’, ‘빛’은 모두 동격으로서, 동일한 놀라운 인격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형상이시고, 형상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영광이시고, 영광은 복음이며, 복음은 빛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사랑스러운 한 인격이고, 이 인격의 얼굴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후 4:4, 6, 마 17:2.
      4.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표현되신 영광의 하나님이다. 그분을 아는 것이 영광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 행 7:2, 히 1:3.
      Ⅵ.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빛을 비추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즉 하나님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신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 빌 2:15, 요 1:18.
      A.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은 우리 속으로 비추어 들어오고, 그런 다음 우리 속에서부터 비추어 나간다 — 마 5:16.
      B.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 빛 비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비추어 내야 한다 — 빌 2:15.
      C.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선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지 말고, 복음의 내용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전파해야 한다 — 고후 4:5.
      D. 우리의 빛 비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들 안으로 분배되신 그리스도를 귀중한 보배로 소유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처럼 그들도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이 보배를 담은 질그릇들이 될 것이다 — 고후 4:4, 6-7.
    • 메시지3
      진리를 온전히 앎
      +
    • 성경: 딤전 2:4, 7, 3:15, 4:3, 딤후 2:15, 25, 3:7, 딛 1:1
      Ⅰ. 주님의 회복은 진리의 빛을 회복하는 것이다 — 요일 1:5-6.
      A. 진리는 빛의 비춤, 곧 신성한 빛의 표현이다 — 요 8:12, 32, 요일 1:5-6.
      1. 진리는 빛의 산물이다 — 요 1:4, 7, 9, 3:21, 8:32.
      2. 빛이 없는 지식은 교리이지만, 빛이 가득한 지식은 진리이다 — 요일 1:5-6, 4:6.
      B. 성경에 계시된 진리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상실되고, 잃어버린 바 되고, 잘못 이해되고, 잘못 해석되고, 잘못 적용되어 왔다 — 요 17:17.
      1. 주님의 회복의 목표는 성경에 계시된 항목들의 실재와 생명과 생생함과 힘과 능력과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2.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진리는 지난 십구 세기에 걸친 진리의 완결이다 — 딤후 2:2.
      C. 우리에게는 진리가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고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 요일 1:8, 2:4, 요이 1-2, 요삼 3-4.
      1. 진리로 조성되는 것은 신성한 계시의 내재적인 요소가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져 우리의 조성 성분, 우리의 내재적인 존재, 우리의 유기적인 조성이 되는 것이다.
      2. 교회를 산출하고, 교회가 존재하도록 돕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진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 딤전 3:15.
      3. 우리 안으로 조성된 견고한 진리는 우리 안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자양분이 된다 — 딤전 4:6.
      4. 진리가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고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의 풍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성취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 계 21:12상, 17.
      5. 주님의 말씀인 진리가 성경 안에 있지만, 성경은 합당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 딤후 2:15.
      6.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잠 23:23.
      7. 진리는 그 자체가 절대적이며, 우리는 반드시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어야 한다 — 요이 1-2, 4, 요삼 3-4, 7-8.
      Ⅱ.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이 …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 딤전 2:4.
      A. 주님의 회복은 진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 딤전 2:7, 4:3.
      1. 교회의 타락은 진리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되었다.
      2.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 요 1:14, 17, 8:32.
      B.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믿음에 따른 것일 뿐 아니라,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따른 것이었다 — 딤전 2:4, 딛 1:1.
      1.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모든 것과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과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받는 것이다 — 딤전 1:4, 2:7.
      2. 디모데전후서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이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 딤전 2:4, 4:3, 딤후 2:25, 3:7.
      3. 진리를 온전히 아는 것은 진리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 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영적이고 신성한 모든 것의 실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 딤전 4:3.
      C. 모든 믿는 이들은 진리에 대한 온전한 지식에 이르러야 하고, 그러한 지식 안에 머물러야 한다 — 딤전 4:3.
      1. 모든 믿는 이들 각자에게는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를 역량이 있다 — 딤전 2:4.
      2. 진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는 것은 진리를 온전히 아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아는 것이 안전장치이다.
      D. 모든 믿는 이들은 주관적인 진리들을 알고 체험하며 주관적인 진리들에 절대적이어야 한다 — 요 8:32, 14:6.
      1. 성경에 있는 진리들에는 객관적인 방면과 주관적인 방면이 둘 다 있다 — 롬 8:34, 10, 골 3:1, 1:27.
      2. 객관적인 진리들은 주관적인 진리들을 위한 것이고, 주관적인 진리들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 — 요이 1, 4, 요삼 3-4, 7-9상.
      3. 주님은 성경에 있는 주관적인 진리들, 곧 삼일 하나님과 교회에 관한 진리의 주관적인 방면을 회복하기를 갈망하신다 — 요 1:14, 14:16-20, 딤전 6:15-16, 딤후 4:22, 3:15-16.
      4. 요한복음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주관적인 진리들에 관한 책이다 — 요 4:14, 6:57, 14:16-17, 20, 3:15-16.
      5. 주관적인 진리들은 그 영과 생명에 연결되고, 그 영과 생명으로 조성되어 있다 — 롬 8:2, 고후 3:6.
      a. 그 영과 생명은 주관적인 진리들의 실질이다. 따라서 그 영과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주관적인 진리도 갖지 못한다.
      b. 그 영과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 때, 우리는 주관적인 진리들을 체험하게 된다 — 롬 8:2, 4, 14.
      c. 교회생활은 우리가 주관적인 진리들을 체험한 결과이다. 우리가 주관적인 진리들을 체험할 때 교회가 자연히 산출된다 — 롬 8:10-11, 12:4-5, 16:1, 4-5, 고전 1:9, 30, 15:45하, 6:17, 1:2, 12:27.
      E. 우리는 가장 높은 진리를 온전히 알고 이 진리에 절대적이어야 한다 — 롬 8:3, 1:3-4, 12:4-5.
      1. 가장 높은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조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구속받은 사람이 함께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어 한 실체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 요 1:12-14, 14:20, 계 21:2, 10-11.
      2. 신성한 계시의 고봉, 곧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신다는 계시이다 — 삼하 7:12-14상, 롬 8:3, 1:3-4, 엡 3:17상.
      3.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은 거듭남과 거룩하게 됨과 새롭게 됨과 변화됨과 같은 형상을 이룸과 영광스럽게 됨을 통해 하나님이 된다 — 요 3:5-6, 1:12-13, 롬 6:19, 22, 12:2, 8:29-30.
      4.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에 의해서만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되고 건축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성한 계시의 고봉이다 — 롬 8:3, 1:3-4, 8:14-16, 12:4-5.
      F. 주님의 회복의 표준은 우리가 제시하는 진리의 표준에 달려 있다. 진리들이 척도와 표준이 될 것이다 — 요 18:37.
    • 메시지4
      합당한 교회생활을 위한 합당한 기도 생활
      +
    • 성경: 딤전 2:1-4, 8, 출 28:29-30, 31:1-3, 골 4:2
      Ⅰ. “그러므로 내가 그대에게 권유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또한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매우 경건하고 정중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며, 기쁘시게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 딤전 2:1-3.
      A.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말하고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한 후에(딤전 1:3-4, 18), 기도의 사역이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의 행정과 목양을 위한 전제 조건임을 지적한다(딤전 2:1-3, 8).
      B.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서 합당한 교회생활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합당한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기도하지 않는 죄에 맞서야 한다 — 삼상 12:23.
      C. 교회 안에 있는 장로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라는 바울의 명령(딤전 2:1)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들 안에서 앞장서서 인도하는 이들은 반드시 기도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하기를 훈련한다면, 교회는 살아 있고 높아질 것이다.
      D. 너무 많이 말하는 대신에, 심지어 너무 많이 일하는 대신에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오직 어떤 일에 대하여 철저히 기도한 후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해 독립적으로가 아니라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인도에 따라 그 일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E. ‘중보기도’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개인적이고 친밀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 즉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중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F. “최근에 나의 활동은, 내가 휴식하고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한동안 제한받았다. 나는 어떤 필요에 대하여 들을 때, 그것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아마 주님은 나에게 일보다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하시기 위해 나를 제한하신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좋은 교회생활을 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라는 공과를 배우기 바란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말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으로 바뀐다면, 우리 지방에 있는 교회는 변화될 것이다.” — 디모데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3, 28-29쪽.
      G. 우리의 구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갈망을 이루려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 딤전 2:4.
      H.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화를 내거나 논쟁하는 일이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요망합니다.” — 딤전 2:8.
      1. 손은 우리의 행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거룩한 손은 거룩한 생활, 곧 경건하며 하나님께 속한 생활을 상징한다. 이러한 거룩한 생활은 우리의 기도 생활을 강화한다.
      2. 손이 거룩하지 않다면, 우리의 생활은 거룩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한 생활도 아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를 유지할 힘이 없게 되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도 없다.
      3. 화를 내거나 논쟁하는 일은 우리의 기도를 죽인다. 화는 우리의 감정에 속한 것이고, 논쟁은 생각에 속한 것이다.
      4. 기도 생활을 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려면,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그 영의 통제 아래서 조절되어 정상적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
      Ⅱ. 교회를 돌보기 위해 하나님의 지시를 주입받으려면, 장로들은 반드시 많고도 철저한 기도를 함으로써, 구약에 있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림과 둠밈이 있는 가슴받이에 있는 보석들을 읽은 것처럼 ‘성도들을 읽는’ 실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 출 28:29-30.
      A. 가슴받이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은 후에 이 가슴받이는 단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판결하시기 위한 것이 되었다 — 출 28:30.
      1. 우림은 ‘빛들’, ‘발광체들’이라는 뜻이다 — 출 28:30.
      a. 우림은 가슴받이 안에, 곧 열두 보석 아래에 넣은 발광체였다. 우림에는 기름을 담아 불을 붙일 수 있었는데, 기름에 불을 붙이는 데 사용된 불은 제단에서 온 것이었다.
      b. 우림에는 열두 발광체가 있어서 각 발광체가 가슴받이에 있는 투명한 열두 개의 보석에 빛을 비추어 보석들이 빛을 내게 했다(다비드 바론).
      c. 우림은 그 영(기름)과 십자가(제단에서 온 불)를 통해 빛을 내시고 빛을 비추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요 8:12, 눅 1:78-79).
      2. 둠밈은 ‘온전하게 하는 것’, ‘완전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 출 28:30.
      a. 가슴받이의 열두 보석에 있는 이름들은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자 중 열여덟 자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나머지 네 자는 둠밈에 있었으므로 이것이 둠밈을 온전하게 하는 것, 완전하게 하는 것이 되게 했다(다비드 바론).
      b. 우림이 각각의 보석을 비추고 어떤 보석들이 어두워짐으로써 스물두 자의 온전한 알파벳을 사용하여 단어와 문장을 조합해 낼 수 있었다.
      c. 둠밈은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자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히 12:2). 따라서 그리스도는 새기는 것과 완성하는 것 둘 다를 위한 영적인 알파벳이시다(비교 계 22:13상).
      d. 종합해 보면,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위한 수단이시며(히 1:2) 하나님의 증인이시자 하나님의 증거(계 3:14)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e. 신약에서 우림과 둠밈의 실재는 연합된 영이다. 연합된 영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하시는 영 곧 성령께서 우리의 받아들이는 영인 거듭난 우리 사람의 영에 내주하시는 것이다 — 롬 8:4, 14, 16, 계 1:10, 4:2, 17:3, 21:10.
      B. 구약에 따르면, 가슴받이에 더해진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의 인도를 알려 주시기 위해 말씀하시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판결 가슴받이를 ‘인도하는 가슴받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레 8:8, 민 27:21, 신 33:8, 수 7:16-21, 삼상 23:6, 9-12, 28:6, 스 2:63, 느 7:65.
      C. 영적인 체험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알기 위해 우리는 육체와 자아와 옛사람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심판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인 그분의 말씀이 가슴받이를 통해 주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그분의 인도를 그분의 백성에게 알려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D. 하나님의 인도를 위한 판결 가슴받이는 하늘에 속하고 신성하며 영적인 타자기와 같았고, 하나님께서 우림과 둠밈이 있는 가슴받이를 통해 말씀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1. 하나님은 빛을 내고 있는 보석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두워진 보석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정적인 상황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 판결 가슴받이에 의해 말씀하시는 것은 부정적인 상황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 말씀하심은 곧 판결이다.
      2. 정상적인 상태에서 가슴받이의 열두 보석은 우림의 빛 비춤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름이 새겨진 한 보석이 어두워지곤 했다. 이렇게 특정한 보석이 어두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즉각적인 말씀하심이었다.
      a. 바울의 서신들과 주 예수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신 일곱 서신(계 2-3장)은 모두 이 원칙에 따라 기록되었다. 이 서신들은 교회들 안에서 발견되는 긍정적인 것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교회들의 부정적인 상황에 따라 기록되었다.
      b.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의 부정적인 상황을 읽어 낸 것에 따라 고린도전서를 썼다. 그러나 그가 쓴 서신이 부정적인 것들에 근거할지라도, 이 서신에서 바울은 긍정적인 것들, 곧 그리스도의 풍성을 교회에게 공급했다 — 비교 고전 1:9.
      c.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은 바울이 그의 서신을 영적으로 타자하는 데 사용한 글자가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한 지방의 교회에서 인도하는 이들은 성도들의 실지 상황과 상태를 읽어 냄으로써 주님의 안내를 구해야 한다.
      d.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는 문제점은, 너무나 많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어둠을 드러내실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어둠이 알려지려면 반드시 먼저 빛 비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빛 비춤 가운데서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난 것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 비교 엡 5:8-9.
      e.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상황들을 읽어 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곧 하나님의 판결을 알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지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런 다음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E. 가슴받이는 몸의 생활을 건축하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수단이다. 많고도 철저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가슴받이의 실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주님의 판결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알 것이며, 온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판결에 따라 전진할 것이다.
      F. 장로들에게는 성경과 성령이 필요할 뿐 아니라 알파벳으로서 형제자매들이 필요하다. 이것은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형제자매들을 짊어지고 각 형제자매의 상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장로들의 집회는 교회의 망대가 될 것이며,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현재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Ⅲ. 인도하는 이들, 곧 교회 안에서 말씀을 공급하는 이들은 앞장서서 기도 생활을 해야 한다. 그들은 ‘기도에 꾸준히 힘쓰고,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 골 4:2, 행 6:4.
      A. 교회가 살아 있고 신선하고 풍성한지의 여부는 우리가 계속 그 영으로 채워지는 이 한 가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 영으로 계속 채워지려면 뜻을 세우고, 비어 있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빌 2:13, 마 5:3, 8, 눅 1:53, 엡 5:18.
      B. 교회를 건축하는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기술이 되시는 분은 분명 그 영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 자신의 거처를 건축하실 수 있다 — 출 31:1-3, 슥 4:6.
      C. 장로들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영이 부족하다. 우리가 주님의 내주하는 임재의 빛 비춤 아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충분히 책망을 받을 때, 우리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교회에 대해 주님의 지혜와 주님의 참된 이해를 얻게 된다.
      D.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에 꾸준히 힘쓴다면, 회복은 크게 풍성해지고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주님과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즉각적이고도 지속적인 기름바름을 누릴 것이다. 온종일 그들은 주님의 얼굴의 미소를 누릴 것이며,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인격이 그들의 체험과 누림이 될 것이다.
    • 메시지5
      하나님의 집에서 처신하는 법 ―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함
      +
    • 성경: 딤전 3:15상, 16상, 4:7하-8, 6:3, 딤후 1:7, 4:22, 딛 1:1
      Ⅰ. “그대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딤전 3:15상.
      A. 바울이 디모데에게 공급한 것은 전적으로 교회 안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 딤전 1:3-5, 18-19.
      B. 교회 안에서 처신하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딤전 3:15상, 비교 요 6:63, 68.
      C.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하고 진리를 붙드는 것은 교회생활 안에서 처신하는 법을 알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두 가지 통제 원칙이다 — 골 2:19, 엡 4:15.
      D.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합당하게 처신하려면 우리는 건강한 가르침에 주의해야 한다 — 딤후 4:3-4.
      E.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 안에서 살고 행동해야 한다 — 요 4:23-24, 고전 6:17, 딤전 3:15-16.
      Ⅱ. “모두가 인정하듯이, 경건의 비밀은 위대합니다!” — 딤전 3:16상.
      A. 디모데전후서에서 ‘경건’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아홉 번 사용된다 — 딤전 2:2, 3:16, 4:7-8, 6:3, 5-6, 11, 딤후 3:5.
      B. 경건은 실지적이고도 살아 있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다 — 딤전 3:16상, 6:11.
      C. 진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은 경건에 따른 것이다 — 딛 1:1.
      D.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진리, 곧 실재는 경건에 따른 것인데, 경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 딛 1:1, 딤전 3:16상.
      E. 경건은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과 같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 골 1:15, 3:10.
      F. 경건은 단지 외적인 문제가 아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나타나셨고’라는 말은 경건이 외적인 표현을 가진 내적인 생명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G.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경건을 추구해야 한다. 경건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 딤전 6:11.
      H.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시려면, 우리의 생활 전체에서 경건이 표현되어야 한다 — 요일 3:2, 2:28.
      I.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고, 경건은 하나님께서 우리 밖으로 나오시는 것이다 — 딤전 1:4, 3:16상.
      1.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다만 하나님께서 들어오시고 나가시는 것이다 — 요 4:14, 7:29.
      2. 경건은 하나님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모양을 지니는 생활이어야 한다 — 히 1:3, 고후 3:18.
      3. 디모데전서 2장 2절은 우리가 매우 경건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작은 일들에서도 우리는 어디서나 어떤 일에서나 매우 경건한 가운데 생활해야 한다.
      4. 우리의 교회생활과 일상생활과 가정생활은 다만 하나님께서 온종일 들어오시고 나오시는 것이다 — 고후 13:14, 3:18.
      J.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경건의 궁극적인 비밀인데, 이는 합당한 교회생활이 하나님께서 단체적으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이다 — 딤전 3:15-16, 골 1:15.
      Ⅲ.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 딤전 4:7하.
      A. 교회생활 안에서 처신하는 법은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다 — 딤전 3:15상, 4:7하, 2:2.
      B.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의 영과 함께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 엡 1:9, 3:3-4, 9, 5:32, 골 1:26-27, 2:2, 딤후 4:22.
      C.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경건의 생활이다. 경건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신 것에서 나온다. 이것은 우리의 영을 충분히 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 고후 13:14, 딤후 4:22, 몬 25.
      D.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 딤전 4:7하, 고전 6:17, 엡 2:22.
      1. 하나님의 분배에서 산출되는 경건한 생활은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 딤전 4:7하, 요 4:23-24.
      2. 우리가 주님과 협력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강하게 훈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실 수 없다 — 고후 13:14, 고전 6:17, 롬 8:4, 9.
      E. ‘훈련’이라는 단어에는 강제성이 함축되어 있다 — 딤전 4:7하.
      1. 훈련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성의 문제이다.
      2.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마다 우리의 영을 훈련하도록 우리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 비교 롬 8:28.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강하고 성장하기 원한다면, 우리의 영을 사용하도록 우리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 딤후 4:22, 계 1:10, 4:2, 17:3, 21:10, 롬 8:16.
      F.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이다 — 롬 8:6, 말 2:15-16.
      1.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둘 때, 우리는 내적인 생명과 평안의 느낌, 즉 능력과 만족과 안식과 해방과 생기와 적셔짐과 밝음과 위로의 느낌을 갖는다.
      2. 우리의 생각을 육체에 둘 때, 우리는 내적인 죽음의 느낌, 즉 약함과 공허함과 불편함과 불안함과 낙심과 메마름과 어둠과 고통의 느낌을 갖는다.
      3.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영에 따른 것이며, 우리는 생명과 평안이라는 내적인 느낌에 의해 영을 안다 — 롬 8:6, 16, 9:1, 고후 13:14.
      G.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영과 혼을 분별하는 것이다 — 히 4:12.
      1. 우리는 영에 속하지 않고 혼, 곧 자아에 속한 모든 것을 분별하고 부인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마 16:25, 비교 눅 9:25.
      2. 항상 우리는 우리의 영과 우리의 혼을 분리해 두어야 한다 — 히 4:12, 살전 5:23.
      3. 원수의 계략은 언제나 우리의 영과 우리의 혼을 혼합시키는 것이다.
      4. 우리의 모든 어떠함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영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 딤후 4:22.
      H.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는 것이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임을 입증하려면, 우리는 디모데후서로 가야 한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한, 사랑하는, 맑은 영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한 영은 강한 의지와 사랑하는 감정과 맑은 생각과 함께한다 — 딤후 1:7.
      1.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 ‘영’이라는 단어는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내주하고 계시는 우리 사람의 영을 의미한다 — 요 3:6, 롬 8:16.
      2. 하나님의 은사를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거듭난 영과 관련이 있다 — 딤후 1:6.
      3. ‘능력의’라는 말은 우리의 의지를 가리키고, ‘사랑의’라는 말은 우리의 감정을 가리키며, ‘맑은 생각의’라는 말은 우리의 생각을 가리킨다 — 딤후 1:7.
      I.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 딤전 4:7하, 엡 2:20-22, 4:12, 16, 고전 14:4, 12.
    • 메시지6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
      +
    • 성경: 딤전 4:6-8, 15-16, 겔 3:1-4, 고전 1:10, 롬 15:6, 아 4:11
      Ⅰ. 디모데전서 4장 6절은 “그대가 이러한 것들을 형제들 앞에 제시한다면, 그대는 믿음의 말씀과 그대가 긴밀히 따른 좋은 가르침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A.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봉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구주와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긍정적인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공급한다.
      B.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하려면 우리 자신이 양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단지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음식으로 그들 안으로 공급한다 — 마 4:4, 렘 15:16, 겔 3:1-4, 요 6:57, 63.
      C. 우리는 사역을 통해 주님께 양육을 받은 것들을 성도들 앞에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으로부터 우리에게 보여 주신 풍성, 곧 식료품을 성도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먼저 양육을 받고, 그런 다음 이 자양분을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공급하자.
      D.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영적인 음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공급함으로 그들이 양육을 받고 생명이 자라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육하기 위한 젖과 단단한 음식에 비유된다 — 히 5:12-14, 고전 2:2, 벧전 2:2.
      1. 믿음의 말씀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완전한 복음의 말씀이다.
      2. 좋은 가르침의 말씀은 믿는 이들을 양육하고 온전하게 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풍성을 담아 전달하는 달콤한 말씀이다.
      E.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같은 것을 말하고’(고전 1:10), ‘한마음 한뜻으로’, ‘한입으로’ 말하는(롬 15:6)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가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
      1. “우리는 하나님의 현재의 계시의 고봉에 속한 진리들을 배우고, 이러한 것들을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 나는 우리 모두가 이 높은 위임을 취하기를 격려한다. 이 위임은 바로 …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완결할 신성한 계시의 고봉에 속한 그분의 진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최신의 이상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 (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3권, 삼일 하나님의 계시와 그분의 움직이심, 12장, 190쪽).
      2. 주님의 최신의 사역에 의해 세워진 성도들은 이 사역에 대한 입맛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입맛이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통제 요인이다. 이 사역으로 세워진 이들은 이 사역과 다른 맛을 거절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주님의 회복의 맛과 다른 무언가를 말한다면, 여러분이 말한 것은 거절당할 것이고 여러분은 손실을 당하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 비교 시 34:8, 벧전 2:3.
      Ⅱ.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진리의 절대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제쳐 둔다. 진리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행하는 사람에게 맡겨질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진리의 편에 서서 우리 자신과 맞서야 한다.
      A. 개인의 상태는 하나님의 진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의 어떠함이 하나님의 진리의 어떠함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없는데, 이것은 진리가 움직일 수 없는 기둥과 같기 때문이다 — 딤전 3:15.
      B.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때 진리를 조금 낮추고, 자신이 옳을 때 진리를 조금 높인다. 이것은 그들이 엘리베이터 같고, 진리가 그들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자신을 처리한 이들만이 진리를 지킬 수 있다.
      C. 우리가 진리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새로운 빛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우리가 빛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빛은 우리를 높일 것이다.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이들은 복이 있다.
      D. 한 면에서 우리는 체험이 없는 경우 진리를 전파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진리가 우리라는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지점에 이끌리고, 말씀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말씀이 우리 자신을 유죄판결 하는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빛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계시를 받는 비결이다.
      Ⅲ.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즉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말한다(벧전 4:10-11, 엡 1:6).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살전 2:6, 요 5:41, 44), 계속해서 자신의 영을 훈련하면서 자아를 거절하며,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높이고, 자신을 노예로 여기면서 믿는 이들을 섬긴다(고후 4:5, 레 14:9과 각주 1, 고전 10:31, 사 43:7).
      Ⅳ.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옳고 그름의 나무의 원칙이 아닌 생명나무의 원칙에 따라 생명을 공급하고 성도들을 섬긴다(창 2:9, 요 10:10하, 고전 15:45하, 고후 3:6, 4:10-12, 요일 5:12, 16상).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사역할 때, 고린도 교회에 있는 문제들을 직면했던 바울의 본에 따라 다음의 행동 원칙과 규칙을 지킨다. —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에 주의를 집중해서는 안 되고 그분께 집중해야 한다. 즉 믿는 이들 가운데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중심이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전 1:9 각주 2)
      Ⅴ.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성도들이 ‘한 가지 것을 생각하도록’ 돕는다. 빌립보서에서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알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추구함으로 그분을 얻고, 그분을 붙잡으며, 그분을 소유하는 것이다 — 빌 1:20-21, 2:2, 5, 3:7-14, 4:13.
      Ⅵ.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아가 4장 11절에 묘사되어 있는, 주님을 사랑하여 추구하는 이와 같다. — “나의 신부여, 그대의 입술은 신선한 꿀을 흘리고 /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으며” — 비교 출 3:8.
      A. 꿀은 달콤하며, 약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회복해 주고(시 119:103), 젖은 미성숙한 이들을 먹인다(벧전 2:2).
      B. 주님을 사랑하여 추구하는 이의 혀 밑에 있는 달콤한 꿀과 자양분 가득한 젖은 그녀가 그녀의 영적인 음식이신 주님의 풍성을 저장해 왔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녀가 자신 안에 너무나 많은 풍성을 저장했기 때문에, 음식이 마치 그녀의 혀 밑에 있는 것 같고, 그녀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느 때든지 이 음식을 분배할 수 있다 — 시 119:11, 골 3:16.
      C. 그녀 안에 내재하는 보배인 주님의 달콤하고 자양분 가득한 말씀은 하룻밤 만에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모으고 내적 활동을 갖고 주의 깊게 저장한 데서 온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의 건강한 말씀을 하나님에게서 배운 사람만이 소유하고 있다 — 딤전 1:10, 6:3.
      Ⅶ. 신언자들이 받은 계시들은 그들이 받은 부담들이었다. 부담이 없으면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말씀의 사역 곧 신언하는 것이 없다 — 사 1:1, 2:1, 13:1, 15:1, 슥 12:1, 말 1:1, 행 6:4, 고전 14:4하.
      A. 우리의 부담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에게 해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 해방된다 — 고전 2:11-16.
      B.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말하는 주제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지의 여부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으려면, 말씀을 공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부담이 있어야 한다 — 말 2:7, 아 8:13-14, 엡 5:26-27.
      C. 말씀을 공급하는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상태를 짊어지고, 그들의 상태를 감지하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 출 28:29-30.
      D. 말씀의 사역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주님에게서 온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부담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활동은 죽어 있고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담이 있어야 살아 있고 번성할 것이다.
      1. 부담을 가질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처리받는다. 부담이 있으면 자아가 감소되고 처리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부담이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는 일들이 있고, 우리가 먼저 처리를 받아야만 우리의 부담을 해방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부담을 갖고 봉사하지 않고 의무감에 따라 봉사한다면, 그러한 봉사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임재를 잃게 할 것이다 — 말 3:14, 신 4:25.
      3. 우리의 봉사가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될 때마다, 우리의 봉사는 이미 하락한 것이다.
      Ⅷ.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가 되려면, 우리는 다음의 유기적인 특징을 갖기를 반드시 열망해야 한다.
      A. 우리는 주님을 극도로 사랑함으로 주님으로 충만해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권위로 삼아 주님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넘쳐흐르게 해야 한다 — 시 18:1, 91:14, 97:10, 116:1-2, 119:140, 요 21:15-17, 고후 5:14-15, 요일 4:16, 19, 민 17:1-10, 마 19:26.
      B. 우리는 부흥된 생활을 하고 목양하는 수고를 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 계 3:18-22, 호 6:1-3, 롬 6:4, 7:6, 벧전 2:25, 5:1-4.
      C. 우리는 매일 매시간 주님과의 교통 안에 거해야 한다 — 고전 1:9, 고후 13:14.
      D.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골 4:2, 창 4:26, 애 3:55-56, 롬 10:12-13.
      E. 우리는 아침 일찍 말씀 안에서 주님을 누림으로 매일 새로운 출발을 가져야 한다 — 시 119:147-148.
      F. 우리는 신성한 영과 연합된 우리의 영에 의해, 우리의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 갈 5:16, 25, 롬 8:4, 16, 고전 6:17.
      G.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에 의해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리스도를 확대해야 한다 — 빌 1:19.
      H.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매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말하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 행 5:42, 8:4, 딤후 4:2.
      I.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철저히 처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요일 1:7, 9, 시 51:1-9, 17.
      J. 우리는 내적으로는 본질적인 영으로 충만하고, 외적으로는 경륜적인 영으로 충일해야 한다 — 행 13:52, 엡 5:18, 행 4:31, 8, 13:9.
      K.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들을 축적하고(빌 3:8-10, 12-14) 주님의 말씀을 풍성히 저장해 두어야 한다(골 3:16, 시 119:11, 15, 요 8:31, 15:7, 요일 2:14).
      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는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의 영을 훈련하는 습관을 세움으로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산다 — 딤전 4:6-8, 15-16, 딤후 1:6-7, 롬 1:9, 7:6, 12:11, 요 4:23-24.
      A. 구원받은 이들인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자본을 갖고 있는데, 이 자본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이다 — 딤후 1:6-7, 4:22.
      B.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인 경건은 신성한 경륜을 위한 신성한 분배의 결과이며, 이러한 분배는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님을 단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살도록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 딤전 1:3-4, 3:15-16, 4:7-8, 딤후 1:6-7, 찬송가 371장 5절.
      C. ‘훈련’이라는 단어에는 강제성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강하고 주님 안에서 자라기 원한다면,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견고한 습관을 세울 때까지 우리의 영을 사용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해야 한다 — 딤전 4:7.
      D.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에 차서 나타나시는 날에 베푸실 그분의 긍휼을 기다림으로써, 우리의 영을 훈련하여 찬양을 받으실 삼일 하나님 전체를 적용하고 누려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총체인 새 예루살렘이 된다 — 유 19-21.
    • 메시지7
      사도 바울의 본
      +
    • 성경: 딤전 1:16, 4:12, 살전 2:1-12
      Ⅰ.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자신의 영 안에 그 영으로서 계신 그리스도를 살고 확대하며 공급하는 본이었다 — 딤전 1:16, 4:12, 롬 8:16, 빌 1:19-21상, 25, 고후 3:3, 6.
      A.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이 그분을 본 일과 장차 그분께서 바울에게 보여 주실 일 모두에 대하여 그를 사역자와 증인으로 세우셨다 — 행 26:16-19, 비교 1:8, 23:11, 20:20, 31.
      1. 바울은 완전히 존엄한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그의 삶은 가장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표현하는 최고 수준의 인간 미덕을 지녔으며, 수년 전에 주님 자신이 이 땅에서 사셨던 삶과 닮은 삶이었다 — 엡 4:20-21, 빌 4:5-8, 11-13.
      2. 복음서들에서 사셨던, 놀랍고 탁월하고 비밀한 하나님-사람은 그분의 많은 지체 중 하나인 바울을 통해 계속해서 사셨다. 바울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서 높이신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증인이었다 — 행 1:8, 빌 2:2, 5, 1:8, 2:13, 행 27:22, 24-25, 28:3-9, 참조 28:9 각주 1.
      B. 바울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곧 그의 생활과 본과 목표와 비결로 취했다 — 빌 1:19-21상, 2:5-16, 3:7-14, 4:11-13.
      C. 바울은 하나님을 주입받아, 그 영의 사역이자 의의 사역이자 화목의 사역인 새 언약의 사역 안에서 하나님을 비추어 냈다 — 고후 3:18, 4:1, 3:6, 8-9, 5:18-20.
      D. 바울은 믿는 이들의 본이었기 때문에(딤전 1:16), 디모데에게 ‘말과 행동과 사랑과 믿음과 순수함에 있어서’(4:12) 본이 되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
      E.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인 면에서(엡 6:20, 고후 5:18-20) 우리의 본이다.
      1. 그는 자신의 어떠함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 자신인 죽지 않는 생명에 의해 살았다 — 고후 5:4, 요 14:6, 골 3:4, 갈 2:20.
      2. 그는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다시 말하면 각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며,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그리스도를 번식시키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 고후 5:9, 골 1:10.
      3.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주님을 향하여 살았다.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주님의 지시와 통제 아래 있다는 것과, 그분의 요구를 이루고 그분의 갈망을 만족시키며 그분의 의도를 완성하기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후 5:14-15.
      4. 그는 다른 사람들을 옛 창조물에 속한 육체에 따라 외적으로 알지 않고, 새 창조물에 속한 영에 따라 내적으로 알았다 — 고후 5:16-17, 갈 6:15.
      F. 바울은 자신의 혼 안에서 혼의 능력과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거듭난 영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신 생명 주시는 영에 의해 하나님을 살고 섬김으로써 우리의 본이 되었다. 그는 그 영의 열매를 맺기 위해 그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영적인 사람이었다 — 롬 1:9, 7:6, 8:4, 16, 갈 3:3, 5:16, 22-25, 6:8, 고후 4:5, 고전 2:15, 고후 2:13.
      G. 바울은 몸을 의식하고, 몸을 중심 삼으며, 모든 것을 몸 안에서, 몸을 통하여, 몸을 위해 하는 면에서 우리의 본이다 — 롬 12:4-5, 고전 12:12-27, 엡 4:1-6, 15-16, 골 2:19, 행 28:13-15와 15절 각주 2.
      Ⅱ. 사람들을 목양하는 최상의 길, 곧 사람들을 보살피고 보양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합당한 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사는 자신의 삶을 그의 영적 자녀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 살전 2:1-12, 고후 1:23-2:14, 11:28-29, 고전 9:22, 행 20:28.
      A.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들이 전파한 기쁜 소식의 본이었다 —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는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 살전 1:5하.
      B.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길이고, 사람이 주님의 일이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도 그러하다 — 요 5:19, 6:57, 빌 1:19-26, 행 20:18-35, 마 7:17-18, 12:33-37.
      C. 우리는 사도들의 본을 따라 일보다 생명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요 12:24, 고후 4:12.
      D.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살았다. 사도들의 복음 사역은 단지 말로만 수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생활, 즉 성령 안에 있고 믿음의 확신 안에 있는 생활로 수행된 것이었다 — 살전 1:5.
      E.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들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님을 따르게 되었고, 주님을 자신들의 본으로 삼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다른 모든 믿는 이에게 본이 되었다 — 살전 1:6-7.
      F. 사도 바울은 사도들이 믿는 이들에게로 들어간 것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이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안으로 복음을 주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살전 1:5, 9, 2:1.
      1. 사도들은 분투하며 하나님의 담대함 안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했다 — 살전 2:2.
      2. 사도들에게는 속임수나 더러움이나 간교함이 없었다 — 살전 2:3.
      3. 사도들은 먼저 하나님께 시험받고 인정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복음을 위임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것, 곧 그들의 복음 전파는 자신들에게 속한 것이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도들의 마음을 살피시고 검사하시고 시험하셨다 — 살전 2:4, 시 26:2, 139:23-24, 고후 1:12, 6:6, 7:3.
      4. 사도들은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탐욕의 탈을 쓴 적이 없었다 — 살전 2:5.
      a. 탐욕의 탈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다니거나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것이다 — 고후 2:17, 4:2.
      b. 이것은 또한 이익을 얻기 위해 경건한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 딤전 6:5, 딛 1:11, 벧후 2:3.
      5. 사도들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 살전 2:6상.
      a.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일꾼에게 실지적인 시험이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사로잡히고 손상되었다 — 비교 삼상 15:12.
      b. 루시퍼는 영광을 구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대적자인 사탄이 되었다. 누구든지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사탄의 추종자이다 — 겔 28:13-17, 사 14:12-15, 마 4:8-10.
      c.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우리의 유용성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는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 비교 요 7:17-18, 5:39-44, 12:43, 고후 4:5.
      6.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로서 권위를 주장하거나 존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 살전 2:6하.
      a. 그리스도인의 일에서 권위나 존엄이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일을 손상한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그분의 존엄을 버리셨고(요 13:4-5), 사도는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고전 9:12).
      b. 우리가 이러한 본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치명적인 병원균, 곧 지위를 차지하려는 세균을 죽일 것이다 — 마 20:20-28.
      7. 사도들은 젖을 먹이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을 보살피고 열렬히 사랑하는 것같이 믿는 이들을 보살피고 열렬히 사랑했다 — 살전 2:7-8, 비교 갈 4:19, 사 49:14-15, 66:12-13.
      a.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 곧 어떤 일에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b. 우리의 타고난 인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의 실재인 주님의 임재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c. 보살피는 것은 보양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람들을 보양하는 것은 세 단계로 된 충만한 사역을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 엡 5:29.
      8. 사도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었다 — 살전 2:8.
      a. 깨끗하고 정직한 생활을 하는 것(살전 2:3-6, 10)과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줄 정도로 사랑하는 것(7-9, 11절)은 복음을 그들 안으로 주입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b.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뿐 아니라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존재까지도 기꺼이 소비하고자 했다 — 고후 12:15.
      9. 사도들은 자신을 아버지로 여겨,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도록, 곧 그들을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이끄는 그러한 행함을 갖도록 권유하였다 — 살전 2:11-12.
    • 메시지8
      교회의 기능(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과 진리의 기둥과 기반
      +
    • 성경: 딤전 3:15, 고전 1:2, 3:16-17, 10:32, 11:16, 엡 2:19, 21-22
      Ⅰ.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수식하고, ‘진리의 기둥과 기반’도 ‘교회’를 수식한다. ‘하나님의 집’과 ‘진리의 기둥과 기반’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묘사해 준다 — 딤전 3:15.
      Ⅱ.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 고전 1:2, 10:32, 11:16.
      A. ‘하나님의 교회’라는 표현은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과 교회가 하나님의 본성을 갖고 있고 하나님의 요소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행 20:28, 갈 1:13.
      B.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인데, 이는 교회가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산출되었고 하나님께서 교회의 본성과 본질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성과 본질은 신성하고 우주적이며 영원하다 — 고전 3:16-17.
      C. 교회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자신이다 — 고전 10:32.
      Ⅲ. 하나님의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다 — 딤전 3:15.
      A.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족이다 — 엡 2:19.
      1. 거처인 집과 가정인 가족은 한 실체, 곧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내주하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 벧전 1:3, 2:5, 고전 3:16.
      2.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의 지체들과 분리되지 않으시고 그들 안에 거주하시는 것처럼, 아버지는 그분의 가족과 분리되어 계신 분이 아니라 모든 자녀들 안에 계신다 — 롬 8:16, 12:4-5, 고전 3:16.
      3. 하나님의 집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유기적이고, 신성한 본성 안에서 유기적이며, 삼일 하나님 안에서 유기적이다 — 엡 4:18, 벧후 1:4, 마 28:19.
      4. 교회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성장한다 — 엡 2:21.
      B.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대해 말할 때, 바울은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언급했다 — 딤전 3:15.
      1. 교회 안에 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교회에게 반드시 주관적인 분이어야 하고, 단지 객관적인 분이어서는 안 된다 — 고전 3:16.
      2.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한 그분 안에, 그분에 의해, 그분과 함께 살아 있다.
      3. 살아 계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회는 함께 살고 움직이며 일한다.
      C.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 곧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신뢰하실 수 있는 곳이다 — 엡 2:22.
      D. 하나님의 집 곧 아버지의 집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결과로서, 확대된, 우주적인,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이다 — 요 12:23, 13:31-32, 14:20.
      Ⅳ. 주님은 그분의 교회가 진리이신 그분을 알며, 생명이신 그분을 받아들여 누리기를 원하신다 — 요일 1:1-2, 5-6, 요 11:25, 14:6, 18:37하.
      A. ‘진리’는 ‘실재’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모든 참된 것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주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 딤전 2:4, 골 2:9, 19.
      B.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 곧 파괴되지 않고 정복되지 않으며 어떤 근원에서 온 것이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하락에 저항할 수 있는 생명으로 건축된다 — 딤전 1:16, 6:12, 19, 딤후 1:1, 10, 딛 1:2, 3:7.
      C. 진리와 생명은 둘 다 그리스도 자신이다 — 요 14:6.
      1. 생명은 내적이고 내재적인 요소이며, 진리는 외적인 정의와 설명이다 — 요 1:4, 18:37하, 8:12, 32, 36, 17:17.
      2.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체험은 진리이신 주님 안에 담겨 있다. 생명이신 주님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한다 — 요 14:6, 11:25, 8:32, 36.
      D. 교회의 내용은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성장하신 것이어야 한다 — 골 2:19, 3:4.
      1. 진리는 신성한 빛의 비춤, 표현이다 — 요 8:12, 32, 36, 요일 1:5-6.
      2. 진리의 표준은 주님의 회복 안의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계속 더 높아져야 한다 — 딤전 2:4, 3:15.
      3. 우리는 생명이 자라야 하고, 생명 안에서 구원받아야 하며, 생명으로 충만해야 하고,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려야 한다 — 엡 4:13-16, 롬 5:10, 17.
      Ⅴ. 교회는 진리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진리를 붙들어 주는 기반이다 — 딤전 3:15.
      A. 진리는 그리스도가 그 체현과 중심과 표현인 삼일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자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 — 골 2:9, 엡 1:22-23, 4:16, 딤전 3:15, 요 3:3, 5.
      B.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진리’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신약에 계시된 참된 것들을 가리킨다 — 마 16:16, 18, 엡 5:32.
      1. 교회는 이 모든 실재들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자 붙들어 주는 기반이다.
      2.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진리 곧 실재를 붙들어 주고 지탱하고 증언하는 그러한 건축물이어야 한다 — 엡 2:22.
      C. 교회는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지탱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실재이심을 온 우주에 증언한다 — 요 1:14, 17, 14:6.
      D. 진리를 지탱하는 기둥과 기둥을 떠받쳐 주는 기반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라는 실재 곧 진리를 증언한다 — 골 2:2, 엡 3:4.
      E.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으로서 기능을 발휘하려면, 우리 모두가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러야 한다 — 딤전 2:4, 4:3, 딤후 2:25, 3:7, 딛 1:1.
      Ⅵ. 모든 형제자매가 생명과 진리로 충만할 때,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과 진리의 기둥과 기반으로서 강해질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 필요한 것이다 — 딤전 3:15.
    • 메시지9
      교회의 기능(2)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단체적으로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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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딤전 3:15-16, 요 1:1, 14, 골 2:9, 고전 6:17, 7:25, 40
      Ⅰ.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데, 이 나타나심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개인적으로 표현되신 것이다 — 딤전 3:16, 골 2:9, 요 1:1, 14.
      A.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만 육체가 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약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셨음을 계시한다 — 딤전 3:15-16.
      1. 하나님은 단지 아들로서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하나님 전체로서 육체로 나타나셨다.
      2. 아들 하나님만이 아닌 하나님 전체가 육체가 되셨다. 따라서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전체가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셨다.
      a. 그리스도는 그분의 사역의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사람이 하나 되었다 — 요 8:58, 7:6, 12:24.
      b. 육체 되심을 통하여 신성한 합병체이신 분, 곧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상호 내재하시고 하나로서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성 안으로 이끌리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합병체이시다 — 요 14:10-11.
      B. 하나님이신 말씀께서 육체가 되셨다 — 요 1:1, 14.
      1. ‘말씀께서 육체가 되신 것’(요 1:14)은 사람의 모양, 곧 사람의 형태가 되신 것을 의미한다 — 롬 8:3, 빌 2:7-8.
      2.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지만,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 — 고후 5:16.
      3. 말씀이신 하나님은 부분적인 하나님이 아니시라 하나님 전체, 곧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영 하나님이시다.
      4. 말씀은 하나님의 정의와 설명과 표현이시다. 따라서 육체가 되신 말씀, 곧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육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의되시고 설명되시고 표현되신 것이다 — 요 1:18.
      C.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 골 2:9.
      1. ‘신격의 모든 충만’은 신격 전체, 곧 완전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2. 신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구성되므로 신격의 충만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충만이다.
      3.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것을 의미한다 — 요 14:10.
      4. 신격의 충만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 전체이시다.
      Ⅱ. 디모데전서 3장 15절과 16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분이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자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한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 곧 경건의 비밀임을 시사한다.
      A.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경건’은 독실함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시는 것, 즉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살아 나타나시어 표현되신 것을 가리킨다.
      1. 그리스도와 교회 모두 경건의 비밀로서,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한다.
      2. 교회생활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경건의 비밀은 합당한 교회생활이다 — 고전 1:6, 14:24-25.
      B.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나타나시는데, 이 교회는 바로 육체 안에서의 확대된 단체적인 표현이다 — 엡 2:19, 1:22-23.
      1.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요 14:9.
      2.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은 교회로 계속되는데,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의 증가이자 확대이자 번성이다 — 딤전 3:15-16.
      C. 우리가 디모데전서 1장부터 3장까지에 기록된 대로 교회를 돌볼 때, 교회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위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의 실재를 지닌 진리의 기둥과 기반으로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 딤전 3:15.
      D. 이러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의 연장이 된다. 즉 교회가 하나님의 나타남으로서 그리스도를 살아 내게 된다 — 엡 5:32.
      E. 이것은 바로 육체 되심이라는 신약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께서 더 폭넓은 방식으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이다 — 고전 7:40, 갈 2:20.
      1. 육체 되심의 원칙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과 연합되심으로 사람을 그분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람 안에 계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게 된다 — 요 15:4-5.
      2. 육체 되심의 원칙은 신성이 인성 안으로 이끌려 인성과 함께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 고전 6:17, 7:40, 딤전 4:1.
      3. 육체 되심이라는 신약의 원칙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이 사람의 생명과 본성과 연합됨으로 우리와 하나님이 한 생명과 한 생활을 갖게 되는 것이다 — 고전 6:17, 갈 2:20.
      4. 바울은 육체 되심의 원칙으로 고린도전서 7장을 썼다.
      a. 고린도전서 7장 10절에 있는 원칙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는 원칙과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두 인격이 한 인격으로 사는 육체 되심의 원칙이다.
      b. 고린도전서 7장 25절과 40절에서 우리는, 주님과 완전히 하나 되고 주님으로 침투되어 자신의 의견까지도 주님의 생각을 표현하는 한 사람의 영성을 본다.
      c. 우리가 그 영으로 적셔진다면,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겠지만, 우리는 주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주님께 속한 무언가도 표현할 것이다 — 고전 6:17.
      F. 경건의 위대한 비밀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시도록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 롬 8:3, 1:3-4, 엡 4:24.
      G.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된 단체적인 표현인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 계 21:1-2, 10-11.
  • 개요

    여름 훈련 :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의 주님의 회복의 중심 부담과 현재의 진리에 대한 개관

    • 메시지1
      하나님의 경륜의 궁극적인 목표 ―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시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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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엡 1:4-5, 5:26-27, 히 2:10-11, 살전 5:23

      Ⅰ.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시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신다는 계시이다.
      A.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나에게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부담이자 유일한 메시지이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7권, 성경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고봉에 따른 삶을 사는 실제적인 길, 2장, 36쪽)
      B.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게 하며, 하나님 자신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고 사람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함으로써 그분의 표현이 확대되고 확장되어, 그분의 신성한 모든 속성들이 사람의 미덕들 안에서 표현되게 하는 것이다 — 딤전 1:3-4, 엡 3:9, 1:10.
      C.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하셨는데, 바로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에 따라 그분을 접촉하고 받아들이는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류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 창 1:26, 2:7, 슥 12:1.
      D.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그분 자신을 대량으로 재생산하여 새로운 종류를 산출하시려는 것이었다 — 요 1:1, 14, 12:24.
      1. 이 새로운 종류는 하나님 종류도 아니고 인류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사람 종류이다.
      2. “나의 부담은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이 그분 자신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분께서 창조하신 존재들인 우리를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 그분이 ‘인화(人化)’되시고 우리가 ‘신화(神化)’되는 것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신성한 분배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 72쪽)
      a.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지만, 물론 신격에서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기원자이신 하나님과 같은 신분에 있고, 그분의 자녀들이다 — 갈 4:6, 사 63:16, 64:8, 66:12-13.
      b. 하나님께서 하나님-사람이 되셨으므로, 사람이 사람-하나님이 될 수 있다. 결국 하나님과 우리는 같은 범주 안에 있고, 같은 종류에 속하며, 같은 수준에 있다.
      E. 초기 교부들 중 하나인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그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으며, 또한 “말씀께서 육체가 되신 것은 … 그분의 영께 참여하는 우리가 신화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Ⅱ. 영원하신 삼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겪으신 가장 놀랍고 탁월하고 비밀하고 모든 것을 포함한 변화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해 사람 안에서 움직이신 것이다 — 요 1:14, 29, 3:14, 12:24, 행 13:33, 벧전 1:3, 고전 15:45하, 행 2:36, 5:31, 히 4:14, 9:15, 7:22, 8:2.
      A. 이 변화들은 삼일 하나님께서 하나님-사람이 되실 때, 곧 신성을 인성 안으로 이끄시고 신성과 인성을 연합시키심으로써 많은 하나님-사람들의 대량 재생산을 위한 원형이 되실 때 통과하신 과정들이다. 그분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 되심으로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끌어 오셨고, 하나님을 사람이 접촉하고 만지고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들어가고 누릴 수 있는 분이 되게 하셨다 — 요 1:14, 12:24, 골 2:9.
      B. 하나님은 호세아서 11장 4절에서 “사람의 줄들로, / 사랑의 끈들로 / 나는 그들을 이끌었고”라고 하시며, 이 변화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의 줄들로, 사랑의 끈들로’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신성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인성의 수준에서,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신성하지만 사람의 줄들로,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한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줄들(변화들, 과정들)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께서 인성 안에서 통과하신 이 모든 단계들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안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도달한다 — 렘 31:3, 요 3:14, 16, 6:44, 12:32, 롬 5:5, 8, 요일 4:8-10, 16, 19.
      2.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하나님의 변함없는 굴복시키는 사랑이 우리에게 효력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효력이 있는 것은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리스도를 위하기 때문이다.
      3. 우리의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승리한다. 사랑은 모든 것보다 오래 남아 있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은 채로 있다. 오직 사랑만이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며, 오직 사랑만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 롬 8:35-39, 고전 13:8-11, 렘 31:3.
      C. 아득한 옛날로부터 곧 영원의 날들로부터 삼일 하나님은 영원에서 나오시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실 것을, 곧 베들레헴에서 한 사람으로 태어나심으로 그분의 신성을 가지고 인성 안으로 들어오실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 미 5:2.
      1. 육체 되심의 목적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시고 하나님을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은 신격을 지닌 분으로서 사람에게 경배를 받는 유일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신격에서는 하나님이 아니고 단지 생명과 본성에서만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의 움직임은 사람 안에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사람을 신화하려는 것, 물론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기능과 표현에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영, 거룩하신 분’께서 우리의 영 안으로 분배되셨기 때문에, 우리와 그 영은 한 영이며(롬 8:16, 고전 6:17), 우리의 영은 지금 ‘거룩한 영’이다(고후 6:6).
      3. 따라서 하나님-사람들인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을 떠나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고, 어떤 상황도 대하지 말며, 어떤 필요도 채우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하는 길은 그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는 길이며, 우리의 움직임 안에서 그 영께서 움직이시도록 하는 길이다 — 계 22:17상, 롬 8:4, 갈 5:25, 롬 1:9, 빌 3:3, 비교 겔 1:15-21.
      4. 사도행전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였고, 하나님은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셨다. 이처럼 사도들은 하나님의 대행자, 곧 기능에서 하나님이 되었다 — 행 16:6-10.
      Ⅲ. 우리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 과거에 우리를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시고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위한 신성한 거룩하게 함은 신성한 경륜의 중심이며, 신약에 있는 계시의 중심 사상이다 — 엡 1:4-5.
      A.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분별되고, 거룩하신 분 곧 속된 모든 것과 다르고 구분되는 분이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것이다 — 벧전 1:15-16, 엡 1:4-5.
      B.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엡 1:4). 하나님만이 거룩한 분이시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는 것이 필요하며, 이 거룩한 본성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데 사용하시는 거룩한 요소가 된다(벧후 1:4, 히 12:14).
      C.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생명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엡 1:5).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존재 안으로 분배됨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야 한다(요 1:12-13, 3:6, 요일 5:11-12).
      1.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목적을 위해서였음을 계시한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과정 혹은 절차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목적 혹은 목표로서 우리의 몸을 포함한 우리 전 존재(롬 8:23)가 하나님에 의해 ‘아들화’되는 것이다(계 21:2, 9-11).
      2. 히브리서 2장 10절과 11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대장, 창시자로서 많은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영광 안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Ⅳ. 신성한 거룩하게 하심은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붙잡아 주는 노선이며, 이 신성한 경륜은 우리를 신성하게 ‘아들화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함으로써,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 하나님의 표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은 신성한 아들화이다.
      A. 우리가 거룩하게 하심을 붙잡아 주는 노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일의 각 단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것은 그 영의 거룩하게 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 살전 5:23, 요 17:17, 엡 5:26-27, 고전 6:11, 12:3하, 히 12:4-14, 롬 8:28-29, 엡 4:30, 살전 5:19, 계 2:7상, 시 73:16-17, 25-26.
      B. 찾는 거룩하게 하심, 곧 초기의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를 회개하는 데 이르게 하여 하나님께 되돌아가게 한다 — 벧전 1:2, 눅 15:8-10, 17-21, 요 16:8-11.
      C. 구속하는 거룩하게 하심, 곧 위치적인 거룩하게 하심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것이며, 우리를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긴다 — 히 13:12, 9:13-14, 10:29.
      D. 거듭나게 하는 거룩하게 하심, 곧 기질적인 거룩하게 하심의 시작은 우리의 영에서부터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죄인들인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 곧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진 새 창조물이 되게 한다 — 요 1:12-13, 고후 5:17, 갈 6:15.
      E. 새롭게 하는 거룩하게 하심, 곧 기질적인 거룩하게 하심의 연속은 우리의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혼의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우리 혼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새 창조물의 일부가 되게 한다 — 롬 12:2하, 6:4, 7:6, 엡 4:23, 겔 36:26-27, 고후 4:16-18.
      F. 변화시키는 거룩하게 하심, 곧 매일의 거룩하게 하심은 그리스도의 요소로 우리를 신진대사적으로 재조성하여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한 부분인 새로운 조성체가 되게 한다 — 고전 3:12, 고후 3:18.
      G. 같은 형상을 이루는 거룩하게 하심, 곧 형태 짓는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형태 지어 그리스도의 표현이 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에 충만히 참여하고 그분의 신성한 요소를 소유함으로 견고하게 된다 — 롬 8:28-29, 히 6:1상.
      H. 영광스럽게 하는 거룩하게 하심, 곧 완결하는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의 몸을 변형시킴으로 구속하여, 우리를 영광 가운데서 완전히 그리스도의 표현이 되게 한다 — 빌 3:21, 롬 8:23.
      Ⅴ. 신성한 기질적인 거룩하게 하심은 생명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말씀하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수행된다 — 고전 15:45하, 살전 5:23, 엡 5:26.
      A.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신성한 관념에 따르면 여기에서 ‘물’은 하나님의 흐르는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흐르는 물로 예표되었다(출 17:6, 고전 10:4, 요 7:37-39, 계 7:17, 21:6, 22:1, 17).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지금 우리는 이러한 씻는 과정에 있다.
      B.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씻는’에 대한 헬라어는 직역하면 ‘물두멍’이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땅에 속한 더러운 것들을 씻기 위해 물두멍을 사용했다(출 30:18-21).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성경 앞에 나와서 말씀 안에 있는 물두멍의 물로 깨끗이 씻어져야 한다.
      C. 바울은 말씀과 말씀으로 씻는 과정에 대해 말할 때 ‘레마’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한다(엡 5:26). 로고스는 객관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레마는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막 14:72, 눅 1:35-38, 5:5, 24:1-8).
      D.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시는 영이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씻겨 주는 말씀이다. 이것은 항상 있는 말씀인 로고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말씀, 곧 주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의미하는 레마를 가리킨다 — 마 4:4, 요 6:63, 계 2:7, 22:17상, 비교 사 6:9-10, 마 13:14-15, 행 28:25-31.
      E. 레마는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우리에게 계시해 준다. 레마는 우리가 무엇을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깨끗이 씻어 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놋 물두멍은 비추고 드러낼 수 있는 거울이었다—출 38:8). 우리 각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가’이다 — 계 2:7, 삼상 3:1, 21, 암 3:7.
      F. 우리가 항상 보배롭게 여기는 한 가지는 오늘 주님께서 여전히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성장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직접 말씀을 받는 것에 달려 있다. 오직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하신 말씀만이 참된 영적인 가치를 지닌다 — 히 3:7-11, 15, 4:7, 시 95:7-8.
      G. 우리의 기도의 중심 요점은 주님의 말씀하심을 갈망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하심을 갈망할 때, 우리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따른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를 성취하여 그분의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 눅 1:38, 10:38-42, 엡 1:5.
      H. 매우 실지적인 의미에서 주님의 임재는 주님의 말씀하심과 하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의 말씀하심이 곧 생명 주시는 영의 임재이다 — 비교 출 33:12-17, 히 11:8.
      I.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씻는 물이다. 이러한 씻는 물은 새 요소를 우리 안으로 넣어 둠으로써 우리의 본성과 기질에 있는 옛 요소를 대치한다. 이러한 신진대사적인 씻음은 참되고 내적인 생명의 바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기질적인 거룩하게 됨과 변화의 실재이다.
      Ⅵ. 우리가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위해 거룩하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계 21:2, 10)이자 신성한 아들의 자격의 총체(7절)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그 영 안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인 그분의 영광을 위해(11, 23절) 단체적이고 위대한 한 하나님-사람(3, 22절)을 얻으시는 것의 최종 완결이다.
    • 메시지2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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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요 14:10-11, 16-20, 고전 15:45하, 고후 3:17-18, 13:14, 갈 3:14

      Ⅰ.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물질적인 영역과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에 관한 분명한 조망, 곧 이상을 가져야 한다 — 잠 29:18상, 행 26:19.
      A. 우리는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 법리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비밀한 것이 현저히 대조된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음으로써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을 귀히 여겨야 한다 — 롬 5:10, 히 8:1.
      B. 우리는 어떤 영역, 범위, 왕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영역은 우리가 지금 있는 영역보다 훨씬 더 높다. 훨씬 더 높은 이 영역이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다.
      C.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을 봄으로써 이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영적인 일들에서는 보는 것이 들어가는 것이다 — 요 3:3, 5.
      Ⅱ. 삼일 하나님 자신이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시다 — 요 14:10-11.
      A. 삼일 하나님, 곧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며, 동시에 존재하시고, 상호 내재하신다. 이러한 분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바로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시며,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서로 안에 거하신다 — 마 28:19, 고후 13:14.
      B. 요한복음 14장 10절과 11절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체현되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 되시어,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곧 삼일 하나님이라는 영역을 형성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Ⅲ. 오늘날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에 살 수 있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은 사실상, 단순히 삼일 하나님이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다 — 빌 1:19, 롬 8:9, 고후 3:17-18, 갈 3:14.
      A. 성경은 하나님의 영께서 완결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복합되신 영이 되셨음을 계시한다 — 요 7:39, 14:16-17, 20:22, 롬 8:9, 빌 1:19.
      1. ‘완결되신 영’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영께서 과정을 거치시어 완결되신 영이 되셨다는 것을 함축한다 — 요 7:39.
      2. 완결되신 영은 바르는 기름으로 예표된 복합되신 영이시다 — 출 30:23-25.
      a.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인성,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효능,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능력과 연합되셨다 — 빌 3:10.
      b. 이러한 연합의 산물이 복합되시고 완결되신 영이다 — 빌 1:19.
      3. 완결되신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 요 7:39.
      B.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계시한다 — 고전 15:45하.
      1.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되셨다 — 고전 15:45하, 고후 3:17-18.
      2. 따라서 우리는 완결되신 영과 이러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요 7:39, 갈 3:14, 고전 15:45하.
      Ⅳ.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는 실지로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의 일부가 된다 — 요 14:16-20, 17:21-23.
      A. 우리는 신성한 출생을 통하여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의 일부가 된다. 거듭남을 통해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으로 태어났다 — 요 3:5-6.
      B.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요 3:15), 본성(엡 1:4, 벧후 1:4), 생각(엡 4:23, 빌 2:5), 존재(고후 3:18하, 엡 3:8), 형상(고후 3:18상, 롬 8:29), 영광(롬 8:30, 히 2:10), 아들의 자격(엡 1:5, 롬 8:23), 나타남(롬 8:19), 모양(요일 3:2)에 참여함으로써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의 일부가 된다.
      C.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건축됨으로써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의 일부가 된다 — 엡 4:16.
      1. 그리스도의 몸은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을수록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더 있게 된다 — 롬 12:4-5, 고전 12:12-13, 27, 엡 1:22-23, 4:16.
      2. 믿는 이들은 한 실체로 섞여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된다 — 고전 12:24, 27.
      Ⅴ.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자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살아야 한다 — 롬 8:16, 요 14:2-3, 20, 고전 15:45하, 갈 3:14, 고후 3:17-18.
      A.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에 살 수 있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은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영역 안에 살기를 배워야 한다 — 빌 1:19, 고후 13:14, 갈 3:14.
      B.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유일하고도 모든 것을 포함한 복이신 그 영을 받는다 — 갈 3:2, 5.
      C.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전달을 받고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의 공급을 받는다 — 엡 1:22, 히 8:1-2.
      D.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체험한다 — 롬 5:10.
      E.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종(種)의 영역인 하나님의 왕국 안에 산다 — 요 3:3, 5.
      F.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산다 — 요일 1:3, 7, 행 2:42.
      G.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법의 자동적인 기능에 따라 자연스럽고 애쓰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한다 — 롬 8:2.
      H.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계시된 신성한 실재의 표현인 진실함의 생활을 한다 — 요이 1, 요삼 1, 요 4:23-24.
      I.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하나를 지키기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연합된다 — 요 17:21, 23.
      1. 참된 하나는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 — 마 28:19, 요 17:21, 23.
      2. 진정한 하나는 믿는 이들과 삼일 하나님의 연합이다 — 고후 13:14.
      a. 이러한 하나를 갖기 위해 믿는 이들은 반드시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신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b. 믿는 이들은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삼일 하나님과 하나이다.
      Ⅵ. 모든 믿는 이들은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살아야 하고, 신성하고 비밀한 사람 곧 인간적이면서도 신성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갈 2:20, 고후 10:1, 13:14.
      A. 우리는 신성하면서도 인간적이어야 한다. 즉, 단지 인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밀하게 인간적이어야 한다.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신성하고 비밀해야 한다 — 요 14:16-20.
      B. 신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전 10:31, 골 3:17.
      C. 주 예수님처럼 우리는 눈에 보이는 면에서는 물질적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에서는 신성하고 비밀해야 하며, 물질적인 영역과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동시에 살아야 한다 — 요 3:13, 엡 4:20-21, 히 4:16, 13:13.
      Ⅶ. “그때에 두 남자가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둡니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둡니다.” — 마 24:40-41.
      A. 두 남자와 두 여자는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 살아 있을 믿는 이들을 대표한다 — 계 14:1, 4하.
      B. 데려가지는 것은 대환난 전에 휴거되는 것이다 — 마 24:21, 계 3:10.
      1. 마태복음 24장 40절과 41절은 비밀한 휴거, 곧 준비된 이들이자 성숙한 이들의 휴거를 가리킨다 — 계 14:4하.
      2. 데려가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차이는 생명의 성숙에 있다. 한 사람은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 마 24:40-41.
      C. 마태복음 24장 40절부터 42절까지에 있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휴거되기를 기대하는 동안 우리의 일상적인 의무들에 신실해야 하고, 합당하게 균형 잡힌 인간 생활을 하는 동시에 완결되신 영과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비교 살후 3:6-15.
    • 메시지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건축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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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삼하 7:12-14상, 고전 3:9, 엡 3:14-21, 마 13:3-9, 19-23, 계 21:3, 22

      Ⅰ. 사무엘기하 7장 12절부터 14절 상반절까지는 예표를 통하여 하나의 예언을 계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내재적인 조성 안으로 건축하심으로 우리의 온 존재가 그리스도로 재조성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보여 준다 — 마 16:18, 엡 3:17.
      A. 영적인 신진대사의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유기적으로 건축되는 것이 사실상 여호와께서 사무엘기하 7장 12절부터 14절 상반절까지에서 예표의 방식으로 다윗에게 예언하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변화될 수 있고, 인간적인 것인 사람의 씨가 신성한 것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
      B. 하나님의 건축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유기적이시며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 곧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의 영적인 음식과 음료와 숨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동화해야 한다 — 요 6:51, 57, 7:37-39, 20:22.
      1.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들이쉼으로써 ‘현재의’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 속에서 신진대사의 과정이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다 — 갈 2:20, 고후 2:15, 빌 1:20-21.
      2.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일해 넣음으로써, 우리가 영적인 소화와 동화라는 신진대사의 과정을 체험함으로 생명 안에서 점진적이고도 내재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 고후 3:18.
      3. 이러한 신진대사적인 과정이 변화이며, 변화가 곧 건축이다 — 비교 계 21:18, 4:3.
      Ⅱ.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작지, 즉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보배로운 재료들이 산출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서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는 농장이다 — 고전 3:9.
      A. 성경에 따르면 성장은 건축과 동일하다. 건축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신성한 씨가 자랄 때 일어난다 — 요일 3:9, 골 2:19, 엡 4:15-16.
      B. 에베소서 3장 17절이 계시하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그분 자신을 요소로 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재료로 하여 건축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C.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씨 뿌리는 이의 비유로 설명된다.
      1. 주님은 생명의 씨이신 그분 자신을 토양인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심으로, 그들 안에서 자라시고 사시며 그들 안에서부터 표현되신다 — 마 13:3.
      2. 씨는 토양에 뿌려져서 토양의 자양분으로 자란다. 따라서 그 산물은 씨와 토양, 둘 다에서 나온 요소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 마 13:23.
      3.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기 위한 준비로서, 우리 속에 어떤 자양분을 창조하여 두셨다. 하나님은 신성한 씨를 위한 토양인 사람의 마음과 함께 인성의 자양분이 있는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다 — 비교 벧전 3:4.
      4. 우리가 생명 안에서 자라는 정도는 신성한 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씨에 자양분을 얼마나 많이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자양분을 더 많이 공급할수록 씨는 더 빨리 자라고 더 번성하게 될 것이다 — 시 78:8, 마 5:3, 8.
      a.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사람인 우리의 혼 안에 머문다면, 신성한 씨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되고 우리의 영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영을 훈련한다면, 자양분이 공급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실 것이다 — 엡 3:16-17, 롬 8:6, 딤전 4:7, 비교 유 19.
      b. 생명의 씨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어 우리의 완전한 누림이 되시게 하려면, 우리는 주님께 절대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그분과 협력하여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처리해야 한다 — 마 13:3-9, 19-23.
      5. 한 면으로는 하나님께서 요소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또 한 면으로는 우리가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전 존재 안에 그분의 내재적인 건축의 일, 곧 그분의 거처를 건축하는 일을 수행하신다.
      Ⅲ. 에베소서 3장에 나오는 사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영을 통하여 능력으로 우리를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안으로 그분 자신을 건축하시고 우리 전 존재를 점유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하게 되는 것이 필요함을 계시한다 — 엡 3:14-19.
      A. 우리가 능력으로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속사람 안에 있지 않고 대체로 겉사람 안에서 산다는 것을 시사한다 — 엡 3:16, 1:19-22, 3:20.
      B.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의 모든 공간을 점유하기를 갈망하신다.
      1. ‘거처를 정하다’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카토이케오’라는 한 단어인데,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한 처소에 정착하다’ 혹은 ‘거처를 만들다’이며, 이 단어의 접두사 ‘카타’는 ‘아래’를 의미한다 — 엡 3:17상.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을 위해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며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사랑 안에서 터를 잡고 있다 — 엡 3:17하.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때,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측량할 수 없으신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도록 강하게 되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차원은 바로 우주의 차원이다 — 엡 3:18.
      a. 우리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방체처럼 삼차원적이어야 하며, 선처럼 일차원적이어서는 안 된다.
      b. 성막과 성전 모두에서 지성소는 입방체였다 — 출 26:2-8, 왕상 6:20.
      c. 결국 하나님의 건축물인 새 예루살렘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각각 만 이천 스타디온인 영원한 입방체, 곧 지성소일 것이다 — 계 21:16.
      4.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심으로 우리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삼일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하게 되어 삼일 하나님을 단체적으로 표현하고 영광스럽게 한다 — 엡 3:19-21, 비교 창 24:47, 53, 61-67.
      Ⅳ.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민 안으로 일해 넣으시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때 우리의 일의 목표는 건축하시고 건축되신 하나님을 다른 이들 안으로 공급함으로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존재 안으로 건축하시도록 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엡 3:17상.
      A.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의 일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건축하시고 건축되신 하나님을 공급하는 것이다 — 마 16:18, 엡 2:21-22, 3:17상.
      B. 우리는 주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을 재고해 보면서, 우리가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들 안으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많이 일해 넣어지셨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 갈 4:19, 골 1:28.
      C. 우리는 한 가지를 실행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다른 이들 안으로 공급하여,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속사람 안으로 건축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 고후 13:14, 고전 3:9상, 10, 12.
      D. 우리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교회를 건축할 때, 건축하고 있는 이는 사실상 우리가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이들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분배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심으로, 우리를 통하여 건축하고 계신다 — 행 9:15, 고전 14:4하, 고후 3:3-6.
      E.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때 하나님의 건축하시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의 건축하시는 일은 신성한 요소를 사람의 요소 안으로, 사람의 요소를 신성한 요소 안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 요 14:20, 15:4상, 요일 4:15.
      F. 신성한 요소가 우리의 인성 안으로 조성될 때 우리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 또한 사람의 요소가 하나님 안으로 조성될 때 하나님은 사람이 되신다. 이것이 신약에 계시된 건축이다 — 엡 2:21, 4:16.
      G.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의 일은 반드시 이러한 상호 조성의 일부여야 한다.
      1. 우리의 일이 이러한 상호 조성과 관련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의 일은 나무와 풀과 짚과 같다 — 고전 3:12.
      2. 우리의 일이 이러한 상호 조성의 일부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여기실 것이다 — 계 21:2, 10-11, 18-21.
      H. 우리가 낳고 양육하고 온전하게 하고 건축하는 네 단계로 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수행하려고 할 때, 우리의 일은 반드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민 안으로, 그리고 그들을 그분 안으로 건축하고 계신다.
      I. 다른 사람들이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장하도록 우리가 건축하시고 건축되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공급한다면, 우리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고 있는 것이다 — 골 2:19, 엡 4:15-16, 계 21:10.
      Ⅴ. 결국 삼일 하나님과 구속받은 인성은 연합되고 섞여서 한 실체인 새 예루살렘으로 건축될 것이다 — 계 21:2, 10.
      A.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조성하심으로 사람을 생명과 본성과 조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과 사람을 단체적인 한 실체가 되게 하심으로써 건축된다 — 계 21:18-21.
      B. 새 예루살렘은 신성과 인성이 한 실체로 함께 섞이고 연합되어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모든 구성 요소들은 동일한 생명과 본성과 조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단체적인 한 인격이다 — 계 21:3, 22.
      1. “주는 사람 안에서 사람은 주 안에서 / 사람 안엔 하나님 사람은 주의 표현”(하나님은 사람 안에 사람은 하나님 안에 / 이렇게 상호 거처 되네 / 하나님은 사람 내용 되시고 / 사람은 하나님 표현해(영어 가사 직역)) — 768장 9절.
      2.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건축되고 함께 섞이고 연합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건축의 완결이다.
      C.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로 조성되어 이루어진 조성체이다 — 계 22:17상, 21:3, 22.
      1. 이것은 신성이 인성 안에서 표현되고 인성이 신성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어, 신성한 영광이 인성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 계 21:11.
      2. 신성과 인성, 이 둘은 상호 거처가 된다.
      a.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신 분께서, 사람이지만 하나님인 우리 안에 거하신다.
      b. 사람이지만 하나님인 우리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신 분 안에 거한다.
      D. 신성한 요소를 사람의 요소 안으로, 사람의 요소를 신성한 요소 안으로 조성함으로 산출된 상호 거처가 우주의 중심과 실재이다 — 계 21:1-2, 22, 비교 전 1:2.
      E.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의 선한 기쁨에 따라 그분의 경륜 안에 있는 가장 높은 의도를 위해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민 안으로 건축하시고 그분의 선민을 그분 자신 안으로 건축하고 계신다.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조성체를 얻으시기 위한 것인데, 이 조성체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서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자 그리스도의 몸이며,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표현이자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구속된 사람을 위한 상호 거처이다. 이 보배롭고 기적적인 구조물의 최종 완결은 영원히 존재하는 새 예루살렘일 것이다.” — 위트니스 리의 묘비문(墓碑文).
    • 메시지4
      섞임과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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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고전 1:2, 10:17상, 12:12-13, 24, 27, 요 12:24, 빌 3:10, 엡 4:20-21

      Ⅰ. “하나님은 몸을 고르게 섞으시어” — 고전 12:24.
      A. 섞임은 높고 깊을 뿐 아니라 매우 비밀스럽다 — 고전 12:24.
      B. ‘섞다’라는 말은 ‘조절하다’, ‘조화되게 하다’, ‘고르게 하다’, ‘연합시키다’를 의미하며, 차이점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함축한다.
      C. 섞임은 다른 이들과 교통하기 위해 항상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행 2:42, 고전 1:9, 요일 1:3, 7.
      D.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다른 성도들과 교통하지 않은 채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통은 우리를 조절하고, 조화되게 하며, 고르게 하고, 연합되게 하기 때문이다 — 요일 1:7.
      E. 섞이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통과하고, 무엇이든 그 영으로 말미암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분배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이들에 의해 만져지고 다른 이들을 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마 10:38, 16:24, 갈 3:2, 5, 엡 4:12.
      F. 섞임은 사교적인 것이 아니라, 각 지체들과 권역의 교회들과 동역자들과 장로들이 체험하고 누리고 참여한 바로 그 그리스도의 섞임이다 — 비교 롬 16:1-16.
      G.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유일한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섞여야 한다 — 고전 12:24.
      H.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섞임이 필요하다 — 롬 16:1-16, 고전 12:20-21, 24, 골 4:16.
      Ⅱ. 요한복음 12장 24절과 고린도전서 10장 17절 상반절은 섞임의 필요성과 의미를 묘사하고 계시해 준다.
      A. 요한복음 12장 24절은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밀알을 맺은 한 알의 밀에 대해 말한다.
      1. ‘한 알의 밀’은 신성한 씨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그리스도는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인) 많은 밀알을 산출하시어, 그분의 유기적인 몸을 구성하는 그분의 많은 지체들이 되게 하신다 — 엡 1:22-23, 5:30.
      2. 한 알의 밀이신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부활 안에서 많은 밀알을 산출하셨다 — 요 12:24.
      a. 밀알들은 고운 가루로 갈리고 섞여 한 떡이 되어야 하는데, 이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 고전 10:17상.
      b. 우리는 부서지지 않은 밀알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깨어지고 갈려 고운 가루가 됨으로써, 다른 이들과 함께 섞여 한 떡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떡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 고전 12:12-13, 27, 엡 2:16, 1:22-23.
      B. 교회가 한 떡 곧 한 몸으로 섞여야 한다는 바울의 사상(고전 10:17상)은 레위기 2장 1절부터 16절까지에 있는 소제물의 예표에서 온 것이다.
      1. 소제물의 고운 가루의 모든 부분이 기름과 연합되었다. 이것이 섞임이다 — 레 2:4-5.
      2. 그리스도의 생활과 우리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의 총체, 곧 부서지고 갈리고 섞인 믿는 이들로 구성된 단체적인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가져온다 — 레 2:1-2, 4, 고전 12:12.
      Ⅲ. 섞임의 목적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 롬 12:5, 고전 12:12-13, 엡 2:16, 4:12, 골 2:19.
      A.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이끌리기 위해 절차인 각 지방의 교회들 안에 있어야 한다 — 고전 1:2, 12:27.
      B. 하나님의 경륜을 참으로 실행적이고 실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주님의 회복의 최고봉은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방식으로 많은 지방에 교회들을 산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유기체인 유기적인 한 몸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 엡 1:10, 22-23.
      C.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의 목표인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도달하기 위해 취하신 절차이다 — 마 16:18, 엡 4:12, 16.
      1. 교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이끄는 절차이다 — 고전 1:2, 12:12-13, 27.
      2. 교회들은 몸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없을지도 모른다.
      D. 주님께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표현되는 것이 긴급히 필요하시다. 몸의 실재의 실질적인 표현이 없다면 주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으실 것이다 — 엡 1:22-23, 4:16, 5:27, 계 19:7.
      Ⅳ. 하나님의 경륜에서 최고봉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 엡 1:22-23, 4:16.
      A. 우리의 섞임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 고전 12:24.
      1. 이 실재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 하나님께 구속받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 요 1:12-13, 롬 8:16, 벧후 1:4.
      2. 이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의해 살지 않고 또 다른 생명에 의해 산다. 이 생명은 바로 그들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을 자신의 거처와 처소로 삼으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생명이다 — 고후 13:14, 요 14:23, 엡 2:21-22.
      B.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의 단체적인 생활이다. 이들은 진정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살고 있으며, 자신의 미덕들을 통해 그분의 속성들을 표현해 왔다 — 고후 13:9, 11, 엡 4:12, 벧전 5:10, 요일 4:12, 17-18.
      1. 모든 속성들을 지닌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사람이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 내어졌고, 이 하나님-사람의 미덕들로 표현되었다 — 엡 4:20-21.
      2. 본래 이 생명은 예수님 안에만 있었지만, 지금 이 생명은 구속받고 거듭나 자신 안에 신성한 생명을 소유한 믿는 이들 안에 재생산되고 있다 — 엡 1:7, 요 3:6, 골 3:4.
      3.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은 자아를 거절하고 또 다른 생명 곧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의해 살기를 계속 훈련함으로써 성숙하게 된 이들이다 — 요 11:25.
      C.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거듭나고 변화되고 같은 형상이 되고 영광스럽게 된 세 부분으로 된 하나님-사람들과 삼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영원히 연결되어 연합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 비교 삿 9:9, 시 92:10.
      1. 이러한 연합은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단체적인 생활이다 — 빌 3:10.
      2. 이렇게 연합하는 생활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으며, 부활의 실재는 그 영이다. 이 부활은 믿는 이들 안으로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넣어 주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해방한다 — 요 11:25.
      3.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에 의한 이러한 단체적인 연합의 생활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증가와 표현이 되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계 21:1-2, 9-11.
      4.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의 단체적인 생활은 교회 시대인 이 시대를 마감하고, 왕국 시대에서 이러한 하나님-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차지하시고 소유하시며 다스리시도록 그리스도를 다시 모셔 올 것이다 — 시 24:1-2, 7-10, 72:1-8, 11, 계 1:7, 14:14, 20:4.
    • 메시지5
      하나님-사람의 생활
      +
    • 성경: 레 1:3, 9, 6:8-13, 요 21:15-17, 요일 3:14, 5:1, 2:6, 4:17, 갈 6:2-3, 롬 8:2

      Ⅰ.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하나님-사람 생활의 실지 상태인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엡 4:21)가 실재의 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의 많은 지체들 안에 복사되어, 하나님의 경륜의 최고봉인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20-24절).
      A. 사복음서는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생활의 본, 곧 하나님을 만족하시게 하고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생활의 틀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하는 생활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활 안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의 의미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틀 안으로 넣어져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 롬 8:28-29, 엡 4:20-21.
      B.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 신성한 생명을 사는 하나님-사람들이 되도록 주님에 의해 온전하게 되고 있다 — 마 11:29상, 17:5하, 벧전 2:21.
      1. 그리스도는 사복음서에 계시된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사실 때, 하나의 본을 세우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통하여 그분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께 배우는 것이다 — 고전 15:45하, 골 3:4.
      2.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이며 또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활이다. 우리는 틀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은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며, 이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 고전 1:30, 고후 5:17, 12:2상, 골 1:27, 갈 2:20, 롬 8:10.
      C.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복음서들에 묘사된 틀, 모습, 본에 따라 그분을 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 틀의 형상으로 형태 지어지고 이 틀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말의 의미이다 — 마 11:29, 롬 8:29.
      D. 우리가 연합된 영 안에 살 때, 우리는 실재의 영에 의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따라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틀이신 그분에게서 배움으로 그분의 전기(傳記)가 우리의 역사(歷史)가 되게 한다. 새사람인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은 복음서들에 계시된 예수님의 생활과 정확히 똑같아야 한다 — 갈 6:17-18, 롬 1:1, 9, 엡 4:20-24, 빌 2:5, 마 11:29, 벧전 2:21.
      E.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신 목적은 그분께서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을 먹을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그분과 정확히 똑같은 우주적이며 위대한 한 사람, 곧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한 사람이 된다 — 애 3:22-24, 55-56, 계 2:4, 7, 요 6:57, 63, 렘 15:16, 엡 6:17-18, 시 119:15.
      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생활을 반복하는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은 번제물로서 여러 체험을 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생활이다 — 레 1:9, 요 8:29, 고후 5:9.
      A. 번제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생활을 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번제물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레 1:3, 민 28:2-3, 요 5:30, 6:38, 8:29, 히 10:5-10.
      B. ‘번제물’로 번역된 단어는 ‘위로 올라가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레 1:3, 10, 14). 땅에서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생활인데, 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을 위해 절대적인 생활을 하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요 6:38).
      C. 번제물은 ‘여호와를 만족시키는 향기’였다(레 1:9). ‘만족시키는 향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안식의 향기’ 혹은 ‘만족의 향기’를 의미한다. 만족시키는 향기는 만족과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주는 향기이다. 만족시키는 이러한 향기는 하나님께 누림이 된다.
      D. 합당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안수함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연결되며 그분과 하나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때, 그분은 이 땅에서 사신 생활 곧 번제물의 생활을 우리 안에서 반복하신다 — 레 1:4, 고전 6:17, 갈 2:20.
      E. 이러한 연결, 곧 이러한 동일시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약함과 결함과 흠을 가져가신다 — 고후 5:21, 갈 2:20상.
      F.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태우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 지속적인 번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태울 수 있고, 또 감소되어 재가 됨으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새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 — 시 20:3, 레 1:16, 6:8-13, 고전 3:12상, 계 3:12, 21:2, 10-11, 18-21.
      1. 재는 감소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감소되어 재가 되신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감소되어 재가 된다. 즉 감소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 무(無)가 된다 — 막 9:12, 사 53:3, 고전 1:28, 고후 12:11.
      2. 우리가 죽음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더 동일시될수록 자신이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것을 더욱더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재가 될 때 더 이상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종결되고 불태워진 사람이다 — 갈 2:20상.
      G. 재를 제단 동쪽 옆, 해가 뜨는 곳에 둔 것은 부활을 암시한다 — 레 1:16, 요 11:25, 빌 3:10-11, 고후 1:9.
      1.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는 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넘겨지신 것을 의미하나, 동쪽은 부활을 상징한다 — 막 9:31.
      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감소되어 재가 될수록 더욱더 동쪽에 두어질 것이고, 그 동쪽에 있을 때 우리는 해가 떠오르고 부활의 일출을 체험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 빌 3:10-11.
      H. 결국 재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 계 3:12, 21:2, 10-11.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종결하고 감소시켜 재가 되게 하며, 부활 안에서 재는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귀한 재료가 된다 — 고전 3:9하, 12상.
      2. 감소되어 재가 될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변화시키시는 일 안으로 이끌려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한 귀한 재료들이 된다 — 롬 12:1-2, 고후 3:18, 계 21:18-21.
      Ⅲ. 번제물의 실재이신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약 사역을 수행하실 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요 5:19),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셨으며(4:34, 17:4),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14:10, 24), 자신의 뜻으로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으며(5:30),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다(7:18). 그분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셨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셨다(사 42:4, 50:4-5, 53:2상, 비교 요 4:13-14, 6:15, 막 9:7-8).
      A. 주님의 생활은 주님의 일과 움직임과 사역이었다. 그분의 일은 그분의 생활이었고, 그분의 움직임은 그분의 존재였다. 그분께는 그분의 생활과 일과 움직임과 사역이 차이가 없었다. 주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을 사셨다 — 비교 눅 22:26-27, 요 10:10하, 고전 15:45하, 요일 5:16상, 고후 3:6, 빌 1:25.
      B. 주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이셨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셨으며, 어떤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셨다.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은 이러한 주님 안에서 아무것도(그 어떤 일에서도 아무런 입지나 희망이나 기회나 가능성도) 가질 수 없었다 — 요 10:30, 8:29, 14:30하, 16:32-33, 벧전 2:23.
      1. 그분은 육체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계신 비밀스러우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분은 기도하시기 위해 종종 산으로 가시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가셨다 — 마 14:23, 막 1:35, 눅 5:16, 6:12, 9:28.
      2. 그분은 결코 홀로 계시지 않았는데, 이는 아버지께서 그분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매 순간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의 얼굴을 주목하셨다 — 요 5:19, 16:32, 시 16:7-8.
      C. 하나님-구주이신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의 부도덕한 여인을 구원하기 원하셨을 때, 유대로부터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여행하셔야 했지만, 사마리아의 큰길에서 우회하여 수가라는 동네에 가셨고, 수가에서 가까운 야곱의 우물에서 자신이 만나셔야 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구하심으로써 그녀를 보살피시어 생명수 곧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 자신으로 그녀를 보양하시려는 것이었다 — 요 4:3-14.
      D. 비난하던 바리새인들 중 누구도 간음한 여인을 유죄판결 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구주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녀에게 “나도 그대를 유죄판결 하지 않으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녀를 보살피셨는데, 이것은 위대한 ‘나는 -이다’이신 그분께서 그녀를 보양하시어 죄에서 해방시켜 그녀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 요 8:3-11, 24, 34-36.
      Ⅳ. 우리가 하나님 자신인 사랑 안에 거할 때, 사랑이 “우리에게서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존재 그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요일 4:17) — 번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사셨고, 지금은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동일한 사랑의 생활을 하여 그분의 존재와 똑같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요일 3:14, 5:1, 2:6).
      A.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사랑의 법인 그리스도의 법이다(롬 8:2, 갈 6:2-3). 사랑의 법은 우리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도록 생명의 영의 법으로 말미암아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으로 가득하다면 다른 사람의 짐을 질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줄로 생각하여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갈 6:3).
      B.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될 때, 우리는 자동적이고도 자연스럽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목양하고 찾는 영을 가진 목자들이 될 것이다 — 요 21:15-17, 눅 15:3-7.
      C.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될 때,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수고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행 20:35) ‘연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살전 5:14) 사랑의 수고가 된다(고전 15:58, 살전 1:3). ‘연약한 사람들’은 영이나 혼이나 몸이 연약하든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롬 14:1, 15:1).
      D.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목양하시고, 그에게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라는 위임을 주셨다. 이것은 사도들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하여 하나님의 양 떼인 교회를 돌보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돌보는 것은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으로 귀결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할 것이다 — 요 21:15-17.
    • 메시지6
      하나님을 따라 목양함
      +
    • 성경: 요 21:15-17, 벧전 5:2, 2:25, 엡 4:12-16

      Ⅰ. 목양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 부드러운 돌봄으로 양 떼를 돌보는 것이다 — 요 21:15-17, 행 20:28.
      A. 목양이란 양 떼의 모든 필요를 돌보는 것을 가리킨다.
      B. 모든 양들은 충분히 공급받고 보살핌을 잘 받아야 한다.
      Ⅱ.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는 목양이 긴급히 필요하다 — 요 21:16, 벧전 5:2.
      A. 유기적인 구원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영 하나님에 의해 먼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런 다음 우리의 목자이신 아들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목양하심으로 우리가 영원토록 그분의 생명 안에서 존재하고 자라게 하신다 — 요 3:6, 10:10, 14-16.
      B.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 성숙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는 이들을 목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엡 4:12-16.
      Ⅲ. 목양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가 가르칠 수 없다면 목양할 수 없다 — 마 28:19-20, 9:35-36.
      A. 목양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함께 간다 — 엡 4:11.
      B. 우리의 목양은 가르치는 것과 항상 함께해야 하며, 우리의 가르침은 목양하는 것과 항상 함께해야 한다 — 행 2:42, 20:28, 골 1:28.
      Ⅳ. 우리는 모두 우리의 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해야 한다 — 벧전 2:25.
      A. 우리의 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내적 상태를 감독하시며 우리의 내적 존재의 상황을 돌보신다.
      1.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목양은 주로 우리의 혼을 돌보는 것이다 — 시 23:3.
      2. 그리스도는 우리의 혼의 유익을 돌보시고, 우리의 내적 존재의 상태를 감독하심으로 우리를 목양하신다 — 비교 히 13:17.
      3. 이러한 목양은 내적이고 내재적이며 유기적인 위로하심이다 — 고후 1:3-4.
      B. 우리의 혼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혼을 목양해 주시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들과 필요들과 상처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 — 요 14:16-17, 고전 15:45하, 6:17.
      1. 공기 같은 영이신 우리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 안에서부터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
      a. 그분의 목양은 우리의 영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혼의 각 부분에까지 퍼져 나간다 — 엡 3:17.
      b.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에서부터 우리의 혼의 모든 부분에 도달하시며, 부드럽고 유기적이며 모든 것을 포함한 방식으로 우리를 보살피신다 — 살전 5:23.
      2. 이것은 거듭난 믿는 이들과 연결되고 합병되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내적인 목양이다 — 고후 13:14, 요 3:6, 14:20, 롬 8:16.
      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따라 목양해야 한다 — 벧전 5:2, 빌 1:21상.
      A.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는 것은 우리의 선호와 흥미와 목적과 기질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본성과 갈망과 길과 영광을 따라 목양하는 것이다 — 벧후 1:4, 엡 1:5, 9, 3:21, 요 14:6.
      B.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하나님을 따라’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을 사는 이들만이 하나님을 따라 목양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여 그분을 살게 하는 것이다 — 요 11:25, 6:48, 57.
      2. 우리는 우리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을 살 수 있도록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고 있다 — 갈 2:20.
      C.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려면 우리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 골 3:4, 벧후 1:4.
      1. 우리는 신성한 생명으로 넘치도록 채워지고, 원천과 샘과 강이신 삼일 하나님을 누림으로 신성한 생명의 총체가 되고, 심지어 신성한 생명 자체가 되어야 한다 — 요 4:14, 골 3:4.
      2. 우리는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속성들의 방면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 요일 4:8, 1:5, 롬 3:21, 25-26, 엡 1:4, 5:27, 벧전 1:15-16.
      3.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생산 곧 하나님의 표현이 되어, 목양할 때 기질과 특이함을 가진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 롬 8:19, 29, 고후 3:18, 마 16:24.
      4.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에 따라 그리고 그분의 경륜의 목표에 따라 그분의 양 떼를 목양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목양하시는 그분의 기능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 엡 1:10.
      D.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 — 요 14:20, 고전 6:17.
      1. 성경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분 자신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시고 사람을 그분과 하나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 요 15:4, 고전 6:17.
      2. 하나님은 신성한 생명과 인간 생명이 함께 합해져 한 생명이 되고 한 생활을 하기를 갈망하신다 — 요 6:57, 갈 2:20.
      3.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될 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며, 다른 이들을 목양하는 것에서 하나님이다 — 요일 5:11-12, 벧후 1:4, 벧전 5:2.
      Ⅵ.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려면 우리는 목양하는 생명을 살아야 한다 — 요 21:15-17, 고후 6:1-13, 7:2-3.
      A. 그리스도로 조성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자연스럽게 목양하는 생명을 살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 안에 조성되신 그리스도께 목양하는 방면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 골 1:27, 3:10-11, 14, 요 21:15-17.
      B. 목양하는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넓어진 마음, 곧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 고후 6:11-13, 7:2-3, 비교 왕상 4:29.
      C. 목양하는 생명은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핌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그들을 보양하는 생명이다 — 엡 5:29, 잠 25:15.
      D. 목양하는 생명은 모든 것에 적응하는 생명, 곧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어떤 환경이든 다 받아들이며 어떤 조건에서도 일할 수 있는 생명이다 — 고후 6:1-13, 7:2-3.
      E.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고 부드러운 마음에 따라, 그리고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찾고 목양하는 영에 따라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해야 한다 — 눅 15:1-32.
      Ⅶ.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목양은 상호 목양이다 — 고전 12:23-26.
      A.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목양을 받아야 하고, 또한 그분과 하나 되어 서로 목양해야 한다 — 요 21:15-17.
      B. 우리는 양들이자 목자들이기 때문에 상호적으로 목양하고 목양받는다.
      C. 상호 목양할 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 목양한다 — 고전 13:1-13.
      D. 이러한 상호 목양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될 것이다 — 마 16:18, 엡 1:22-23, 2:21-22, 4:16.
    • 메시지7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두 방면 ― 법리적인 구속과 유기적인 구원
      +
    • 성경: 롬 5:10, 21, 요 1:12-13, 벧전 2:25, 롬 6:19, 22, 고후 4:16, 3:18, 엡 4:15-16, 롬 8:28-29, 빌 3:20-21

      Ⅰ.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는 두 방면, 곧 법리적인 방면과 유기적인 방면이 있다 — 롬 5:10, 21, 요 1:12-13, 벧전 2:25, 롬 6:19, 22, 고후 4:16, 3:18, 엡 4:15-16, 롬 8:28-29, 빌 3:20-21.
      A. 하나님의 구원의 법리적인 방면은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땅에서의 사역이라는 물질적인 영역 안에서 객관적으로 성취되었다 — 요 1:14, 골 1:22.
      1. 하나님의 구원의 법리적인 방면은 하나님의 의에 따른 것이다 — 롬 1:17상, 3:21-26, 9:30-31.
      2. 하나님의 구원의 법리적인 방면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죽음에 의해 죄인들에 대한 그분의 의로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 갈 3:13, 벧전 2:24, 고후 5:21, 히 9:12.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심으로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시어 다음과 같은 객관적인 결과를 산출하셨다.
      a. 믿는 이들의 죄들에 대한 용서 — 눅 24:47, 엡 1:7.
      b. 믿는 이들의 죄들을 씻음 — 히 1:3.
      c. 믿는 이들을 의롭다 함 — 롬 3:24-25.
      d. 하나님과 원수였던 믿는 이들을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함 — 롬 5:10상.
      e. 믿는 이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위치적으로 하나님 자신께 거룩하게 함 — 고전 1:2, 히 13:12, 10:29.
      B.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절차이며,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목적인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롬 5:21.
      C.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모든 항목은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 안에서 법리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 안에서 유기적이고도 주관적으로 수행된다 — 고전 15:45하.
      Ⅱ. 하나님의 구원의 유기적인 방면은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이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서 주관적으로 다음의 여덟 단계에 따라 수행된다.
      A. 거듭남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중심이며, 유기적인 방면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다.
      1. 거듭남은 하나님의 생명을 믿는 이들 안에 넣어 줌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번식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구속받은 믿는 이들의 영을 하나님의 영에 의해 거듭나게 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 요 3:6하.
      2. 그리스도는 바로 그분의 부활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구속받은 믿는 이들 안에 넣어 주신다. 이 생명이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종(種)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는 권위이다 — 벧전 1:3, 요 1:12-13.
      3. 거듭남을 통해 믿는 이들은 그들의 타고난 인간 생명에 더하여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신성한 생명을 갖게 된다 — 요 3:15, 36.
      B. 목양을 통해 먹이는 것은 신성한 생명의 양육이다.
      1. 먹이는 것은 거듭남에 이어지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보양하고 보살핌으로써 그분의 양 떼를 목양하시는 것을 통해 수행된다. 그 결과 그분의 양들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 성숙에 이를 수 있다 — 엡 5:29, 요 10:10-11, 14-16, 21:15-17, 히 13:20, 벧전 5:4, 2:25.
      2. 먹이는 것은 새로 태어난 아기들(새로운 믿는 이들)을 보양하는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젖을 공급받아 점진적으로 자라며 구원받는다 — 벧전 2:2.
      3. 먹이는 것의 결과로 믿는 이들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에 이르도록 자람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된다 — 고후 3:18, 롬 12:2, 8:29.
      4. 먹이는 것은 또한 믿는 이들이 상호 목양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목양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 엡 4:11-16, 요 21:15-17, 벧전 5:2-3.
      C. 기질적인 거룩하게 함은 믿는 이들을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으로 조성한다.
      1. 기질적인 거룩하게 함은 성령 곧 생명의 영의 운행하심에 의해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장하는 믿는 이들의 기질을 내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 롬 15:16, 8:2.
      2.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신성하고 거룩한 본성으로 거룩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도록 거룩하게 되어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 벧후 1:4, 엡 1:4.
      3. 기질적인 거룩하게 함은 변화를 함축한다 — 롬 6:19, 22.
      4. 거룩하게 함은 궁극적으로 거룩한 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날 것이다 — 계 21:2, 10, 22:19.
      D. 새롭게 함은 하나님의 새 창조의 과정이다.
      1. 믿는 이들은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될 때 자연히 새롭게 된다 — 고후 5:17.
      2. 새롭게 함은 새로 남의 씻음에 이어지는 것이자 거룩하게 함의 연속적인 과정에 근거한 것으로, 믿는 이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3. 새롭게 함은 다음에 의해 수행된다.
      a. 새롭게 하시는 영께서 그리스도가 내주하시는 믿는 이들의 거듭난 영과 한 영으로 연합되시고 믿는 이들의 생각 안으로 확장되시어, 새사람의 지체인 그들의 전 존재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 딛 3:5, 엡 4:23.
      b. 믿는 이들이 부활 안에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행함으로써 — 롬 6:4, 엡 4:22-24, 빌 1:19-21.
      4. 새롭게 함은 믿는 이들이 환경적인 고난들을 받음으로 소모됨을 통해 일어난다 — 고후 4:16.
      5.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위한 진정한 새 창조물이 실지적으로 되기 위해 철저하고도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 갈 6:15.
      6. 새롭게 함은 믿는 이들을 새 예루살렘처럼 새롭게 되게 한다 — 계 21:2.
      E. 변화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적인 과정이다.
      1. 이 과정은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믿는 이들의 전 존재를 변화시켜 그들이 하나님의 신성에 완전히 동참하게 한다 — 롬 12:2상.
      2. 변화는 밖에서 교정하거나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의 요소를 믿는 이들의 존재 안에 더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형상이 밖으로 표현되게 하는 일종의 신진대사이다.
      3. 변화는 주 영(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심으로써 성취된다 — 고후 3:18.
      4. 믿는 이들은 그 영을 따라 살고 행해야 하며(갈 5:16, 25), 연합된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롬 8:4상). 그럴 때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이 믿는 이들을 규제하고 영광 안에 계신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길을 얻게 된다.
      F. 건축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함께 결합되고 짜이는 것이다.
      1. 하나님의 건축물은 변화시키시는 영께서 믿는 이들에게 일하심으로 그들이 함께 결합되고 짜임으로써 산출된다 — 엡 4:16.
      2. 하나님의 건축물은 믿는 이들이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곧 머리이신 분 안으로 자란 것의 산물이다 — 엡 4:15, 골 2:19.
      3. 이것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건축을 완결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이다 — 엡 4:16, 계 3:12, 21:10-11.
      G. 같은 형상을 이룸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성숙이다.
      1. 같은 형상을 이룸은 믿는 이들을 신성한 생명 안에서 거듭나게 하고 먹이고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변화시킨 것의 완결이다 — 롬 8:28-29.
      2. 같은 형상을 이룸은 믿는 이들이 그들의 영 안에 계신 성숙시키시는 영에 의해 그리스도로 풍성하게 되어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하여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었을 때, 즉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렀을 때 이루어진다 — 골 1:28, 엡 4:13.
      3. 같은 형상을 이룸은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 빌 3:10, 1:19-21상, 요일 3:2.
      H. 영광스럽게 됨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1.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은 거듭난 믿는 이들을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그분의 영으로 도장 찍으신다 — 엡 1:13, 4:30.
      2. 성숙한 믿는 이들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영광으로 적셔짐으로 안에서부터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이끌려 들어감으로 밖에서부터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 엡 4:30, 살후 1:10, 롬 8:23, 30, 히 2:10.
      3. 성숙한 믿는 이들의 영광스럽게 됨은, 그들이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 안에서 거듭났을 때 받은 신성한 아들의 자격의 최고의 몫이다 — 갈 4:5, 롬 8:23.
      4. 믿는 이들의 몸이 구속되는 것은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그들의 몸이 변형되는 것이다 — 빌 3:20-21.
      5. 하나님은 믿는 이들을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그분의 영원한 목적인 새 예루살렘의 성취를 실현하신다.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나고 변화되고 같은 형상을 이루고 영광스럽게 된 세 부분으로 된 그분의 선민이 연결되고 연합된 것의 결정(結晶)이다.
      Ⅲ.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이 여덟 부분에서 하나님의 목표는 단순히 우리를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복사판과 복사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 영 자신’께서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비결이시다.
      A. 낳으시는 영은 그리스도에 의해 살아난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우리에게 주신다.
      B. 보양하시는 영은 그리스도의 보살핌을 받은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의 영적인 젖을 먹이심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신다.
      C. 거룩하게 하시는 영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우리의 영으로부터, 하나님의 본성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이르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D. 새롭게 하시는 영은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우리가 십자가의 파쇄를 통해 새사람을 입도록 하신다.
      E. 변화시키시는 영은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해진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의 표현을 위해 우리를 그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F. 건축하시는 영은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거처를 위해 우리를 하나님의 집과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하신다.
      G. 성숙하게 하시는 영은 그리스도로 풍성하게 된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형이신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신다.
      H. 도장 찍으시는 영은 그리스도로 크게 기뻐하는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적시시고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이끄신다.
    • 메시지8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
      +
    • 성경: 롬 5:10, 17, 21, 12:5-7, 16:1-16, 20

      Ⅰ.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우리가 은혜를 넘치게 받고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음으로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 롬 5:17, 21.
      A.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완전히 체험하는 것이다 — 롬 5:10, 17, 21.
      B. 의의 선물은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을 위한 것이고,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 롬 1:17, 5:10.
      1. 의의 선물은 실지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이다 — 롬 3:24, 26.
      2. 은혜는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충족하는 공급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 고전 15:10, 고후 12:9.
      C. 그리스도를 추구함으로 얻는 가장 높은 성취는 그분의 신성한 생명 안에서 그분의 넘치는 은혜를 통해 그분과 함께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이다 — 빌 3:13-14, 롬 5:17, 21.
      1.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사탄, 세상, 죄, 육체, 우리 자신, 주변의 모든 환경을 정복하고 복종시키며 다스리는 것이다 — 롬 8:2, 35-37.
      2. 넘치는 은혜와 넘치는 의의 선물을 받은 모든 믿는 이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제한받고 규제받는 것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 비교 마 8:9.
      Ⅱ.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체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롬 5:17, 21.
      A. 우리는 신성하고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왕족의, 왕가의 생명으로 거듭났다. 이 생명이 우리를 보좌에 앉혀 왕들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한다 — 요 1:12-13, 3:3, 5, 계 5:10.
      B. 체험에 있어서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한다 — 마 8:9.
      1.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있음으로써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의 본이시다 — 비교 마 8:5-13.
      2. 바울은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서 생활하고 사역한 사람의 본이다 — 고후 2:12-14.
      3.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있음으로써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때, 우리는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받는다 — 골 1:13상.
      4.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 살며, 그 왕국에서 달콤한 사랑 안에 다스림 받고 제한받는다 — 골 1:13하.
      C.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온갖 것들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 롬 5:17-18, 21.
      1. 왕으로서 다스리는 영은 반드시 강하고 살아 있어야 하고,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어야 하며,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이어야 하고, 느슨하지 않고 부지런해야 한다.
      2. 이러한 영을 가진 사람은 질서에 맞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뿐 아니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승천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한다 — 마 28:18, 엡 2:6.
      D.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끄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다 — 잠 21:1, 살후 3:5.
      E. 우리는 하나님처럼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기 때문에,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하나님이 된다 — 롬 5:17, 21, 골 3:4, 벧후 1:4.
      Ⅲ. 로마서 5장에서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이 로마서 6장부터 16장까지에 나오는 모든 것의 열쇠이다.
      A. 우리는 이러한 빛 안에서 로마서 6장부터 16장까지에 나오는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B.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로마서 6장부터 16장까지에 정의되어 있다. 이 장들에서 설명되는 모든 항목은 우리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은혜를 넘치게 받은 결과이다 — 롬 5:21.
      C.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린다면, 로마서 6장부터 16장까지에 제시된 모든 항목 안에 있게 된다.
      Ⅳ.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서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린 결과는 교회생활 안에서 표현된 참되고 실지적인 몸의 생활이다 — 롬 5:17, 21, 12:5-8.
      A. 로마서 12장과 13장에서 몸의 생활을 하는 것과 관련된 각 항목은 우리에게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을 받으며 주님을 향해 살 것을 요구한다 — 비교 고후 5:14-15.
      1.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한다 — 롬 12:1중.
      2. 우리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 롬 12:2.
      3. 우리는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 롬 12:3.
      4.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지만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 — 롬 12:4-5.
      B.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으로써, 몸의 생활을 위해 가장 높은 미덕을 표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1. 우리는 위선이 없이 사랑해야 하며, 형제 사랑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 롬 12:9상, 10상.
      2. 우리는 열심을 내어 게으르지 않고, 영 안에서 불타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 — 롬 12:11.
      3. 우리는 환난 가운데 견뎌야 한다 — 롬 12:12하.
      4. 우리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 롬 12:15.
      5.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 — 롬 12:18.
      Ⅴ.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으로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 롬 16:1-16.
      A.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한 몸을 구성하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에는 조직이 없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있을 뿐이다 — 빌 1:5.
      B. 교회들 사이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 고전 10:16.
      1. 주님의 회복은 그리스도께는 오직 한 몸이 있으며, 이 몸은 한 지방의 한 교회로 여러 지방에서 표현된다는 진리에 근거한다 — 엡 1:22-23, 4:4, 계 1:11.
      2. 성령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몸이 있고, 몸 안에 오직 하나의 생명의 순환이 있다. 이 순환이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다 — 엡 4:4, 요일 1:3, 7.
      3.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그 영의 순환이다. 그 영께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순환하실 때, 신성과 인성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두 순환한다.
      4. 신성한 교통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는 생활의 실재이다 — 고전 1:9, 12:12-13, 27.
      C.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교통하는 것에 의해, 화평의 하나님께서 사탄이 우리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실 것이다 — 롬 16:20.
      Ⅵ. 로마서 16장은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섞이는 생활 안으로 이끈 사도 바울의 탁월한 본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바로 이러한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참으로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수 있다 — 롬 5:17.
      A. 바울은 적어도 스물일곱 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성도들 한 명 한 명에게 문안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 각 사람을 모두 상당히 잘 알고 이해하며 많이 돌보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롬 16:1-16.
      B. 바울의 추천과 문안은 성도들 간의 상호 관심과 교회들 간의 상호 교통 모두를 나타내고 있다 — 비교 골 4:15-16.
    • 메시지9
      세 단계로 된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역
      +
    • 성경: 요 1:14, 고전 15:45하, 계 1:4, 3:1, 4:5, 5:6, 2:4-5, 19:7-9, 21:2, 22:17상

      Ⅰ.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대한 유일한 가르침(딤전 1:3-4)은 육체 되심과 포함과 강화라는 세 단계로 된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역에 관한 가르침이다.
      A. “주님의 회복이 어떤 상태가 되고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이 가르침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위트니스 리) 이 가르침은 다음의 간단한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주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고, 육체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며, 생명 주시는 영은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되시어 교회를 건축하시고,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권,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 1장, 116쪽)
      B.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들로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려면(고후 6:1, 고전 3:9), 신성하고 비밀한 세 단계로 된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역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그리스도를 얻는 것—빌 3:8-14)이 필요하다.
      Ⅱ. 첫째 단계는 육체 되심의 단계이며,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출생하신 것에서부터 그분의 죽음까지이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다음의 주요 일들을 성취하셨다.
      A.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오셨을지라도,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곧 영원의 날들로부터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기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삼일 하나님께서 영원에서 나오시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실 것을, 곧 베들레헴에서 한 사람으로 태어나심으로 그분의 신성을 가지고 인성 안으로 들어오실 것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가리킨다 — 미 5:2.
      B.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게 하셨다 — 눅 1:35, 2:40, 52, 요 14:10-11, 1:14.
      C.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넘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속성들을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분의 향기로운 미덕들을 통해 표현하셨다.
      1. 애정, 인자, 인내, 긍휼, 이해심과 같은 사람-구주의 인간 미덕들이 그분께서 죄 많은 여인과 교통하신 것에서 나타났다.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 특별히 사람의 죄들을 용서해 주는 신성한 권위라는 속성과 용서받은 죄인에게 평안을 주는 이러한 속성 또한 나타났다 — 눅 7:36-50.
      2. 선한 사마리아인이신 사람-구주는 유대교 강도들에게 상처 입은 희생자가 비참한 상태로 누워 죽어 가고 있는 곳에 오셨다. 그분은 신성을 지닌 인성 안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셔서, 그를 부드럽게 치료하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돌보시어 그의 긴급한 필요를 완전히 채워 주셨다 — 눅 10:25-37.
      3.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범죄자 중 하나가 “예수님, 주님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오늘 그대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분의 영원하고 차별 없는 사랑이라는 신성한 속성이 그분의 보살피는 인간 미덕을 통해 표현된 것을 보여 준다 — 눅 23:42-43.
      D.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셨다.
      1. 그분의 법리적인 구속은 하나님의 의에 따른 것이자 하나님의 구원의 절차로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요구들을 만족시킨다 — 롬 1:17상, 3:21-26, 9:30-31.
      2. 그분의 법리적인 구속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고(눅 24:47), 씻어지고(히 1:3), 의롭게 되고(롬 3:24-25),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5:10상), 위치적으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고전 1:2, 히 13:12). 그 결과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누리고 하나님의 더 높은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과 위치를 얻게 된다(롬 5:10, 17, 21).
      Ⅲ. 둘째 단계는 포함의 단계이며, 그리스도의 부활부터 교회의 하락까지이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다음의 주요 일들을 성취하셨다.
      A.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맏아들로 인정되신 과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며,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분별되었다 — 롬 1:1-4.
      1. 신성 안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요 1:18)는 육체 되심에 의해 신성과 전혀 상관없는 육체, 곧 사람의 본성을 입으셨다. 인성 안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
      2. 부활하심으로써 그분의 사람의 본성은 거룩하게 되고 높이 올려지고 변화되었다. 부활 안에서 그분의 인성은 신화(神化) 곧 ‘아들화’되었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닌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 롬 8:29, 행 13:33.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인 거룩한 영은 그분의 죽음 안에서 작용하게 되었고,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꽃피어’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시고 생명을 분배하시는 영이 되시어,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를 그분의 많은 형제들이 되게 하셨다 — 롬 1:4, 8:29, 고전 15:45하.
      4. 원형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재생산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자 원형의 지체들이며, 이들은 그분의 몸이 되어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골 1:18, 벧전 1:3.
      5. 그리스도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정되는 과정 즉 ‘아들화되는’, 신화되는 과정에 있다 — 롬 8:28-29.
      a.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고, 이러한 부활에 의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되는 과정에 있다 — 롬 8:11.
      b. 인정되는 과정의 열쇠는 부활이다. 이 부활은 솟아오르시는 영이시자, 인정받게 하시는 영이시자,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영을 따라 행하며, 인정받게 하시는 영을 누리고 체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긴급히 필요하다 — 요 11:25, 롬 8:10-11, 행 2:24, 고전 15:26, 5:4, 롬 8:4, 6, 14.
      B. 육체 되신 그리스도이신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고전 15:45하, 요 6:63, 고후 3:6.
      1. 우리가 ‘포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포함하는’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 근거한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 되신 것이다 — 빌 1:19.
      2.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신 생명 주시는 영은 또한 생명의 영(롬 8:2), 예수님의 영(행 16:7),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 주 영(고후 3:18)이라고 불리신다.
      3. 포함의 단계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로마서 8장에 계시된다. 로마서 8장이 보여 주는 것은, 생명의 영의 법으로서 세 부분으로 된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된 삼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생명의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만들어 그분의 표현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 창 2:7, 9, 롬 8:14, 12:5.
      a. “생명(헬. 조에)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 롬 8:2.
      b.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헬. 조에)입니다.” — 롬 8:10.
      c. “영에 둔 생각은 생명(헬. 조에)과 평안입니다.” — 롬 8:6.
      d.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에도 생명(헬. 조에)을 주실 것입니다.” — 롬 8:11.
      C.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을 위해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셨다 — 벧전 1:3.
      1.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과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주적으로 거대한 한 번의 출산 안에서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2.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들은 한 영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몸의 조성을 위해 이 한 영을 마시게 되었다 — 고전 12:13.
      3.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심으로, 모든 것을 포함한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 자신을 한량없이 주셨다 — 요 3:34.
      Ⅳ. 셋째 단계는 강화의 단계이며, 교회의 하락부터 새 예루살렘의 완결까지이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유기적인 구원을 강화하시고, 이기는 이들을 산출하시며,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신다.
      A. 교회의 하락으로 인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일곱 배로 강화되시어 일곱 영, 곧 일곱 배로 강화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계 1:4, 3:1, 4:5, 5:6.
      B. 일곱 배로 강화된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유기적인 구원을 강화하시어 믿는 이들을 다음의 것들에서 구원하신다.
      1. 에베소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형식적인 교회생활 그리고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과 등잔대의 빛을 내는 역량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에서 — 계 2:1-7.
      2. 서머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둘째 죽음을 맛보는 데로 귀결되는 패배에서 — 계 2:8-11.
      3. 버가모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세상과 결합하고 결혼하여 세상적이 된 것과, 발람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에서 — 계 2:12-17.
      4. 두아디라 교회로 상징되는 가톨릭에서 볼 수 있는, 음행과 우상숭배와 귀신적인 가르침과 사탄의 깊은 것들에서 — 계 2:18-29.
      5. 사데 교회로 상징되는 개신교에서 볼 수 있는, 영적인 죽음 곧 죽어 있음과 죽어 감에서 — 계 3:1-6.
      6. 빌라델비아 교회로 상징되는 형제회에서 볼 수 있는, 이미 얻은 면류관을 잃어버리는 데서 — 계 3:7-13.
      7. 라오디게아 교회로 상징되는 하락한 형제회에서 볼 수 있는, 미지근함과 그리스도가 없음에서 — 계 3:14-22.
      C. 이기는 이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을 반드시 회복하고 유지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1. 첫째가는 사랑을 떠나는 것이 역대로 교회가 실패한 근본 원인과 주된 이유이다 — 계 2:4-5.
      2. 첫째가는 사랑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그분께 첫째 위치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과 모든 문제에서 그리스도께 첫째 위치, 으뜸의 위치를 드려서 우리의 생활에서 그분을 모든 것으로 여겨야 한다 — 골 1:18하.
      3. 우리는 우리의 혼생명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 마 10:37-39, 계 12:11.
      D. 우리는 일곱 배로 강화되신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의 말씀하심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영 안에 사는 이기는 성도들이 됨으로써 하락에서 구원받는다 — 계 2:1, 7, 1:10, 4:2, 17:3, 21:10.
      E. 그리스도의 일곱 배로 강화된 하늘에서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를 완전히 준비하고(계 19:7-9), 신부 군대를 편성하고(11-21절, 17:14), 사탄을 결박하고(20:1-3),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고(4-6절),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기 위한 것이다(2:7, 21:2).
      F. 최종 결과는,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신 사람 사이의 우주적인 로맨스에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최종 완결되신 영께서 신랑이 되시고 이기는 성도들의 총체가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결론이다 — 계 22:17상.
      G. 우리는 이러한 강화의 문제를 숙고하고 또 필사적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려야 한다. “주님, 저는 포함에서 강화로 전진하기 원합니다. 주님, 당신은 일곱 배로 강화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몸이 건축되도록, 주님께서 저 또한 일곱 배로 강화하셔서 교회의 하락을 이기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5권, 성육신, 포함, 강화, 2장, 253쪽)
    • 메시지10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하나님-사람들의 신성한 권리
      +
    • 성경: 요 3:15, 롬 8:14, 16, 23, 29-30, 고후 3:18, 엡 1:4-5, 요일 3:2

      Ⅰ. 우리는 하나님-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곧 하나님께 참여할 신성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 요 3:15, 벧후 1:4.
      A. 하나님-사람이 되는 첫째 단계는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본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 요 3:6, 벧후 1:4.
      B. 하나님-사람들, 곧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이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함에 참여할 권리, 심지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 — 요 1:12-13, 롬 8:16, 요일 3:1.
      Ⅱ. 하나님-사람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의 다양한 방면에 참여할 수 있다.
      A.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 — 엡 4:18, 요 1:4, 10:10, 11:25.
      1. 생명은 하나님의 내용이자 하나님의 흘러나옴이다. 하나님의 내용은 하나님의 존재이고, 하나님의 흘러나옴은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 계 22:1.
      2. 하나님의 생명은 신성하고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았고 시작과 끝이 없으며 스스로 존재하고 항상 존재하며 결코 바뀌지 않는다 — 요 3:15, 요일 2:25, 5:13, 20.
      3.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은 파괴할 수 없고 소멸시킬 수 없고 썩지 않으며, 죽음과 음부의 시험을 통과했고 죽음을 정복했으며 죽음을 삼켜 버릴 부활 생명이다 — 히 7:16, 행 2:24, 계 1:18.
      4. 생명은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 우리 안에 사시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다 — 롬 8:6, 10-11.
      B.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다 — 엡 1:4, 벧후 1:4.
      1.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함, 곧 하나님의 존재의 구성 성분들이다.
      2.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심지어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 엡 1:4, 벧전 1:15-16.
      a.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 엡 1:4.
      b.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신 후에, 거룩한 분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의 존재 안에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전 존재가 그분의 거룩한 본성으로 적셔지고 침투되게 하신다 — 벧전 1:15-16.
      3.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요소들 혹은 성분들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엡 3:8.
      4.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존재의 구성 성분들을 누려야 한다 — 벧후 1:4.
      C. 우리는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요일 2:27, 빌 2:5, 고전 2:16.
      1.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요소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생각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도 우리 안에 갖고 있다 — 빌 2:5.
      2. 기름바름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때, 이 기름바름은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바르며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계시한다 — 요일 2:27.
      3. 그리스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되도록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 빌 2:5.
      a.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각도 있다 — 고전 2:16.
      b.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에서부터 우리의 생각을 적시시어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생각과 하나가 되게 하셔야 한다 — 고전 2:16, 엡 4:23.
      D. 하나님-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고후 3:18.
      1.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 변화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에 근거한다.
      2.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우리 안으로 분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생각뿐 아니라 그분의 존재에도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엡 3:8.
      E. 하나님-사람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고후 3:18.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어떠함을 표현하신다 — 골 1:15, 고후 4:4.
      2.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따르면, 우리는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3.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어 그분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 — 롬 8:29.
      F.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이끌려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 히 2:10.
      1.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 곧 찬란하게 표현되신 하나님이다 — 행 7:2, 고전 2:7, 고후 3:18, 4:6.
      2.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는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 히 2:10.
      3.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으로 거하신다 — 골 1:27.
      4.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주목하고 반사하는 동안,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 — 고후 3:18.
      G. 하나님-사람들의 신성한 권리의 또 다른 방면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에 참여하는 것이다 — 엡 1:5, 롬 8:23.
      1. 창세전 곧 영원 과거에 하나님은 아들의 자격을 얻도록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 — 엡 1:5.
      2.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자격에 참여할 것을 의도하시고 결정하셨다 — 엡 1:5.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 안으로 이끌고, 우리는 아들의 자격의 영,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과 연합된 거듭난 사람의 영을 받았다 — 갈 4:6, 롬 8:15.
      H.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하나님-사람들의 권리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 — 롬 8:19.
      1.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 골 3:4.
      2.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그 나타나심에 참여할 것이다 — 롬 8:19.
      3.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들과 함께 나타나실 것이다(히 2:10). 하나님의 아들들은 생명과 본성과 생각과 존재와 형상과 영광에서 하나님과 똑같을 것이다(롬 8:19).
      I.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하나님-사람들의 신성한 권리는 하나님의 모양을 지닐 권리를 포함한다 — 요일 3:2.
      1. 요한일서 3장 2절은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아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을 그분의 존재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2.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삼일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뵐 때 삼일 하나님을 뵐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분과 같아질 때 삼일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 — 요일 3:2.
      a.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모양을 지닐 것임을 분명히 계시해 준다.
      b.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분의 모양을 지닐 것이다 — 엡 4:18, 벧후 1:4, 요일 3:2.
      J. 마지막으로, 하나님-사람들은 하나님-사람 종류, 곧 하나님의 종(種)이 될 신성한 권리를 갖는다 — 요 1:12-13, 롬 8:14, 16.
      1. 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의 종(種) 안으로 들어오셨고, 사람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됨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 요 1:1, 12-14, 벧후 1:4.
      2. 신성한 영역, 곧 신성한 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가져야 한다 — 요 1:12-13, 3:3, 5-6, 15, 벧후 1:4.
      a.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거듭나 하나님-사람 종류가 되었다 — 요 1:12-13.
      b. 우리의 두 번째 출생인 거듭남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 요 3:3, 5-6.
      c.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신성한 종이라는 신성한 영역 안에 있다 — 요 1:12-13, 3:3, 5.
      d.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믿는 이들이 신성한 종의 영역 안에서 사는 것의 여러 방면을 본다 — 요 1:16, 15:4상, 9, 11, 4:23-24, 14:2, 20, 23, 17:22-24.
      3.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할 신성한 권리를 가진 하나님-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골 3:4, 엡 1:4-5, 고후 3:18, 벧후 1:4.
    • 메시지11
      완결되신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 ―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결과
      +
    • 성경: 눅 12:49-50, 요 12:23-24, 14:2, 10-11, 17, 20-21, 23, 15:1-8, 16, 16:13-16, 계 21:3, 22

      Ⅰ. 우리는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즉 완결되신 하나님이신 그분 자신과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우주적인 합병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 요 14:10-11, 20, 17:21, 23, 14:23, 계 21:3, 22.
      A. 믿는 이들과 주님의 관계는 ‘연결’, ‘연합’, ‘합병’이라는 단어로 묘사된다. ‘연결’은 우리가 생명에 있어서 주님과 하나인 것에 관한 것이고, ‘연합’은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에 관련된 것이며, ‘합병’은 인격들이 서로 안에 거하는 것, 곧 상호 내재하는 것이다 — 요 15:4-5, 벧후 1:4, 요 14:20.
      B.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그 존재와 하시는 일 모두에서 영원부터 하나의 합병체이시다 — 요 14:10.
      1.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상호 내재하심으로 합병되어 계신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 요 14:10상, 11상.
      2.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하나로서 함께 일하시는 합병체이시다 —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요 14:10하), “내가 하는 일들 때문에라도 믿으십시오.”(요 14:11하)
      C. 사도행전 2장 23절은 이 우주적인 신성한 합병체, 곧 신성한 삼일성의 셋이 영원 안에서 회의를 여셨고,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신성한 삼일성의 둘째 분을 시간 안으로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하는 데 동의하셨음을 말해 준다 — 벧전 1:20, 미 5:2, 비교 창 1:26.
      D. 육체가 되시기 전에 이 우주적인 합병체는 세 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성한 삼일성의 둘째 분이 이 우주적인 합병체를 인성 안으로 가져오셨다 — 요 14:10-11.
      E.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영원 과거에 이미 합병되어 계셨다. 합병되신 이분께서 시간 안으로 오신 것은 그분께서 선택하신 모든 사람을 그분의 합병체 안으로 합병하여, 완결되신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위대하고 우주적이며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한 합병체를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다 — 요 17:21.
      F. 요한복음 14장 20절은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한 합병체가 된 것을 계시한다.
      1. “그날에는” — 아들께서 부활하신 날에는.
      2.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아들과 아버지께서 하나로 합병되심),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거듭난 믿는 이들이 아들 안으로 합병되고,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 안으로 합병됨),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아버지 안에 계신 아들께서 거듭난 믿는 이들 안으로 합병되심)
      3. 요한복음 14장 17절(“실재의 영…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에 나오는 실재의 영께서 ‘안에’ 계신 것은 20절에 나오는 세 번의 ‘안에’의 총체이다.
      Ⅱ.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을 통해, 그분의 부활 안에서(눅 24:26), 신성한 영광으로 아버지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신 것이다(요 12:23-24).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함께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된 것은 불을 땅에 던지신 것이었다(눅 12:49-50).
      A.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은 한 알의 밀이신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육체 되심을 통해 얻으신 그분의 인성은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함께 그분의 신성의 영광을 감추는 껍질이 되었다 — 요 12:23-24.
      B. 주님은 답답하시고 억압받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깨져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함께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되도록 죽음이라는 침례로 침례 받기를 열망하셨다 — 눅 12:49-50, 요 12:23-24.
      1.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영광과 함께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담고 있는 유일한 밀알이셨다.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깨어졌을 때, 동시에 그분의 신성의 모든 요소, 곧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그분의 신성한 영광이 해방되었다.
      2. 신성한 생명을 지니신, 무한하시고 한량없으시고 신성하신 분께서 그분의 육체의 죽음을 통하여 해방되신 후에,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의 충격력이 되셨다.
      C.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된 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부활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것이다. 인간 생활 중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버지께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으며, 아버지는 그분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 요 17:1, 행 3:13, 눅 24:26.
      D.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포함의 단계로 옮겨지셨다. 포함의 단계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요 1:14, 고전 15:45하, 빌 1:19.
      E.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신성과 인성을 모두 소유하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고(행 13:33, 롬 8:29), 생명 주시는 영,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되셨으며(고전 15:45하, 요 20:22),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종(種)이 되게 하셨다(벧전 1:3).
      Ⅲ.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게 되심 곧 그리스도의 부활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모든 사람과 그분 자신으로 이루어진 합병체인데, 이 합병체에는 아버지의 집과 아들의 포도나무와 그 영의 아이라는 세 방면이 있다.
      A. 완결되신 하나님과 부활 안에서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합병체의 첫째 방면은 성전으로 예표된 아버지의 집이다 — 요 14:2, 2:16-21, 딤전 3:15.
      1. 아버지의 집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키신 선민으로 구성된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이다.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은 그분의 피로 구속받고, 그분의 영에 의해 그분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생명 주시는 영에 의해 신성한 요소로 변화되어 아버지의 집 안에 있는 ‘거처들’이 된다 — 요 14:2, 23.
      2.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구속받은 선민 안에 내주하시는 그 영과 함께, 구속받은 선민을 끊임없이 방문하심으로써 건축되어,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신 선민의 상호 거처가 된다.
      B. 완결되신 하나님과 부활 안에서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합병체의 둘째 방면은 아들의 참포도나무이다 — 요 15:1-8, 16.
      1.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표징인 참포도나무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2. 참포도나무의 가지들은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이며, 이들은 본성상 야생올리브나무의 가지들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감으로써(요 3:15) 참올리브나무 안으로 접붙여졌다(롬 11:17, 24). 참올리브나무와 참포도나무는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참올리브나무 안으로 접붙여지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여지는 것이다.
      3. 참포도나무의 접붙여진 가지들은 신성한 생명으로 거듭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 안으로 이끌렸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합병되었다.
      C. 완결되신 하나님과 부활 안에서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합병체의 셋째 방면은 그 영의 새 아이이다 — 요 16:13-16, 19-22.
      1. 새 아이 곧 새사람은 부활 안에서 완결되신 영에 의해 태어났다. 이 새 아이 곧 새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심으로 창조되었다 — 요 16:21, 13-15, 엡 2:15.
      2. 이 새 아이 곧 새사람은 아버지에 의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그분의 부활 안에서 거듭났으며, 그 영에 의해 믿는 이들의 영 안에 태어났다 — 벧전 1:3, 롬 1:4, 요 3:6하.
      3.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을 통해 떠나시는 것을 겪은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의 첫 번째 무리는 해산하는 여자였고, 부활 안에서 돌아오신 그리스도는 새로 태어난 아이 곧 새사람이셨다 — 요 16:20-22, 골 3:10-11.
      4. 믿는 이들은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로워짐으로 새사람을 입으며, 이 새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을 완결한다 — 엡 4:23-24.
      Ⅳ.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거처로 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를 그분의 거처로 삼으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구속받고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우주적인 합병체의 실재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4:2, 10-11, 17, 20, 23.
      A.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삶으로 그분을 우리의 모든 것으로 삼는 것이다. 그분을 우리의 처소, 우리의 영원한 거처로 삼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높고 가장 충만한 체험이다 —시 90:1, 91:1, 9, 요 15:4-5, 계 21:22.
      B.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한다 — 요 14:21, 23.
      1. 주님을 첫째가는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일에서 그분께 첫째 위치를 드리고, 삼일 하나님 안으로 합병되어 그분의 거처가 된다 — 계 2:4-5, 골 1:18하, 요 14:21, 23, 엡 3:16-17, 비교 시 27:4.
      2.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할 때, 주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아버지는 그분과 함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와 함께 거처를 정하신다. 이 거처는 상호 거처로서, 이 안에서 삼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한다 — 요 14:23.
      3. 주님을 사랑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더 갖게 될 것이고, 주님의 임재 안에 더 있을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분의 온 존재를 더욱 누릴 것이다. 주님의 회복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의 회복이다 — 고전 2:9-10, 엡 6:24.
      C. 우리 밖에 있는 성경의 항상 있는 말씀과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인 현재의 말씀을 대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한다 — 요 5:39-40, 6:63, 고후 3:6, 계 2:7.
      1. 밖에 있는 기록된 말씀에 의해 우리는 비밀한 분이신 주님에 대한 설명과 정의와 표현을 갖고, 안에 있는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해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실지적이신 주님의 임재를 갖는다 — 엡 5:26, 6:17-18.
      2. 우리가 주님의 항상 있는 기록된 말씀 안에 거한다면, 그분의 즉각적이고 살아 있는 말씀들이 우리 안에 거할 것이다 — 요 8:31, 15:7, 요일 2:14.
      3.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토양, 우리의 흙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며,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위로 열매를 맺는다 — 왕하 19:30, 사 37:31, 요 15:7-8.
      4.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말하고 그분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실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 요 15:7, 고후 2:17, 13:3, 고전 14:4하.
      5. 매일 아침 우리는 말씀을 접촉하고 그 영께서 우리를 접촉하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옛 처소인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서 우리의 새 처소이신 삼일 하나님 안으로, 곧 삼일 하나님의 상호 내재하는 하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 요 17:17, 21, 엡 5:26.
      Ⅴ.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같은 형상이 되고 영광스럽게 된 세 부분으로 된 교회로 이루어진 궁극적인 합병체이다 — 계 21:3, 22.
      A. 새 예루살렘은 단체적인 한 인격, 곧 단체적이고도 위대한 한 하나님-사람이다. 이 단체적인 인격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이 결혼하여 맺어진 부부이다. 이것은 그 영과 신부가 함께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어 한 실체가 된 것이다 — 계 22:17상.
      B. 하나님은 셋, 곧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서 단체적인 한 인격이시다. 수많은 믿는 이들인 우리도 단체적인 한 인격이다. 이 인격들은 이제 서로 안에 있다 — 요 14:20-21, 15:5, 요일 4:15-16.
      C.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를 위한 하나님의 장막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를 위한 우리의 성전이시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이다 — 계 21:2-3, 22-23, 시 90:1, 27:4, 신 33:27.
      D.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장막이며, 장막의 중심은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이다. 우주적이고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이 합병체 안으로, 곧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 안으로 합병되는 길은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다 — 계 21:3, 출 16:32-34, 히 9:4, 계 2:17.
      1.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는 금항아리이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 계신다. 아버지는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궤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그리고 내주하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사시면서 지성소의 실재가 되신다. 이것은 아들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시며, 그 영이신 아들께서 지성소의 실재이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2.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새 예루살렘 안으로 합병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을 때 이 위대한 합병체 안에서 그분에 의해 살며, 이 합병체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몸이고 결국에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3.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확대와 영원한 표현을 위해 결국 한 성, 곧 위대하고 신성하고도 인간적이며 우주적인 합병체로 확대되신다.
    • 메시지12
      새 예루살렘이 됨
      +
    • 성경: 계 3:12, 19:7, 21:2, 9-11, 22, 22:17

      Ⅰ.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생활을 위해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이상을 보아야 한다 — 계 21:9-11.
      A. 새 예루살렘은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하나의 실체로 연합되고 섞이고 건축되어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모든 구성 요소들은 동일한 생명과 본성과 조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단체적인 한 인격이다 — 요 14:20, 23, 계 21:2-3, 9-23.
      B.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중심 이상과 신성한 계시의 고봉의 완결이다 — 계 21:2, 9-11.
      1. 성경의 궁극적인 완결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는 것과 연관된다 — 계 21:2, 3:12.
      a.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그분의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될 수 있게 하셨는데, 이것은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구속받은 사람이 함께 연합되고 조성되어 한 실체, 곧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 계 21:3, 22.
      b. 결국 삼일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와 합병되심으로 새 예루살렘이 되시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과정을 통해 새 예루살렘이 된다 — 롬 5:10, 계 3:12.
      2.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사람들, 곧 신화(神化)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 요 3:6, 히 2:11, 롬 12:2, 8:29-30.
      a. 우리가 신화된다는 것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기 위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도록,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계 21:11.
      b. 믿는 이들의 신화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일종의 과정이다. 이것이 가장 높은 진리이자 가장 높은 복음이다 — 롬 1:1, 3-4, 5:10, 계 21:2, 3:12.
      3. 새 예루살렘은 단체적인 하나님-사람, 하나님의 확대와 확장과 표현, 곧 단체적인 하나님이다 — 롬 8:29, 히 2:10-12, 계 4:3, 21:10-11.
      a.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건축된 백성으로 확장되시고 표현되신 것이다 — 계 21:10-11.
      b.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확대와 확장, 영원 안에서의 하나님의 표현, 곧 단체적인 하나님이다 — 창 1:1, 요 1:1, 14, 고전 15:45하, 계 22:17.
      Ⅱ.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다 — 계 21:9-10.
      A. 사도 요한은 ‘거룩한 성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 계 21:2.
      1. 새 예루살렘은 신부인데, 이것은 새 예루살렘이 물질적인 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만족을 위한 단체적인 한 인격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2.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로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배필이다 — 계 19:7.
      B. 새 예루살렘은 신성한 로맨스의 궁극적인 완결, 곧 우주적인 한 부부, ‘영원히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이다 — 계 22:17.
      1. 성경의 주제는 우주적인 한 부부의 신성한 로맨스이다. 여기서 남자는 하나님 자신이고, 여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이다 — 사 54:5, 렘 2:2, 3:1, 14, 31:32, 호 2:7, 19, 요 3:29, 고후 11:2, 계 19:7.
      2. 신성한 로맨스는 아가에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아 1:2, 8:14.
      a. 추구하는 이는 과정을 거쳐, 솔로몬의 복사판이자 새 예루살렘의 상징인 술람미가 된다 — 아 6:13, 4.
      b.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 모두를 포함하는 단체적인 술람미일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약혼과 결혼 생활은 교회 시대와 왕국 시대와 영원 시대를 망라한다.
      a. 교회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약혼한다 — 고후 11:2.
      b. 결혼식 날은 천년왕국 시대일 것이다 — 계 19:7.
      c. 결혼 생활은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것이다 — 계 21:2, 9-10.
      4. 새 예루살렘은 하루와 같은 천 년(벧후 3:8) 동안 있을 천년왕국에서는 신부일 것이며, 그 후 영원토록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아내일 것이다(계 21:2).
      a. 천년왕국에서의 신부는 이기는 성도들만 포함할 것이다 — 계 3:12.
      b.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아내는 구속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을 포함할 것이다 — 계 21:7.
      C.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내인 새 예루살렘이 영원토록 우주적인 한 부부가 될 것임을 보여 준다.
      1.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총체이신 그 영은, 이제 완전히 성숙되어 그분의 신부가 된 믿는 이들과 하나 되신다 — 비교 엡 4:13, 15-16.
      2.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키신 백성의 완결은 하나 되어,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주적인 한 부부가 될 것이다.
      D. 회복된 교회 안의 이기는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 계 3:7-8, 12.
      Ⅲ. 주 예수님은 회복된 교회 안의 이기는 이를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곧 삼일 하나님 자신 안으로 건축된 기둥이 되게 하실 것이다 — 계 3:12상, 21:22.
      A. 요한계시록 21장 22절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 안에서 삼일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실 것임을 본다.
      1. 이기는 이가 성전 안에서 기둥이 되는 것은 삼일 하나님 안에서 기둥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 계 3:12상.
      2. 이것은 삼일 하나님과 연합되고 삼일 하나님으로 조성되는 것과 연관된다 — 엡 3:16-17상.
      B. 주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심으로써, 곧 우리의 타고난 요소를 가져가시고 그것을 그분의 신성한 요소로 대치하심으로써 우리를 기둥들이 되게 하신다 — 롬 12:2, 고후 3:18.
      1. 요한계시록 3장 12절에서 ‘되도록 하겠다’라는 말은 우리를 무언가로 조성하는 것, 곧 창조의 방식으로 우리를 건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오늘날 교회생활에서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기둥들로 만들고 조성하기를 갈망하신다.
      C. 회복된 교회 안에서 주님의 일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기둥들로 조성하시는 것이다 — 엡 3:16-17상, 계 3:12상.
      Ⅳ. 회복된 교회 안의 이기는 이 위에 주 예수님은 그분의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분의 새 이름을 기록하실 것이다 — 계 3:12하.
      A.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이 이기는 이 위에 기록된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과 주님께서 이기는 이를 소유하신다는 것을 가리키고,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성(새 예루살렘)과 주님 자신, 이 모두가 이기는 이에게 속한다는 것을 가리키며, 이기는 이가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과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B.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그 성 자체를 가리키며, 주님의 이름은 주님 자신을 가리킨다 — 계 3:12하.
      C.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이름이 이기는 이 위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와 새 예루살렘의 본성과 주님의 인격, 이 모두가 이기는 이 안으로 일해 넣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4:19-20, 23, 엡 3:16-17.
      D. 새 예루살렘을 이기는 이에게 주는 상으로 언급하신 것은 이 약속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천년왕국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오직 이기는 이들에게만 주는 상이 될 것이다 — 계 3:12하.
  • 개요

    현충일 특별 집회 : 빌립보서에 계시된 대로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누림

    • 메시지1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의 영으로 돌이킴으로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하여 그리스도를 얻음
      +
    • 성경: 마 3:17, 12:18, 16:24, 막 9:7-8, 고후 2:10, 갈 1:15상, 16상, 골 2:16-17
      Ⅰ. 하나님의 마음이 갈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이다 — 마 3:17, 12:18, 17:5, 갈 1:15상, 16상.
      A. 하나님의 마음이 갈망하는 것은 우주 안의 모든 사람과 모든 일과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머리이신 그분 아래 통일될 때 완전한 평화와 조화가 있을 것이고, 우주 안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표현할 것이다 — 골 1:15-19, 3:10-11, 엡 1:10, 22-23, 4:15-16, 사 55:11-13.
      B. 우리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한다. 우리의 일은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있으며, 교회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있다 — 사 43:7, 고후 4:5, 고전 15:58, 요 17:23, 엡 1:23, 3:19-21.
      C.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재이시다 — 골 2:16-17.
      1.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그리신 거대한 한 폭의 그림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 골 1:15-17, 시 19:1-6, 롬 1:20, 히 11:3.
      2.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매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과 안식을 가지며, 매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체험하고, 일 년 내내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과 누림이시다 — 골 2:16-18상.
      D.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자신 외에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내적으로 보고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갖고 계신 목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 고전 1:9.
      1.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의 생명이 되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숨(요 20:22), 생명의 물(4:14, 7:37-39), 생명의 떡(6:35, 48), 생명의 빛(1:4, 8:12), 생명의 거처(14:23, 15:1, 4-5)이시다.
      2. 우리는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각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며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그리스도를 번식시킴으로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 골 1:9-10.
      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정도까지, 즉 우리의 큰 기쁨과 우리의 지극히 큰 보상이 되시는 정도까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 엡 3:16-19, 시 43:4상, 창 15:1, 요 15:11, 롬 14:17, 빌 3:14.
      4.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 그 영이심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중점을 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단지 객관적인 교리에 불과할 것이다 — 고전 15:45하, 고후 3:17-4:1, 딤후 4:22, 고전 6:17, 요 4:24.
      5. 그리스도는 또한 말씀이시다. 우리가 우리의 영으로 주님의 말씀을 접촉할 때 그분의 말씀은 영이 되고, 그분의 말씀이 영이 될 때 그 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그분께 완전히 점유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그분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신다 — 엡 6:17-18, 요 5:39-40, 6:63.
      E.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누리는 비결을 배울 때 주님의 회복에 신실할 것이다 — 막 9:7-8, 행 26:19, 22, 고전 1:2, 9-10, 2:9-10, 고후 2:10, 딤후 4:9-18, 빌 1:19-21상.
      1. 우리는 그분 이외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에 집중하지 말고 그분께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중심으로 세우신 그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럴 때 믿는 이들 사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 고전 1:9, 계 2:4-5, 골 1:17하, 18하.
      2. 어떤 사람이 주님의 회복을 떠난다는 것은 그가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 안전히 지켜지고 분열을 일으키는 데서 보호받을지의 여부는 우리가 본 이상에 달려 있다. 오직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출 때에만 우리는 분열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3. 우리가 우리의 유일한 중심과 선택과 선호와 입맛과 누림이신 그리스도만 주의한다면, 이것에 의해 우리는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주님의 회복 안의 교회 안에 보존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망하거나 빗나가 주님의 회복을 저버릴 것이다.
      Ⅱ. 우리는 반드시 빌립보서에 나오는 바울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해야 한다.
      A.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생활로 취했다 — 빌 1:21상.
      B.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표현으로 취했다 — 빌 1:20.
      C. “여러분 안에 이 생각이 있도록 하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그의 생각으로 취했다 — 빌 2:5.
      D.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신이 살아 낸 의로 취했다 — 빌 3:9.
      E.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여겼다 — 빌 3:8.
      F. “나는 오직 한 가지 일만을 합니다. 즉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나에게 주실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위로 부르셨습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푯대로 취했다 — 빌 3:13-14.
      G. “형제님들, 무슨 일에든지 참되며, 무슨 일에든지 장중하며, 무슨 일에든지 의로우며, 무슨 일에든지 순수하며, 무슨 일에든지 사랑스러우며, 무슨 일에든지 평판이 좋아야 하며, 그리고 어떤 미덕과 어떤 칭찬이 있거든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미덕들로 취했다 — 빌 4:8.
      H.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능력으로 취하여 그의 품위 있는 생활로 살아 내었다 — 빌 4:13.
      I. “왜냐하면 나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만족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천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고 풍부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각각의 일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비결로 취했다 — 빌 4:11-12, 비교 4-7절.
      J. “우리의 국적은 하늘들에 있으므로,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주,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분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자신의 운행에 따라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형시켜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기대로 취했다 — 빌 3:20-21.
      Ⅲ. 우리는 다음의 방면들에 따라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얻으시도록 한다(빌 3:12, 비교 합 1:1).
      A.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를 감지하도록 한다 — 요 20:22, 출 33:11상, 14.
      1. 우리는 오직 한 가지, 곧 우리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 고후 2:10, 비교 엡 4:30, 살전 5:19.
      2. “그분께서 이틀 뒤에 우리를 살아나게 하시고 / 제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게 되리라.”(호 6:2) — 셋째 날의 실재는 부흥의 실재를 가지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격, 임재이다(합 3:2).
      B.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가 내적으로 밝고 분명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다 — 계 22:1, 요 1:4, 8:12, 겔 1:22, 26.
      C.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음식과 영적인 음료이신 그리스도를 내적으로 공급받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다 — 고전 10:3-4, 요 6:57, 4:10, 14, 24, 고전 12:3하, 13.
      D.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가 생명이 자라서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한다 — 골 2:19, 고후 3:18, 롬 12:2.
      E.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가 활력을 갖고 행동을 취하도록 한다 — 단 11:32하, 행 1:8, 5:20, 13:1-4, 고전 14:31, 비교 겔 3:1-3, 시 68:11-13, 19.
      Ⅳ.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하고 모든 일에서 그분을 얻으려면, 반드시 계속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기를 배워야 한다.
      A. 몸의 실재이신 주님께서 그 영으로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한다 — 딤후 4:22, 엡 1:17, 2:22, 3:5, 16, 4:23, 5:18, 6:18.
      B.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회생활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실지적인 비결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이다 — 롬 8:6.
      C. 영으로 돌이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이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풍성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살고 신약 사역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길은 계속 우리의 자아를 거절하고 우리의 혼생명을 잃어버리며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기를 훈련하는 것이다 — 고후 3:3, 6, 16-4:1, 딤후 4:22, 빌 1:19, 롬 8:16.
      D. 우리가 성령의 능력에 의해 수행하는 주님의 일은 영으로 시작해서 영으로 끝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영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의 영으로 끝난다 — 고전 2:4-5, 13, 15, 고후 3:6, 13:3, 비교 시 42:7상.
      E.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받아들이는 영이 있고, 하나님을 살아 내고 표현하는 혼이 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살아 내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과 오락이 되어야 한다 — 요 4:10, 14, 24, 6:57, 눅 1:46-47, 고전 10:31.
      F. 하나님께서 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표현할 목적을 위해서이지, 혼 자체의 누림이나 선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는 이기적인 누림이 없다. 바울의 사역은 믿는 이들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의 풍성을 은혜로 믿는 이들에게 분배하는 것이었다 — 창 1:26, 2:7, 엡 3:2.
      G. 우리의 자아를 부인한다는 것은 혼의 갈망과 선호와 선택을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첫 번째 죄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 곧 자아를 만족시킨 것이었다 — 창 3:1-7.
      H. 우리의 자아(우리의 타락한 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 사탄과 연결되어 있고 귀신들과 연결되어 있다 — 마 16:21-27.
      1. 여호와의 정숙하지 못한 아내인 이스라엘은 악하게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을 저버리면 온갖 종류의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호 4:1, 엡 4:17-21.
      2.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육체 안에 있을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처럼 처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빌 2:1-2, 요일 1:3, 엡 4:17-19, 창 20장, 비교 12:11-13, 13:18.
      3.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서 휴가를 가질 수 없다. 우리 스스로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 요일 1:3, 비교 시 31:20.
      I. 기도는 진정한 자아 부인이다.
      1. 사실상 우리는 기도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오, 주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비록 짧은 기도이지만 이러한 기도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 롬 10:12-13, 갈 2:20.
      2.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귀신들을 내쫓기’ 위해) 우리 자신의 노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적용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 막 9:14-29.
      3. 기도하는 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치물이 되신 것에 대한 이상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완전히 ‘그리스도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 — 막 9:2-13.
    • 메시지2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비결을 배움으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그리스도를 얻어 교회 안에서 그분께 영광을 돌림
      +
    • 성경: 빌 1:19-21상, 2:2, 3:14, 4:6-8, 11-13
      Ⅰ. 바울은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비결을 배웠다 — 빌 4:11하-13.
      A. “비결을 배웠습니다.”라는 말은 바울이 새로운 상황, 곧 새로운 환경 안으로 들어갔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그 환경 안에서 사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B.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는 직역하면 ‘나는 입문하였습니다.’를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이 은유는 어떤 사람이 비밀 단체에 입문하여 그 단체의 기본적인 원칙을 배운 것을 가리킨다.
      C. 바울은 그리스도께 돌이킨 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입문하였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취하고(골 3:4), 그리스도를 살고(빌 1:21상), 그리스도를 확대하고(20절), 그리스도를 얻고(3:8, 12), 교회생활을 하는(1:8, 19, 2:1-4, 19-20, 4:1-3) 비결을 배웠다.
      Ⅱ. 믿는 이들은 비결을 배우고 있는 제자들 곧 배우는 이들이다. 여기서 비결을 배운다는 것은, 믿는 이들이 실재의 영께서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삶의 실지 상태의 모든 실재 안으로 그들을 안내하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활 안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 요 16:13, 엡 4:20-21.
      A.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사람의 본으로서 이 땅에서 사신 인간 생활은 그분 자신의 인성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는 생활이었다(요 5:19, 30).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그러한 인간 생활을 통하여 그분의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 사람에 대한 그들의 관념이 개혁되었다(빌 3:10, 1:21상).
      B.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의 인성을 부인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사셨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히 5:8), ‘순종하시어 죽기까지 하셨으며,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빌 2:8).
      C.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아니라, 순종의 생명인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 그리스도를 배운다(마 11:29). 제자는 자신의 인간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사는 사람이다.
      D. “나는 회복 안에서 십팔 년 동안 워치만 니 형제님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았다. 내가 니 형제님에게서 본 모든 것이 나를 제자로서 훈련시켜 주는 것이 되었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9권, 활력 그룹, 2장, 96-97쪽)
      E. 주님의 제자들 곧 주님께 배우는 이들인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은혜이신 그분의 훈련 아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인자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났다. 이 은혜가 ‘우리를 훈련시킴으로써,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적인 욕망을 거절하게 하고, 현시대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하며, 복된 소망 곧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게 한다’ — 딛 3:4, 2:11-13.
      F. 교회생활 안에 있는 자매들은 주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연장한 자매들은 주님과 하나 되어 젊은 자매들을 훈련시켜 ‘남편을 사랑하게 하고 자녀를 사랑하게 하며 신중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고 집안일을 잘하게 하며 선하게 하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딛 2:3-5.
      G. 주님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가련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나타내 보이기를 갈망하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긍휼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 마 9:12-13, 미 6:6-8, 막 12:33.
      Ⅲ. 빌립보서 4장에 나오는 비결은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 빌 4:13, 찬송가 1072장.
      A.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사람이었으며(고후 12:2상),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갈망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바울은 이분, 곧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 이 말은 그가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한 결론의 말이다. 이 말은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우리와 주님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한 주님의 말씀인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를 다른 표현 방법으로 말한 것이다.
      B. 과거에 바울은 완전히 유대 종교 안에서 율법 아래 있었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 안에서 발견되었지만, 주님께 돌이켰을 때 율법과 그의 이전 종교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져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 고후 12:2상.
      C. 이제 바울은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기대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온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잠기고 그리스도로 적셔져,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그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열망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때에만, 그리스도는 표현되시고 확대되실 것이다 — 빌 3:9상, 1:20.
      D. 우리는 한 면으로 그리스도께서 능력 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고(빌 4:11-12), 또 다른 한 면으로 그리스도께서 능력 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참되고 장중하고 의롭고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평판이 좋을 수 있다(8절).
      E. 바울이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은,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어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인간 미덕들로 삶으로써 무한히 위대하신 그분을 확대하는 것에 적용된다. 이러한 미덕들을 지닌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Ⅳ. 우리는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실지적인 길을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에서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A. 그리스도 자신이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이시다 — 사 9:6, 요 14:27, 눅 7:50, 롬 3:17, 5:1, 8:6, 15:13, 16:20.
      B. ‘하나님께’는 누군가를 향한 동작을 나타내며, 생생한 연결과 교제의 의미에서 교통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의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교통하는 가운데’이다 — 빌 4:6.
      C.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한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로 그분과 교통할 때, 우리 안에 주입된 평안이신 하나님이다(빌 4:9). 하나님의 평안은 고민에 대한 안정제이고, 염려에 대한 해독제이다(요 16:33).
      D. 평안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순찰하시면서, 우리가 고요하고 안정되도록 지키신다(비교 사 30:15상). 우리가 염려 없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모든 환경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하신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살며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우리의 운명을 이루도록 우리를 돕기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롬 8:28-30, 마 10:29-31, 고후 4:15-18).
      Ⅴ.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비결을 배우는 것은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우리의 머리, 우리의 남편이시다(찬송가 568장). 하나님을 접촉하는 기도는 마음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는 말로 이루어진다.
      A. 우리는 슬프고 우울하고 낙심되는 상황에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문제들을 주님께 가져가 그것들에 대해 주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그분은 가장 잘 들어주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감정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을 동정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실 수 있다.
      B. 우리는 주님과 충분히 대화하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쏟아부을 때, 주님과의 친밀함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주님을 조금 더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시간에 주님을 친밀하게 접촉하는 것이 주님과 통상적인 교통을 갖는 것보다 수백 배 더 낫다. 이렇게 주님을 접촉함으로 우리는 생명이 자라게 된다 — 시 62:6-8, 56:8, 비교 삼상 1:15.
      C.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없고,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을 주님과 한 번도 나누어 본 적이 없으며, 자신의 사적인 일들에 관해 주님과 한 번도 대화해 본 적이 없다면, 그는 주님과 한 번도 친밀한 교통을 가져 본 적이 없고 주님을 전혀 깊이 안 적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말씀드리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끌릴 수 있다.
      D. 주님은 우리 문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동정하신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짊어지고자 하시며, 우리가 하는 말에 기쁘게 귀 기울이신다. 살아 있는 생명수이신 그분을 누리려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반석이신 그분께 말해야 한다 — 민 20:8, 고전 10:4, 출 17:6, 찬송가 202장.
      E. 시편 102편의 제목은 “고통당하는 사람이 지칠 대로 지쳐 여호와 앞에 하소연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불평이 가장 좋은 기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불평하는 동안 하나님은 즐거워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그분께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이루어지게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 롬 8:28-29.
      F. 시편 73편은 추구하는 시편 작가의 진실한 기도를 기록한 것이다. 이 시편 작가는 자신은 고난받는데 악인들은 잘되는 것 때문에 자칫 실족할 뻔하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한 것이 헛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물질적으로 잘되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온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 시 73:12-16.
      1. 시편 작가는 악인들이 잘되는 것에 관해서 느꼈던 당혹감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성소 안에서 얻었다(시 73:17). 먼저, 하나님의 성소 곧 그분의 처소는 우리의 영 안에 있으며(엡 2:22), 또한 하나님의 성소는 교회이다(딤전 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야 하며 교회 집회와 사역 집회에 가야 한다.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계시를 받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2. 주님을 추구하는 이는 주님과 정직하게 대화하고 하나님의 성소 안에 들어감으로써 결국 주님의 빛 비춤을 받아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 주님 외에 누가 제게 있겠습니까? / 땅에서도 주님 외에 바랄 것 없습니다. 제 육체와 마음은 쇠약해도 / 하나님은 제 마음의 반석이시며 제 영원한 몫이십니다.” — 시 73:25-26.
      3. 하나님께서 그분을 추구하는 이들에 대해 갖고 계신 의도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누림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갖고 계신 궁극적인 갈망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그리스도를 얻어 교회 안에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 빌 1:19-21상, 3:7-8, 사 43:7, 고전 10:31, 6:20, 벧전 4:11, 엡 3:16-21.
    • 메시지3
      한 가지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속부분들과 하나 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기쁨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어 우리가 뜻을 세우고 행하게 하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혼 안에서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누림
      +
    • 성경: 빌 1:4, 8, 18, 25, 27, 2:2, 12-13, 17-18, 28-29, 3:1, 4:1, 4, 10, 15-16
      Ⅰ. 엄밀히 말해서,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에 관한 책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 관한 책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은 주로 우리의 영 안에 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은 우리의 혼(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에 있다.
      A.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에 관한 책이며, 그분을 체험하고 누린 결과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책이다 — 빌 1:4, 18, 25, 2:2, 17-18, 28-29, 3:1, 4:1, 4.
      B. 빌립보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교통하였다. 그들이 복음의 확산에 참여한 것은 사도에게 재정적인 공급을 한 것을 포함했다 — 빌 4:10, 15-16.
      1.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은 복음을 확산시키는 생활이고, 복음을 전하는 생활이며, 개인주의적인 생활이 아닌 단체적인 생활이다. 복음이 확산되는 가운데서, 우리가 더 많이 교통할수록 그리스도를 더 많이 체험하고 누리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 때, 우리의 자아와 야심과 선호와 선택은 처리된다.
      2. 우리가 말할 때든지 잠잠할 때든지, 우리의 생명과 생활과 존재와 전 인격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어야 한다 — 빌 1:20, 4:22, 비교 고후 3:3.
      C.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명령한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과 더불어 한 혼으로 함께 분투하는 것’이다 — 빌 1:27.
      1. 복음의 일을 위해 한 혼이 되고 같은 혼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위해 한 영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어렵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같은 혼이 된 형제였다 — 빌 2:19-21, 비교 30절.
      2. 한 혼이 되려면, 우리의 영이 거듭난 후에 더 나아가 우리의 혼이 변화되어야 한다 — 고후 3:18, 롬 12:2.
      3. 우리가 우리의 애정과 생각과 결정에서 하나가 아니라면, 우리는 한 혼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혼 안에서 하나가 아닌 한, 우리는 복음의 확산을 위한 교통 안에 있지 않은 것이며, 우리의 생활은 복음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
      4. 교회 안의 모든 지체들이 한 영 안에 있고 한 혼을 가질 때, 이러한 하나는 확신을 주고 굴복시키고 매혹적일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 것이다.
      D.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이 없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혼, 곧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있다. 음식을 억지로 먹지만 음식을 누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많은 경우 우리도 그리스도를 체험하지만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한다.
      E.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누림을 갖고 있지 않을까 봐 다소 염려가 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78년, 1권, 그리스도를 체험함, 497쪽)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그들의 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많이 누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혼 안에서 하나가 아니며 혼 안에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 빌 2:2.
      Ⅱ. 우리가 혼 안에서 하나가 되려면 한 가지 것을 생각해야 한다. 빌립보서에서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알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 ‘한 가지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붙잡고 소유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 빌 1:20-21, 2:2, 5, 3:7-14, 4:13.
      A.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극도로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누려야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굳어진 것(고후 3:14)과 눈먼 것(4:4)과 반역적인 것(10:4-5)과 부패된 것(11:2-3)에서 구출되어야 한다.
      B. 우리의 생각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과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게 되어 우리 가운데 불일치가 생기게 된다 — 고전 1:10, 빌 3:8-9, 15, 4:2.
      C. 주님의 회복 안에서 한 가지 것, 곧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과 전부로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다 — 골 3:10-11.
      1.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서 초점을 맞추고 강조하며 공급해야 할 한 가지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다 — 딤전 1:3-4.
      2.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내용은 그리스도이다. 사실상, 세 단계로 된 충만한 사역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신성한 경륜이시다(요 1:14, 고전 15:45하, 계 1:4, 3:1, 4:5, 5:6). 하나님의 갈망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인격만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골 1:17하, 18하, 고후 12:2상, 2:10, 3:3).
      D. 빌립보 사람들 가운데는 생각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의견 차이가 있었으며(빌 4:2), 사도는 이것 때문에 염려했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이 같은 것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 가지 것을 생각하여 자신의 기쁨이 넘치게 해 줄 것을 부탁했다(2:2).
      1. 한 가지 것 외의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한 가지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한 가지 것을 생각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교회생활, 곧 몸의 생활을 위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으로 가득해야 한다.
      2. 빌립보의 믿는 이들의 생각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서로 다른 수준의 사랑이 있었다(빌 2:2). 그들은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향해 같은 사랑을 가져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성도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조절되고 처리되었다면, 우리는 성도들을 사랑하면서 그리스도를 누릴 것이다.
      3. 혼 안에서 하나 되는 것, 곧 혼 안에서 연결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더욱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우리는 합당한 혼, 곧 다른 성도들의 혼과 하나인 ‘함께하는 혼’을 가져야 한다.
      Ⅲ. 혼 안에서 하나가 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감정들, 곧 그분의 내면적인 애정과 부드러운 긍휼과 동정을 상징하는 그분의 ‘속부분들’과 하나 되어야 한다 — 빌 1:8.
      A.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서 그분의 속부분들에서 체험하신 것에는 그분의 사랑과 갈망과 즐거움과 느낌이 포함된다 — 시 16:3, 7(각주 1 참조).
      B. 바울은 자신의 타고난 내적 존재 안에서 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속부분들 안에서 살았다. 우리가 체험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분의 속부분들, 곧 그분의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 안에 있어야 한다 — 골 3:12.
      C. 빌레몬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속부분들 안에서 사는 몸의 생활에 대한 그림을 본다 — 몬 7, 10-12, 20.
      1.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로마의 감옥에 있었을 때 바울을 통해 구원받았다. 바울은 그를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낳은 아들’이라고 불렀다 — 몬 10.
      2. 바울이 그의 서신과 함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을 때, “내가 그(오네시모)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내 심장과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 몬 12.
      3. 바울의 내적인 애정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오네시모와 함께 빌레몬에게 갔다. ‘심장’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빌립보서 1장 8절에 나오는 ‘속부분들’과 같다. 이 말은 내적인 애정과 부드러운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상징한다 — 골 3:12.
      D. 바울은 그리스도의 느낌을 자신의 느낌으로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살았다. 그리스도께서 몸에 대해 가지신 느낌이 몸에 대해 바울이 가진 느낌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몸의 생활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 고후 12:15.
      E.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몸과 동일시한다면, 몸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생활은 완전히 몸의 생활일 것이며, 주님은 오늘날 이 땅에서 그분의 몸의 표현을 얻으실 것이다 — 마 16:24, 엡 4:16.
      F.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속부분들 안에서 더 많이 살수록,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더 커지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더 강해질 것이다 — 고전 12:26-27, 롬 12:15.
      Ⅳ. 혼 안에서 하나가 되려면 우리는 우리 속에서 활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기쁨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어 ‘우리가 뜻을 세우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행하도록 하신다’ — 빌 2:12-13.
      A.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뜻을 세우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기쁨을 이루어 내시기 위해 우리 안으로 ‘뜻을 세움’을 일해 넣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뜻을 세우는 것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B. 우리는 굴복되고 부활한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내주하시는 삼일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기를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내주하시는 삼일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기쁨을 위해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어 우리가 뜻을 세우도록 하신다.
      C. 우리는 아가 4장 4절에 있는 예표를 통해 우리의 변화된 의지를 볼 수 있다. 이 절은 주님을 사랑하여 추구하는 이에 관해서 “그대의 목은 /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 망대, / 천 개의 작은 방패와 / 용사들의 큰 방패가 모두 걸려 있는 망대 같다오.”라고 말한다.
      1. 성경은 자기 뜻대로 행하는 이들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목이 곧은 사람들처럼 완고하고 교만하다(사 3:16). 이처럼 목은 사람의 의지를 가리킨다. 주님은 사람의 의지가 복종하는 것을,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신다.
      2. 목이 망대와 같다는 것은, 추구하는 이가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사탄에게 어떤 영향도 받지 않게 될 정도로 그 의지가 하나님에 의해 강화된 것을 의미한다. 추구하는 이의 의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윗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데로 이끌렸고, 그리스도께 사로잡혔다.
      3. 망대 안에 두어진 무기는 원수가 믿는 이의 의지를 강탈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려고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승리를 상징한다. 작은 방패들과 큰 방패들은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용사들은 힘을 의미한다.
      4. 요약하면, 아가 4장 4절은 믿는 이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의지에 복종하고, 믿는 이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해 망대만큼 강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믿는 이는 깨어 경계하고 있으며, 원수가 자신의 복종하는 의지를 강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D.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기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순종하는 생명으로 체험하는 것이 노아가 건조한 방주의 예표에 나타나 있다. 방주를 건조하는 것은 우리의 체험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되시는 실지적이신 현재의 그리스도를 건축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기쁨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를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 빌 2:8, 12-13.
      1. 노아는 방주를 공들여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갔는데, 이 방주가 곧 하나님의 구원이었다. 우리에게는 실지적이신 현재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이 되신다.
      2. 그리스도의 예표인 방주는 다만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예표일 뿐만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새사람인 교회의 예표이기도 하다 — 창 6:14, 고전 12:12, 엡 2:15-16, 골 3:10-11.
      3. 노아는 방주를 건조하고 방주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하나님께서 홍수로 악한 세대를 심판하실 때에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세대에서 분별되어 새 시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창 8:13-19, 벧전 3:20.
      4.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체험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되시는 실지적이신 현재의 그리스도를 건축하는 것을 통해 교회를 건축하고 또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하나님께서 대환난을 통하여 오늘날의 악한 세대를 심판하실 때에 구원받고(마 24:37-39, 눅 17:26-27, 살전 5:3) 그 세대에서 분별되어(눅 21:36, 계 3:10) 새 시대인 천년왕국 시대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메시지4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을 앎
      +
    • 성경: 빌 3:10, 12-14, 요 11:25, 행 2:24, 고후 1:8-9, 계 1:17하-18, 2:8
      Ⅰ.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를 열망했다 — 빌 3:10.
      A. 빌립보서에서 중심적인 문제는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알고 체험하는 것이다 — 빌 2:2, 5, 3:7-10, 4:10, 13.
      B.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을 갖는 것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10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체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C.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은 우리가 깨달은 그리스도의 탁월함이다 — 빌 3:8.
      D.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그런 다음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추구했다. 즉 체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기를 추구했다.
      E.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알다’라는 말은 ‘체험하다’와 똑같은 뜻이다.
      1.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을 체험하고, 그분을 누리고, 그분께 참여하고, 그분께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 빌 3:9-10.
      2.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이처럼 그분을 체험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빌 3:8.
      F.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순히 그분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자체를 얻는 것이다 — 빌 3:8, 고후 2:10, 비교 골 2:9, 16-17.
      1.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빌 3:7-8.
      2.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대가를 지불함으로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체험하고 누리며 소유하는 것이다 — 엡 3:8, 비교 계 3:18.
      3.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얻는 생활이다 — 엡 3:8.
      a.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를 상당히 체험하고 얻었지만, 자신이 그리스도를 완전히 체험했다거나 최대한으로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 빌 3:12.
      b. 바울은 여전히 목표, 곧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한 정도로 얻는 것을 위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 빌 3:12-14.
      4. 바울은 가장 충만하게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유대교에서의 체험들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과거의 체험 가운데 머물려고 하지도 않았다 — 빌 3:7-8, 13.
      a. 우리가 과거의 체험을 잊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면, 그 체험들이 아무리 참된 것이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더욱더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된다 — 빌 3:13, 히 6:1상.
      b. 그리스도는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시고 우리가 소유해야 할 그분의 풍성은 광대한 영토와 같기 때문에, 바울은 이 영토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하고 있었다 — 엡 3:8, 빌 3:13.
      G.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 안에서 발견된 결과이다 — 빌 3:9-10.
      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로 인해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 빌 3:9.
      2.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의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게 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알지 못하게 된다 — 빌 3:9상.
      Ⅱ.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알고 체험하기를 열망했다 — 빌 3:10.
      A.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그분의 부활 생명이다 — 엡 1:19-20.
      B.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이시다 — 요 11:25.
      1.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이이다. 내가 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보아라, 영원토록 살아 있으며,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 계 1:17하-18.
      a. 타락으로 인하여 죽음이 들어왔고, 이제는 모든 사람을 음부로 모으기 위해 운행하고 있다.
      b. 죽음과 음부의 열쇠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 구주의 손에 있다 — 계 1:18.
      2. “처음과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가 이렇게 말한다.” — 계 2:8.
      a. ‘다시 살아난’은 부활을 가리킨다.
      b. 주님은 죽으셨지만 다시 사셨다. 그분은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지만, 죽음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부활이시기 때문이다 — 행 2:24, 요 11:25.
      c. 그리스도는 음부로 들어가셨고, 죽음을 통과하셨으며, 죽음을 이기셨고, 승리에 차서 죽음에서 나오셨다. 이것이 부활이다 — 비교 벧전 3:18-22.
      3. 부활은 한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장애물들, 심지어 모든 것 중 가장 큰 장애물인 죽음까지도 돌파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 행 2:24, 엡 1:19-20.
      a. 주님의 부활은 천연적인 영역의 모든 장애물을 깨뜨렸다. 따라서 예수님은 공간과 시간을 포함하여 어떤 것에도 더 이상 매이지 않으신다 — 비교 요 7:6-8.
      b. 우리에게 가장 큰 제한은 공간과 시간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제한할 수 없다.
      c. 죽음은 가장 큰 제한이지만, 부활이 죽음을 정복했다. 그러므로 부활이 모든 것 중 가장 큰 능력이다 — 빌 3:10, 엡 1:19-20.
      C. 부활은 죽음에 의해 어떤 손상이나 해를 당하지 않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다 — 요 11:25, 계 1:17하-18, 2:8.
      1. 죽음은 부활 생명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 — 행 2:24.
      2. 죽음은 다른 형태의 생명에는 온갖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손상할 수 없는 오직 한 종류의 생명이 있는데, 바로 부활 생명이다 — 요 11:25, 빌 3:10.
      a. 부활은 죽음을 통과하고 죽음에 붙잡힐 수 없는 생명이다.
      b. 성경의 완전한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 자신이 부활 생명이시다 — 롬 4:17.
      D. 그 영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부활 능력의 실재이시다 — 롬 8:9-11, 고전 15:45하, 요일 5:6.
      1.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체험하려면,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음을 보아야 한다 — 고전 15:45하.
      2. 부활에 대한 가장 높은 정의는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게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생명 주시는 영으로 변형되신 것이다 — 고전 15:45하, 요 20:22.
      E. 부활의 원칙은 타고난 생명이 죽음당하고 그 자리에 신성한 생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 고후 1:8-9.
      1. 죽음을 통과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것이 부활이다 — 계 2:8.
      2. 부활은 죽음 밖으로 나와 천연적인 영역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 행 2:24.
      3. 부활은 어떤 사건이나 환경도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진 우리를 억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후 1:8-9.
      4. 부활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존재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부분이 부활 안에서 높아져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하나 된 것을 의미한다 — 롬 6:4-6.
      5.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 요 6:57, 롬 8:11.
    • 메시지5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룸
      +
    • 성경: 빌 3:7-10, 요 11:25, 엡 1:19-20, 골 1:24
      Ⅰ.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통을 알기를 열망했다 — 빌 3:10.
      A. 그리스도께는 고난과 죽음이 먼저 오고 나서 부활이 뒤따랐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분의 부활 능력이 먼저 오며 그다음에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 뒤따른다 — 빌 3:10.
      B. 우리는 먼저 그분의 부활 능력을 받는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 능력으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할 수 있다.
      C.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두 범주가 있다. 한 범주는 구속을 성취하기 위한 고난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께서 이미 완성하셨다. 다른 한 범주는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한 고난이다. 이것은 사도들과 믿는 이들이 채울 필요가 있는 고난이다 — 골 1:24.
      1. 우리는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없지만, 몸을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 비교 계 1:9, 딤후 2:10, 고후 1:5-6, 4:12, 6:8-11.
      2.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구속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요 1:29), 밀알이신 그리스도는 재산출과 건축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12:24).
      a. 주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로서, 부활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많은 밀알 속에 해방하시기 위하여, 죽음을 통해 그분의 혼생명을 잃으셨다 — 요 10:11, 15, 17-18.
      b. 하나의 밀알은 몸의 건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고난을 완성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많은 밀알들인 우리가 하나의 밀알이 고난받으신 것과 같이 고난받아야 한다 — 요 12:24-26.
      (1) 많은 밀알인 우리 역시 부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죽음을 통하여 혼생명을 잃어야 한다 — 요 12:25.
      (2)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섬기기 위하여 그분을 따르는 것이며, 우리의 혼생명을 잃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생활하는 이 길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다 ― 요 12:26.
      (3) 교회가 생겨나고 증가하는 길은 사람의 영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에 의한 것이다 — 요 12:20-24.
      D. 우리의 변화를 위한 고난과 몸을 위한 고난에는 차이가 있다 — 고후 3:18, 빌 3:10, 골 1:24.
      1.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이 말한 것은 변화를 위한 고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2. 빌립보서 3장 10절과 골로새서 1장 24절을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이 말한 고난이 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3.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으로 여겼다.
      4.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그분의 고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 빌 3:10, 비교 행 9:4-5.
      5. 몸을 위해 고난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 골 1:24, 빌 3:10.
      Ⅱ.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생활의 틀로 취하기를 갈망했음을 가리킨다.
      A.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김, 그리스도를 얻음, 그분 안에서 발견됨, 그분을 앎, 그분의 부활 능력을 앎,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앎은 모두 한 가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으로 귀결된다 — 빌 3:7-10.
      B.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의 틀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 빌 3:10.
      1. 빌립보서 3장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문제이다 — 빌 3:7, 9, 12-16.
      2. 우리는 이러한 죽음의 틀 안에 넣어졌고, 이제 우리는 이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 갈 2:20, 롬 6:3-5.
      3.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능력은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이끌며, 우리를 짊어지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틀 안에 넣는다 — 요 11:25, 엡 1:19-20.
      C.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기 위해 인간 생명을 계속적으로 죽음에 넣으신 그리스도의 체험을 가리킨다 — 요 6:57상.
      1.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심으로 주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계셨고 하나님을 사셨다 — 갈 2:20, 3:1, 5:24.
      2. 그분은 항상 자신의 인간 생명을 죽음에 넘기셨기 때문에, 그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었다 — 요 10:10하-11, 17.
      3. 그분은 사시면서 또한 죽고 계셨다. 즉 새 창조물 안에 있는 삶을 사시기 위해 옛 창조물에 대하여 죽고 계셨다. 이것이 빌립보서 3장 10절에 나오는 ‘그분의 죽음’의 의미이다.
      D.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생활의 틀로 취하는 것이다 — 요 10:10.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가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하는 틀이다. 이것은 밀가루 반죽이 빵틀에 넣어져 그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과 흡사하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 안에 두셨고, 우리가 이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날마다 우리를 형태 짓고 계신다 — 롬 6:3-4.
      3. 우리의 생활은 이러한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곧 신성한 생명을 살기 위해 우리의 인간 생명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 갈 2:20, 고후 4:10-11.
      4.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죽음에 넘긴다면, 우리 안에 또 다른 생명 곧 신성한 생명이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생명이 해방될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체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될 것이다 — 요 10:10하, 요일 5:11-12.
      5.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 안에서 타고난 사람은 죽음당하고,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자아는 무력하게 된다 — 고후 4:16, 롬 6:6, 마 16:24.
      6. 우리가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이 틀 안으로 밀어 넣도록 허락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습으로 형태 지어질 것이다 — 롬 8:28-29.
      E.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수록 우리는 아버지를 더욱더 영광스럽게 한다 — 요 12:28, 13:31.
    • 메시지6
      뛰어난 부활에 이름
      +
    • 성경: 빌 3:10-14, 롬 6:3-5, 8:11, 계 1:17하-18
      Ⅰ. ‘뛰어난 부활’은 탁월한 부활, 특별한 부활을 가리키며, 이것은 이기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상이 될 것이다 — 빌 3:11, 계 20:4, 6.
      A.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믿는 이는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 살전 4:16, 고전 15:52.
      B. 주님의 이기는 이들은 그 부활의 특별하고도 탁월한 몫을 누릴 것이다. 이 부활 안에서 그들은 왕국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추구했던 것이다 — 빌 3:11, 히 11:35, 26.
      Ⅱ. 바울에게 있어서 삶은 뛰어난 부활이신 그리스도였다 — 빌 1:21상, 3:11.
      A. 바울 안에 사셨던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의 인격이 ‘뛰어난 부활의 실재’인 분이시다 — 요 11:25, 계 1:17하-18, 2:8.
      B. 뛰어난 부활은 사실상 그리스도라는 사랑스럽고 보배롭고 뛰어난 인격이다. 이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옛 창조물에서 나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셨다 — 요 14:3, 20, 히 6:19-20.
      C. 뛰어난 부활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 안에서 그분을 알고, 그분의 고난의 교통 안에서 그분을 알며,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룸으로써 그분을 알아야 한다 — 빌 3:10-11.
      D. 빌립보서 3장 13절과 14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뛰어난 부활을 이미 붙잡았다고 여기지 않았음을 본다. 그는 뛰어난 부활이라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상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를 위로 부르셨다.
      Ⅲ.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목표가 있으며, 이 목표는 뛰어난 부활, 특별한 부활이다 — 빌 3:11.
      A.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기를 열망했다 — 빌 3:10.
      B. 우리가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는 뛰어난 부활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 빌 1:21상, 3:11, 요 11:25.
      C. 우리는 모두 뛰어난 부활에 이르는 길에 있다. 뛰어난 부활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와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 빌 3:11-15.
      D. 뛰어난 부활로 향하는 길은 부활의 과정이다 — 롬 8:11.
      1. 이 과정은 우리가 침례 받은 날에 시작되었고, 탁월한 부활에 도달할 때 끝마쳐질 것이다 — 롬 6:3-5.
      2.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부활하는 과정에 있다. 결국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이 부활할 것이다 — 살전 5:23.
      3. 우리는 뛰어난 부활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이 과정에 있을 것이다 — 빌 3:11.
      E. 뛰어난 부활에 이르는 것은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는 것이다. 뛰어난 부활에 이르려면 상을 얻을 수 있도록 경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 고전 9:24-26, 딤후 4:7-8, 히 12:1-2.
      Ⅳ.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 결과는 우리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는 것이다 — 빌 3:10-11.
      A. 죽음은 우리가 뛰어난 부활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다 — 빌 3:11.
      B.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 결과이자 산물이다 — 빌 3:10.
      C.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같은 형태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항상 그분의 죽음 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 롬 6:6, 갈 2:20, 빌 3:10.
      D.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을 것이고,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그리스도를 누릴 것이다 — 요 11:25, 엡 3:8, 빌 1:8, 19, 21상, 2:5-8, 3:12.
      E.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머물면서 우리 자신을 그분의 죽음의 모양과 같은 형태가 되도록 허락한다면, 그 결과로 우리 존재의 각 부분이 점차로 부활할 것이다 — 빌 3:10-11.
      Ⅴ. 뛰어난 부활에 이르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의 중요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뛰어난 부활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경주만 하면서 오는 시대에 목표에 도달하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인가?
      A. 우리가 뛰어난 부활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오는 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음 시대에도 이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B. 우리는 우리의 생애 중에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기를 힘써야 한다 — 빌 3:11.
      C. 로마서 8장 11절은 우리가 이 시대에 뛰어난 부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계시한다.
      1. 이 절은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우리 존재에서 죽어 가는 바로 그 부분 곧 우리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2. 로마서 8장 11절에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은 병이 낫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의 온 존재를 적시시도록 허락해 드린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3. 그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실질적이고도 실지적인 방식으로 뛰어난 부활을 우리 존재 안으로 일해 넣고 계신다.
      Ⅵ. 뛰어난 부활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가 점차적으로, 계속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 살전 5:23.
      A.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죽은 영을 부활시키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계속하여 우리의 혼과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시고, 결국 우리의 온 존재—영, 혼, 몸—가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의 옛 존재에서 완전히 부활하도록 하실 것이다 — 엡 2:5-6, 롬 8:6, 11.
      B.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생명의 과정이며, 상으로서 주어지는 뛰어난 부활에 이를 때까지 해야 할 경주이다 — 빌 3:11-14.
      C.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다면,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이 점차로 부활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부활의 과정이다.
      D.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 빌 3:11, 갈 2:20.
      Ⅶ.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룸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전진하시는 유일한 길이고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시는 유일한 길이며, 신부가 자신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이고 주님을 다시 모셔 오는 유일한 길이다 — 빌 3:10-11, 마 16:18, 계 19:7-9상, 22:14, 20.
  • 개요

    봄 국제 장로 훈련 : 참다운 교회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삶 (LSM 방침에 따라 장로 훈련 영상&오디오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 메시지1
      참다운 교회생활을 위해 그리스도 자신께로 돌아옴
      +
    • 성경: 엡 3:8, 14-18, 빌 3:3-16, 골 1:15-18, 3:10-11

      Ⅰ.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빗나가게 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 자신께로 돌아와야 한다 — 엡 3:8, 14-18, 골 3:10-11.
      A.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중심이 되시고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원하신다. 즉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기를 원하신다 — 골 1:15-18.
      B. 그리스도는 놀라우시다. 그분은 온 우주의 놀라움이시며, 그리스도의 존재의 각 항목이 모두 놀랍다 — 사 9:6, 삿 13:18, 엡 3:8.
      C. 우주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갈망, 곧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우리 안에 일해 넣어지시는 것이다 — 엡 3:17상.
      D. 바울은 교리와 윤리와 도덕과 가르침과 문화와 같은 좋은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빗나가게 하는 것들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서신서들을 썼다 — 빌 3:4-8.
      1.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며, 그것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빗나가게 한다면 그리스도와 대립되는 것임을 지적한다 — 고전 7:35.
      2. 우리가 빗나가게 하는 모든 것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향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께로 돌아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그리스도로 조성될 것이다 — 갈 2:20, 4:19, 빌 3:9-10.
      E. 빌립보서 3장 3절부터 16절까지에서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로 제시되신다.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 빌 3:8상.
      2.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 빌 3:7, 8하.
      3. 바울의 간절한 바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 빌 3:9.
      4.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우리 자신의 의를 갖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갖는 것이다 — 빌 3:9.
      5.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기를 열망했다 — 빌 3:10.
      6.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의 생활의 틀로 취하기를 갈망했음을 시사한다.
      7. 바울은 전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여, 성도들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 위에 부어지는 전제물이 되었다 — 빌 2:17, 딤후 4:6.
      F.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아야 한다.
      1. 우리가 주님에게서 새로운 긍휼과 은혜를 얻는다면 모든 좋은 것들, 심지어 최상의 것들까지도 버리고 그리스도 자신을 붙잡으려고 힘을 다해 수고할 수 있을 것이다 — 빌 3:7-8, 13.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 골 3:17.
      a.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동안에, 우리가 하는 일에서 그리스도를 적용해야 한다.
      b. 매일 우리는 그리스도, 곧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을 새롭게 체험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큰 필요이다 — 엡 3:17상.
      Ⅱ.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께로 돌아온 결과는 참다운 교회생활이다 — 고전 1:2, 12:27, 롬 16:1, 4-5, 16, 20.
      A. 참다운 교회생활은 모든 성도들이 단체적인 방식으로 깨닫고 체험하고 표현한 그리스도이다 — 엡 3:16-21.
      1.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목적을 위해 교회를 계획하셨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 엡 3:9-11, 21.
      2. 교회생활은 다름 아닌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지니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표현되시는 것이다 — 엡 3:8, 21.
      3. 우리가 그러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전 존재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다만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로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생활의 본질과 실질이다 — 골 1:12, 2:9-10, 16-17, 3:4, 10-11, 4:15-16.
      B. 참다운 교회생활은 그리스도의 생활, 곧 그리스도 자신이다 — 골 3:4, 요 11:25.
      1. 참다운 교회생활은 가르침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참다운 교회생활은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을 깨닫고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하고 전람하는 생활이다 — 빌 3:10.
      2. 참다운 교회생활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 롬 8:9-11, 17.
      C. 참다운 교회생활을 실현하는 길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 골 1:27, 2:17, 3:1, 4, 10-11, 15-17.
      1. 참다운 교회생활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내적 체험에서 나온다 — 엡 3:17상.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내적 존재 안으로 발전되신 결과가 참다운 교회생활이다 — 엡 4:13, 15-16.
      3.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교회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혼이 그 영이신 그리스도께 굴복되고 그 영이신 그리스도로 적셔져야 한다 — 살전 5:23, 엡 3:17상, 갈 4:19, 고전 15:45하, 고후 3:17.
      D. 참다운 교회생활을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요구된다 — 마 10:38.
      1.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제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한다 — 갈 2:20, 마 16:24.
      2. 자아는 반드시 십자가로 제해져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교회생활의 실재가 되실 수 있다 — 마 16:23-24, 롬 6:5.
      3.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 혼생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주님을 따르는 것 외에는 참다운 교회생활을 실현할 다른 길이 없다 — 마 16:24-27.
      E. 참다운 교회생활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내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통해 존재한다 — 엡 3:16-17상, 4:12, 16, 2:21-22.
      1. 신약 전체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 가득 차 있다 — 롬 5:10, 17, 갈 1:15-16, 2:20, 4:19, 고전 1:2, 9, 24, 30, 빌 1:20하-21상, 골 1:27.
      2. 에베소서 3장 16절부터 21절까지에서 바울은 우리가 능력으로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되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심으로써 우리의 내적 존재 전체를 그분 자신이 점유하시고 소유하시고 침투하시고 적시시기를 기도하였다 — 엡 3:16-17상.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심으로 우리 존재의 모든 속부분을 점유하실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다운 교회생활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엡 2:21-22, 4:12, 16.
      F. 참다운 교회생활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 — 엡 3:8.
      1. 참다운 교회생활은 어떤 조직이 아니며,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하게 될 때까지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보양받는다 — 엡 3:8.
      2. 참다운 교회생활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 곧 삼일 하나님의 표현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채워진, 추구하는 믿는 이들의 단체적인 생활이다 — 엡 3:19.
      3.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무한한 분량을 깨닫고 참다운 교회생활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된다 — 엡 3:17-18, 2:21-22, 4:16.
      4.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하고 누린다면, 그리스도의 충만 곧 그리스도의 표현인 참다운 교회생활이 자연히 산출될 것이다 — 엡 3:8, 17상, 2:22.
      G. 모든 성도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무언가를 체험해야 하며,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를 가지고 함께 모여 이 그리스도를 전람하고, 이 그리스도를 서로 나누며,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분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교회생활이다 — 고전 14:26, 히 10:25.
    • 메시지2
      소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소제물인 그리스도인 생활과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하여, 위대한 소제물인 새 예루살렘, 곧 삼일 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연합의 궁극적인 완결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됨
      +
    • 성경: 레 2:1-16, 요 6:57, 63, 12:24, 고전 10:17, 12:12, 24-25

      Ⅰ. 소제물은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레 2:1-16.
      A. 소제물의 주된 요소인 고운 가루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곱고 온전하며 부드럽고 균형 잡혔으며 모든 면에서 합당하여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과 일상의 행동이 아름답고 뛰어나다는 것을 상징한다 — 레 2:1, 요 18:38, 19:4, 6하, 눅 2:40, 23:14, 사 53:3.
      B. 소제물의 기름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요소이신 하나님의 영을 상징한다 — 레 2:1, 눅 1:35, 3:22, 4:18, 히 1:9.
      C. 소제물을 만들 때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은(연합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과 연합된 것을 상징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과 연합된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연합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하나님-사람이 되셨고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갖고 계신데, 그분의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은 각각 구별되며, 제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는다 — 레 2:4-5, 마 1:18, 20.
      D. 소제물에 넣은 유향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유향을 고운 가루 위에 놓은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분의 부활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 레 2:1-2, 비교 마 2:11, 11:20-30, 눅 10:21.
      1. 사복음서에 묘사된 것처럼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생활을 하셨으며, 그분께서 받으신 고난들을 통해 부활을 표현하셨다 — 비교 요 18:4-8, 19:26-27상.
      2. 영으로 충만하고 부활로 적셔진 그리스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향기였으며, 하나님께 안식과 평안과 기쁨과 누림과 완전한 만족을 드렸다 — 레 2:2, 눅 4:1, 요 11:25, 마 3:17, 17:5.
      E. 소제물에 쳐진 소금은 그리스도의 죽음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소금의 기능은 맛을 내고, 세균을 죽이며, 보존하는 것이다 — 레 2:13.
      1. 주 예수님은 항상 소금이 쳐진 생활, 십자가 아래 있는 생활을 하셨다 — 막 10:38, 요 12:24, 눅 12:49-50.
      2. 심지어 그분은 실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시며 그분 자신과 그분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하시고 부활 안에서 아버지의 생명을 사셨다 — 요 6:38, 7:6, 16-18, 비교 갈 2:20.
      3. 하나님의 언약의 기본 요인은 소금으로 상징된 십자가,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보존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 된다 — 비교 히 13:20.
      F. 소제물에 누룩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죄나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 레 2:4-5, 11, 고후 5:21, 히 4:15, 벧전 2:22, 눅 23:14, 비교 고전 5:6-8.
      G. 소제물에 꿀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천연적인 애정이나 천연적인 선함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 레 2:11, 마 10:34-39, 12:46-50, 막 10:18.
      Ⅱ. 소제물은 그리스도의 하나님-사람의 생활의 복사판인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예표한다 — 레 2:4, 시 92:10, 벧전 2:21, 롬 8:2-3, 11, 13.
      A. 우리는 우리의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제사장 음식으로 날마다 누려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는 신성하게 부요해진 인성 안에서 또다시 이 땅에서 우리를 통해 사실 수 있다. 우리가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은 그것이 되고 우리가 먹은 그것에 의해 살 것이다 — 레 2:3, 요 6:57, 63, 비교 시 92:10, 고전 10:17, 빌 1:19-21상.
      B.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말씀 안에 응축되신 그 영을 접촉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 생명과 인간 생활을 먹고, 예수님으로 조성되며, 예수님의 인간 생활이 우리의 인간 생활이 된다(엡 6:17-18, 렘 15:16, 갈 6:17). 이러한 인간 생활에는 신성하게 부요해진 그분의 인성의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1. 예수님의 인성은 모든 의를 이룬다 — 마 3:13-15.
      2. 예수님의 인성은 쉴 곳이 없다 — 마 8:20.
      3. 예수님의 인성은 마음이 겸허하다 — 마 11:29.
      4. 예수님의 인성은 연약한 이들을 사랑한다 — 마 12:19-20.
      5. 예수님의 인성은 융통성이 있다 — 마 17:27.
      6. 예수님의 인성은 다른 이들을 섬긴다 — 막 10:45, 1:10의 각주 1 참조.
      7. 예수님의 인성은 사람들을 보살핀다 — 눅 4:16-22, 7:34, 19:1-10.
      8. 예수님의 인성은 부주의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다 — 막 6:39-40, 요 6:12.
      9. 예수님의 인성은 시간의 제한을 받는다 — 요 7:6.
      10. 예수님의 인성은 유일무이하다 — 요 7:46.
      11. 예수님의 인성은 울어야 할 때를 안다 — 요 11:33, 35.
      12. 예수님의 인성은 겸손하다 — 요 13:4-5.
      Ⅲ. 그리스도의 생활과 우리 개인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은 결국 하나의 총체, 곧 단체적인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가져온다 — 레 2:1-2, 4-5, 고전 10:17, 12:12, 24-25.
      A. 이러한 생활은 인성과 성령이 연합된 생활이며 그 위에 성령이 부어진 생활이다. 거기에는 소금과 유향은 있지만 누룩이나 꿀은 없다. 두 형태의 소제물, 곧 개인적인 그리스도와 단체적인 그리스도(교회생활)는 모두 하나님의 만족과 우리의 영양 공급을 위한 음식이다.
      B. 소제물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이끄는 섞임의 예표이다.
      1. “고린도전서 10장 17절에서 바울은 ‘떡이 하나이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교회가 한 떡이라는 바울의 사상은 … 구약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레위기 2장 4절에 나오는 소제물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과자로 이루어진다. 고운 가루의 모든 부분이 기름과 섞이고 연합되었다. 이것이 섞임이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9권, 섞임에 관한 실제적인 요점들, 2장, 28쪽)
      2. 소제물로 예표된 것처럼 우리가 함께 섞임으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온전하게 된 하나님-사람들의 단체적인 생활이다. 이들은 진정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살고 있으며, 자신들의 인간 미덕들을 통해 그분의 속성들을 표현해 왔다. 온전하게 되는 것은 계속해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자아를 부인함으로써, 그리고 또 다른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삶으로써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 갈 2:20, 빌 3:10, 1:19-21상.
      3. 하나님은 몸을 고르게 섞으셨다(고전 12:24). ‘섞이다’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차이점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함축하며, 또한 ‘조화되다’, ‘조절되다’, ‘연합되다’, ‘고르게 되다’를 의미한다.
      4. 몸의 생활, 곧 소제물인 교회생활 안에서 섞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 영에 의해 모든 것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해야 한다.
      5. 이 모든 요점은 우리가 교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통은 우리를 섞는다. 즉 우리를 고르게 하고 조정하고 조화되게 하고 연합되게 함으로, 우리의 차이점들을 잃어버리게 하고, 교회생활과 일에 우리 개성의 자국을 남기는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실 수 있게 한다 — 골 3:10-11.
      6.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다른 성도들과 교통하지 않은 채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교통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멈출 것을 요구한다. 교회생활과 주님의 일에서 우리가 동역할 때, 우리는 모두 교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 섞임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교통하기 위해 항상 멈추어야 함을 의미한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권,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 6장, 205쪽)
      C.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소제물인 교회생활을 본다.
      1.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람이시다 — 고전 1:2, 9, 30.
      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16:13)라고 명령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높은 인성, 높아진 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9:26-27, 13:4-7). 예수님의 인성에는 비범한 사랑, 끝없는 관용, 비할 데 없는 신실함, 절대적인 겸손, 최고의 순수함, 지고한 거룩함과 의, 밝음과 올곧음과 같은 최고의 미덕들이 있다.
      3.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그분의 오심(헬. 파루시아, ‘임재’를 의미함)을 고대한다면,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성으로 소유하는 영역 안에 지켜질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이들의 인성은 그들이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신을 지켜 주님을 극도로 사랑함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적시는 이슬로 잉태되도록 헌신의 광채와 아름다움 안에서 매일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드림으로 지켜진다 — 유 19-21, 딤후 4:8, 마 24:3, 37, 39, 고후 5:14-15, 고전 2:9-10, 시 110:3.
      4. 교회생활은 인성이 그 영에 의해, 그 영으로 기름 발라지고 그 영과 합해진 연합의 생활이다 — 고전 2:4, 12, 3:16, 6:17.
      5. 오늘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 고전 15:10, 45하.
      a. 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자아를 향하여 날마다 죽어야 한다 — 고전 15:31, 36, 요 12:24-26.
      b. 우리는 우리가 부름받은 신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함으로써 부활의 실재를 나타내야 한다 — 고전 7:24, 21-22상, 10-13.
      c.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 타고난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활 생명과 부활 능력이신 주님에 의해 수고해야 한다 — 고전 15:10, 58.
      6. 우리는 교회 안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 고전 1:9, 18, 22-23상, 비교 막 15:31-32상.
      7.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룩 없는 잔치로, 즉 순수하고 진실한 생명 공급으로 누려야 한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온전히 순수하시고 혼합된 것이 없으시며 실재가 충만하시다 — 고전 5:6하-8.
      8. 교회생활 안에서 타고난 생명은 소금,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죽음당해야 한다 — 고전 15:10, 12:31, 13:8상, 고후 5:16.
      9. 하나님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가 소제물이 되어 그분을 만족하게 하고, 날마다 성도들에게 충분한 공급을 주기를 갈망하신다. 이것은 교회생활이 우리의 매일의 공급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교회생활을 먹을 것임을 의미한다.
      Ⅳ. 삼일 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연합인 새 예루살렘은 위대한 소제물, 곧 삼일 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연합의 궁극적인 완결일 것이다 — 레 2:4, 고후 13:14, 살전 5:23.
      A. 새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숫자 12는 새 예루살렘이 삼일 하나님(3)과 그분의 피조물인 사람(4)의 연합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 계 21:12, 14, 21, 22:2.
      B.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과정을 거치고 완결된 세 부분으로 된 교회의 연합이다 — 계 22:17상.
      C. 결국, 삼일이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된 새 예루살렘이 되신다 — 계 21:3, 22.
    • 메시지3
      한 새사람인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함
      +
    • 성경: 갈 2:20, 4:19, 엡 3:17상, 4:24, 골 3:4, 10-11

      Ⅰ.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높고 가장 풍성한 체험이다 — 갈 2:20, 엡 3:17상.
      A.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가지신 의도는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으로뿐 아니라 우리의 인격으로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는 것이다 — 갈 4:19.
      B. 요한복음은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아버지를 그분의 인격으로 취하시고 그분의 인격이신 아버지에 의해 사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 요 5:19, 30, 14:10, 6:57.
      1.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능하셨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선포하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그분 자신에 의해 살지 않으시고 그분의 인격이신 아버지에 의해 사셨기 때문이다 — 요 5:19, 30.
      2. 주님께서 아버지를 그분의 인격으로 취함으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우리의 인격으로 취함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 요 6:57.
      C. 우리의 거듭난 영은 속사람인데, 이 속사람의 인격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다 — 요 3:6, 엡 3:17상.
      1.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거듭난 영이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한 기관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 엡 3:17상.
      2. 우리의 속사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뿐 아니라 우리의 인격으로도 소유한다 — 요일 5:11-12, 골 3:4, 엡 3:17상.
      3.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의 새롭게 된 혼을 기관으로 삼고, 인격이신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을 생명과 인격으로 삼아 이루어진다 — 롬 12:2, 8:10, 엡 4:23, 고후 4:16.
      4.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함으로써 속사람인 우리의 영 안에서 살아야 한다 — 롬 8:4, 고전 6:17, 갈 2:20, 엡 3:17상.
      D. 우리는 우리의 이전 인격인 우리의 혼을 부인하고, 우리의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새 인격으로 취해야 한다 — 갈 2:20.
      1.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따르면, 거듭난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의 이전 인격인 ‘나’와 우리의 새 인격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모두 갖고 있다.
      2. 우리의 이전 인격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 인격으로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그 결과로 더 이상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것이다 — 롬 6:6, 갈 2:20.
      3.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는 것은 억지로 그분께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것에 따라 사는 것이다 — 요일 4:19.
      E.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는 것이 먼저이다.
      1.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한다면,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할 것이다 — 요일 5:11-12, 골 3:4.
      2.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한다면, 우리는 자라고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 골 2:19, 엡 3:17상, 4:13, 15.
      F.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기를 갈망하신다 — 엡 3:17상.
      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한다 — 엡 3:17상.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때, 우리는 충분히 그분을 우리의 인격으로 취할 것이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 되고, 그분의 감정은 우리의 감정이 되며, 그분의 의지는 우리의 의지가 될 것이다 — 고전 2:16, 빌 2:5.
      G.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는 것의 본이다 — 딤전 1:16, 갈 1:16상, 2:20, 4:19, 엡 3:17상, 빌 1:8, 2:5, 고후 2:10.
      Ⅱ. 우리는 한 새사람인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해야 한다 — 엡 3:17상, 4:24, 골 3:4, 10-11.
      A.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한 새사람이다 — 엡 1:9, 11, 3:9, 롬 8:29, 딤후 1:9, 엡 2:15-16, 4:22-24.
      B.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의 강조점은 생명에 있지만, 교회가 한 새사람이라는 것의 강조점은 인격에 있다.
      C. 성경은 한 새사람이 단체적이고 우주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 엡 2:15, 4:24, 골 3:10-11.
      1.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새사람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단체적인 한 새사람의 일부이자 구성 요소들이다 — 엡 4:24.
      2. 한 새사람은 단체적인 하나님-사람, 곧 모든 하나님-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우리가 하나님-사람들을 모두 합할 때, 한 새사람을 갖게 된다 — 골 3:10-11.
      D. 그리스도는 몸의 생명과 새사람의 인격 둘 다이시다 — 골 3:4, 엡 3:17상.
      1. 한 새사람 안에서 타고난 사람은 어떤 입지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새사람 안에서 어떤 입지도 얻지 못하는데, 이것은 새사람 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 골 3:10-11.
      2.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 안에 계신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는 오직 한 인격만 있다 — 골 1:27, 엡 3:17상.
      3.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하는지의 여부이다 — 요 6:57하, 빌 1:21상, 골 3:4, 엡 3:17상.
      E. 새사람을 위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해야 한다 — 엡 2:15, 3:17상.
      1. 한 새사람 안에는 오직 한 인격, 곧 그리스도만 계신다 — 엡 3:17상, 4:24.
      2. 새사람은 지체들에 관한 것(롬 12:4-5)이 아니라 인격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누가 나의 인격인가? 나인가, 주 예수님인가?”
      F. 한 새사람이 실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옛사람의 인격 전체를 제쳐 두고 우리의 새 인격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아야 한다 — 롬 6:6, 갈 2:20, 엡 4:22, 24, 3:17상.
      1. 우리의 이전 인격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인격 안에서나 그 인격에 의해서나 그 인격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 롬 6:6.
      2.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기준은 옳은가 그른가, 선한가 악한가가 아니라 한 인격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일을 하느냐이다.
      G.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특별히 결정을 내리는 일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함으로 산다면, 우리의 생활은 새사람의 생활일 것이다 — 요 4:34, 5:30, 6:38, 17:4, 롬 15:32, 약 4:13-15.
      1. 새사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함으로,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한다 — 롬 15:32.
      2.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한다면, 우리 생활의 어떤 것도 우리 혼자 결정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모두 한 새사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몬 14.
      H. 우리가 너울이 벗겨져 빛 비춤을 받는다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함께 일어나 한 새사람을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엡 3:17상, 4:24, 11-13.
      1. 모든 지방에 있는 성도들은 온전하게 되어 한 새사람을 위해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격으로 취하는 상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엡 4:11-13.
      2.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인격으로 취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가 한 새사람이 될 것이다 — 엡 3:17상, 4:24.
      3. 한 새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때가 바로 주님께서 오실 때일 것이며, 온전하게 된 새사람은 신부가 될 것이다 — 계 19:7.
    • 메시지4
      참다운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하도록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활로 취하고 신성한 영광 안에서의 우리의 하나를 위해 자아를 처리함
      +
    • 성경: 빌 1:19-26, 4:22, 사 43:7, 고전 10:31, 롬 11:36, 요 17:22

      Ⅰ.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 빌 1:19-21상.
      A. 그리스도를 확대하도록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의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생명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지 못한 실패와 그리스도를 확대하지 못한 패배에서 구원받는다 — 롬 5:10.
      B. 빌립보서 1장 19절에서 구원은 그리스도를 살고 확대하도록 격려받고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이 필요하다.
      C. 바울은 그의 구원이 ‘여러분의 간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공급이다. 바울은 비록 갇혀 지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 고립되지도 않았고, 몸의 공급에서 끊어지지도 않았다.
      D. 바울이 구원을 체험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이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넘치는 공급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누리고 그분으로 충만할 때, 그리스도는 확대되셔서 우리의 표현이 되신다 — 히 1:9하, 3:14상, 6:4하, 고전 12:3하.
      E. 우리는 몸의 생활 안에 있어야 하며 몸을 건축하는 제사장 봉사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확대하도록 그리스도를 살기 위해, 그 영의 넘치는 공급 곧 몸의 공급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다 — 시 133:2, 출 30:26-31, 빌 1:19, 롬 15:16, 벧전 2:5, 9.
      Ⅱ. 사도의 몸이 고난을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셨다. 즉 그분께서 (무한히) 위대하시다는 것이 드러나고 선포되었으며, 그분께서 높아지시고 또 높이 찬양을 받으셨다 — 빌 1:20.
      A. 사도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무한히 위대하시다는 것을 표현할 기회를 사도에게 준 것이었다 — 행 9:16, 고후 6:4, 11:23, 골 1:24.
      B.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은 그분을 최고의 누림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 빌 1:18, 4:23.
      C.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리스도를 확대하여,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께서 위대하게 나타나시도록 했다.
      1. 상황이 어떠하든지 바울은 기쁨이 충만했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다 — 비교 행 16:23-26.
      2.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에 관한 것이고, 이러한 체험과 누림은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 책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 빌 1:4, 18, 25, 2:2, 17-18, 28-29, 3:1, 4:1, 4.
      3. 바울이 기뻐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비추어 내고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무한히 위대하신 것에 대한 선포이자 그리스도께서 다함이 없으신 것에 대한 선포였다 — 엡 3:8, 비교 사 9:6.
      D. 바울의 모든 생활과 일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거나,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이나 다른 공로나 장점을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와 그가 행한 것은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 빌 1:20, 3:3-10, 4:22, 고후 4:5.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그리스도를 살아 냄으로써, 참다운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 롬 13:14.
      2. 제사장 의복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표현을 가질 때, 우리는 제사장들로서 섬길 자격을 얻고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속하도록 거룩하게 분별된다. ‘우리의 거룩한 의복’이신 그리스도의 표현은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다 — 출 28:2-4, 벧전 2:5.
      a. ‘영광’은 신성한 속성들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요 1:14, 히 1:3, 요 17:22, 고후 3:18.
      b. ‘아름다움’은 인간 미덕들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 눅 24:19, 행 16:7, 시 27:4.
      c. 인간 미덕들의 아름다움과 고르게 섞인 신성한 영광을 표현할 때마다, 우리는 제사장 체계로 함께 건축된다 — 벧전 2:5.
      3.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고전 10:31)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고전 6:20) 수 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요일 4:13)께서 우리의 몸을 점유하시고 적시시며 우리의 몸을 통해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다.
      Ⅲ. 우리가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분의 표현을 위해 우리의 몸으로 그분을 확대한다면, 우리는 성도들이 생명이 자라고 주님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요인들, 곧 공급의 통로들이 될 것이다 — 빌 1:20-26.
      A. 그리스도는 쇠사슬에 매인 바울의 몸에서 높아지시고 격찬받으시고 찬양받으시고 귀히 여김을 받으셨는데,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살았기 때문이다 — 빌 1:21, 엡 6:20.
      B.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신 것은 그분의 부활의 실재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보이시고, 그분의 영의 실재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공급되시기 위한 것이다.
      C.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서신을 썼을 때, 그는 감옥에서 살면서 외적으로는 일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언급한 ‘나의 일의 열매’는 그의 일이 사실상 그의 생활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 빌 1:22.
      1. 이 일의 열매는 그가 살아 내고 확대하고 공급하고 다른 이들 안으로 옮겨 부은 그리스도였다.
      2. 이 일의 열매는 바울이 감옥에서 생활한 것의 산물이자 결과였다.
      3. 바울의 살아 있는 일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자신이 확대한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으로 옮겨 붓는 것이었다.
      4. 바울이 그리스도를 확대함으로써 가이사의 집에 속한 몇몇 사람들까지도 구원을 받았다 — 빌 4:22.
      D. 우리 모두는 성도들의 ‘진보’(성도들의 생명의 성장)와 ‘믿음의 기쁨’(성도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위해 그들에게 강력한 요인들, 곧 공급의 통로들이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 우리가 성도들이 생명이 자라고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하는 그러한 요인들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리스도를 확대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 빌 1:25.
      1. 바울은 그리스도를 극도로 살고 확대했기 때문에, 성도들 안으로 그리스도를 옮겨 붓고 모든 교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었다.
      2. 바울이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인지, 육체 안에 남아 있을 것인지를 고려한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주님과 교회로 철저하게 점유되어 있던 사람이다 — 빌 1:23-24.
      3. 우리가 육체에 머무는지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지는 교회에 중요한 문제가 되어야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그리스도를 공급하고, 그리스도를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성도들의 존재의 깊은 곳으로 옮겨 붓는 데 달려 있다 — 비교 빌 2:25-30.
      4. 몸의 생활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공급의 통로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 — 슥 4:12-14.
      Ⅳ. 믿는 이들이 신성한 영광 안에서의 하나 안으로, 곧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아를 철저히 처리해야 한다 — 요 17:22, 고후 4:5.
      A. 나병은 몸의 원수인 사람의 자아에서 나온 심각한 죄를 상징한다. 나병은 사람의 거역과 불순종에서 비롯되고, 나병 환자를 정결하게 하는 것은 죄인을 자아로부터 하나님과의 교통과 사람들과의 교통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 비교 레 13:45-46.
      B.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려면 ‘털을 모두 밀어야 하고, 머리털과 턱수염과 눈썹까지 모든 털을 밀어야 한다’(레 14:9). 여러 종류의 털은 각각 자아의 서로 다른 방면을 상징한다.
      1. 머리털은 사람의 영광을 과시하는 것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은 특정 분야에서 자랑거리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혈통을, 어떤 사람은 자신의 교육을, 어떤 사람은 자신의 미덕을, 어떤 사람은 주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자랑한다. 모든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과시할 만한 분야를 찾을 수 있다.
      2. 턱수염은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나 가문이나 심지어 영성에 관련하여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3. 눈썹은 사람의 타고난 아름다움, 사람의 탁월함, 공로, 미덕, 강점을 상징한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출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4. 온몸의 털은 사람의 타고난 힘과 역량을 상징한다. 사람인 우리는 타고난 힘, 타고난 방법과 의견으로 가득하여, 자신이 주님을 위해 이런저런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C. 자아에 속한 이러한 문제들은 반드시 ‘면도칼’로 밀어야 한다. 이것은 그러한 것들이 반드시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자아를 처리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지는 이들이 되어, 십자가가 우리 위에 계속 운행하도록 허락함으로 우리의 자아를 죽음에 넘겨야 한다.
      2. 우리는 십자가에 머물며 매일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의 종결 아래 두어야 한다 — 눅 14:27, 롬 6:6, 갈 2:20, 빌 3:10, 고전 15:31.
      3.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주관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복합되신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흐르는 몰약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죽음을 상징하고, 향기로운 육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달콤함과 효능을 상징함)을 적용할 수 있다 — 출 30:23-25.
      D. 찬송가 628장 5절과 6절은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할 때 어떻게 자아에서 해방되는지를 보여 준다.
      1. “영 안에 해방돼 / 자기 의 벗고 / 자기 느낌 책망 / 벗어 버리라”.
      2. “영 안에 해방돼 / 자기 뜻 벗고 / 자기 사랑 교만 / 내려놓으라”.
      E. 우리는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 15:31)라고 말한 바울의 본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매일 자신을 향해 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전파하지 않고 주님의 신성한 영광을 위해 주님을 향해 산다. 더 나아가 참다운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는 동안 우리는 변화를 받으며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후 3:18, 4:5, 5:14-15, 엡 3:16-17, 21상).
      F.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과 봉사의 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생활과 봉사는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다 — 고전 10:31, 사 43:7, 요 7:18, 8:50상, 17:4, 롬 11:36.
    • 메시지5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함
      +
    • 성경: 골 3:17, 빌 2:9-10, 엡 1:20-21, 요 5:43, 14:26, 15:26

      Ⅰ. 우주 안에서 가장 높은 이름, 가장 위대한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이다 — 빌 2:9-10.
      A. 주님은 자신을 비우셔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시고 자신을 극도로 낮추셨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셨다 — 빌 2:7-8.
      B. 이렇게 높아지심으로 주님은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 즉 일컬을 모든 이름보다 훨씬 위에 있는 이름을 받으셨다 — 엡 1:20-21.
      C.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때로부터, 역사상 주 예수님의 이름보다 더 높은 이름은 결코 없었다 — 빌 2:10-11.
      D. 이름은 주 예수님의 인격과 일에 있어서 그분의 존재 전체를 표현한다 — 엡 1:21.
      Ⅱ.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는 사실상 ‘주님 자신 안에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이름이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골 3:17.
      A.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우리가 그분의 이름에 참여하며,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그분의 이름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을 주님께서 기꺼이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전 1:30, 요 3:16, 14:12, 고후 12:2, 골 3:17.
      B.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 하나이며, 우리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것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롬 8:10, 고후 13:5, 갈 3:27-28, 골 1:27.
      1. 주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은 그분의 인격 안에, 그분 자신 안에 있는 것이며, 그분의 온 존재의 영역과 요소 안에 있는 것이다 — 롬 8:2, 고전 1:30.
      2. 주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은 주님에 의해 살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하는 것이다 — 갈 2:20.
      3.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 골 1:27, 3:1, 3, 요 15:4-5.
      Ⅲ. 요한복음에 계시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은 신성한 삼일성과 관련된다 — 요 5:43, 10:25, 30, 14:26, 15:26.
      A. 요한복음 5장 43절은 아들께서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셨다고 말하고, 14장 26절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셨다고 말한다(각주 참고). 이 두 절에서 신성한 삼일성이 계시된다.
      1. 아들께서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셨다는 것은 아들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시라는 것을 가리킨다 — 요 5:43.
      2.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셨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과 하나이시라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4:26.
      B.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셨으며,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일들을 하셨다 — 요 5:43, 10:25.
      1. 주님께서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안에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셨고 아버지에 의해 사셨으며,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일하셨다 — 요 6:57, 14:10.
      C.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그 영을 보내셨다 — 요 14:26, 15:26.
      1. 그 영께서 아버지에 의해 아들의 이름 안에서 보내어지신 것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그 영을 보내신 분이시라는 것을 암시한다 — 요 14:26.
      2.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그 영을 보내셨다.
      3. 아들께서 아버지에게서 그 영을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신 것은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4. 아버지와 아들께서 모두 그 영을 보내신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하나이시라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0:30.
      Ⅳ. 우리의 일상생활과 교회 안의 봉사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해야 한다 — 골 3:17.
      A. 이름은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일들을 하는 것은 그분의 인격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 골 3:17, 롬 6:3, 8:1, 고전 4:15, 고후 5:17.
      1. 모든 일을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적인 방면이다 — 엡 5:20, 골 3:17.
      2. 우리는 우리 일상생활의 평범한 일들을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고전 10:31.
      B. 우리가 교회 안에서 봉사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하는 것이 요구된다 — 롬 1:9, 6:6, 7:6, 12:1, 7, 골 3:17.
      1.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주님에 의해 시작되고 주님의 갈망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 마 7:21, 빌 2:13, 엡 1:9, 11, 3:2, 7-11.
      2. 교회 건축을 위한 봉사는 생명을 공급하는 봉사, 곧 다른 이들에게 신성한 생명을 공급해 주는 봉사이다 — 고후 4:12, 롬 12:1, 7.
      a. 교회 봉사는 생명을 공급하는 것인데, 이는 교회 봉사가 생명의 봉사이기 때문이다 — 롬 8:2, 6, 10-11.
      b. 봉사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생명을 공급할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한다 — 요일 5:11-16.
      Ⅴ. 우리가 하는 말, 곧 우리의 모든 말은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어야 한다 — 골 3:17, 엡 4:25, 29, 마 12:36-37.
      A. 어떤 나쁜 말도 우리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참된 말을 하고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만 해야 한다 — 엡 4:25, 29.
      B.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하여 심판 날에 낱낱이 진술해야 할 것입니다.” — 마 12:36.
      1. 무익한 말은 소용없는 말, 효과가 없는 말이며, 긍정적인 기능이 없고, 쓸모없고, 유익이 없고, 열매가 없는 헛된 말이다.
      2. 무익한 말은 장황한 말, 어울리지 않는 말, 필요 없는 말, 잡담하는 말이다 — 마 12:36.
      3. 그러한 말을 한 사람들은 심판 날에 그 모든 말에 대하여 낱낱이 진술해야 할 것이다 — 마 12:36-37.
      Ⅵ. 요한복음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준다 — 요 14:13, 15:16, 16:24, 26.
      A. 믿는 이들이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함을 매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지 못한다 — 요 14:13, 15:16, 16:24, 26.
      B.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의 연결 안에서 살고 있고,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나시도록 허락해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요 15:4-5, 7, 13:31-32.
      C. 우리가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하신다 — 요 15:7.
      D.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에서 주 예수님은 주님 안에 사는 이들이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한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기도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 요 14:13, 15:16, 16:24, 26, 4:34, 5:30, 6:38.
      1.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하는 모든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 — 마 6:10, 12:50, 26:39, 42.
      2.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똑같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 — 요 14:13, 15:16, 16:24, 26, 6:38.
    • 메시지6
      참다운 교회생활을 위해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허락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며, 기도에 꾸준히 힘씀
      +
    • 성경: 골 3:15-16, 4:2

      Ⅰ. 우리는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허락해야 한다 — 골 3:12-15, 엡 2:14-18, 롬 5:1, 마 18:21-35.
      A. ‘판정을 내리다’에 대한 헬라어는 ‘심판을 보다’, ‘다스리다’, ‘모든 일의 통치자와 결정자로서 보좌에 앉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화평이 판정을 내리도록 할 때, 누군가에 대한 우리의 불만은 해결된다 — 골 3:13.
      B. 종종 우리는 우리 속에 세 편, 곧 긍정적인 편과 부정적인 편과 중립적인 편이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있는 다툼을 끝내는 내적 중재가 필요하다.
      1. 언제든지 우리의 존재 속에서 서로 다른 편들이 다투거나 싸우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다스리는 화평에 지위를 내어 주고, 새사람의 하나(oneness)라는 이 화평이 우리 안에서 통치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해야 한다.
      2. 우리는 우리의 의견 곧 우리의 관념을 제쳐 두고, 내주하시는 심판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C. 우리가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허락한다면, 이 화평이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다툼을 해결할 것이고, 우리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수평적으로는 성도들과 화평을 가질 것이다.
      1. 그리스도의 화평이 판정을 내림으로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성도들 간의 마찰이 사라진다. 그럴 때 교회생활은 달콤함 속에 보존되고 새사람은 실지적으로 유지된다.
      2. 그리스도의 화평이 판정을 내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면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마지막 발언을 하시며, 최종 결정을 내리시는 것이다 — 비교 사 9:6-7.
      3. 우리가 보좌의 위치를 가진 그리스도의 화평의 다스림 아래 머문다면, 다른 사람들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손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의해 그분의 화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것이다.
      4. 이러한 화평이 모든 믿는 이들을 함께 묶어 주어 매는 띠가 되어야 한다 — 엡 4:3.
      Ⅱ.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해야 한다 — 골 3:16.
      A.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첫째 위치를 차지하고 우리 안에 거주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운행하면서 우리의 존재 안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 기능을 체험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고(시 119:105, 130), 우리를 양육하며(마 4:4, 딤전 4:6), 우리를 적시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한다(사 55:1, 8-11).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강건하게 하고(요일 2:14하, 잠 4:20-22), 씻겨 주며(엡 5:26), 건축한다(행 20:32).
      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완전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고(딤후 3:15-17) 거룩하게 하여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 안으로 이끈다(요 17:14-21).
      B. 골로새서 3장 16절은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우리의 마음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찬송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1.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는 한 가지 길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노래하는 것이다.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로 읽고 찬송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시 119:54.
      2.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는 것에는 말씀을 숙고하고 읊조리고 누림으로써 말씀이 우리를 적실 기회를 더 많이 얻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시 119:15). 말씀을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은 우리의 영을 훈련하고 그 영 안으로 이끌리는 탁월한 길이다(고전 14:15, 시 47:6-7).
      3.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찬송할 때, 우리는 어떤 곡이든 심지어 자신이 즉흥적으로 만든 곡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말씀을 노래하고 찬송하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4.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찬송할수록, 우리는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 속에 스며들며 우리를 신성한 요소로 적시도록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한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 것이다 — 비교 요 6:57, 63.
      C. 매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명의 원칙들에 따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안에 살아 있는 말씀으로 계신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실행해야 한다. 이럴 때 그리스도께서 그 영의 적용된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어 우리 안에 그분 자신을 주입하시게 된다 — 계 19:13, 마 4:4, 요 5:39-40, 6:63, 8:31-32, 15:7, 신 17:18-19.
      1. 우리는 신성한 빛의 내적인 비춤과 신성한 생명의 공급을 받기 위해 반드시 우리의 전 존재를 주님께 열어 드려야 한다. 가장 많이 변화를 체험하는 사람은 주님께 전적으로 열려 있는 사람이다 — 시 119:105, 잠 20:27, 시 139:23-24.
      2.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추구해야 한다 — 시 119:2, 막 12:30.
      3. 우리는 우리를 주님에게서 분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 행 24:16, 딤후 1:3상, 요일 1:9, 비교 겔 1:22, 26.
      4. 우리는 반드시 주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자기 확신과 자기 과신을 버리고,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도록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 사 66:1-2, 벧전 5:5.
      5.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 하며, 우리의 전 존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찬송하며 읊조려야 한다 — 엡 6:17-18, 시 119:15-16, 비교 레 11:3.
      D.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하도록 허락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숨으로 가득 채워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교회의 하락에 대한 신성한 해독제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장비될 수 있다 — 딤후 3:14-17.
      Ⅲ. 우리는 기도에 꾸준히 힘써야 한다 — 골 4:2-3.
      A. 우리는 기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렇게 충분히 기도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더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 골 1:12, 2:6-7, 4:2.
      1. 우리는 시간을 들여 주님을 흡수하고, 구체적이고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분을 접촉해야 한다 — 눅 8:13, 마 14:22-23, 6:6.
      2. 아침에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하루의 이른 시간에 그분과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빛이 가득한 상황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분산하거나 우리를 점유하는 어떤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 없이 혼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 잠 4:18, 출 33:11상, 34:3-4, 막 1:35.
      3. 우리가 기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은혜가 우리 안에서 흐르고 우리에게 공급하는 강이 될 것이다 — 히 4:16, 비교 계 22:1.
      B.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탄과 맞서 싸우려면 우리는 기도에 꾸준히 힘써야 한다 — 단 6:10.
      1. 하나님 편에 선 이들로서 우리는 타락한 우주 전체가 우리를 대적하며, 특별히 우리의 기도를 대적하는 것을 발견한다. 기도에 대항하는 것은 우리 밖에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 마 26:41.
      2. 기도하는 것은 타락한 우주 안에 있는 조류와 경향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 눅 18:1-8.
      C. 우리는 기도를 위해 명확한 시간을 떼어 놓아야 한다.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이며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단 6:10, 행 12:5, 12.
      D. 우리는 계속 우리의 영을 훈련함으로써 기도의 분위기 안에 머물러야 한다 — 엡 6:18, 딤전 4:7, 딤후 1:7, 골 1:3, 9.
      1.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에 꾸준히 힘씀으로써 계속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 안에 있어야 한다 — 살전 5:17, 마 26:41, 골 2:19.
      2. 우리는 가장 사소한 문제도 주님께 여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에 꾸준히 힘씀으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 비교 수 9:14, 빌 4:7-8.
      Ⅳ. 우리가 기도에 꾸준히 힘씀으로 그리스도의 화평의 다스림을 받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하도록 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침투하시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대치하시어, 결국 우리가 참다운 교회생활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타고난 모든 차이점을 제거하실 것이다 — 골 3:15-16, 4:2, 3:10-11.
    • 메시지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의 여분을 교회 집회에 가져와서 그리스도를 전람하고 하나님께 단체적인 경배를 드림
      +
    • 성경: 신 8:7-10, 12:6-7, 11-12, 18

      Ⅰ.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예표된 좋은 땅이신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으며, 그러한 믿는 이들인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한다 — 고전 1:30, 골 1:12.
      A.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소유하고 그들에게 할당된 몫을 받은 후에, 그 땅에 대해 수고했다 — 신 8:7-10, 12:6-7, 11-12, 18.
      1. 그들이 그 땅에 대해 기꺼이 수고하려고 하는지 그러지 않는지는 엄중한 문제였다. 그들은 그 땅에 대해 수고하며 그 땅을 경작해야 했다.
      2.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한 풍성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부지런히 수고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 엡 3:8, 1:7, 고전 15:58, 빌 3:10.
      B.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후에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생활이다 — 골 1:12, 롬 15:16, 고전 15:10.
      1.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하며,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 골 1:12, 3:1, 4, 10-11.
      2. 우리가 매우 풍성한 땅에 있지만 이 땅에 대해 수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체험하고 누릴 소산이 없을 것이다 — 엡 1:7, 2:7, 3:8, 고전 15:58.
      C.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산출하기 위해 땅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수고를 통해 우리 안에서 그분 자신을 산출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빌 2:13, 엡 3:17, 골 3:15-16.
      1.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많은 소산을 주시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체험을 갖게 될 것이다 — 엡 3:8, 빌 4:19.
      2.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수확물은 우리가 수고하고 거두어들여 우리의 수확물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 빌 3:10.
      D. 매일 아침 우리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그날의 은혜의 몫을 주시기를 구해야 하고, 주님에 대해 수고함으로 그분을 체험하고 누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 — 롬 12:1-2, 15:16.
      E. 온종일 우리는 주님과의 교통을 유지함으로써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에 대해 수고하며, 그분을 적용하고, 그분을 체험하며, 그분을 누려야 한다 — 요 15:4-5, 11, 16:22, 벧전 1:8.
      F. 우리의 영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그리스도를 산출하는 열쇠이다 — 딤전 4:7.
      1.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길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실재이신 그 영을 접촉하는 것이다 — 갈 3:14.
      2. 온종일 우리의 모든 상황과 모든 환경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을 체험해야 한다 — 딤전 4:7, 롬 8:4, 고전 6:17, 빌 4:11-13.
      G.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여 주님을 믿고 사랑함으로써, 또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주님을 접촉하고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실재, 곧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의 분배를 받아들임으로써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한다 — 고후 3:16, 13:14, 갈 3:14.
      Ⅱ.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 출 3:8, 17, 33:3, 레 20:24, 민 13:27, 14:8, 신 6:3, 26:9, 15, 27:3, 수 5:6.
      A. 젖과 꿀은 두 종류의 생명, 곧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의 연합에서 산출된다.
      1. 신명기 8장 8절에서 꿀은 식물, 곧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와 올리브나무와 함께 언급된다.
      2. 신명기 32장 14절에서 젖은 동물, 곧 소와 양과 함께 언급된다.
      3. 꿀은 대체로 식물의 생명과 관련되고, 젖의 성분 대부분은 동물의 생명과 관련된다.
      a. 이 두 생명이 함께 연합될 때, 벌에 의해 꽃의 화밀(花蜜)에서 꿀이 생산된다.
      b. 젖 또한 동물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 모두에서 나온 산물이지만, 주로 동물의 생명에 속한다. 젖은 소와 양(동물의 생명)이 풀밭에서 풀(식물의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산된다.
      B. 동물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 이 두 가지의 연합인 젖과 꿀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두 방면, 곧 구속하는 방면과 산출하는 방면을 상징한다 — 신 8:8, 32:13-14.
      1. 식물의 생명은 산출하고 번성하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의 산출하고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 요 12:24.
      2. 동물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 요 6:54-55.
      3. 그리스도의 생명의 구속하는 방면은 우리의 법리적인 구속을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산출하는 방면은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을 위한 것이다 — 요 1:29, 12:24, 계 2:7, 롬 5:10.
      4. 주님의 상 위에 있는 상징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구속하는 방면과 산출하는 방면을 의미한다 — 마 26:26-28, 고전 10:17.
      5. 젖과 꿀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좋음과 달콤함을 말해 준다 — 엡 5:2, 빌 4:18.
      a. 우리가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 둘 다이신 그리스도를 동시에 체험하고 누릴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좋고 달콤하며 풍성하신지를 깨닫게 된다.
      b.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달콤함, 즉 젖의 좋음과 꿀의 달콤함을 느낀다.
      6. 젖과 꿀의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우리는 젖과 꿀이신 그분으로 조성될 것이다. “나의 신부여, 그대의 입술은 신선한 꿀을 흘리고 /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으며” — 아 4:11상, 엡 4:29, 골 4:6.
      Ⅲ. 매일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여 여분 곧 수확물을 얻어서 교회 집회에 가져와 하나님 아버지께 단체적인 경배를 드려야 한다 — 신 12:6, 고전 14:26, 요 4:23-24, 신 16:15-16.
      A. 그 땅에서의 생활은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주님의 백성과 함께 단체적으로도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으로 충만한 생활이다 — 신 8:7-10.
      B. 좋은 땅에서의 생활은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고, 그리스도를 생산하고, 그리스도를 누리고, 다른 이들과 그리스도를 함께 나누고,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누리시도록 하는 생활이다.
      1.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를 온 우주에 전람하는 것이다 — 계 19:7.
      2. 이것은 하나님께는 경배가 되고 원수에게는 수치가 된다 — 요 4:23-24.
      C.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에 대해 부지런히 수고하고 우리의 손을 그리스도로 가득 채운 후에, 교회 집회에 와서 풍성하고 영광스러우신 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또한 하나님 자신과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 — 고전 14:26, 요 4:23-24.
      D. 주님을 기념하고 아버지께 경배하려고 주님의 상에 올 때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손을 그리스도의 소산으로 가득 채워서 와야 한다 — 신 16:15-16.
      1. 그리스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서로서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단체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 고전 14:26.
      2. 우리는 그리스도를 충분히 산출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여분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소산물 중 최상의 부분을 그분께 드릴 것이다 — 신 15:11, 18:3-4, 12:11.
    • 메시지8
      참다운 교회생활을 위해 하나님의 최고의 보배이신 영광스럽고 탁월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과 체험과 누림을 가짐
      +
    • 성경: 사 6:1-8, 요 12:38-41, 단 10:4-9, 11, 19, 9:23, 계 1:9-2:1, 7, 21:18-21

      Ⅰ. 이사야는 낙심해 있었을 때 영광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보았다 — 사 6:1-8, 비교 5:20, 22:1, 대하 26:1-5.
      A. “악을 선이라 하고 / 선을 악이라 하는 이들, / 어둠을 빛에 두고 / 빛을 어둠에 두는 이들, / 쓴 것을 단것에 두고 / 단것을 쓴 것에 두는 이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라고 하신 주님의 경고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사야 시대에 있었던 악한 상황을 볼 수 있다 — 사 5:20.
      B.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사랑하신 백성의 반역과 죄악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시자 왕이시자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리스도는 여전히 영광 가운데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다 — 사 6:1-5, 애 5:19, 계 22:1.
      C. 이사야가 본 분은 그리스도였다 — 사 6:5하, 요 12:38-41.
      1. 요한은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생활과 일을 설명하면서, “이사야가 그분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그분에 대하여 말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 요 12:41.
      2. 보좌에 앉으신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보려면,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이사야의 경고의 말씀(사 6:9-10)에 주의를 기울여, 주님께서 우리의 내적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돌이키게 하심으로, 우리의 눈멂과 질병을 내적으로 치료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요 12:40, 마 13:14-17, 행 28:25-27, 계 3:18, 4:2, 고후 3:16-18).
      D. 그리스도의 긴 옷은 주로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인성을 통해 표현되는 그분의 미덕의 광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긴 옷을 입으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이사야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간 미덕들 안에서 표현된 신성한 영광을 지니시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사람이시다 — 사 6:1, 비교 겔 1:26, 22, 행 2:36, 히 2:9상.
      E. 이사야는 의에 근거한 거룩함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 사 6:2-3.
      1. 스랍들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상징하거나 대표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위하여 거기 서 있었다.
      2.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그분의 의에 근거한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의로우시므로, 그분은 속된 사람들로부터 거룩하게 되시고 구별되셨다 — 사 5:16.
      F. 이 이상을 본 결과 이사야는 종결되고 죽게 되었으며,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사 6:5.
      1. 신약의 의미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요소와 생명과 본성을 받아들여 하나님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 비교 창 13:13-14, 갈 3:14, 마 5:8.
      2.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을 얻고 그분의 요소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낡은 요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진대사적인 과정이 변화이다 — 고후 3:15-4:1, 롬 12:2, 빌 3:8.
      3.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욱 혐오하고 더욱 부인하게 된다 — 욥 42:5-6, 마 16:24, 눅 9:23, 14:26.
      G.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하는 스랍들 중 하나가 제단에서 가져온 타고 있는 숯으로 정결하게 되었다.
      1. 스랍이 타고 있는 이 숯을 (이사야의 입에) 갖다 댄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을 상징하는데, 이 구속은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고, 심판하고 태우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신 ‘그 영, 거룩하신 분’에 의해 적용된다 — 사 6:6-7, 4:4, 비교 눅 12:49, 계 4:5.
      2. 하나님을 본 결과는 하나님에 의해 정결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 깨끗하게 된 결과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선민을 그리스도를 사는 상태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럴 때 하나님의 선민은 그분의 영광 안에서 그분을 표현하고, 그분의 거룩함으로 적셔지며, 그분의 의 안에서 살게 된다 — 사 6:6-8, 요일 1:7-9, 행 13:47, 빌 1:21상.
      Ⅱ. 한 사람으로서 지극히 보배로운 분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신 탁월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은 다니엘에게 감상과 위로와 격려와 안정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 단 10:4-9.
      A. 그리스도는 포로 되어 있는 그분의 선민을 돌보시기 위해 세마포 겉옷으로 상징된, 인성을 지니신 제사장으로 나타나셨다 — 단 10:5상, 출 28:31-35.
      B. 그리스도는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금띠로 상징된, 신성 안에 있는 왕의 직분을 가지시고 나타나셨다 — 단 10:5하.
      C.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귀하게 여기도록, 녹주석 같은 그분의 몸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보배로움과 존엄함을 지니시고 나타나셨다. ‘녹주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청록색이나 황색 빛의 보석을 가리킬 수 있는데, 이것은 체현되신 그리스도께서 신성하시고(황색) 생명으로 충만하시며(녹색) 하늘에 속하심(청색)을 상징한다 — 단 10:6상.
      D. 그리스도는 또한 번개의 모습 같은 그분의 얼굴로 상징되는 것처럼, 그분의 백성에게 빛을 비추시기 위해서 광채를 지니시고 나타나셨으며(단 10:6상), 횃불 같은 그분의 눈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살피시고 심판하시기 위한 빛 비추는 시선을 지니시고 나타나셨다(단 10:6중).
      E. 그리스도는 광낸 놋이 빛나는 것 같은 팔과 발로 상징되는 것처럼, 빛나는 일과 움직임 가운데 다니엘에게 나타나셨다 — 단 10:6중.
      F. 그리스도는 무리의 소리와 같은 그분의 말소리로 상징되는 것처럼, 백성을 심판하시는 강한 말씀 가운데 나타나셨다 — 단 10:6하.
      1. 세계정세 전체는 하늘들의 하나님에 의한 하늘들의 다스림 아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시고 모든 것에서 첫째 위치를 얻으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단 2:34-35, 7:9-10, 4:17, 26, 34-35, 골 1:15, 18, 계 2:4-5.
      2. 그리스도는 우리의 개인적인 우주 안에서 반드시 첫째 위치, 으뜸의 위치를 얻으셔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으뜸이신 분으로서 우리의 교회생활과 가정생활과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중심과 전부가 되셔야 한다 — 골 1:17하, 18하, 3:17, 고전 10:31.
      3.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중심(첫째)과 전부(모든 것)가 되게 하시려고 그분의 하늘에 속한 다스림 아래서 환경을 사용하고 계신다 — 롬 8:28, 골 1:18, 27, 3:4, 10-11.
      4.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으뜸이 되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으며, 이러한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다스림 아래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으뜸이 되시게 하고, 그분께서 모든 일에서 첫째 위치를 얻으시게 해 드린다 — 단 4:26하, 35, 골 1:18, 3:4, 10-11, 시 27:4.
      Ⅲ. 요한은 그의 영 안에서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금등잔대들 사이를 거닐고 계신 것에 대한 이상을 받았다(계 1:9-2:1). 이 이상을 통해 요한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서 ‘발까지 닿는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신 것’을 보았다(계 1:13, 비교 10절, 4:2, 17:3, 21:10).
      A. 사람의 아들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이시고, 금띠는 그분의 신성을 상징하며, 가슴은 사랑의 상징이다.
      1. 다니엘서 10장에서 그리스도는 신성한 일을 위해 허리에 띠를 띠심으로 강화되셨는데(출 28:4, 단 10:5), 이것은 교회들을 산출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장에서 그리스도는 가슴에 띠를 띠시고, 그분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산출하신 교회들을 돌보고 계신다.
      2. 금띠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힘인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며, 가슴은 금에 속한 이 힘이 그분의 사랑에 의해, 그분의 사랑으로 발휘되고 유발되어 교회들을 보양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B.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교회들을 돌보시며 보살피신다 — 계 1:13상.
      1. 그리스도는 등잔대들의 등잔들을 손질하심으로 적합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보살피심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편안하게 하신다 — 출 30:7, 비교 시 42:5, 11.
      a. 주님의 임재는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제공함으로 우리의 존재를 보살펴, 우리에게 안식과 위로와 치료와 씻김과 격려를 준다.
      b. 우리는 교회 안에서 주님의 임재의 보살피는 분위기를 누리면서, 보양하는 생명 공급을 받을 수 있다 — 엡 5:29, 비교 딤전 4:6, 엡 4:11.
      2. 그리스도는 등잔대의 등잔들의 심지를 정돈하시면서, 우리가 빛을 비추는 데 방해되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잘라 내신다 — 출 25:38.
      a. 심지의 검게 탄 부분, 곧 불똥은 우리의 육체와 타고난 사람과 자아와 옛 창조물과 같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아 잘라 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상징한다.
      b. 그리스도는 교회들 사이의 모든 차이점(잘못된 행위와 결함과 실패와 결점)을 잘라 내 버리심으로, 교회들을 본질과 외양과 표현에서 똑같이 되게 하신다 — 비교 고전 1:10, 고후 12:18, 빌 2:2.
      C. 그리스도는 가슴에 있는 금띠로 상징된 그분의 신성과 신성한 사랑으로 교회들을 돌보시면서 보양하신다 — 계 1:13하.
      1.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과 포함과 강화, 이렇게 세 단계로 된 그분의 충만한 사역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보양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하여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는 그분의 이기는 이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2. 거니시는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각 교회의 상태를 알게 되시며, 말씀하시는 영으로서 그분은 등잔대들을 정돈하시고 신선한 기름이신 그 영을 공급하시어 등잔대들을 채우신다 — 계 2:1, 7, 비교 슥 4:12-14.
      D. 주님의 일곱 눈은 불꽃과 같으며, 지켜보고, 감찰하고, 살피고, 빛 비춤으로써 심판하고,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7)은 하나님의 움직임에 있어서 완성을 의미하는 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일곱 눈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과 운행을 위한 것이다 — 계 1:14, 5:6, 단 10:6, 7:9-10, 계 2:18, 19:11-12.
      E. 그리스도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이시다. 주님을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앎으로써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그분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보다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 주는 것은 없다 — 계 1:17-18, 딤후 4:22, 마 1:23, 28:20, 출 33:14-16.
      Ⅳ.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들에서 지극히 보배로우신 그리스도와,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항목들에 대해 말한다.
      A. 그리스도 자신이 그분의 믿는 이들에게 보배이시다 — 벧전 2:7.
      B.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보배로운 돌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 벧전 2:4, 6-8.
      C.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헛된 생활 방식에서 우리를 구속했다 — 벧전 1:14, 18-19.
      D.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 벧후 1:1, 4.
      E. 하나님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모든 믿는 이들에게 할당해 주셨다 — 벧후 1:1.
      F. 우리의 믿음은 많은 고난을 통해 오는 시련을 통해 보배롭게 입증된다 — 벧전 1:7.
      Ⅴ.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아껴서 하나님의 최고의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으로 조성되어 하나님의 개인적인 보물인 보배로운 사람들, 심지어 보배 자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보배롭고 기적적인 구조물인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것이다 — 단 9:23, 10:11, 19.
      A.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바뀌도록 주님께 빛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온 존재를 우리의 지극히 뛰어난 몫으로 계속 선택하게 될 것이다 — 막 9:7-8, 빌 3:7-8, 고후 2:10, 4:7, 벧전 1:8.
      B.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 “네가 가치 없는 것에서 귀한 것을 분별해 내면 / 네가 나의 입이 되어”라고 한 예레미야서의 훈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렘 15:19, 16.
      C.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땅에 속한 모든 재물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말함으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이신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그분의 백성 안으로 분배할 수 있다 — 시 119:72, 9-16, 엡 3:2, 8, 고후 6:10, 벧전 4:10-11.
      D. 성경 전체의 결론인 새 예루살렘은 삼일 하나님 곧 신성한 삼일성이 세 가지 기본 요인으로서 그분께 구속받은 사람들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그들과 함께 짜이신 것이며, 세 가지 기본 요인 중에서 금은 성의 기반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상징하고, 진주는 성의 문으로서 아들 하나님을 상징하며, 성의 벽옥 성벽은 영 하나님을 상징한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상이 필요하다 — 계 21:18-21.
      E. 우리가 그분의 소중한 현재의 임재 안에 살면서, 그분께서 우리를 그분의 보물로 누리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몫이신 그분을 누릴 때, 그분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건축하심으로 우리를 그분의 영적인 집과 왕들인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되게 하셔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신다 — 벧전 2:1-9, 3:4, 고후 2:10, 시 16:5, 출 19:4-6, 벧후 3:8, 11-12.
  • 개요

    국제 중국어 특별 집회 :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메시지1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고 현시대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딤후 4:8, 10, 18, 롬 12:2, 요일 2:15, 5:19하, 계 17:14, 22:20

      Ⅰ.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우리에게 소중하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할 것이다 — 딤후 4:8.
      A.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과 주님 자신을 사모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 고전 2:9, 딤후 4:8.
      B.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살전 1:10, 딤후 4:8.
      C.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것, 곧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것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고, 우리를 격려하며,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 딤후 4:1, 18.
      1.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해야 하며, 간절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 계 22:20.
      2.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신실할 수 있다 — 딤후 4:8, 계 17:14.
      Ⅱ.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 요일 2:15.
      A. 세상은 사탄에 의해 조직적으로 배열된 악한 체계이다 — 요일 2:15-17, 약 4:4.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셔서 땅에 살게 하신 것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강탈하기 위해서 문화와 교육과 산업과 상업과 오락과 종교로 사람들을 체계화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 체계를 형성했다 — 엡 3:11, 창 1:26-28, 2:8-9, 4:16-24.
      2.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특히 인류와 관련된 것과 공중에 있는 모든 것은 사탄이 그의 어둠의 왕국으로 체계화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사람들을 점유하고 좌절시키며, 그들을 하나님에 대한 누림에서 빗나가게 한다 — 요일 2:15-17.
      3. 세상은 아버지 하나님을 반대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 요일 2:15-17, 약 4:4.
      B. ‘온 세상’ 곧 사탄적인 체계는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 — 요일 5:19하.
      1. ‘온 세상’은 사탄적인 세상 체계와 세상 사람들, 곧 타락한 인류로 구성된다.
      2. ‘놓여 있다’는 것은 악한 자에게 강탈당하고 조종받는 영역 안에 수동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인 사탄의 강탈하고 조종하는 손 아래 수동적으로 놓여 있다.
      3. 요한일서 5장 19절에서 ‘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치명적이고 해악을 끼치는 자를 가리킨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어 사람들을 사악하고 악독하게 만드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악한 자가 바로 사탄 마귀이며, 온 세상이 그 안에 놓여 있다.
      C. 사탄은 물질적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결국에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모든 것을 그의 머리 아래로 통일할 것이다. 바로 그때에 세상 체계는 그 정점에 이를 것이고, 세상 체계를 이루는 모든 단위가 그리스도인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 살후 2:3-12.
      Ⅲ.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은 현시대를 사랑하는 것과 대조된다 — 딤후 4:8, 10.
      A. 시대는 사탄의 세상 체계의 한 부분이나 한 단면 혹은 한 방면이다. 이것은 사탄이 사람들을 강탈하고 점유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사용된다 — 요일 5:19, 2:15.
      B.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서 ‘현시대’는 우리를 둘러싸고 매혹하고 유혹하는 세상을 가리킨다. 우리가 세상의 현시대를 접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접할 수 없다.
      C. 데마는 현시대를 사랑했다. 그는 현시대에 매혹되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버렸다 — 딤후 4:10.
      D. 로마서 12장 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라고 권면한다.
      1. 2절에서 ‘이 시대’는 세상의 현존하는 실지적인 부분을 나타낸다. 이것은 몸의 생활과 대립되며 몸의 생활을 대치한다 — 롬 12:4-5.
      2. 이 시대를 본받는 것은 현시대의 현대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되는 것은 유기적인 요소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지도록 하여, 내적이며 신진대사적인 변화를 산출하는 것이다 — 롬 12:2, 고후 3:18.
      3. 현시대는 하나님의 뜻인 교회를 반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현시대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 롬 12:2.
      4.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시대를 따르지 말아야 하며 이 시대를 본받거나 닮지 말아야 한다 — 롬 12:4-5.
      E. 현시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세상 편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한다면,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권익을 위해 주님과 함께 싸울 것이다 — 딤후 4:1-2, 4-8, 10.
      Ⅳ.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이들은 승리할 것이다 — 고전 2:9, 딤후 4:8, 계 22:20, 17:14.
      A.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보상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된다 — 딤후 4:8, 18.
      B.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할수록, 우리는 오늘 더욱더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 마 24:40-42, 살후 1:10, 3:6-12, 딤전 5:8.
      C.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며, 그분을 살고, 그분을 확대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고 주님의 하늘에 속한 왕국 안으로 구원받으며 의의 면류관을 받기를 바라는 이들로서,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마음의 갈망과 생활이 되게 해야 한다 — 딤후 4:8, 18.
    • 메시지2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름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히 6:1, 엡 4:13, 골 1:27-29, 4:12, 계 14:1-5

      Ⅰ.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농부가 오래 참으면서 땅의 귀중한 열매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예시로 사용한다 — 약 5:7.
      A. 주 예수님은 사실상 참된 농부, 유일한 농부이시다 — 마 13:3.
      B.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동안, 참된 농부이신 주님도 밭의 첫 열매와 곡식인 우리가 생명 안에서 성숙하기를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 계 14:4, 14-15.
      C. 우리가 “주님, 속히 돌아오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너희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희가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성숙해야만 내가 돌아가는 것이 앞당겨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D.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우리가 진지하게 기다린다면,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Ⅱ. 성숙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속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 갈 4:19.
      A.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갔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태어나셨다(요 3:6, 15-16). 이제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도록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시며(갈 2:20하), 우리가 성숙할 때 우리 속에 그분의 형상이 이루어질 것이다(4:19).
      1.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a.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우리가 변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창 1:26, 골 1:28, 2:19, 4:12.
      b. 성숙은 우리가 생명의 충만함을 얻을 때까지 신성한 생명을 거듭해서 우리 안으로 분배받는 문제이다 — 요 10:10하.
      2. 성숙은 용량이 증가하는 문제이다 — 시 4:1.
      a. 생명의 성숙은 성령의 징계를 받은 것의 총합이다 — 히 12:5-11.
      b. 다른 사람들은 생명이 성숙한 한 사람을 보겠지만, 그 사람이 수년에 걸쳐 남모르게 매일 받아 온, 축적된 성령의 징계는 볼 수 없다 — 고후 1:8-10, 창 47:7, 10.
      3. 하나님은 우리를 채운 모든 것을 비워 내시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시기 위해, 주권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과 사건을 사용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우리의 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 눅 1:53, 마 5:6.
      B. 우리가 신성한 아들의 자격에 있어서 성숙하고 성년이 된 아들들이 되려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 갈 4:4-5, 롬 8:15, 엡 1:5.
      1.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해 오셨다 — 고후 3:18, 롬 8:29.
      2. 주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우리 안으로 완전히 일해 넣으시고 우리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실 때, 우리는 생명이 성숙할 것이다 — 엡 3:16-17.
      C. 신약의 용법에 따르면, ‘성숙’이라는 단어는 믿는 이들이 거듭났을 때 받은 하나님의 생명이 완전히 자라고 성숙하고 온전해진 것을 가리킨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즉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기를 추구함으로써,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 빌 3:12-15.
      2. 영적 생명이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성한 생명이 계속 자라는 것이다 — 엡 4:15.
      3.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한 것의 궁극적인 결과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된다. 곧 성숙한 사람으로 자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된다 — 엡 4:13.
      Ⅲ. 바울의 사역의 목표는 한 새사람을 위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 곧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 골 1:28-29, 3:10-11.
      A. 골로새서 1장 28절에서 ‘충분히 성장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또한 ‘온전한’, ‘완전한’, 혹은 ‘성숙한’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B.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함으로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어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 엡 4:13.
      C.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갈수록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더 들어오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더 들어오실수록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간다. 바로 이러한 순환에 의해 우리는 생명이 자란다 — 골 1:27-28.
      D.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과 교통하는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그들 안으로 공급함으로, 그들이 생명이 성숙하여 그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드려지게 하는 것이다 — 골 3:10-11, 엡 4:13-14.
      Ⅳ. 휴거될 준비가 되려면 우리는 생명이 성숙해야 한다 — 마 24:40-41.
      A. 휴거는 생명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결 단계로서 우리 몸의 변형, 우리 몸의 구속이다 — 롬 5:10, 8:23, 빌 3:21.
      1. 우리가 받아들인 신성한 생명의 요구와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강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생활을 추구하기를 갈망한다 — 살전 1:10, 2:19, 3:13, 4:15, 5:23.
      2.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주님의 임재 앞으로 휴거되기를 소망한다 — 마 24:40-41, 눅 17:31-36, 21:36.
      B. 성숙하게 되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 안에서 자라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휴거되도록 성숙되어 있을 것이다 — 계 14:1-5.
      C. 성숙의 표시에는 다음의 항목이 포함된다 — 히 6:1.
      1. 우리를 변화시키는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짐 — 엡 3:19.
      2.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 — 롬 5:17.
      3.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음 — 히 5:12-14.
      4.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성장함 — 고전 14:20.
      5.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온전하게 됨 — 마 5:48.
      6. 몸을 보고, 몸을 알고, 몸 안에서 몸을 위해 살고, 몸을 돌보고, 몸을 존중함 — 엡 4:13-16.
    • 메시지3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벧후 1:19, 시 119:105, 130, 계 2:28, 말 4:2, 살전 5:4-6

      Ⅰ. 믿는 이들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벧후 1:19상.
      A.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언들을 알기를 요구하시며, 믿는 이들은 예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벧전 1:10, 벧후 3:2, 눅 1:70.
      B.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언들을 이해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믿는 이들이 반드시 성경에 있는 예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마 24:15, 비교 단 9:24-27.
      C. 교회가 이 예언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많은 믿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믿음을 잃고, 거짓말에 속고, 예언에 대한 지식이 없어 멸망하고, 깨어 있지 않아 주님의 오심을 잊어버릴 것이다 — 호 4:6, 살전 5:4-6, 마 24:42, 벧전 5:8.
      D. 믿는 이들에게 성경의 예언들이 없다면, 그들은 어둠 속에 빠질 것이다 — 행 26:18, 요 12:35-36, 엡 5:8-9.
      1. 현시대는 밤중이다 — 롬 13:12, 살전 5:4-8.
      2.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날이 밝을 것이고(벧후 1:19하), 다음 시대인 왕국 시대는 낮 시간일 것이다.
      Ⅱ. 베드로는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했다 — 벧후 1:19중.
      A. 이것은 이 시대가 어두운 밤(롬 13:12)이자 어두운 곳이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행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비교 행 26:18).
      B.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은 믿는 이들을 비추는 등불로서 (다만 정신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문자로 된 지식이 아닌) 영적인 빛을 전달하여 그들의 어둠을 비추며, 그들이 밝은 낮에 들어가도록 안내할 뿐 아니라, 어두운 밤을 지나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이 밝을 때까지 안내한다 — 벧후 1:19하, 딤후 4:8, 1:12.
      C. 햇빛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까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는 빛인 이 말씀이 필요하다 — 말 4:2, 시 119:105, 130.
      D. 만일 우리가 어두운 곳을 등불처럼 비추는 성경의 예언의 말씀에 주의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떠오르셔서 어둠을 비추실 것이다 — 벧후 1:19하.
      Ⅲ. 우리는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벧후 1:19하.
      A. ‘어두운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또한 ‘아주 음산하고 어두컴컴한 곳’, 즉 ‘지저분하고 메마르고 방치된 곳’으로 번역될 수 있다.
      B. 날이 밝는 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빛으로 충만하게 될 장차 오는 때를 설명하고 있으며, 동트기 전 샛별이 떠오르면서 날이 밝는 것처럼, 샛별이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믿는 이들은 성경에 있는, 빛을 비추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함으로써 비춤을 받고 밝아진 사람들이다.
      1.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믿는 이들은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추구하고 깨어 있도록 동기를 부여받고 격려받아, 주님께서 도둑처럼 오실 때에 그분께서 오시는 것(파루시아)의 은밀한 방면을 놓치지 않고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마 24:27과 각주 1, 42-43절, 살후 2:8과 각주 5.
      2. 이 비유는 의의 해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오실 때)에 밝아 올 날인 오는 시대, 곧 왕국 시대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의의 해의 빛은 캄캄한 밤과 같은 이 시대의 암흑을 뚫고 빛을 비출 것이다 — 말 4:2.
      C. 샛별은 동트기 전인 가장 어두운 시간에 나타난다 — 계 22:16하, 비교 민 24:17, 마 2:2, 9-10.
      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가 끝나기 전인 가장 어두운 시기에 빛나는 샛별로서 나타나실 것임을 가리킨다 — 계 22:16하.
      2. 주님께서 샛별로 나타나시는 것과 의의 해로 나타나시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계 2:28, 말 4:2.
      a. 샛별은 날이 밝기 전에 나타나며, 해가 나타나는 것은 날이 밝은 후에 일어난다.
      b. 날이 밝은 후에 뜨는 의의 해로서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 말 4:2.
      c. 날이 밝기 전에 뜨는 빛나는 샛별로서 그리스도는 깨어 있고 준비하고 그분을 기다리는 이기는 이들에게 은밀히 나타나실 것이다 — 계 22:16하.
      d. 그리스도는 그분을 사랑하고 깨어서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샛별이신 그분 자신을 은밀하게 나타내 주실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그분께서 오랫동안 이 땅에 계시지 않다가 돌아오실 때, 그분의 임재의 신선함을 가장 먼저 맛보는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 — 계 2:28.
      D. 우리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성경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 속의 상태는 날이 밝고 샛별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처럼 될 것이다 — 벧후 1:19하.
      1. 비유적으로, ‘날이 밝는 것’은 밝아 오는 대낮과 같은 다가올 왕국 시대를 가리킨다 — 비교 마 13:43.
      2. 그리스도의 예표들과 관련해서, 성경 전체는 빛이신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샛별이신 그리스도로 끝마친다 — 창 1:3, 계 2:28, 22:16하.
      3. ‘샛별’은 왕국 시대가 밝아 오기 전인 가장 어두운 밤 시간에,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이들의 마음에 은밀하게 떠오르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계 22:16하.
      4. 우리가 빛을 비추는 성경 말씀에 계속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리스도께서 밝은 샛별로서 실지로 나타나시기 전에, 우리 안에서 낮처럼 밝아 오는 왕국과 우리의 마음속에서 샛별처럼 떠오르시는 그리스도를 얻게 될 것이다 — 벧후 1:19, 계 2:28.
      5. 샛별이신 그리스도는 이기는 이들에게 첫 번째 보상으로 주어지실 것이다. 우리는 샛별이신 주님의 은밀한 나타나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 계 2:28-29.
    • 메시지4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가 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마 24:45-51

      Ⅰ.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가 되어, 주인이 맡긴 집안 식구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눠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인이 와서 노예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 노예는 복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입니다.” — 마 24:45-47.
      A.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가정’ 경영, 즉 그분의 가정 행정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어 자신을 표현하는 집을 얻으시는 것인데, 이 집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 딤전 1:4, 3:15, 엡 2:19.
      B.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는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이자 가정 관리인으로서,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분배한다 — 고전 9:17, 엡 3:2, 고전 4:1, 벧전 4:10.
      1. 신실함은 주님께 보이는 것이지만(고전 4:2, 7:25), 현명함은 믿는 이들에게 행하는 것이다(비교 골 1:28, 대하 1:10, 빌 4:5).
      2. 주님은 천국의 출현 안에서 신실한 노예에게 그분의 모든 소유를 맡기실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노예에게 주시는 보상일 것이다 — 마 25:21, 23.
      C. ‘양식을 나눠 줄’은 교회 안의 믿는 이들에게 생명 공급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양식으로서 생명의 말씀 안에 체현되시고 실재화되어 계신다 — 마 24:45, 요 6:57, 63, 68.
      1.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영적 양식으로 누려 이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기 위해서는 온갖 기도를 통해,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읊조림으로 즉 깊이 숙고하며 크게 말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 엡 6:17-18, 시 119:15(각주 1 참고), 48, 148, 수 1:8, 레 11:2-3, 겔 3:1-4, 골 3:16.
      2.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 행 6:4, 비교 히 7:25, 8:2.
      3. 우리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신언해야 한다. 즉 이 생명의 살아 있는 말씀과 우리가 본 것을 성령의 즉각적이고도 신선한 감동과 기름바름과 빛 비춤 아래서, 우리의 영을 사용해 말해야 한다 — 고전 14:4하, 행 5:20, 4:20, 22:15.
      4.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돌봄 아래 있는 이들을 먹이려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함으로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의 공급 곧 영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눅 11:1-13.
      5. 우리는 생명을 주는 ‘구하는 사람’, 곧 생명 주시는 영의 통로로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이가 되어야 한다 — 요일 5:16.
      6. 우리는 ‘신선한 기름의 아들들’, 곧 즐거움의 기름이신 신선하시고 현존하시며 완결되신 영으로 계속 충만하게 되어, 등잔대의 빛나는 증거 곧 예수님의 증거를 위해 등잔대 안으로 그 영을 흘려 보내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슥 4:6, 12-14, 빌 1:25, 계 3:18, 마 25:9.
      a. 우리는 날마다 대가를 지불하여 신성한 본성을 지닌 금기름이신 하나님을 더 많이 얻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금으로 된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해 순수한 금등잔대가 될 수 있다 — 벧후 1:4, 계 3:18, 1:20, 21:18, 마 25:8-9.
      b. 이것을 오늘 우리의 체험에 적용해 볼 때, 우리는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영께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금이신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어 그들에게 기름을 공급해 줄 때, 우리는 사실상 그들에게 하나님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흘러나오셔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 슥 4:12-14, 요 7:37-39, 고후 3:3, 6, 8, 눅 10:34.
      Ⅱ. “그러나 그 악한 노예가 마음속으로 ‘나의 주인이 더디 오실 것이다.’라고 하며, 동료 노예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면, 예기치 않은 날, 알아채지 못하는 시각에 그 노예의 주인이 와서, 그를 엄하게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 마 24:48-51.
      A. 마음속으로 우리의 주인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한 현시대를 사랑하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지 않는 것이다 — 딤후 4:8, 10.
      1. ‘오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임재’를 의미하는 ‘파루시아’이다.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즉 주님께서 오시기를 사모한다면, 오늘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 그분의 임재를 사모해야만 한다 — 마 24:3, 37, 행 26:16, 고후 2:10, 찬송가 290장.
      2. 우리에게 오늘이 있는 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면서,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오심을 경고와 격려와 동기 부여로 삼아야 한다 — 딤후 4:8, 빌 3:20, 계 22:12.
      3. 우리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마 25:13, 24:44, 계 19:7.
      4. 우리는 탐심을 주의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해야 한다 — 눅 12:16-20, 고후 6:10, 엡 3:8.
      5. 우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철저히 멸하실 악한 세상을 사랑하거나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 눅 17:28-32.
      6.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우리에게 닥치지 않도록 깨어서 간구해야 한다 — 눅 21:34-36, 비교 마 2:3.
      7. “주 예수님, 오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염원과 부르짖음과 지속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 계 22:20, 딛 2:12-13.
      B. 우리의 동료 노예들을 때리는 것은 동료 믿는 이들을 학대하는 것이다 — 비교 행 9:4.
      1. 우리는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을 판단하거나 유죄판결 해서는 안 되며, 친절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해야 한다 — 눅 6:37, 엡 4:31-32.
      2.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보다 그들을 더 낫게 여겨야 한다 — 고전 6:10-11, 빌 2:3, 29.
      3. 우리는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 위에 (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이) 군림해서는 안 되며, 노예로서 그들을 섬김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여야 한다 — 벧전 5:3, 마 20:25-28, 비교 민 17:8.
      C.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적인 것들로 취해 있는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다.
      1. 믿는 이들은 신성한 본성과 거룩한 위치가 있으므로, 믿지 않는 이들과 멍에를 함께 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결혼이나 사업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사이의 모든 친밀한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 고후 6:14, 고전 15:33, 비교 잠 13:20.
      2. 우리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추구해야 한다 — 딤후 2:22.
      D.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는 왕국이 출현할 때 다스리는 권위를 보상으로 받을 것이지만, 악한 노예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의 영광과 왕국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에서 끊어질 것이다 — 마 24:47, 51.
      1. 왕국의 출현에서 끊어지는 것은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이다.
      a. 바깥 어둠은 왕국의 출현 안에 있는 밝은 영광 바깥에 있는 어둠이다 — 마 16:28, 25:30.
      b. 슬피 우는 것은 후회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를 가는 것은 자책하는 것을 가리킨다.
      2.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민족들을 다스리는 것은 그분의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들에게 주어지는 상일 것이다 — 계 2:26, 눅 19:17-19.
    • 메시지5
      부흥된 생활을 하고 목양하는 수고를 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함
      +
    • 성경: 고후 4:16-18, 요 21:15-17

      Ⅰ.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려면, 우리는 부흥된 생활 곧 매일 새로워지는 생활을 함으로써(고후 4:16-18) 우리의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새롭게 됨이 매일 아침 신선해져야 한다(마 13:43, 눅 1:78-79, 잠 4:18, 삿 5:31).
      A. 날마다 새로운 출발을 가지려면 우리는 아침 일찍 주님을 누려야 한다 — 시 119:147-148.
      B. 매일 아침 우리는 우리의 해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떠오르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하며, 그럴 때 새로워질 수 있다 — 눅 1:78-79, 말 4:2, 삿 5:31.
      1.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주님과 교통해야 하며, “주님, 새로운 시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날이 저의 생애에 기념이 될 만한 날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아침마다 부흥되는 것’이다.
      2. 새로운 시작을 갖기 위해, 매일 아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해야 할 뿐 아니라, 달콤한 방식으로 깊은 속에서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 — 레 6:12-13.
      3. 매일 아침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사신 분이시자 우리가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취하는 것이다 — 레 1:9, 6:12-13, 요 5:19, 30, 6:38, 7:18, 8:29.
      C. 부흥된 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극도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는 것을 하루의 목표로 삼아 그분을 향해 사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고전 2:9, 고후 5:14-15, 빌 3:14.
      D. 우리는 제단과 천막의 생활을 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창 12:7-8, 13:3-4, 18.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결과로 우리는 헌신을 하게 되며 제단을 쌓게 된다. 제단은 우리의 온 존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분께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제단을 쌓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을 위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이시며, 우리의 생활의 의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 창 8:20-21상, 출 29:18-22.
      2. 천막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체류자로서 더 좋은 고향을 찾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건축하신 성인 새 예루살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 히 11:9-10, 13, 16.
      E. 날마다 새롭게 부흥되는 것은 매일 신선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평생 이렇게 변화되는 상태로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생명 안에서 성장하여 성숙에 이를 것이다 — 롬 12:2, 고후 3:18, 히 6:1상.
      F. 우리는 네 가지 항목을 통해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그것은 십자가(고후 4:10-12, 16-18), 우리를 신성한 생명으로 재조정하시고 다시 만드시고 개조하시는 성령(딛 3:5), 우리의 연합된 영(엡 4:23),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엡 5:26)이다.
      G. 우리는 새로움 안에서 주님의 상에 나아와야 한다(마 26:29). 주님은 절대로 낡은 상을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새롭게 될 필요가 있다.
      H.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매일 아침 주님의 새로운 자비를 얻어 그분에 의해 새로워지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고, 우리가 통과한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 애 3:22-24, 고후 4:16-18.
      Ⅱ. 주님의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려면,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교회인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는 것이다 — 요 21:15-17, 벧전 2:25, 5:1-4, 히 13:20-21.
      A.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그분의 사역에서 보여 주신 본에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마 9:36, 요 10:11, 히 13:20, 벧전 5:4.
      1.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구주의 목양하고 찾는 영이 없는 것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이다 — 눅 15:1-24.
      2.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며(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야 하며)(마 9:10, 눅 7:34),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양해야 한다(세 단계의 사역 안에 계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여야 한다)(마 24:45-47).
      3. 그리스도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시다가 의도적으로 우회하여 수가라는 동네에 가셔야 했는데, 그것은 부도덕한 한 여인을 얻으시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심으로써 그녀를 보살피셨는데, 이것은 생명수의 강이신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그녀를 보양하시기 위해서였다 — 요 4:3-14.
      4. 죄가 없는 분이신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유죄판결 하지 않으시고, 법리적으로 그녀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유기적으로 그녀를 죄들에서 해방하심으로써 그녀를 보살피셨다(요 8:1-11, 32, 3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 첫 번째로 구원하신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은 강도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눅 23:42-43).
      5. 주님은 세리장인 한 사람을 방문하여 얻으시려고 여리고에 가셨으며, 이러한 주님의 복음 전파는 일종의 목양이었다(눅 19:1-10). 주님은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심으로써 그들의 부모들을 보살피셨다(마 19:13-15).
      6. 금등잔대들인 교회들을 돌보시는 데 있어서, 승천하신 주님은 ‘거니시는 그리스도’이시고 ‘말씀하시는 영’이시다. 교회들 가운데를 거니심으로써 그분은 각 교회의 상태를 알게 되시고, 그런 후에 그분께서 보신 것에 따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그분의 이기는 이들이 되게 하시려는 목표를 위해 그들을 신진대사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변화시키시려는 것이다 — 계 1:12-13, 2:1, 7.
      B. 우리는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권유하는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목양한 사도 바울의 본에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살전 2:7-8, 11-12, 딤전 1:16, 행 20:28.
      1. 바울은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행 20:20) 에베소의 성도들을 가르치고, 삼 년 동안 눈물로 성도들 각 사람을 훈계하며(31, 19절), 하나님의 모든 의결을 그들에게 선포함으로써(27절) 그들을 목양했다.
      2.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친밀한 관심을 가졌고(고후 7:2-7, 몬 7, 12), 연약한 사람들을 얻을 수 있기 위해 그들의 수준에까지 내려갔다(고후 11:28-29, 고전 9:22, 비교 마 12:20).
      3.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그가 가진 것, 곧 그의 소유물을 기쁘게 소비하고, 그의 존재, 곧 그 자신까지도 기쁘게 소비하고자 했다(고후 12:15). 그는 전제물로서, 곧 포도주를 생산하는 분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인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였다(빌 2:17, 삿 9:13, 엡 3:2).
      4. 바울은 그 영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존귀하게 했으며, 그 결과 그 영을 공급함으로 사람을 존귀하게 할 수 있었다 — 고후 3:3, 6, 8, 갈 5:16, 25, 삿 9:9.
      5. 바울은 그의 가르침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양육하는 가정이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병원이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는 학교임을 시사했다 — 엡 2:19, 살전 5:14, 고전 14:31.
      6.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가장 뛰어난 길이 사랑이라는 것을 계시했다. 즉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계시했다 — 고전 8:1, 12:31, 13:4-8상, 엡 1:4, 3:17, 4:2, 15-16, 5:2, 6:24, 계 2:4-5, 골 1:18하, 살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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