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집회

2024년도 7차 정기집회

  • 개요

    가을 학기 전시간 훈련 : 바울의 서신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갈라디아서

    • 메시지1
      악한 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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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우리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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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복음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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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봄 학기 전시간 훈련 : 바울의 서신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고린도후서

    • 메시지1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 자신께서 새 언약의 실재와 내용이시며 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조성 성분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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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 속의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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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향을 나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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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4
      새 언약의 사역의 기능 ― 본질인 생명 주시는 영과 내용인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편지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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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5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기 위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하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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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6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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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7
      신약의 사역 ― 우리를 새로운 부흥 안으로 이끄는 그 영의 사역, 의의 사역, 화목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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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8
      믿음의 영에 의해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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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9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주님을 향하여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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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0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완전히 화목시켜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 안에서 삶으로써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는 화목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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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1
      모든 것에 적응하는 생명과 우리의 마음이 넓어짐에 의해 하나님과 함께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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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2
      사도들의 권위, 전쟁의 무기, 하나님께서 재어 주신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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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3
      신약의 약혼시키는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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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4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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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5
      약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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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6
      우리의 누림과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하여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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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여름 훈련 :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1)

    • 메시지1
      큰 빛, 권위를 가지신 분, 의사, 신랑, 생베 조각, 새 포도주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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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마 4:16, 8:5-13, 9:9-17
      Ⅰ. 그리스도는 어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죽음의 땅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큰 빛이시다 — 마 4:16, 요 1:4-5, 12:36, 엡 5:8, 골 1:12-13, 고후 4:6-7, 행 26:18.
      A.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이로써 돋는 해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우리의 발을 평안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 눅 1:78-79, 6:36, 애 3:22-23.
      B.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해가 치료하는 날개를 지니고 떠오르리니, 너희가 나아가 잘 먹인 송아지처럼 뛸 것이다.” — 말 4:2, 시 84:11, 86:11.
      C. 시편 22편은 ‘새벽 암사슴에 맞춘’ 시이다 — 제목.
      D.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 힘 있게 돋는 해와 같게 하여 주십시오.” — 삿 5:31하, 사 60:1, 5상.
      E. “의인들의 길은 여명의 빛 같아 / 점점 더 밝게 빛나 한낮에 이른다.” — 잠 4:18, 빌 2:15-16상.
      F.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 마 13:43상.
      Ⅱ. 백부장은 주님께서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시기 때문에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았다 — 마 8:5-13.
      A. 백부장이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고”라고 말했을 때, 그는 주님께서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신 것을 알아보았다. 백부장은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할 권위를 갖고 있었다 — 마 8:9상.
      1. 이 땅에서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사람으로서 주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계셨다 — 요 5:19, 4:34, 17:4, 14:10, 24, 5:30, 7:18.
      2. 사람으로서 그분은 자신의 타고난 인성을 거절하셨으며, 하늘의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의 제한 아래 인간 생활을 하셨다.
      3. 그분은 실지적으로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계심으로써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고 계셨다 — 빌 2:8-11.
      4. 그분은 아버지의 권위 아래 계신 사람이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셨다.
      5. 우리와 주님 사이에 막힌 것이 아무것도 없이, 우리가 두려운 수정 같은 맑은 하늘(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는 임재라는 하늘에 속한 상황과 분위기와 상태로 충만하게 되어, 우리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은혜에 의해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게 된다 — 겔 1:22, 26, 계 22:1, 롬 5:17, 21, 히 4:16, 비교 골 1:13.
      B. 백부장은 주 예수님의 권위를 인식했다 — 마 8:9.
      1. 주님과 관련하여, 주님의 권위는 주로 그분의 말씀으로 행사된다 — 마 8:8.
      2. 우리와 관련하여, 주님의 권위는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주입하신 믿음을 통해 행사된다 — 마 8:10, 13, 히 12:2.
      C.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가르치셨다 — 마 7:28-29, 막 1:22.
      1. 스스로 공허한 지식을 가르쳤던 자칭 율법학자들에게는 권위도 능력도 없었다 — 비교 고후 3:6, 8.
      2. 하나님께 권위를 받은 선생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실재들을 가르치신 주 예수님은 사람들을 굴복시키시는 영적인 능력뿐 아니라, 그들을 신성한 다스림에 복종시키시는 신성한 권위도 있으셨다 — 사 30:20-21, 마 23:8, 10.
      Ⅲ. 왕국을 위해 자신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셨을 때, 하늘에 속한 왕국의 왕이신 주 예수님은 의사로서 사역하셨다 — 마 9:9-13.
      A. 재판관이 심판하는 것은 의에 따른 것이지만,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은 긍휼과 은혜에 따른 것이다.
      B. 주님께서 가련한 사람들인 우리에게 재판관으로서 찾아오셨다면, 우리 모두가 유죄판결을 받고 거절당했을 것이며, 우리 중 아무도 하늘에 속한 왕국의 백성으로서 자격이 있거나 선택을 받거나 부름받지 못했을 것이다 — 마 8:2-16, 28-32, 9:2-11, 시 103:1-4, 107:17-22.
      C.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고치고 회복하고 살리고 구원하는 의사로서 사역하시러 오셨는데, 그 목적은 우리를 하늘의 새로운 시민들로 재조성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하늘에 속한 왕국을 이 타락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D.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롬 3:10) 모든 ‘의인’은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이들이다(눅 18:9). 왕이신 구주는 이러한 사람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
      E. 우리의 의사이신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질병을 치료하시면서 주로 우리의 영과 혼을 치료하신다. 세리들과 죄인들은 신체적으로 병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병들어 있었다 — 마 9:10, 13, 잠 4:20-23.
      F.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치료하는 능력이 되시며 주님께서 우리의 치료자가 되신다 — 출 15:22-27.
      Ⅳ.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시다 — 마 9:14-15.
      A. 의사와 신랑은 다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왕이신 구주는 먼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낫게 하셨고, 그다음에 그들을 신랑의 친구들이 되게 하셨으며, 결국에는 그들을 신부로 삼으실 것이다.
      B.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회복될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의 의사로 붙잡아야 할 뿐 아니라, 그분의 임재 안에 사는 기쁨을 갖도록 그분을 우리의 신랑으로 붙잡아야 한다 — 빌 3:12-13.
      C. 그 영은 아버지에 의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보냄을 받으셨는데, 그 임무는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우리를 아름답게 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 창 24장, 엡 5:25-27.
      Ⅴ. 그리스도는 생베 조각이시며 우리의 새 옷이시다 — 마 9:16, 눅 5:36.
      A. ‘생’이라는 말은 ‘빗질하지 않은’, ‘김을 쐬어 씻지 않은’, ‘끝손질하지 않은’, ‘처리하지 않은’을 의미한다.
      B. 생베란 육체가 되심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 곧 처리되지 않고 끝손질되지 않은 생베 조각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지만, 누가복음 5장 36절에 있는 새 옷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처리되신’ 후의 새 옷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C. 그리스도는 먼저 새 옷을 만들기 위한 생베이셨고, 그다음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로서 우리를 덮는 새 옷으로 만들어지셨다 — 눅 15:22, 갈 3:27, 고전 1:30, 시 45:13-14, 계 19:8, 렘 2:32.
      D. 낡은 옷에 대고 기운 생베 조각은 그 수축하는 힘으로 옷을 당기어 더 찢어지게 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생을 사시면서 이 땅에서 하신 것을 사람들이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자이신 예수님, 곧 그들의 의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 하시어 그들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
      E. 그들이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을 모방하는 것은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된 행위인 그들의 ‘낡은 옷’을 ‘당기는 것’이다.
      F. 왕국 백성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의로서 그들을 덮는 새 옷으로 취한다.
      Ⅵ. 그리스도는 ‘새(fresh)’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할 우리의 ‘새(new)’ 포도주이시다 — 마 9:17.
      A. ‘새(new)’의 헬라어 단어는 ‘시간상 새로운’, ‘최근의’, ‘새로 소유한’을 의미한다.
      1. 새 포도주는 힘을 북돋아 주는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이 생명에는 우리를 강화하고 활력 있게 하고 매우 기쁘게 하는, 힘을 북돋아 주는 능력이 있다 — 삿 9:12-13.
      2. 모든 종교는 낡은 가죽 부대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의 발효시키는 힘이 그 가죽 부대를 터뜨린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것은 열광하게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어떤 종교 안에 넣는 것이다 — 마 9:14-15.
      3. 종교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떠나, 그 영이신 그리스도 없이 하는 것이다 — 비교 갈 1:14-16상.
      B. ‘새(fresh)’의 헬라어 단어는 본성이나 품질이나 형태에 있어서 ‘새로운’, 즉 ‘익숙하지 않은’, ‘사용하지 않은’을 의미한다.
      1. 새 가죽 부대는 새 포도주, 곧 열광하게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담는 그릇인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 있는 교회생활을 상징한다.
      2. 개인적인 그리스도는 새 포도주, 곧 열광하게 하는 내적인 생명이시고,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새 가죽 부대, 곧 새 포도주를 담는 외적인 그릇이다.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는 포도주이신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담는 새 가죽 부대이다.
      a. 그리스도의 확대인 교회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조성되어 있다.
      b. 하나로 함께 구성된 지체들은 한 몸이며, 이 몸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시자 머리의 몸이시다 — 고전 12:12, 행 9:5.
      c. 그리스도는 나누어지지 않으신다.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하나이시며,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하나이시다 — 고전 1:10, 13상.
      d.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분으로 충만한 많은 지체로 구성된 몸이시다. 이것이 새 가죽 부대, 곧 새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교회생활이다.
      3. 교회 사람들 가운데서 새 옷과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가 모두 회복되었다. 우리는 단체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교회생활로 소유하고 있으며, 가죽 부대인 교회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 메시지2
      하늘에 속한 다스림을 받으며 행동하시는 분, 우리의 목자, 우리의 안식, 씨 뿌리는 분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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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마 9:20-22, 36, 11:28-30, 13:3, 18-23
      Ⅰ. 그리스도는 그분의 옷 술로 상징된 하늘에 속한 다스림을 받으며 행동하시는 분으로 계시되신다 — 마 9:20-22.
      A. 그리스도의 겉옷은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를 상징하고, 옷 술은 하늘에 속한 다스림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그들의 의복 끝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의복 끝자락의 술에 청색 끈을 달게 하여라. 이 술은 너희를 위한 것으로서, 너희가 이것을 볼 때마다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게 하고 … 너희의 하나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민 15:38-40.
      1. 청색은 하늘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끈은 제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2. 따라서 청색 끈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의 행동과 행위가 아름다워야 하며 하늘에 속한 통치와 제한과 규율에 다스림 받고 통치받고 제한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 겉옷은 인간 행위의 미덕을 상징한다. 주님의 겉옷은 인성 안에서의 그분의 온전한 행동, 곧 그분의 인간 미덕의 온전함을 상징한다.
      C. 주 예수님의 인간 미덕 안에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병든 여인이 그분의 옷 술을 만졌을 때, 그분의 미덕에서 능력이 나와 그녀에게 이르러 그녀를 치료했다.
      D. 하늘에 속한 다스림을 받는 그리스도의 행위에서 나온 미덕이 병을 고치는 능력이 된다 — 마 14:36.
      E. 주님의 겉옷을 만지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체현(골 2:9)이신 주님의 인성을 접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촉으로 그분의 신성한 능력이 그분의 온전한 인성을 통해, 그분을 접촉한 그 여인 안으로 옮겨 부어져 그 여인은 낫게 되었다(눅 8:45-48, 히 12:2상).
      F. 가까이할 수 없는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여인이 구원받고 누리도록, 노예-구주 안에서 노예-구주의 인성을 통해 만질 수 있는 분이 되셨다.
      G. 에워싸 미는 무리는 노예-구주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그분을 만진 사람은 받았다(참조 찬송가 412장, 2절 및 후렴).
      Ⅱ. 주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양들이다 — 마 9:36, 사 40:11, 53:6, 겔 34:1-5, 11-15.
      A. 그분은 푸른 풀밭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쉴 만한 물이신 그 영을 누리는 첫 단계에서 우리를 목양하신다 — 시 23:1-2, 딤전 1:4, 빌 1:19하, 요 21:15, 살전 2:7, 고전 12:13하.
      B. 그분은 의의 길들에서 소생되고 변화되는 둘째 단계에서 우리를 목양하신다 — 시 23:3, 롬 12:2, 요 7:38, 롬 8:4.
      C. 그분은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지나면서 공기 같은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는 셋째 단계에서 우리를 목양하신다 — 시 23:4, 딤후 4:22, 고후 12:7-10.
      D. 그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더 깊고 더 높게 누리는 넷째 단계에서 우리를 목양하신다 — 시 23:5.
      1. 주님은 우리의 대적들 앞에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 주신다 — 시 23:5상, 비교 삼하 4:4, 9:7, 13, 창 14:18-20, 느 4:17.
      2.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니 우리의 잔이 넘친다 — 시 23:5하, 히 1:9, 고전 10:16상, 21.
      3. 시편 23편 5절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 곧 잔치이신 아들과 바르는 기름이신 그 영과 축복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본다.
      E. 그분은 여호와의 집에서 신성한 선과 자애를 일생 누리는 다섯째 단계에서 우리를 목양하신다 — 시 23:6.
      1.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목양 아래 선과 자애가 ‘평생’ 우리를 따를 것이고,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 평생토록 거주할 것이다 — 시 23:6.
      a. ‘선’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리키고, ‘자애’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키며, ‘따르리니’는 그 영의 교통을 암시한다. 이처럼 아들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그 영의 교통이 우리와 함께한다 — 고후 13:14.
      b.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누릴 때 우리는 평생토록(현시대와 오는 시대와 영원 안에서) 거할 하나님의 집(그리스도, 교회, 우리의 영, 새 예루살렘 — 요 1:14, 2:21, 딤전 3:15-16, 엡 2:22, 계 21:2-3, 22)에서 하나님을 누리도록 이끌리게 된다.
      2.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 시 27:4-8.
      a. 하나님의 아름다움(사랑스러움, 즐거움, 유쾌함)을 바라보기 위해 — 시 27:4상, 8, 고후 3:18.
      b.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 점검받기 위해 — 시 27:4하, 비교 수 9:14.
      c. 하나님의 피신처에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천막 은밀한 곳에 우리 자신을 숨기기 위해 — 시 27:5상, 31:20.
      d.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고 우리의 머리가 들리기 위해 — 시 27:5하-6상.
      e. 환호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노래하며 시를 읊기 위해 — 시 27:6하, 히 13:15, 빌 2:11.
      Ⅲ. 주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이시다 — 마 11:28-30.
      A.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 마 11:28.
      1. 여기에서 언급된 수고는 율법의 계명과 종교적인 규정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수고를 가리킬 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 성공하려고 분투하는 수고를 가리킨다. 그렇게 수고하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2. 안식은 율법이나 종교 혹은 어떤 일이나 의무로 말미암은 수고와 짐에서 해방되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온전한 평안과 충만한 만족을 가리킨다.
      B.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 마 11:29-30.
      1.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일에 규제되거나 통제받는 것이 아니며, 아버지의 뜻에 제한받는 것이다.
      2. 주님은 그렇게 사시면서 다만 아버지의 뜻만 주의하셨다(요 4:34, 5:30, 6:38).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다(마 26:39, 42).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3. 주님에게서 배우는 것은 그분을 외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멍에 곧 아버지의 뜻을 취함으로써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을 복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멍에가 되어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목을 이 멍에 안에 두어 그분의 복사판이 되어야 한다 — 벧전 2:21.
      4.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움으로써 우리가 얻는 안식은 우리의 혼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만 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인 안식이다.
      5. 주님의 멍에는 아버지의 뜻이고, 그분의 짐은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는 일이다. 그런 멍에는 편하고(‘어렵고, 엄하고, 날카롭고, 괴롭고’와 대조되는 ‘좋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온화하고, 유쾌하고’) 그런 짐은 가벼워 결코 무겁지 않다.
      Ⅳ. 씨 뿌리는 이는 놀라운 인격이신 주 예수님이시며, 뿌려진 씨 또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주님 자신이다 — 마 13:3, 18-23.
      A. 우리는 씨 뿌리는 이로서 생명의 씨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들 안으로 뿌리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보아야 한다. 이 이상이 바로 주님의 회복의 심장부인데, 이것은 이 이상이 주님의 마음의 갈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B. 주님은 그분께 선택받은 백성인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연합의 방식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기를 갈망하시는데, 이것은 그분 자신을 우리의 요소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표현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C.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작지, 즉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보배로운 재료들이 산출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서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는 농장이다 — 고전 3:9, 12상.
      D. 성경에 따르면, 성장은 건축과 동일하다. 건축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신성한 씨가 자랄 때 일어난다 — 요일 3:9, 골 2:19, 엡 4:15-16.
      E. 에베소서 3장 17절이 계시하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그분 자신을 요소로 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재료로 하여 건축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씨 뿌리는 이의 비유로 설명된다.
      1. 주님은 생명의 씨이신 그분 자신을 토양인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심으로, 그들 안에서 자라시고 사시며 그들 안에서부터 표현되신다 — 마 13:3.
      2. 씨는 토양에 뿌려져서 토양의 자양분으로 자란다. 따라서 그 산물은 씨와 토양 둘 다에서 나온 요소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 마 13:23.
      3.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자양분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자라시도록 준비해 두신 것이다. 하나님은 신성한 씨를 위한 토양인 사람의 마음과 함께 인성의 자양분이 있는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다 — 벧전 3:4.
      4. 우리가 생명 안에서 자라는 정도는 신성한 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씨에 자양분을 얼마나 많이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자양분을 더 많이 공급할수록 씨는 더 빨리 자라고 더 번성하게 될 것이다 — 마 5:3, 8.
      5.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사람인 우리의 혼 안에 머문다면, 신성한 씨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되고 우리의 영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영을 훈련한다면, 자양분이 공급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실 것이다 — 엡 3:16-17, 롬 8:6, 딤전 4:7, 비교 유 19.
      6. 생명의 씨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어 우리의 완전한 누림이 되시게 하려면, 우리는 주님께 전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그분과 협력하여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처리해야 한다 — 마 13:3-9, 18-23.
      7. 한 면으로는 하나님께서 요소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또 한 면으로는 우리가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전 존재 안에 그분의 내재적인 건축의 일, 곧 그분의 거처를 건축하는 일을 수행하신다.
    • 메시지3
      모든 민족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줌으로 주님의 제자로 삼음
      +
    • 성경: 마 28:16-20
      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 마 28:18.
      A.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이시며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 — 롬 9:20-21.
      1. 권위는 하나님 자신의 존재에서 나온다 — 계 22:1.
      2. 통치적 권위, 위치적 권위, 영적 권위 등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 창 9:6, 롬 13:1-7, 요 19:10-11, 고후 10:8, 13:10.
      B. 영적 권위에는 두 방면이 있다.
      1. 긍정적인 방면은 성도들을 섬기고, 목양하며, 공급하고, 건축하는 것이다 — 마 20:25-28, 2:6, 24:45, 고후 10:8.
      2. 부정적인 방면은 원수 및 그와 관련된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C. 주님은 그분의 신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위가 있으셨다 — 마 28:18.
      D.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람의 아들과 하늘에 속한 왕국의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권위를 부활하신 후에 받으셨다.
      Ⅱ.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 — 마 28:19.
      A. 하늘의 왕은 모든 권위를 받으셨기 때문에(마 28:18), 모든 민족을 그분의 제자로 삼도록 제자들을 보내셨다.
      B. 제자들은 그분의 권위를 가지고 간다.
      C. 민족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이 땅 위에서 그분의 왕국,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왕국 백성으로 삼는 것이다.
      D. 침례는 회개한 사람들이 그들의 옛 생명을 끝내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발아됨으로써, 옛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태 안으로 들어가 왕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E. ‘안으로’는 로마서 6장 3절,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와 같이 연결을 가리킨다.
      1. 동일한 헬라어 단어가 사도행전 8장 16절, 19장 5절, 고린도전서 1장 13절과 15절에서 사용되었다.
      2. 사람들을 삼일 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침례 주는 것은 그들을 그분과의 영적이고 비밀한 연결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F. 여기서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단수이다.
      1. 그 이름은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며, 그분의 인격과 동등하다.
      2. 어떤 사람을 삼일 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침례 주는 것은 그 사람을 삼일 하나님의 온 존재 안으로 잠기게 하는 것이다.
      G. 마태복음은 왕국을 구성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과 영, 이 셋 모두에게 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신성한 삼일성의 실재를 열어 보여 준다.
      1.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장에서, 성령(마 1:18)과 아들 그리스도(18절)와 아버지 하나님(23절)께서 사람 예수님을 산출하시기 위하여(21절) 함께 계시는데, 이 사람 예수님은 여호와 구원자이시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바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다.
      2. 마태복음 3장에서 아들은 열린 하늘 아래 침례의 물속에 서 계셨고, 그 영은 비둘기같이 아들 위에 내려오셨으며, 아버지는 하늘에서 아들에게 말씀하신 광경이 제시된다(16-17절).
      3. 마태복음 12장에서 아들은 사람의 신분으로 그 영에 의해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을 가져오셨다(28절).
      4. 마태복음 16장에서 아버지는 왕국의 생명 맥박인 교회를 건축하시기 위해 아들을 제자들에게 계시하셨다(16-19절).
      5. 마태복음 17장에서 아들은 변형되셨고(2절)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말씀으로 확증되셨는데(5절), 이로써 왕국의 출현의 축소판을 보여 주셨다(16:28).
      6. 결국 마태복음을 끝맺는 장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을 거쳐 부활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후, 부활의 분위기와 실재 안에서 제자들에게 돌아오시어,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 인격, 실재 안으로 이방인들을 침례 주어 그들을 왕국 백성이 되게 하라고 분부하셨다.
      7. 마태복음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실재 안으로 침례 받는 것은 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8. 땅에 속한 사회와 달리 하늘에 속한 왕국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로 형성될 수 없다(비교 고전 15:50). 그것은 오직 삼일 하나님과의 연결 안으로 잠긴 사람들과 그들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삼일 하나님으로 세워지고 건축된 사람들로만 구성될 수 있다.
      Ⅲ.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보십시오,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 마 28:20.
      A.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믿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민족을 그분의 제자로 삼기 위한 것이다 — 마 28:19.
      B. 하늘의 왕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 마 1:23.
      C. 그러므로 어디에서든지 우리가 그분의 이름 안으로 모이면, 그분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 마 18:20.
      D. 그러한 분으로서, 주님은 결코 그분의 믿는 이들을 떠나실 수 없고, 떠나시려 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E. 마태복음은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항상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실 하늘의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F. 이 시대가 종결될 때는 주님의 파루시아 곧 주님의 오심의 때인 이 시대가 끝날 때이다.
      1. ‘종결’이라는 말은 완성이나 성취를 이끌어 오는 어떤 과정이 있음을 의미한다.
      2.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이 시대가 종결될 때’는 이 현시대 곧 교회 시대의 끝을 가리킨다.
      3. 이 시대가 종결될 때는 대환난이 일어나는 삼 년 반 기간일 것이다 — 단 12:4, 6-7, 9.
      4. 마태복음 24장 6절에서 말하는 ‘그 끝’은 시대가 종결될 때인데, 이것은 대환난의 삼 년 반 기간(칠십 번째 이레의 후반부)일 것이다.
      5. 이 시대가 종결될 때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은혜 시대인 교회 시대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시대가 마무리될 때가 매우 가까이 왔다.
      6. 주님은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곧 이 시대의 끝까지 모든 권위를 가지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메시지4
      왕국은 반역을 정복하는 것이며 주 예수님의 변형임
      +
    • 성경: 막 4:35-41, 9:1-13, 마 13:43상
      Ⅰ. 하나님의 왕국은 반역을 정복하는 능력이다 — 막 4:35-41.
      A. 우주 안에는 중대한 두 원칙, 곧 하나님의 권위와 사탄의 반역이 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유일한 싸움은 권위와 반역에 관련된 것이다 — 행 26:18, 골 1:13.
      1. 반역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것이다.
      a. 사탄은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장이었지만, 교만 때문에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범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 사 14:12-14, 겔 28:2-19, 마 12:26.
      b. 사람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했다. 바벨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집단적으로 반역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폐했다 — 창 3:1-6, 11:1-9.
      2. 사탄이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했고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반역이 계속되도록 두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 계 11:15.
      B.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러 오셨다 — 막 1:14-15.
      1.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셔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내실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이다 — 마 6:10, 33, 눅 12:32, 골 1:13.
      2. 육체 되신 하나님으로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국,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심으로써 그분의 목적을 수행하실 수 있는 영역을 세우러 오셨다 — 요 1:1, 14, 3:3, 5, 18:36.
      a.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주 예수님은 승리한 사람으로서 서시어 사탄을 패배시키시고 모든 고난과 반대와 공격을 이겨 내셨다 — 막 1:13, 마 4:1-11.
      b. 주 예수님은 왕국 복음을 전파하심으로써, 반역적인 죄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고 자격을 갖추고 장비되어 하나님의 왕국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다 — 막 1:14-15, 마 4:17.
      c. 주님은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그의 살림살이를 강탈하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집 안으로 이끄셨다 — 막 3:27, 엡 2:19.
      d. 주님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사탄의 왕국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고 계셨다 — 마 12:28.
      C. 마가복음 4장 35절부터 41절까지의 기록은 반역과 그 반역을 정복하는 능력인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그림이다.
      1. 사탄은 왕국 곧 어둠의 권세를 갖고 있으며, 이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과 대립된다 — 마 12:26, 행 26:18.
      a. 귀신들은 사탄의 왕국에 속하며 사탄의 왕국을 위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 막 1:23-27, 5:2-20, 7:25-30, 9:17-27, 16:9.
      b. 사탄은 세상의 통치자이자 공중 권세의 통치자이다. 사탄에게는 그의 천사들이 있으며, 이 천사들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로서 사탄의 부하들이다 — 요 12:31, 엡 2:2, 6:12.
      2. 마가복음 4장 26절부터 29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말씀과 5장 1절부터 20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의 나타남에 관한 기록 사이에, 4장 35절부터 41절까지에서 바다에 폭풍이 부는 사건이 나온다.
      a. 공중에 있는 타락한 천사들과 물속에 있는 귀신들이 힘을 합쳐 주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께서 그곳에 가셔서 귀신들을 쫓아내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막 5:1-20.
      b. 배후에 반역한 천사들과 귀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고 명령하셨다.
      c. 주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해 말씀하신 후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아주 잔잔해졌는데, 이것은 악한 천사들과 귀신들의 반역이 왕국의 능력에 정복되었기 때문이다 — 막 4:39.
      Ⅱ. 하나님의 왕국은 주 예수님의 변형이다 — 막 9:1-13.
      A. 마가복음 9장 1절부터 13절까지에 묘사된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능력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중심에는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님께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구약의 성도들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다 — 막 9:2-4.
      B. 주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것은 그분의 인성이 그분의 신성으로 적셔지고 침투된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변형은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것으로서, 그분께서 그분의 왕국 안에서 오시는 것과 동일했다 — 막 9:2.
      1. 하나님의 왕국이 능력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주님께서 마가복음 9장 1절에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께서 산에서 변형되신 것으로 성취되었다 — 막 9:2-3.
      2. 주 예수님의 변형 곧 빛남은 그분께서 그분의 왕국 안에서 오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변형이 있는 곳에 왕국이 임한다 — 마 16:28-17:13, 눅 9:27-36.
      3. 주 예수님의 변형은 그분의 존재가 실재화된 것이었다.
      4. 왕국은 주 예수님의 실재의 빛남이다. 그분의 빛남 아래 있는 것이 왕국 안에 있는 것이다 — 계 22:4-5.
      C. 그리스도는 씨로서 우리의 마음 안으로 뿌려지셨다. 이 씨는 자라고 발전하여 결국 꽃 피고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 막 4:26-29, 골 3:3-4.
      1. 마가복음 9장에서 우리는 마가복음 4장에서 씨로 뿌려지신 그리스도의 변형을 본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씨로 받아들인 분은 우리 안에서 자라셔서 결국 우리 안에서부터 꽃 피셔야 한다. 이렇게 꽃 피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실지적으로, 체험적으로 변형되시는 것이다 — 골 1:27.
      3.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변형되실 때, 이 변형은 우리의 생활에서 모든 것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왕국이 된다 — 골 1:13.
      4.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는 타고난 생명 안에서 존재할 수 없고, 이러한 변형의 영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 롬 14:17.
      5. 우리가 주님을 위해 기꺼이 혼생명을 잃어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유력한 변형을 체험할 것이다. 이러한 변형이 참된 부흥일 것이다 — 막 8:35-38, 마 16:25-27.
      Ⅲ.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 마 13:43상.
      A. 왕국이 출현할 때, 우리의 인성은 우리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신성에 의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 골 1:27.
      B. 한 면에서 주님은 하늘에서부터 돌아오실 것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그분은 우리에게서 나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서 온전히 살아 내실 때가 그분께서 오시는 때일 것이다 — 마 16:27, 살후 1:10, 골 1:27, 3:4.
      C. 왕국이 완전히 출현할 때, 우리는 완전히 영광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 롬 8:18, 21, 히 2:10, 빌 3:21.
      D. 천년왕국에서 이기는 믿는 이들은 왕국의 밝은 영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지만, 패배한 그리스도인들은 바깥 어둠 속에서 징계를 받을 것이다 — 마 13:43상, 8:12.
    • 메시지5
      신약의 희년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림
      +
    • 성경: 레 25:8-17, 사 61:1-3, 눅 4:16-22, 행 26:16-19
      Ⅰ. 레위기 25장 8절부터 17절까지에 있는 희년은 이사야서 61장 1절부터 3절까지에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 4장 16절부터 22절까지에서 실지로 성취된다.
      A. 희년에는 두 가지 주된 축복이 있었는데, 그것은 각 사람이 모두 자기의 잃어버린 소유지로 돌아가는 것과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 레 25:8-17.
      1. 희년에는 자신의 소유지 곧 자신의 몫으로 할당받은 좋은 땅을 판 모든 사람이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자기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었고(레 25:10, 13, 28), 자신을 노예로 판 모든 사람이 자유를 되찾아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39-41절).
      2.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지로 돌아가는 것과 자유를 되찾아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신약의 희년에 믿는 이들이 자신이 잃은 신성한 소유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신성한 가족인 교회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 엡 1:13-14, 요 8:32, 36, 비교 시 68:5-6.
      B. 구약의 예표에서 희년은 일 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 예표의 성취에서 희년은 신약 시대 곧 은혜 시대 전체를 가리킨다. 이 시대는 죄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때(사 49:8, 눅 15:17-24, 고후 6:2)이며, 죄의 속박 아래 억눌렸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해방을 누리는 때(롬 7:14-8:2)이다.
      C. 믿는 이들이 은혜 시대에 희년을 누리는 것(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천년왕국에서 희년을 충만하게 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서 희년을 최고도로 충만하게 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요 1:16-17, 롬 5:17, 빌 3:14, 계 22:1-2상.
      Ⅱ. 희년은 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의해 우리 안에 분배되시어 우리의 누림이 되시는 시대이다. 신약의 희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황홀경의 시대이다 — 눅 4:22, 시 45:2, 요 1:14-17, 고후 6:2.
      A. 신약 시대는 황홀경의 시대이고, 그리스도인은 황홀경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황홀경 안에 있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누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 고후 5:13, 행 11:5, 22:17, 시 43:4상, 51:12, 벧전 1:8, 사 12:3-6.
      B. ‘희년’은 걱정이나 근심, 염려나 고심, 부족이나 결핍, 병이나 재난 같은 문제가 전혀 없이 유익한 모든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유쾌하고 만족스러우며, 우리는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고 편안하며 열광하고 기뻐한다 — 시 103:1-5, 116:1-7, 12-13, 17-19.
      C. 우리는 참된 희년이신 주 예수님을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주 예수님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갖는 것이며, 죄와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어 참된 자유와 안식을 가질 수 있다 — 행 26:18, 엡 1:13-14, 골 1:12, 마 11:28, 요 8:32, 36.
      1.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생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분은 우리 안으로 오시어 우리의 희년이 되시지만,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해 드리지 않고 그분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지적으로 희년 안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요 8:11-12.
      2. 우리의 마음이 주님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에 고정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고 그 결과는 비참하다 — 요일 5:21, 비교 겔 14:3, 5, 6:9.
      3.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해 드리고 그분에 의해 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문제가 되고 희년은 없을 것이다.
      D.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림으로 얻은 후에라야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다. 우리가 온갖 종류의 상황에 직면할 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나 일들이나 사물들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차분하게 하시고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다 — 빌 3:8-9, 4:5-8, 11-13.
      Ⅲ. 누가복음 4장에 있는 희년의 선포는 누가복음 전체의 중심 사상을 지배하고, 10장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는 희년에 대한 탁월한 예시이다.
      A.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구주는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을 그분의 인간 미덕들로 표현하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 눅 10:25-37.
      1. 사람-구주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역 여행 중에(눅 19:10), 유대교 강도들에게 상처 입은 희생자가 비참한 상태로 누워 죽어 가고 있는 곳에 내려오셨다.
      2. 사람-구주는 그를 보시고, 신성을 지닌 인성 안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셔서, 그를 부드럽게 치료하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돌보시어 그의 긴급한 필요를 완전히 채워 주셨다 — 눅 10:33-35.
      B.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구주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목양하고 찾으며 구원하시는 그분 자신의 영을 보여 주신다 — 눅 15:11-32, 비교 9:55-56.
      1. 어느 날 탕자는 그의 소유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희년 곧 해방이었으며, 모든 것이 유쾌하고 만족스럽게 되었다 — 눅 15:20, 24, 비교 레 25:10-12.
      2.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유업으로 돌아가는 것, 즉 하나님께 돌이키고 돌아감으로써 그분을 우리의 소유로 새롭게 누리는 것이다(엡 1:13-14).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골 1:12).
      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복된 몫이 되셨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뻐하지 않고, 빛을 내지 못하는 전등과 같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몫이신 하나님을 취하여 ‘스위치를 켜지’ 않기 때문이다 — 엡 4:18, 빌 2:12-16.
      4. 아버지가 아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들이 자기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들에게 희년 곧 은혜의 해였다 — 눅 15:20.
      5.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들의 누림을 위해 살진 송아지가 되셨다 — 눅 15:23.
      6. 이것은 백성이 희년에는 파종하거나 추수할 수 없고 오직 먹고 누리기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레위기 25장 11절과 12절에 부합한다. 일단 우리가 주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희년의 시작이다.
      7. 우리는 아버지의 고용된 종들이 아니라 누리는 아들들이며, 우리의 소유이신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 누릴 수 있다.
      Ⅳ. 우리는 신약의 희년의 자유와 축복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 눅 4:18-19.
      A. 희년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우리는 매일 주님과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주입받아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 곧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이의 본을 따라야 한다 — 눅 10:39.
      1. 마리아는 다른 누군가의 발이 아닌,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았다. 그녀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매 순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경배하며, 끊임없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2.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았다. 이것은 그녀가 은혜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겸손한 위치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벧전 5:5). 겸손은 우리 자신을 작게 보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전혀 주의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우리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3. 마리아는 ‘앉아 있었다’. 주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종종 영적인 힘의 근원이 된다(사 30:15중). 사람의 눈과 생각은 자주 바깥 세계로 빗나간다. 떠돌아다니는 생각과 동요하는 사고로 분주한 사람들은 쉽게 계시를 받지 못한다.
      4.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영과 생명으로서(요 6:63) 그분 자신을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은 주님께 그분 자신을 그녀에게 전달해 주실 기회를 드렸으며, 그 결과 마리아는 주님 자신을 계속 받아들이고 얻을 수 있었다.
      B.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을 누리는 데서 온다. 사람이 하나님을 누리지 않으면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자유는 해방되는 것, 곧 모든 속박과 모든 무거운 짐, 모든 압제, 우리를 노예로 삼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요 8:32, 36, 갈 5:1, 고후 3:17.
      C. 먼저 사탄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러고 나서 사탄은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면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선동하는 자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우리의 불법적인 주인이 되었으며,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오직 죄만 지을 수 있는 정도까지 사탄의 포로가 되었다 — 롬 7:14, 요일 5:19.
      1. 사람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누리려고 하는 모든 것은 개의 먹이와 쓰레기와 똥이다 — 빌 3:7-9, 비교 벧후 2:22.
      2. 사탄은 ‘똥더미의 주’를 의미하는 바알세불이라 불리었고, 바알세불은 ‘파리들의 주’를 의미하는 ‘바알세붑’에서 온 단어이다. 사탄이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파리와 같은 죄인들을 이끌어 똥을 먹고 살게 하는 것이다 — 마 10:25, 12:24, 27, 왕하 1:2.
      3.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무도 죄를 짓기를 원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다. 아무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여 모든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되었다 — 롬 7:18-23, 요 8:34.
      D. 로마서 7장 24절에 나오는 바울의 필사적인 절규는 생명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한다고 말하는 로마서 8장 2절에서 응답된다.
      E. 우리는 오직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때에만 해방될 수 있고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을 누리는 이들만이 죄를 짓지 않고 참으로 자유로워져서, 자유롭고 해방되며 속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수 있다 — 요 8:11-12, 24, 28, 31-36.
      1.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한다. 이 법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주님 자신이다 — 롬 8:2.
      2. 우리가 주님을 충분히 누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많은 것에 얽매일 것이다. 결심하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계속적으로 주님께 와서 그분을 먹고 누려야 한다 — 고전 1:9, 계 2:7, 사 55:1-2.
      3. 희년이신 그리스도는 빈곤, 포로 됨, 눈멂,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하신다 — 전 1:2, 14, 3:11, 빌 3:8, 벧후 2:22, 눅 12:21, 계 3:17.
      F. 희년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 곧 우리의 유업과 참자유이신 하나님을 누리는 생활이다 — 행 26:18, 요 8:36.
      1. 희년의 생활은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 자신 곧 그리스도 자신을 취하는 생활이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주요 요인과 중심이 되셔서 인생의 모든 험난한 문제들을 다스리신다 — 요 6:16-21, 골 1:17하, 18하, 빌 4:6-7, 11-12.
      2.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를 채우시고 얻으시고 소유해 주십시오. 저의 바깥 상황이 어떠하든지 저는 다만 당신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은혜의 희년이신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살고 선포함으로써 오늘날의 사역자와 증인이 되어야 한다 — 행 26:16-19.
    • 메시지6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
    • 성경: 요 1:1, 3-5, 14, 16-18, 29, 32, 42, 51
      Ⅰ. 요한복음 1장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문이고, 이 서문의 주된 강조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시라는 것, 곧 비밀스러우시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설명과 표현이시라는 것이다 — 요 1:1.
      A.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위대한 ‘나는 –이다’이신 분, 곧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 출 3:14-15, 요 8:24, 28, 58, 히 7:3.
      B. 요한복음 1장은 영원의 두 부분과 시간의 다리에서, 우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섯 가지 일, 곧 창조와 육체 되심과 구속과 기름부음과 건축의 일을 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해 준다 — 비교 시 90:1-2, 미 5:2.
      1. 요한복음 전체의 서언인 요한복음 1장은 ‘여행하시는’ 삼일 하나님의 역사의 요약이다. 삼일 하나님은 영원 과거에 말씀이셨고, 최종적으로 영원 미래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되신다 — 요 1:1, 4-5, 51.
      2. 요한복음 1장은 영원하신 말씀께서 창조의 일을 하시고 시간의 다리를 여행하시면서,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육체가 되시고, 유기적인 구원을 수행하시기 위해 기름을 부으시고 생명을 주시고 변화시키시는 영이 되시며, 궁극적으로는 거듭나고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된 그분의 신부와 완전히 연결되시고 연합되시고 합병되심으로써 최종적인 벧엘, 곧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인 새 예루살렘이 되시는 것을 결정화된 방식으로 보여 준다.
      C.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이 다섯 가지 일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1) 창조를 이루신 창조주로서, (2) 육체 되심을 통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사람으로서, (3) 구속을 이루신 어린양으로서, (4) 변화를 이루시는 기름 부으시는 영으로서, (5)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땅을 하늘에 연결하시는 사다리로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정의하시고 설명하시며 표현하신다 — 비교 요 1:1, 10:35, 엡 6:17, 요 6:63.
      Ⅱ.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창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말씀하신다 — 요 1:3.
      A. “하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 창공은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네. / 낮은 낮에게 말을 쏟아 내고 /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네. / 말이 없고 이야기가 없으며 / 그 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 시 19:1-3.
      B.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한 특성들은 만드신 것들을 통하여 분명히 보게 되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 롬 1:20.
      C. 사도행전 14장 15절부터 17절까지와 17장 24절부터 29절까지에 언급된 말씀은 그리스도의 창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있음을 계시하는 동일한 목적을 위해 있다 — 비교 히 11:3, 1:2, 골 1:15-17, 학 2:7.
      Ⅲ.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을 통해 하나님의 장막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말씀하신다 — 요 1:14.
      A. 말씀은 육체 되심으로 하나님을 인성 안으로 이끌어 오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장막이 되셨다. 이 장막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로서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
      1. 율법은 하나님의 존재에 따라 사람에게 요구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존재를 사람에게 공급함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한다 — 요 1:17.
      2.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였다.” — 요 1:16.
      B. 그분은 육체가 되심으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 되시어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끌어 오셨고, 하나님을 사람이 접촉하고 만지고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들어가고 누릴 수 있는 분이 되게 하셨다.
      C. 그분은 하나님-사람이 되심으로, 신성을 인성 안으로 이끌어 오시고 신성을 인성과 연합되게 하셨다.
      D. 하나님의 독생자의 육체 되심은 또한 말씀과 생명과 빛과 은혜와 실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기(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 요 1:18.
      1.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되시고 설명되시고 정의되신 하나님이다.
      2. 생명은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배되신 하나님이다.
      3. 빛은 사람이 빛 비춤을 받아 하나님께 참여할 수 있도록 비추시는 하나님이다.
      4. 은혜는 사람이 그분의 풍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누림이 되신 하나님이다.
      5. 실재는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 수 있도록 사람에게 실재화되신 하나님이다.
      Ⅳ.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구속을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말씀하신다 — 요 1:29, 36.
      A.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어린양이 되심으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에 따른 절차인 그분의 죽음을 통해 법리적으로 그분의 구속을 성취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B.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 구약의 모든 제물의 성취가 되신, 육체 안에 계신 말씀을 상징한다 — 히 10:5-10.
      1. 그리스도는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소제물, 화목제물, 요제물, 거제물, 전제물의 실재이시다.
      2. 모든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을 얻으며, 이 구속을 체험하며 누릴 수 있다.
      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을 돌들로 변화시켜(요 1:32-42) 신약을 위해 유기적으로 하나님의 집(벧엘, 51절)을 건축하시기 위해 기름 부으시는 영이 되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말씀하신다.
      A. 그리스도는 기름을 부으시고 생명을 주시고 변화시키시는 영이 되심으로(고전 15:45), 더 전진하여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따른 그분의 신성한 목적을 위해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유기적으로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B.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영 안에 기름 부으시는 영으로서 계신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 요일 2:20, 27.
      1.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서 기름 붓는 분과 기름바름이 되신다. 적그리스도의 원칙 안에 사는 것은 ‘적-기름바름(anti-anointing)’이 되는 것이다(‘적(anti)’은 ‘반대하는’, ‘대신하거나 대치하는’을 의미한다) — 요일 2:18, 22, 4:3, 요이 7.
      2.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다른 무언가로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것이다.
      3.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위와 성품에 속한 무언가로 그리스도를 대치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이 그리스도 자신을 대치하도록 허락한다는 의미에서 적그리스도의 원칙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 비교 빌 1:21, 4:4-9.
      4. 우리는 문화와 종교와 윤리와 천연적인 관념들이 내적 기름바름이신 그리스도를 대치하도록 허락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원칙 안에서 일상생활을 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이렇게 생활하는 것은 기름바름을 거스르는 것, 곧 우리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일하시고 적시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5.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일하시고 적시시는 것인 기름바름 안에서, 기름바름과 함께, 기름바름을 통해, 기름바름에 의해 살고 행하기 원합니다.”
      C. 비둘기 곧 기름 부으시는 영은 창조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타고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타고난 사람을 변화시키심으로 살아 있는 돌들이 되게 하시며, 변화된 사람을 연결하신다.
      D. 베드로가 회심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돌을 의미하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요 1:42),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았을 때 주님은 더 전진하여 그분께서 반석 곧 돌이시라는 것을 계시하셨다(마 16:16-18). 이 두 사건을 통해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돌이라는 것에 인상을 받았다(벧전 2:4-8).
      Ⅵ.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하늘(하나님)을 땅(사람)에 이끌어 오고 땅(사람)과 하늘(하나님)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다리가 되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말씀하신다 — 요 1:51, 창 28:11-22.
      A. 벧엘에서 하늘에 속한 사다리가 되심으로,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께서 구속받고 변화된 그분의 선민으로 구성된 집을 이 땅에서 얻기를 얼마나 갈망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러한 집을 얻으실 때, 하나님은 하늘을 땅에 이끌어 오시고 땅을 하늘과 연결하심으로 이 둘을 영원히 하나로 만드신다.
      B. 야곱의 꿈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인데, 그것은 야곱이 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서 본 사다리의 실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 창 28:12, 요 1:51.
      1. 오늘날 하나님의 거처인 우리의 거듭난 영(엡 2:22)은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서 계시는 기반이다(딤후 4:22).
      2. 하늘의 문인,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처소인 벧엘에서 그리스도는 땅을 하늘과 연결하고 하늘을 땅으로 이끄는 사다리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는 사다리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3.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산출하신 것은 하나님의 건축물, 곧 교회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벧엘이며, 이 사다리의 최종 완결은 새 예루살렘이다.
      C. “주님께서 다시 오시려면, 그분을 추구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견고한 건축물이 필요하다. 이 건축물은 그분께서 이 땅을 취하시도록 하는 디딤돌, 교두보일 것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일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신성과 인성, 인성과 신성의 연합일 것이다. … 이 건축물에 의해 야곱의 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건축물은 시간의 다리를 끝내고 축복된 영원 미래를 이끌어 올 것이다. 우리는 이 건축물을 위해 있어야 하고, 이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1권, 메시지 5, 92쪽)
    • 메시지7
      생명의 떡
      +
    • 성경: 요 6:22-71
      Ⅰ. 우리가 요한복음 6장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이 장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고 일곱 가지 핵심 요점의 순서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A. 주님은 생명의 떡이시다 — 요 6:35, 48.
      B. 주님은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그분의 생명의 떡을 주신다 — 요 6:51.
      C. 주님은 우리가 마실 수 있도록 그분의 피도 주신다 — 요 6:53.
      D. 주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셨다 — 요 6:56.
      E.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 앞에 산다 — 요 6:57.
      F. 그분의 물질적인 살이 아닌 그분의 영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생명 공급을 주신다 — 요 6:63상.
      G. 그 영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 안에 계신다. 그분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다 — 요 6:63하.
      Ⅱ. 주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주된 목적은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음식 곧 생명의 떡으로 주시는 한 가지 중심적인 일을 성취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영적 자양분이신 그분을 먹고 소화하여 우리의 조성이 되시게 할 수 있다 — 요 6:50-51.
      Ⅲ. 요한복음 6장은 주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것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이다.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라고 선포하셨다 — 요 6:48.
      A. 요한복음 6장의 많은 절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해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을 계시한다 — 요 6:27, 32-35, 47-58, 63상, 68하.
      1. 요한복음 6장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양식 곧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이다 — 요 6:35, 48.
      2. 그분을 먹는 것은 한 번 만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매일 주님을 접촉하며 그분을 먹어야 한다 — 요 6:50.
      3.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순간순간 그분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체험하고 누리고 적용함으로 그분을 먹어야 한다 — 요 6:56-57.
      4. 우리는 모두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먹고 그런 다음 우리가 먹은 그분에 의해 사는 것이다 — 요 6:54.
      B.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십시오.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줄 것입니다.” — 요 6:27.
      1. 영원한 생명은 신성한 생명 곧 하나님의 창조되지 않은 생명이다. 이 생명은 시간과 관련하여 영구할 뿐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 영원하고 신성하다 — 요 3:15.
      2.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없어지지 않는 양식은 우리에게 공급을 주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 안으로 이끌 수 있다 — 요 6:27.
      C. “하늘에서 오는 참떡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이입니다.” — 요 6:32-33.
      1. 오직 영적인 것들만 실재적이다. 즉 ‘그 영께서 실재이시다’ — 요일 5:6하.
      2. 참떡이신 그리스도는 진리 곧 실재의 떡이시다. 그리스도는 참되시고 실재적이시다.
      3.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시려고 하나님에 의해 생명의 참떡으로 보냄을 받으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한다.
      4. 요한복음 6장 33절의 ‘하나님의 떡’은 32절의 ‘참떡’이다.
      5.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떡이시고, 하나님의 떡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으셨으며 하나님과 함께하셨다 — 요 6:33.
      6. 우리가 이 떡을 먹고 소화할 때, 이 떡은 우리의 조성이 되고 우리는 주님과 하나로 연결되고 연합된다 — 고전 6:17.
      7.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 요 6:50-51상.
      D. 요한복음 6장 51절 하반절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줄 떡은 곧 내 살인데,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1. 이 시점에서 떡은 살이 된다.
      2. 주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분의 몸, 곧 그분의 살을 주셨다.
      E.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여러분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 요 6:53.
      1. 피와 살의 분리는 죽음을 가리킨다.
      2. 여기서 주님은 그분의 죽음, 즉 그분께서 죽으실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3.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을 주시고 그분의 피를 흘리셨다.
      a.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이루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b.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의 피를 흘리심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4. 주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을 믿어서, 구속을 성취하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5. 요한복음 6장 53절을 47절과 비교하면, 주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이 그분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믿는 것(to believe)’, 또는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 것(to believe into)’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요 1:12.
      F. “왜냐하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 요 6:55.
      1. 우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분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
      2. 우리가 그분을 먹고 마신다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G.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생소한 문장은 요한복음 6장 57절이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1. 먹는다는 것은 음식이 유기적으로 우리 몸 안에 흡수되도록, 그것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 주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거듭난 새사람 안에 생명의 방식으로 흡수되실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a.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인 그분으로 말미암아 산다.
      b. 바로 이런 방법으로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 — 요 14:19-20.
      Ⅳ.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 요 6:63.
      A. 요한복음 6장의 마지막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과 말씀이 되신 것에 대한 단락이다.
      B.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신 그분을 접촉할 수 있다 — 고전 15:45.
      C. 그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양식이신 그분을 늘 먹고 흡수할 수 있다.
      D. 주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곧 우리를 양육하는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그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고 이 영께서 말씀 안에 체현되어 계심을 보아야 한다 — 요 6:63.
      E.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다. 이 영은 부활 안에 계신 주님 자신이시다 — 고전 15:45.
      F.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그 영 다음에 ‘말씀’이 나온다.
      1.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이 그 영이 되실 것임을 시사하셨다.
      2. 그런 다음 주님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 주시는 영의 체현이심을 가리킨다 — 요 6:63.
      3. 우리가 말씀 안에 계신 그 영을 접촉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
      4. 날마다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말씀 안에 계신 그 영이신 주님을 접촉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을 것이다 — 요 6:35.
      G.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는다. 생명의 말씀은 우리가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받아들이는 수단이다 — 요 6:63.
      1.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그 영을 가질 것이고, 우리 안에 그 영을 가지면 내적인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가질 것이다.
      2. 우리 모두가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고, 말씀 안에 체현되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을 매일 접촉하기 바란다.
    • 메시지8
      장막절이신 그리스도와 생수의 강들로서 믿는 이들에게서 흘러나오시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
      +
    • 성경: 요 7:2, 37-39, 레 23:39-43
      Ⅰ. 우리는 장막절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 요 7:2, 레 23:39-43.
      A. 유월절은 하나님의 법리적인 구속의 시작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장막절은 하나님의 유기적인 완전한 구원의 완결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요 6:4, 7:2, 레 23:5, 34.
      B.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어떻게 자신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천막(장막)에서 살았는지를 기억하도록 하시려고 장막절을 정하셨다. ‘장막절’에서 ‘장막’이라는 말은 기념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다 — 신 16:13-15.
      C. 이스라엘 자손이 이 명절을 위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좋은 땅에서 나온 산물을 누린 것은 섞임에 대한 실지적인 그림이다.
      D. 장막절의 실재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사셨는지를 기념하는 누림의 시간이다.
      E. 오늘 우리가 섞임을 위해 단체적으로 함께 모여 좋은 땅의 소산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면서 장막절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광야에 있으며 영원한 장막인 새 예루살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 계 21:2-3.
      F.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불리는 것은 새 예루살렘의 첫 단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이 자신들 역시 어떻게 천막에 거했는지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체류자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건축하신 성인 영원한 장막, 곧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를 고대했다 — 히 11:9-10, 13.
      1.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고 교회를 우리의 생활로 취함으로 제단과 천막의 생활을 해야 한다 — 롬 4:12, 히 11:9, 창 12:7-8, 13:3-4, 18.
      a.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시며, 우리의 삶의 의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출 40:6, 29, 시 43:4상, 레 1:3, 9.
      b. 아브라함이 천막에 거한 것은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땅에서 체류자의 삶을 산 것을 증언했다. 천막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다른 고향에 속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 히 11:9-10, 15-16.
      2.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갈 3:7)인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 땅에서 이동하며 우리의 천막을 치는 순례자들이어야 한다(히 11:9, 13, 벧전 2:11).
      3. 아브라함은 자신의 첫 번째 제단(창 12:7)을 쌓은 후, 서로 큰 대조를 이루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 두 번째 제단을 쌓았다(8절).
      a.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고, ‘아이’는 ‘폐허 더미’를 뜻한다.
      b. 부름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오직 교회생활인 벧엘만이 가치가 있고, 다른 모든 것은 폐허 더미일 뿐이다.
      4. 아브라함은 실패하여 제단과 천막을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회복이 있었고, 회복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과 천막으로 돌아오는 문제이다 — 창 12:9-10, 13:3-4, 롬 10:12-13, 12:1-2.
      5. 결국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의 천막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교통하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 창 13:18.
      6. 아브라함이 건축한 천막과 제단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축한 증거막과 제단의 예시(豫示)였다 — 출 38:21.
      7. 나그네와 체류자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기초가 있는 성을 간절히 기다렸다’ — 히 11:9-10, 12-16.
      8. 아브라함의 천막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천막이자 최종적인 장막인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었다 — 창 9:26-27, 12:8, 13:3, 18:1, 계 21:2-3.
      9. 우리는 교회생활이라는 ‘천막’에서 생활하면서 그 최종 완결, 곧 최종적인 ‘회막’인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고 있다 — 딤전 3:15, 레 1:1, 히 11:10.
      G. 장막절은 새 예루살렘을 누리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먼저는 이기는 이들에게 주는 보상으로서 천년왕국에서 첫 열매로 완결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온전하게 된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전한 누림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될 것이다.
      Ⅱ.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이것은 그분의 믿는 이들 안으로 생명을 나누어 주시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셔서 생수의 강들로서 흘러나오시기 위한 것이다 — 요 7:37-39, 계 21:6, 22:17.
      A. 생명 주시는 영은 완결되신 영, 곧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시다 — 고후 3:17-18, 갈 3:14, 빌 1:19.
      1. 완결되신 영은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이후의 삼일 하나님이시다 — 요 7:39.
      a. 삼일 하나님께서 그 영이 되시기 위해 통과하신 과정은 경륜적인 문제이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 요 1:14, 히 9:14, 고전 15:45하.
      b. ‘과정을 거치신’이라는 표현은 삼일 하나님께서 신성한 경륜 안에서 통과하신 단계들을 말하고, ‘완결되신’이라는 표현은 과정이 끝마쳐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완결되신 영’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영께서 과정을 거치셔서 완결되신 영이 되셨다는 것을 함축한다 — 요 7:39.
      2.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완결되신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 요 7:39.
      a.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창 1:2),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이신 그 영은 요한복음 7장 39절 말씀이 말해지던 때에 ‘아직 계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주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b. 주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영광스럽게 되셨고, 이 영광스럽게 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다 — 눅 24:26, 빌 1:19.
      c. 육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신 마지막 아담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그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실재를 포함하여 신성한 요소와 인성의 요소를 모두 갖고 계신다 — 고전 15:45하, 행 16:7, 롬 8:9.
      3. 완결되신 영은 부활 안에서 아들에 의해 거룩한 숨으로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어지셨다 — 요 20:22.
      a.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는 것과,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완결되신 영이신 그분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 — 요 1:29, 20:22.
      b. 그리스도는 바로 그 영으로서 그분의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어지셨다. 바로 그 영으로서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에 사시며 제자들이 그분에 의해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실 수 있으며, 또한 제자들 안에 거하시며 제자들이 그분 안에 거하게 하실 수 있다 — 요 20:22, 14:19-20, 15:4-5.
      c.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숨으로 불어 넣으신 그 그리스도가 곧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 고전 15:45하.
      B. 생명 주시는 영은 복합되신 영이신데, 이 복합되신 영은 여러 성분들로 복합된 바르는 관유로 예표되신다 — 출 30:23-25, 요일 2:20, 27.
      1. 올리브기름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을 상징한다.
      2. 몰약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죽음을 상징한다.
      3. 육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달콤함과 효능을 상징한다.
      4. 창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부활을 상징한다.
      5. 계피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쫓아내는 능력을 상징한다.
      C. 생명 주시는 영은 주 영,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며, 믿는 이들의 신진대사적인 변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과 건축을 위한 분이시다 — 고후 3:17-18, 고전 3:6, 9하, 12상, 엡 4:16하.
      D.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가 그 영을 알고 체험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전혀 체험할 수 없다 — 요일 5:6, 요 16:13, 고전 15:45하, 2:10, 6:17.
    • 메시지9
      부활과 밀알이신 그리스도
      +
    • 성경: 요 11:25, 12:23-24, 눅 12:49-50, 고후 1:8-9, 4:16, 출 25:31-40, 민 17:8
      Ⅰ. 우리는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할 수 있다 — 요 11:25.
      A. 부활 안에서 살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밝혀진 진리를 보아야 한다.
      1.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 행 13:33, 롬 8:29하.
      2.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거듭났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분의 재생산인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 벧전 1:3, 요 12:24, 고전 10:17.
      3.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고전 15:45하.
      4. 주님의 부활의 이러한 주된 항목들(몸의 머리이신 맏아들, 몸의 지체들인 많은 아들들, 몸의 본질과 실재이신 그 영)이 없다면, 교회도 없고 그리스도의 몸도 없으며 하나님의 경륜도 없을 것이다 — 비교 골 1:18, 고전 12:12, 엡 4:4.
      B.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실재와 부활의 실재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시다.
      1.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실재는 완결되신 실재의 영이다 — 요 14:17, 15:26, 16:13, 요일 5:6.
      2. 부활의 실재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이다 — 요 11:25, 20:22, 고전 15:45하.
      3. 실재의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실재가 되게 하신다 — 요 16:13-15.
      4. 그 영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몸도 없고 교회도 없다 — 엡 4:4.
      C.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으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어야 한다.
      1.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요소로 이루어지고, 전적으로 부활 안에 있으며, 전적으로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다 — 벧전 1:3, 엡 2:6, 비교 창 2:21-24.
      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예표하는 금등잔대는, 자라고 가지를 내고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워 빛을 내시는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 출 25:31-40, 민 17:8, 계 1:11-12.
      D. 싹 난 막대기는 부활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생활과 부활 생명이 되셔야 한다는 것과, 이 생명이 싹 트고 꽃 피고 열매를 맺어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민 17:1-11.
      1.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반역한 후에, 하나님은 열두 인도자들에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따라 열두 개의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 증거막 안의 언약궤 앞에 두라고 명하셨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내가 선택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막대기에 싹이 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 민 17:5.
      2. 열두 개의 막대기는 모두 잎이 없고 뿌리가 없고 마르고 죽어 있었다. 그중 어느 것이든 싹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이며, 봉사의 근거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본다. 따라서 싹 난 막대기는 우리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사역에 권위가 있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3. 모든 봉사의 원칙은 싹 난 막대기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열한 개의 막대기 모두를 인도자들에게 돌려주셨지만, 아론의 막대기는 영원한 기념으로 궤 안에 두셨다. 이것은 부활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영원한 원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민 17:9-10.
      4. 막대기에서 싹이 나는 것은 겸손하게 하는 체험이다. 막대기는 사람의 지위를 상징하지만, 싹이 나는 것은 부활 생명을 상징한다. 따라서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교만하며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말한다 — 비교 막 11:9, 고후 3:5, 벧전 5:5.
      5. 부활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 대한 소망을 버렸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6. 타고난 힘이 남아 있다면 부활의 능력은 나타날 입지를 얻지 못한다. 사라가 아이를 임신할 수 있었다면 이삭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창 18:10-15, 21:1-3, 6-7.
      7.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고난 영역에 속한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부활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부활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 즉 우리 자신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 마 19:26, 막 10:27, 눅 18:27.
      8. 자신이 완전히 쓸모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려면, 먼저 그 사람 자신이 반드시 끝나야 한다. 자신의 무능함을 한 번도 깨달은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부활은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 비교 고후 1:8-9, 4:7.
      9.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단지 어려운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으로서 우리 안에 사시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만이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다. 오직 그 영만이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고, 오직 그 영만이 이기는 이가 되실 수 있다.
      E.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의해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 우리는 부활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 빌 3:10-11.
      1. 우리는 모두 주님께 훈련을 받아,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사는, 신성하고도 비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비교 요 3:8.
      2. 심지어 성경적으로 수행될지라도 타고난 생명 안에서 수행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아니다 — 고전 3:12.
      F. 부활 안에 살려면, 우리는 부활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고 얻어야 한다 — 고후 1:8-9.
      1. 하나님은 우리를 종결하시고 끝내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 — 고후 1:9.
      2.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하실 수 있을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은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그분의 생명과 본성이 사람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a. 하나님은 외적인 행동으로 그분의 능력을 알리려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나누어 주시고 일해 넣으시려고 일하고 계신다 — 갈 1:15-16, 2:20, 4:19.
      b.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신다 — 고후 4:7-12, 살전 3:3.
      c. 부활 안에 살고 부활의 하나님으로 조성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 롬 8:28-29, 히 12:10, 렘 48:11.
      d. 이 우주에 고난이 있는 주된 목적은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련해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사람의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져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충만한 정도로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e. 우리가 여러 환난을 통과할 때, 매일 우리 안에서 새롭게 됨이 계속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시려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실 수 있다 — 겔 36:26, 고후 4:16, 5:17, 계 21:2.
      3. 부활 안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부활 생명의 신선한 공급으로 양육을 받음으로써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한다 — 고후 4:16.
      4.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활의 하나님을 우리 안에 더해지게 하는 것이다 — 골 2:19, 롬 8:10, 6, 11.
      5. 부활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새롭게 하는 역량을 받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열어 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매일 우리 안에 새롭게 더해지시게 해야 한다 — 빌 2:12-13, 3:10-11, 시 18편 제목, 고후 4:10-12, 16, 딛 3:5, 엡 4:23, 5:26.
      Ⅱ. 우리는 밀알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할 수 있다 — 요 12:24.
      A.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과 함께 그분의 신성의 영광은 한 알의 밀 안에 감추어진 것처럼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 요 12:23-24.
      B.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그분의 인성의 껍질 안에 감추어져 있는 동안, 그분은 답답해하시고 억압받으시면서,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그분의 신성한 생명의 불과 함께 해방되도록 죽음이라는 침례로 침례 받기를 열망하셨다 — 눅 12:49-50.
      C.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은 그분의 죽음에 의해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깨짐으로 해방되었다 — 요 12:24.
      1. 그분은 신성한 영광과 함께 신성한 생명을 담고 있는 유일한 밀알이셨다.
      2.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깨졌을 때, 그분의 신성의 모든 요소, 곧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영광이 해방되었다.
      3. 이런 의미에서 그분의 죽음은 그분의 영광을 해방하는 동시에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으로 여겨진다.
      D.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된 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부활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것이다 — 요 12:23-24, 눅 24:26.
      E. 그리스도는 인간 생활 중에 그분의 아버지께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으며, 아버지는 그분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 요 17:1, 행 3:13.
      F.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포함의 단계로 옮겨지셨다. 포함의 단계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G. 그리스도는 밀알로서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과 생명을 분배하는 부활을 통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의 합병 안으로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을 이끄셨다.
      1. 하나님은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하나의 합병체이시다 — 요 14:10-11.
      2.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하나의 합병체가 되었다 — 요 14:16-20.
      H.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확대되고 신성하고도 인간적이며 우주적인 합병체가 변형된 밀알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다음 세 방면으로 산출되었다.
      1. 첫 번째 방면은 아버지의 안식과 만족과 나타남을 위한 아버지의 집이다 — 요 14:2.
      a.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거할 곳이다 — 요 14:2상.
      b.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그 영과 함께 구속받은 선민을 끊임없이 방문하심으로써 건축된다 — 요 14:21, 23, 엡 2:19-22, 3:16-19.
      2. 두 번째 방면은 하나님의 확대와 확장과 영광스럽게 됨을 위한 참포도나무이다 — 요 15:1-8, 16.
      a.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표징인 참포도나무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b. 참포도나무의 접붙여진 가지들은 신성한 생명으로 거듭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 안으로 이끌렸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합병되었다.
      3. 세 번째 방면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그 영의 아이 곧 새사람이다 — 요 16:13-16, 19-22.
      a. 한 새 아이 곧 한 새사람은 완결되신 영에 의해 태어났다 — 엡 2:15.
      b. 우리가 우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됨으로 새사람을 입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결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은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 엡 4:23-24.
    • 메시지10
      요한복음에 계시된 영광과 영광스럽게 됨
      +
    • 성경: 요 1:14, 2:11, 5:44, 8:54, 12:23, 13:31-32, 17:1, 5, 22
      Ⅰ.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 곧 찬란하게 표현되신 하나님이다 — 출 40:34, 행 7:55, 벧후 1:3, 계 21:11.
      Ⅱ.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경륜과 내재적으로 연관된다 — 엡 1:6, 10, 12, 14, 3:21, 5:27.
      A. 삼일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 행 7:2, 엡 1:17, 3:14, 16, 고전 2:8, 고후 4:6, 벧전 4:14.
      B.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는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 히 2:10, 고전 2:7, 엡 1:5-6, 12, 14.
      C.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 창 1:26, 골 1:15, 고후 4:4, 6.
      D.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와 죄악된 자아를 표현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 롬 3:23, 요 5:44, 7:18상, 12:43.
      E.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의 요구를 이루었다 — 롬 3:24-25, 히 9:5, 비교 창 3:24.
      F.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영광에 의해,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부르셨다 — 고후 4:4, 딤전 1:11, 살전 2:12, 벧전 5:10.
      G.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 골 1:27, 3:4, 11.
      H.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주목하고 반사할 때,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면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 — 고후 3:18.
      I.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목표와 이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영광, 곧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다 — 히 2:10, 롬 8:17, 21, 30.
      J. 하나님의 건축은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셔서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단체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 엡 2:21-22, 3:17상, 19하, 21, 4:16, 5:27, 비교 출 40:34, 왕상 8:10-11, 겔 43:4-5, 학 2:7, 9.
      K.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영광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올 왕국에서 나타날 것이다 — 마 6:13, 16:27, 26:29, 살전 2:12, 계 5:13.
      L. 새 예루살렘의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성 전체는 한 단체적인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닐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아내인 그 성을 통해 빛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 계 19:7-9, 21:2, 10-11.
      M.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신성한 계시의 고봉, 곧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과 관련된다 — 요 1:14, 골 3:4, 히 2:10, 계 21:10-11.
      N.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영광을 비추어 내는 것이다 — 계 21:2, 23-24.
      Ⅲ.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 인간 생활,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승천, 다시 오심과 관련되고, 그분께서 새 예루살렘 안에서 등이신 것과 관련된다.
      A. 주 예수님은 그분의 생활과 일에서 그분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셨다 — 요 7:18, 8:50, 54.
      B.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 눅 24:26, 요 7:39, 17:5, 행 3:13, 벧전 1:21.
      C. 그리스도는 그분의 승천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주 예수님은 ‘강을 건너’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간 사람의 본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셨다 — 히 2:9-10, 6:19-20, 9:24.
      D.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오실 것이다 — 마 16:27, 눅 21:27.
      E.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서 그리스도, 곧 등이신 어린양은 빛이신 하나님으로 빛을 비추시어, 신성한 빛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새 예루살렘을 밝게 하실 것이다 — 계 21:11, 23, 22:5.
      Ⅳ.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영광과 영광스럽게 되심을 볼 수 있다.
      A.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에게서 온 독생자의 영광이었다.”(요 1:14)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산 위에서 변형되신 것을 가리킨다(마 17:1-2, 5).
      B. “예수님께서 …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즉, 주님의 신성이 나타났다 — 요 2:11.
      C. 주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고’, “여러분이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유일하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셨다 — 요 5:41, 44.
      D.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 요 7:18.
      1. “나는 나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나, 나를 위하여 영광을 구하시고 심판하시는 분께서 계십니다.” — 요 8:50.
      2. “내가 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린다면, 내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영광을 돌리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니” — 요 8:54.
      3.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던 것이다.” — 요 12:43.
      E.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습니다.”(요 12:23)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은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것이었다.
      F.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1절)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아버지,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광스럽게 하여 주십시오.”(5절)라고 말씀하셨다.
      1. 이것이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의 주제이다.
      2. 이 기도를 하시기 전에, 주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고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 요 12:23, 13:31-32.
      3. 그리스도는 부활하실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분의 인성을 신성한 요소 안으로 높이고, 그분의 신성한 요소가 표현되게 하여 그분의 온 존재, 즉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다 영광스럽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도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었다.
      G. 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oneness)의 가장 높은 단계, 곧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한 신성한 영광 안에서의 하나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요 17:22.
      1. 이것은 믿는 이들의 가장 깊은 하나, 곧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한 신성한 영광 안에서의 하나이다.
      2. 이렇게 하나 되는 것의 방면에서,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부인한 믿는 이들은 아버지의 영광을 그들이 온전히 하나 되는 요인으로 누려, 단체적이고도 건축된 방식으로 하나님을 표현한다.
      Ⅴ.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광스럽게 되심이시다 — 요 17:1, 5, 22-23.
      A. 영광스럽게 됨은 나타남을 의미하며,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나타나는 것이다.
      B.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에 나오는 주님의 메시지의 중점은 아들께서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다는 것이다.
      1. 주님은 그분의 메시지에서 영광스럽게 되심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분의 기도에서 영광스럽게 되심을 위해 기도하셨다 — 요 13:31-32, 14:13, 15:8, 17:1, 5.
      2.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셨다 — 요 7:39.
      a.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영광스럽게 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부활은 그분을 영광 안으로 이끌었다 — 눅 24:26, 고전 15:43, 행 3:13, 15.
      b. 신약의 사상에 따르면, 부활은 생명이 해방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해방되는 것은 영광스럽게 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영광스럽게 됨’은 ‘부활’과 동의어이다.
      C. 오늘날 바로 교회에 의해, 아들께서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해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요 17:22, 엡 3:21.
      1. 영광은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의 표현이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에 의해 살수록 교회 안에 신성한 영광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 요 17:22, 엡 3:21.
      2.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이 놀라운 상호 내재의 하나 안에서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와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신다 — 요 17:23.
      a. 우리가 하나일 때,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아버지도 영광스럽게 되신다.
      b.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하나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시기 위한 것이다. 이 하나가 사실상 신성한 영광스럽게 됨이다.
      3. 신성한 영광스럽게 됨 안에서, 삼일 하나님께서 인성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인성이 신성 안에서 영광스럽게 된다 — 계 21:10-11.
    • 메시지11
      아버지의 집 안에서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해 예비된 곳 안에서 삶
      +
    • 성경: 요 14:1-3, 6, 10-11, 20, 23, 1:4, 14, 16, 11:25
      Ⅰ. 요한복음 14장의 중심 사상은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믿어 들어감으로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 요 14:1.
      A.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객관적이지만, 하나님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 것은 주관적이다. 바로 이러한 주관적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이끈다.
      B. 이렇게 주님 안으로 믿어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그분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하나 되고, 그분께 동참하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참여한다 — 요 3:15.
      C.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유기적인 연결을 갖게 되고, 우리의 존재가 그분의 존재 안에 잠기어 그분과 우리가 유기적으로 하나 된다 — 요 15:4-5.
      Ⅱ. 아버지의 집은 삼일 하나님께서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그분 자신을 믿는 이들 안에 일해 넣으심으로써 믿는 이들과 완전히 연합되시어, 그들을 그분의 거처와 표현을 위한 한 유기체로 건축하시는 문제이다 — 요 14:2-3, 23.
      A. 요한복음 2장 16절에서 ‘나의 아버지의 집’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가리킨다.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는 예표 또는 상징이며, 예수님의 몸은 부활 안에서 확대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 요 2:19-22.
      B.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나의 아버지의 집’은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님의 집인 교회이다 — 엡 1:22-23, 2:21-22, 딤전 3:15.
      C. 아버지의 집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하나님과, 구속받고 거듭나고 변화된 그분께 선택받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이다 — 요 14:20.
      D.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 요 14:2.
      1. 많은 거할 곳은 하나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의 많은 지체이다 — 롬 12:5, 고전 3:16-17.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는 하나님의 건축물인 아버지의 집 안에 있는 많은 거할 곳들이다. 이 건축물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 엡 1:22-23, 2:21-22, 5:30, 고전 12:27.
      E.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한 곳을 예비하시고, 구속을 성취하시고, 길을 여시고, 입지를 마련하실 것임을 의미한다 — 요 14:2-3, 6.
      1. 죽음과 부활에 의해 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으시고 장소를 예비하셨다 — 요 14:20.
      2. 주 예수님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는 입지를 예비하셨다. 이런 식으로 주님은 하나님 안에 우리를 위한 한 곳을 예비하셨다 — 요 14:2-3, 6.
      3. 하나님 안에 있는 입지가 확대된 후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입지가 된다 — 롬 12:4-5, 엡 5:30, 고전 12:27.
      a.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서 입지, 곧 한 곳을 얻지 못한 사람은 아버지의 집이자 하나님의 거처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한 곳을 얻지 못한다 — 엡 1:22-23, 2:21-22.
      b.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곳을 얻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곳을 얻었으며,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그곳 안에서 살아야 한다 — 요 14:2-3, 20, 고전 12:27.
      F. 주님의 오심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고, 주님의 가심은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끌어 가셨다. 이렇게 오고 가심으로써, 주님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건축하시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신다 — 요 1:14, 10:10하, 14:2-3.
      G.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영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한 유기체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시는데,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아버지의 집으로서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의 연합에 의해 산출된다 — 요 14:7-24.
      H.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그 영과 함께, 구속받은 선민을 끊임없이 방문하심으로써 건축된다 — 요 14:23.
      I. 아버지의 집은 세 단계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육체 되신 하나님의 단계,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과 함께 부활하시어 교회로 건축되시는 단계, 새 예루살렘이라는 완결 단계이다 — 요 2:19-21, 계 21:2-3, 9-10.
      Ⅲ. 아버지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 — 요 14:2, 20, 살전 1:1, 살후 1:1.
      A.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으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과 생명 관계를 가져야 한다 — 요 20:17.
      1. 신약에서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을 의미한다 — 요 5:26.
      2.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창조와 관련되고, ‘아버지’라는 호칭은 생명의 분배와 번성과 관련된다 — 요일 3:1.
      3.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창조주만이 아니시라 또한 우리의 아버지, 곧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다.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이다 — 요 1:12-13.
      4.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이제 그분의 자녀들로서 그분과 생명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 롬 8:15-16.
      5. 주님은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과 생명을 나누어 주는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셨다. 이제 그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 요 20:17.
      6. 주 예수님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 곧 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다 — 요 14:20.
      B.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가 유일한 근원이시고 기원자이시며 창시자이신 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전 8:6.
      1.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은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비롯되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마 15:13, 롬 11:36.
      2. 교회생활 안에서 아버지는 유일한 근원이셔야 하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유일한 목적과 계획 안에 있어야 한다 — 딤후 1:9, 롬 8:28.
      Ⅳ. 우리는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에 대한 내재적인 의미를 보아야 한다 — 요 14:2-3, 23.
      A.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4, 5:26, 6:53, 11:25, 14:6.
      B.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빛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4, 8:12.
      C.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1:25.
      D.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은혜와 실재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14, 16-17, 14:6, 16:13.
      E.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신성한 영광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7:22-23.
      F.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기도하고 경배하는 집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4:13, 15:7, 16, 16:23-24, 4:23-24.
      G.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목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요 10:10-11, 15-17, 21:15-17.
      H.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건축물 안에,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사는 것이다 — 요 2:19-21, 14:23.
      I.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하나를 지키기 위해 완결되신 영이라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7:39, 14:16-20, 16:13, 17:11, 21, 23.
      J.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 사는 것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구속받고 거듭난 세 부분으로 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 안에 사는 것이다 — 요 14:10-11, 20.
    • 메시지12
      신성한 삼일성, 예수님의 영, 하나님의 왕국
      +
    • 성경: 행 1:3, 2:32-36, 8:12, 14:22, 16:6-7, 20:28, 28:23, 31
      Ⅰ. 신약성경 전체의 골격이 신성한 삼일성이듯이, 사도행전의 구조도 신성한 삼일성이다. 사도행전의 각 장은 신성한 삼일성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해 운행하시는 것을 밝혀 준다 — 예들, 행 1:1-2, 4-5, 8, 11, 21, 2:4, 17-18, 21-24, 27, 31-33, 36, 38, 13:2, 4, 7, 9-10, 12, 16, 23, 30, 33-39, 49-50, 52, 28:15, 23, 25, 31.
      A.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삼일 하나님은 아들의 승천과 그 영의 부어지심에 전적으로 관여하셨다 — 행 2:32-36.
      1. 아들은 승천하셨고, 아버지는 아들을 높이셨으며, 그 영은 부어지셨다 — 눅 24:51, 빌 2:9, 행 1:9-11, 2:32-36.
      2. 아버지와 아들과 영 모두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의 부어지심에 연관되셨다 — 행 2:33, 요 7:37-39, 빌 1:19.
      B. 사도행전 16장 6절과 7절에서 ‘성령’과 ‘예수님의 영’이 서로 바뀌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께서 성령이시라는 것을 계시한다.
      1. ‘성령’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일반적인 칭호이다 — 행 9:17, 31.
      2. 삼일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바울은 성령과 예수님의 영으로 완전히 조성되었다 — 엡 3:14-17, 눅 1:35, 행 2:32-36, 빌 1:19.
      3. 우리가 주님을 위해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영에 의해 안내받고 지시받고 가르침받고 조성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께서 우리의 조성이 되실 때, 우리의 일은 이 영의 표현이 될 것이다 — 행 16:6-7, 롬 8:9, 빌 1:19.
      C. 하나님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 오셨다 — 행 20:28.
      1. 하나님은 ‘자신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셔서 교회를 사셨다.
      2. 창조주이시자 영원하신 분이신 우리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하여 사람과 연합되셨다 — 요 1:1, 14.
      a. 그 결과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만이 아니시라, 피를 가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는 하나님-사람이 되셨다 — 요일 1:7.
      b. 하나님-사람이신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죽으셨다.
      3. 그분께서 흘리신 피는 사람 예수님의 피만이 아니라 하나님-사람의 피였다.
      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 오실 수 있도록 한 그분의 피는 ‘하나님 자신의 피’이다 — 행 20:28.
      Ⅱ.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특별한 표현이며,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으로서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거치신,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을 말한다 — 행 16:7.
      A. 예수님의 영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한 요소뿐 아니라 예수님의 인성의 요소, 그리고 그분의 인간 생활과 그분께서 겪으신 죽음의 요소도 있다 — 행 1:3.
      B. 예수님의 영은 자신 안에 신성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가 신성한 생명을 살 수 있도록 하실 뿐 아니라, 자신 안에 인성을 갖고 계신 사람 예수님의 영으로서 우리가 합당한 인간 생활을 하고 인생의 고난들을 견딜 수 있도록 하신다 — 롬 8:18, 고후 1:5.
      1. 고난 가운데 있던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영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영 안에 고난의 요소가 있고 박해를 이겨 내며 고난을 견디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골 1:24, 행 9:15-16, 16:7.
      2.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반대와 박해에 직면하기 위해 예수님의 영이 필요하다.
      C. 예수님의 영은 성령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하신다 — 행 16:6-7.
      1. 성령은 오직 주 예수님의 육체 되심과 출생만을 포함하신다 — 눅 1:35, 마 1:18, 20.
      2.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인성과 인간 생활과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과 생명을 나눠 주는 부활과 승천을 포함하신다 — 행 1:1-3, 8, 2:23, 32, 36.
      D.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듯이,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실재이시다 — 롬 8:9, 행 16:7.
      1.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이 없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실재가 되지 못하실 것이다.
      2. 우리에게 예수님의 실재이자 실재화이신 예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실재가 되신다 — 행 16:7.
      Ⅲ. 하나님의 왕국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파한 주요 주제였다 — 행 1:3, 8:12, 14:22, 19:8, 20:25, 28:23, 31.
      A.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사도들이 장차 오순절 후에 위임받아 전파해야 할 주된 주제가 왕국일 것임을 가리킨다 — 행 1:3.
      B. 신약에 따르면, 하나님의 왕국은 보이는 물질적인 영역이 아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왕국은 한 인격, 곧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 눅 17:20-21.
      C. 교회들과 하나님의 왕국은 함께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번식에 의해 산출된 교회들이 오늘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 행 14:22, 20:25.
      1. 승천 안에서, 그 영에 의해, 제자들을 통해 자신을 번식시키고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왕국의 실재이시다.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확장이다 — 행 1:8, 8:12.
      a.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확장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왕국의 씨이신 그분 자신을 뿌리러 오셨다. 이것은 복음서에 계시된다 — 막 4:3, 26.
      b.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왕국의 씨이셨다. 사도행전에는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들을 산출하기 위한 이 씨의 번식이 있다 — 행 8:1, 12, 13:1-4.
      2.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번식과 확장이며, 하나님의 왕국을 확대하고 있다 — 계 1:9, 11.
      D.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명 안에서 다스리시는 영역을 형성하기 위해,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믿는 이들 안으로 확산되시는 것이다 — 벧후 1:3-11.
      1. 이 왕국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람들이 그들의 죄들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죄들을 용서받고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서, 이 왕국의 신성한 본성에 어울리는 신성한 생명을 갖기 위한 것이다 — 막 1:15, 요 3:3, 5.
      2.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가 하나님의 의와 화평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의 기쁨 안에서 하나님을 누리기 위하여 교회 시대에 이 왕국에 참여할 수 있다 — 롬 14:17.
      3. 하나님의 왕국은 이기는 믿는 이들이 오는 왕국 시대에 상속받아 누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이 될 것인데,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으로서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 고전 6:9-11, 갈 5:19-21, 엡 5:5, 계 20:4, 6.
      4.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으로서,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모든 사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누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영원한 축복이 될 것이다 — 계 21:1-4, 22:1-5, 14, 17.
      E. 사도행전 14장 22절에서 바울은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믿는 이들에게, 온 세상이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므로 그 왕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간곡히 말했다.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왕국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누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F. 사도행전 19장에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확산시키시는 것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의 번식을 위한 유력한 사역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싸움이요 전쟁이다 — 행 19:23-41.
      G. 바울이 사도행전 28장 31절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한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번식시키는 것이었다.
      1.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가르쳤다’라는 말로 증명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이 하나님의 왕국과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 행 28:23.
      2.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은 사실상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번식이며, 이 번식은 오늘날 믿는 이들을 통해 계속 수행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 행 28:31.
  • 개요

    현충일 특별 집회 : 그리스도인의 생활

    • 메시지1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내재적인 의미
      +
    • 성경: 요 14:21, 23, 고후 2:10, 4:6-7
      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이다.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여야 하며, 그리스도를 사는 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 빌 1:19-21상, 갈 2:20.
      A. 우리는 그리스도를 극도로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살 수 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 수 없으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온 존재를 그분께 집중하는 최상의 길이다 — 고후 5:14, 요일 4:19, 빌 1:19-21상, 막 12:30, 계 2:4-5, 요 14:21, 23, 21:15-17, 벧전 1:8, 고전 2:9, 16:22.
      B.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영과 혼과 몸, 또 마음과 혼과 생각과 힘(막 12:30)—를 절대적으로 그분께 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의 온 존재가 그분으로 점유되고 그분 안에서 우리 자신이 잃어버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실지적으로 그분과 하나 된다.
      C.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영은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이들까지도 꿰뚫어 보신다’(고전 2:10). ‘꿰뚫어 보다’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적극적인 탐구와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이것은 발견해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탐구해서 얻는 정확한 지식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깊이들을 탐구하시어 우리가 깨닫고 참여하도록 영 안에서 그것을 보여 주신다.
      D.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아들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누리며, 아버지와 아들께서 우리와 함께 상호 거처를 정하시도록 우리를 방문하시는 것을 누릴 것이다 — 요 14:21, 23.
      E.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이신 하나님 자신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생활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사는 생활을 하셨고, 지금은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동일한 사랑의 생활을 하여,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죄인을 구원하는 사역 여행을 하신 그분의 존재와 똑같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요일 4:16-19, 눅 10:25-37, 19:10, 엡 4:20-21, 비교 갈 5:13-15.
      Ⅱ.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 고후 2:10, 4:6-7.
      A.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사용된 것처럼, ‘인격’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직역하면 ‘얼굴’이다. 이것은 눈언저리 부분으로서, 내적인 생각과 느낌을 보여 주는 표정이 나타나는 곳이다. 이러한 표정은 사람의 인격 전체를 보여 주고 나타내는 것이다.
      B. 믿는 이들에게 본이었던 사도 바울(딤전 1:16)은 그리스도의 눈에서 표현되는 그분의 인격 전체의 표시에 따라,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살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C.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키면, 너울이 우리의 마음에서 벗어지고, 우리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영광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 사실상 우리의 돌아선 마음이 너울이다. 너울을 벗은 얼굴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너울을 벗은 마음이다 — 고후 3:16, 18, 4:6-7, 삼상 16:7, 엡 1:18상.
      D.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으며, 그분의 얼굴 곧 그분의 인격이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는 보배이다 — 고후 4:6-7, 벧전 3:4.
      E. 우리는 가치 없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우리의 영 안에 지극히 귀한 보배를 담고 있는데, 이 보배는 그리스도 자신의 얼굴, 곧 인격이다(고후 2:10, 4:6). 온 우주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창 32:30, 출 25:30, 33:11, 14, 시 27:4, 8, 계 22:4).
      1.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살며 그분의 존재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보배이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면, 다만 그분께 말씀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분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며, 얼굴을 마주하여 우리와 함께하신다 — 빌 4:6.
      2.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요소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 변화되는 것이다(욥 42:5-6, 마 5:8).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바로 이 하나님은 완결되신 영이시며,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풍성을 우리 존재 안으로 흡수하고 매일 신성한 변화를 받을 수 있다(고후 3:18하, 마 14:22-23, 골 4:2).
      F.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돌이켜 얼굴을 마주하여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다른 이들 안으로 비추어 넣는 동안(사 60:1, 5),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있으며, 결국 ‘우리는 그분을 그분의 존재 그대로 뵙게 될 것이므로 그분과 같아질’ 날에 이를 것이다 — 고후 3:18-4:1, 요일 3:2, 계 22:4.
      Ⅲ.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 — 엡 4:1-4.
      A.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행함의 첫째 항목은 우리가 신성한 속성들에 의해, 신성한 속성들로 강화된 변화된 인간 미덕들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는 것이다 — 엡 4:1-4.
      1.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님의 영 안에는 예수님의 변화된 인성이 있다. 한 몸을 위해 한 영을 마시고 흘려 보내는 것은 사람 예수님의 영을 마시고 흘려 보내는 것, 즉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지기 위한 겸허와 온유와 오래 참음이라는, 신성으로 풍성하게 된 인간 미덕들을 지닌 예수님의 인성을 마시고 흘려 보내는 것이다 — 요 7:37-39상, 고전 12:13, 행 16:7, 엡 4:2-3.
      2. 우리가 늘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먹는다면,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님을 누릴 것이고, 그분의 높아진 인성의 모든 미덕은 예수님의 영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될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실재의 영 안에서, 회복된 교회생활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 고전 1:2, 10:3-4, 17, 12:3하, 13, 16:13, 엡 4:3-4상.
      B.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행함의 둘째 항목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는 것이다 — 엡 4:15-16.
      1.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한 새사람을 산출하기 위한 모든 것을 포함한 우주적인 대체물로서 누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만’을 보아야 한다 — 막 9:7-8.
      2.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것이나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사람을 ‘해고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구약 경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대체하셨다 — 막 1:1-8, 마 17:3-5, 골 2:16-17, 히 10:5-10, 11:5-6, 비교 사 22:20-25.
      3.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우리를 ‘고용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 두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으셨을 때, 우리를 ‘해고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하셨을 때, 우리를 하나님-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종(種), 곧 하나님의 단체적인 걸작품인 하나님의 새로운 발명품으로 만드심으로써 우리를 ‘재고용하시어’, 그분의 영광 곧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의 원래의 의도로 우리를 되돌리셨다 — 창 1:26, 갈 2:20, 엡 2:6, 10, 15, 사 43:7.
      C.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행함의 셋째 항목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 엡 4:20-24.
      1.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는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일생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생활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활 안에 계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 엡 4:20-21.
      2. 그분은 사복음서에 계시된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사실 때 본을 세우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의해 그분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께 배우는 것이다 — 고전 15:45하, 골 3:4.
      3.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복음서들에 묘사된 틀, 모습, 본을 따라 자동적으로 그분을 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 틀의 형상으로 형태 지어져 이 틀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말의 의미이다 — 마 11:29, 롬 8:29.
      D.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행함의 넷째 항목은 우리가 사랑과 빛 안에서 사는 것이다 — 엡 5:2, 8.
      1.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이들 곧 신성한 본성을 누리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벧후 1:4).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함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요 4:24), 사랑이시며(요일 4:8, 16), 빛이시다(1:5). 영은 하나님의 위격의 본성이고,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며,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다.
      2. 우리 모두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충분히 갖고서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내밀하게 교통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본질로 채워짐으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목양하실 수 있고, 주님의 빛나는 요소로 채워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게 된다 — 요 4:24, 눅 15:20, 마 5:15-16.
      E.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행함의 다섯째 항목은 우리가 영 안에서 충만해져 그리스도를 넘쳐흐르게 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 엡 5:18.
      1. 말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것은 영 안에 충만한 것의 흘러 나감일 뿐 아니라 영 안에서 충만해지는 길이다 — 엡 5:19-21.
      2. 영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가득 채워져 그리스도의 충만, 그리스도의 넘쳐흐름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우리는 그분을 은혜 위에 은혜로 계속 받아들여 그분의 충만, 그분의 넘쳐흐름이 될 수 있다 — 엡 3:8, 1:23, 3:19하, 롬 10:12-13, 엡 6:17-18, 요 1:16.
      Ⅳ.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A.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우리의 맛을 가져가시고 우리의 냄새를 바꾸기 원하신다. 성령의 징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순수한 맛을 갖고 그리스도의 순수한 향기를 풍길 때까지 우리의 타고난 겉사람의 앙금, 찌꺼기가 제거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담으시는 것이다 — 렘 48:11, 고후 2:14-15, 아 4:16, 왕하 4:8-9.
      1. ‘모든 영의 아버지’는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에 동참하도록’ 시련과 징벌을 통해 우리를 징계하신다 — 히 12:4-13.
      2. 시련과 징벌을 한 번도 통과해 보지 않은 이들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담아진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타고난 기질과 겉사람과 자아의 앙금, 찌꺼기, 침전물의 맛이 그들 안에 남아 있고, 그들의 냄새도 변하지 않았다 — 렘 48:11, 롬 8:28-29, 아 4:16.
      B. 마리아는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일 리트라로 채워진 옥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주님께 부었을 때, ‘그 집이 향유의 향기로 가득 찼다’ — 요 12:2-3, 막 14:3, 비교 아 1:12.
      C. 옥합은 우리의 겉사람을 상징한다. 우리의 겉사람은 속사람이 뚫고 나올 수 있도록 파쇄되어야 한다. 주님은 질그릇, 옥합, 겉껍질을 파쇄하시려고 매우 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위에 일하신다 — 고후 4:7, 요 12:3, 24, 롬 8:28-29.
      D. 우리의 선천적인 어떠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그 영께서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하신 것만이 가치가 있다. 성령의 징계는 우리의 타고난 기질과 습관을 깨뜨리고, 성숙하고 달콤한 성령의 조성을 이끌어 온다. 하나님은 우리 환경 안의 모든 것을 안배하심으로써 우리의 타고난 존재를 허물어뜨리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기질과 새로운 성격과 새로운 속성들을 형성하신다 — 요 3:6, 고후 5:17, 갈 6:15.
      E. 파쇄되지 않는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1. 어떤 사람이 파쇄되지 않는 것은 그가 어둠 속에 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서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에 돌린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대한 계시가 없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루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계시가 없다 — 비교 욥 10:13, 엡 3:9.
      2. 어떤 사람이 파쇄되지 않는 것은 그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자기 사랑을 제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모든 오해와 불만은 오직 한 가지, 곧 은밀한 자기 사랑에서 생긴다.
      F. 우리는 자신이 통과하는 모든 일에 오직 한 가지 목적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해방되고 우리 안에서 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속사람이 해방되고 표현될 수 있는 정도까지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보배로운 것이며, 이것이 주님의 종들이 가야 할 길이다 — 요 12:24-26, 고후 4:12.
      영의 해방과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에 관한 교통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우리가 죄인들과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그들 안에 의(義)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생겨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나가서 사역할 때 반드시 사람들 안에 배고픔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여러분 안에 반드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선함과 능력과 자양분과 공급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여러분이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 여러분과 이야기할 때, 여러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고 싶은 느낌이 생겨나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늘 여러분과 만나고 여러분과 왕래하는데, 여러분이 그들 안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실패이다. 설령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복음을 전파할지라도 사람들 안에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여러분의 일은 실패이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42권, 특별 집회, 메시지 및 대화 기록(2), 31장, 24-25쪽)

      열왕기하 4장에서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영접한 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한 부유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식사를 대접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엘리사는 지나갈 때마다 거기 들러 식사를 하곤 하였다. 그 여인이 남편에게 말하였다. ‘늘 우리를 거쳐 지나가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것을 나는 이제 압니다.”(8-9절)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갈 때, 그는 한 편의 메시지를 전한 적도 없고 기적을 행한 적도 없었다. 엘리사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었다. 그 여인은 그가 음식 먹는 방식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 무엇이고 우리에게서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언급했다.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오직 우리 겉사람뿐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거나, 찌르고 강퍅하고 교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 혹은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총명한 사람이거나 구변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것이다. 혹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소위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인상이 교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것만으로 만족하실 수 없고, 교회도 이러한 소위 좋은 인상은 필요하지 않다.

      … 만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영은 해방될 수 없고 사람들에게 영의 인상을 줄 수도 없다.

      … 사람들 안에 인상을 남겨 주는 것은 바로 우리 존재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54권,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8장, 296-297쪽)

    • 메시지2
      접붙여진 생명
      +
    • 성경: 요 15:1, 4-5, 롬 11:17-24, 고전 6:17
      Ⅰ.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접붙여진 생명을 살아야 하는데, 이 생명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한 영이고 주님과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산다 — 고전 6:17, 요 15:4.
      Ⅱ.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기를 갈망하시는 관계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임을 계시한다 — 고전 6:17.
      A. 하나님은 신성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함께 결합되어 한 생명이 되기를 갈망하신다 — 요 15:1, 4-5.
      B. 이러한 하나가 유기적인 연결 혹은 생명 안에서의 연결, 곧 접붙여진 생명이다.
      C. 신성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하나로 접붙여졌다는 관념은 비밀스럽고, 천연적인 관념을 뛰어넘으며, 사람의 생각에 낯선 것이다.
      Ⅲ. 접붙여짐으로써 유사한 두 생명은 결합되어 함께 자란다 — 롬 11:17-24.
      A. 접붙임은 접붙일 생명들이 유사한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B. 우리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성한 생명과 결합될 수 있다.
      C. 우리 사람의 생명은 신성한 생명을 닮았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은 함께 접붙여져 유기적으로 함께 자랄 수 있다.
      Ⅳ.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여지려면 그분께서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셔야 했다.
      A. 그리스도는 육체가 되심으로 다윗의 씨, 다윗의 가지, 순이 되시어 우리가 그분과 함께 접붙여질 수 있도록 하셨다. 그분은 그분과 우리가 함께 접붙여질 수 있도록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 — 요 1:14, 마 1:1, 슥 3:8, 렘 23:5, 33:15.
      B.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분 안으로 접붙여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잘리셨다’.
      1.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가지가 되신 것 자체로는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접붙여지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접붙여지려면 잘리는 것이 필요하다. 즉 두 가지가 모두 잘리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는 함께 접붙여질 수 없다.
      a.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잘리셨다.
      b.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을 받아들일 때 잘렸다.
      3. 잘리는 일이 생긴 후, 결합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접붙임 안에서 우리는 잘리고, 결합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C.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잘리신 후에 부활하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고전 15:45하, 고후 3:17상.
      1. 그러한 영이 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접붙여질 준비가 되셨다.
      2. 일단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을 받아들이면,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은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가져오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접붙여진다 — 요 20:22, 롬 8:11.
      a. 이 생명은 죽음과 부활의 생명이다.
      b.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열쇠를 우리 믿는 이들 안으로 가져오심으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고 살아나게 하신다 — 갈 2:20.
      c. 이러한 죽음과 부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접붙여진다.
      Ⅴ. 거듭난 이들로서 우리는 접붙여진 생명, 곧 양편이 결합되어 유기적으로 자라는 생명을 살아야 한다 — 요 15:1, 4-5.
      A.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여진 후에 더 이상 우리 자신에 의해 살지 말고,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 갈 2:20.
      B.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육체에 의해서나 우리의 타고난 존재에 의해 살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의 거듭난 영, 곧 그리스도와 접붙여진 영에 의해 살아야 한다 — 롬 8:4.
      C. 이러한 접붙임을 통해 우리는 그분과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 롬 12:4-5.
      Ⅵ. 접붙여진 생명은 교환된 생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신성한 생명의 연합이다 — 갈 2:20.
      A. 교환된 생명이라는 관념은 우리가 우리 사람의 생명을 주님께 넘겨드리고 주님께서 그것을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대체하신다는 것이다.
      B.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교환된 생명이 아니라 접붙여진 생명, 곧 사람의 생명과 신성한 생명이 연합된 것이다 — 롬 6:3-5, 요 15:1, 4-5.
      1. 생명을 교환하거나 거래한 것이 아니다.
      2. 교환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이 사람의 생명 안으로 분배되고 주입된 것이며, 신성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연합된 것이다.
      C.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가장 놀라운 실재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 생명의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 고전 6:17.
      1. 그리스도의 온 존재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한 가지를 위한 것인데, 바로 그분과 우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접붙여진 생명을 사는 것이다 — 요 15:4-5.
      2. 주님의 회복 안에서 그분은 접붙여진 생명이라는 소홀히 여겨졌던 이 문제를 회복하고 계신다.
      Ⅶ.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사람의 생명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에 의해 강화되고 높아지고 풍성하게 된다 — 롬 11:17-24.
      A.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가지는 그 본질적인 특성을 동일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더 좋은 생명 안으로 접붙여짐으로써 그 가지의 생명이 높아지고 변화된다.
      1. 더 높은 생명이 더 낮은 생명을 정복한다.
      2. 더 높은 생명이 더 낮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높이고 변화시킨다.
      B.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여 부정적인 요소들을 배출한다 — 고후 3:18.
      1. 신성한 생명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운행하면서 타고난 모든 것을 제거한다.
      2. 우리의 기질 안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가 죽음당한 다음, 주님은 우리의 기질을 내던지시는 것이 아니라 높이시고 사용하신다.
      C.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것을 부활하게 한다 — 요 11:25.
      1. 하나님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것을 버리지 않고 되찾으신다.
      2.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 존재의 모든 방면을 부활 안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 빌 3:11.
      a. 신성한 생명이 부정적인 것들을 배출하는 동안, 이 신성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것을 부활시키려고 운행한다.
      b.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본래 기능들, 곧 창조 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기능들이 복원되고 강화되며 풍성하게 된다 — 갈 2:20.
      D.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우리의 속부분들에 공급한다 — 롬 12:2.
      1. 우리의 부활하고 높아진 기능들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받는다.
      2. 이러한 공급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새로워진다.
      E. 접붙여진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은 우리의 전 존재를 적신다 — 롬 8:29-30.
      1. 그리스도의 풍성은 우리를 적시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 롬 12:2, 고후 3:18.
      2. 이렇게 신성한 생명으로 적셔짐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된다 — 롬 8:29.
    • 메시지3
      바르는 거룩한 기름인 복합된 관유의 내재적인 의미와 계시 ―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복합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의 완전한 예표
      +
    • 성경: 출 30:22-30, 고전 15:45하, 요 7:37-39, 빌 1:19
      Ⅰ. 바르는 거룩한 기름은 ‘향 만드는 사람의 제조법에 따라’ 올리브기름과 네 가지 향료로 만들어진 복합된 관유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복합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생명 주시는 영의 완전한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러한 영이 되셨다 — 출 30:22-25, 고전 15:45하, 요 7:37-39, 빌 1:19.
      A. 이 복합된 바르는 기름의 성분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액체 몰약은 죽은 이를 장사할 때 사용되었으며(요 19:39),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죽음을 상징한다(롬 6:3).
      a. 몰약은 또한 죽음의 고통을 경감하는 진통제로 사용되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동안에, 사람들은 그분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몰약 섞은 포도주를 그분께 드렸다 — 막 15:23.
      b. 몰약은 또한 몸에서 어떤 좋지 않은 분비물이 나올 때 그러한 몸을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우리의 인간 생명에는 좋지 않은 여러 분비물이 있지만,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음은 이 문제를 고친다.
      2. 향기로운 육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달콤함과 효능을 상징한다 — 롬 8:13.
      a. 육계는 약한 심장을 자극하기 위한 약으로 처방되었다.
      b. 우리가 그 영 안에서 주님의 죽음을 우리의 내적 존재에 적용할 때, 우리의 심장 곧 우리의 마음은 자극을 받아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된다 — 빌 4:4, 느 8:10.
      3. 향기로운 창포는 늪이나 진흙에서 위를 향해 자라는 일종의 갈대에서 얻어지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부활을 상징한다 — 엡 2:6, 골 3:1, 벧전 1:3.
      4. 계피는 고대에 곤충과 뱀을 쫓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의 쫓아내는 능력을 상징한다. 계피는 모든 악한 ‘곤충들’을 쫓아내며, 특별히 옛 뱀 마귀를 쫓아낸다 — 빌 3:10.
      5. 올리브기름은 복합된 관유의 주성분으로서, 복합되신 영의 주성분이신 하나님의 영을 상징한다 — 창 1:2.
      B. 숫자 4는 피조물을 상징하는데(겔 1:5), 이 피조물의 머리가 사람이다(창 1:26). 숫자 1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상징한다(신 4:35, 딤전 2:5). 그러므로 네 가지 향료는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고, 올리브기름 한 힌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올리브기름과 네 가지 향료를 섞는 것은 복합되신 영 안에 하나님과 사람, 신성과 인성이 복합되고 연합된 것을 상징한다 — 레 2:4과 각주 2.
      C. 올리브기름과 네 가지 향료는 모두 눌러 짜거나 자르는 과정을 통해 준비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통해(마 26:36) 하나님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 것을 상징한다(롬 8:9).
      D. 더욱이 이 네 가지 향료는 오백 세겔의 온전한 단위 셋을 이루었고 가운데 오백 세겔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은 부활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과, 삼일성의 둘째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나누어지신 것’을 상징한다.
      E. 성경에서 5는 책임의 숫자이기 때문에(마 25:2과 각주 1), 복합된 관유의 다섯 가지 요소와 각각 오백 세겔로 이루어진 세 단위의 네 가지 향료는 책임을 지는 능력과 역량이신 부활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F. 숫자 3과 5는 하나님의 건축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참조 창 6:15 각주 2), 복합된 관유에 있는 이 숫자들은 복합되신 영 안에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G. 이러한 의미들에 근거할 때, 네 가지 향료와 올리브기름을 복합하여 바르는 기름을 만든 것은,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과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통해 연합됨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를 건축하기 위하여 복합되신 영을 산출하는 것을 상징한다.
      Ⅱ. 복합된 관유인 바르는 거룩한 기름은 성막과 그 모든 기구, 제단과 그 모든 집기, 물두멍과 그 받침에,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바르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모두를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하도록 거룩하게 하고 분별하였다 — 출 30:26-30, 벧전 1:2, 고전 6:11, 롬 15:16.
      A. 이 관유는 삼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심으로써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복합되신 영이 되시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에게 도달하시고 그분 자신을 그들에게 기름 바르시어, 그분 자신을 그들과 하나 되게 하시고 그들을 그분과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 요 20:22, 요일 2:20, 27, 고후 1:21, 고전 6:17.
      B. 이러한 기름바름은 복합되신 영께서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으로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모든 요소를 우리에게 적용하고 또한 우리의 내적 존재에 더함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신성한 생명 안에서 신성한 요소로 말미암아 자라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게 한다 — 골 2:19.
      C. 바르는 거룩한 기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처와 제사장 체계에 바르기 위한 것이다(비교 벧전 2:5).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거처와 제사장 체계를 위하는 이들만이 복합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을 누릴 수 있다.
      Ⅲ. 올리브기름으로 상징되시는 하나님의 영은 더 이상 단순한 기름이 아니시며, 이제는 어떤 성분들과 복합된 기름이시다. 이것에 관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은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A. 이것은 주님의 영광스럽게 되심, 곧 주님의 부활(눅 24:26) 이전에는 복합되신 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러한 영의 복합 혹은 조합이 완성되었다.
      B. 그 영께서 하나님의 영이셨을 때는 신성한 요소만 갖고 계셨다.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 후에, 그 영은 신성한 요소와 사람의 요소 모두와 함께,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모든 본질과 실재를 가지셨다.
      C. 바르는 거룩한 기름으로 예표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시고 복합되신 이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 곧 그리스도의 몸의 공급이시며, 이러한 공급에 의해 우리는 몸 안에서, 몸을 통하여, 몸을 위해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분을 확대할 수 있다 — 빌 1:19-21상.
      Ⅳ. 복합된 관유, 곧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께서 믿는 이들인 우리에게 기름 발라지셨다. 시편 133편 2절은 어떻게 바르는 기름이 아론의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려서 그의 수염을 거쳐 옷단까지 미치는지를 묘사한다. 이것은 그 영께서 온몸에 기름 발라지시는 것을 상징한다.
      A. 하나라는 터는 바로 바르는 거룩한 기름 곧 복합되신 영으로서 우리의 존재에 적용되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 시 133:1-3.
      B. 관유로 ‘페인트칠’되기 위해서(요일 2:20, 27), 우리는 반드시 교회와 하나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바르는 기름과 함께 그 모든 요소의 적용을 자연스럽게 누릴 것이다. 이 관유가 적용되어 산출된 이 하나는 얼마나 놀라운지!
    • 메시지4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함
      +
    • 성경: 요 15:1, 4-5, 7, 요일 2:6, 27-28, 3:24, 4:13, 15, 롬 8:4
      Ⅰ. 주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다 — 요 15:1상, 비교 계 14:18.
      A. 가지들(아들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있는 이 참포도나무(아들)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B. 이 유기체는 그분의 풍성으로 자라며,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표현한다.
      Ⅱ. 포도나무 안에 있는 가지들로서 우리는 포도나무 안에 거해야 한다 — 요 15:4-5.
      A.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연결의 문제이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교통의 문제이다 — 고전 1:9, 30.
      B.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가 포도나무 안에 있는 가지들이라는 분명한 이상을 보는 것에 달려 있다. 일단 자신이 포도나무 안에 있는 가지들이라는 것을 보았다면, 우리는 우리와 주님 사이의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 — 요 15:2.
      C.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다 — 요일 2:6, 27-28, 3:24, 4:13, 15.
      D.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조건이다 — 요 15:5상.
      E. 우리는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요 15:5하.
      F. 가지들이 포도나무 안에 거할 때에만, 포도나무가 가지들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Ⅲ.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한 기름바름의 내적 가르침에 주의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한다 — 요일 2:27.
      A. 우리는 주님의 피의 씻음을 체험하고 기름 바르시는 영을 우리의 내적 존재에 적용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신성한 교통 안에 거한다 — 요 15:4-5, 요일 1:5, 7, 2:20, 27.
      B.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시자 기름 부으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로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분을 내적인 기름바름으로 누린다 — 히 1:9, 3:14, 고후 1:21-22.
      C. 기름바름은 우리 안에 계신 복합되신 영께서 움직이시고 일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우리 안에 바른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기름바름은 생명의 내적 감각, 내적 의식에 의해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생각을 그분의 지체들에게 전달해 준다 — 시 133편, 고전 2:16, 롬 8:6, 27.
      Ⅳ.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과 한 영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연합된 영 안에 사는 것이다 — 고전 6:17.
      A. 신약의 본질은 하나로 함께 연합된 두 영, 곧 신성한 영과 사람의 영이다 — 고전 6:17, 롬 8:4.
      B. 이 두 영의 연결은 성경에서 가장 깊은 비밀이다.
      C. ‘한 영’이라는 표현은 그 영이신 주님과 우리 영의 연합을 가리킨다 — 고전 6:17.
      1. 영, 곧 우리의 영과 주님의 영이 한 영으로 연합된 이 영은 주님의 영이자 우리의 영이다 — 롬 8:4, 고후 3:17, 고전 15:45.
      2. 우리가 주님과 교통하는 것, 주님께 기도하는 것, 주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 등 우리의 모든 영적 체험은 이 연합된 영 안에 있다.
      D. 하나님의 경륜의 초점은 연합된 영, 곧 신성한 영과 사람의 영이 연합된 영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은 이 초점과 관련된다 — 엡 3:5, 9, 1:17, 2:22, 5:18, 6:18.
      1. 우리는 주님과 한 영이 됨으로써,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 고전 1:2, 24, 30, 2:7-8, 10, 3:11, 5:7-8, 10:3-4, 11:3, 12:12, 15:20, 23, 45, 47.
      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할 수 있다.
      3. 누구든지 주님과 한 영인 사람에게는 공급이 한량없다.
      E. 연합된 영은 하나님과 한 영이고,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은 영이다 — 요일 5:11, 벧후 1:4.
      1. 신성한 영과 사람의 영이 우리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사람의 생명, 곧 하나님이면서도 사람이며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인 생명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갈 2:20, 빌 1:19-21상.
      2. 하나님-사람의 생활은 두 영이 하나로 함께 연결되고 연합된 생활이다.
      F. 주님과 한 영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그분이 생명 안에서 하나인 것을 함축한다 — 요 3:16, 요일 5:12.
      G.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오늘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그 영이시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고후 3:17, 고전 15:45, 6:17.
      H. 성경은 우리에게 연합된 영을 따라 행할 것을 요구한다 — 롬 8:4.
      1. 모든 것에 대한 열쇠는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시고 우리의 영과 한 영이 되신 놀라우신 영 안에서 발견된다.
      2. 영 안에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 존재에 침투하심으로써 우리를 통해 표현되실 때까지 우리를 채우시고 적시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다 — 엡 3:17.
      3. 요한복음 15장 4절과 5절에 나오는 상호 거함은 주님과 한 영인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Ⅴ. 효과적인 기도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 결과이다 — 요 15:7.
      A.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고 동역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협력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자신 안에서부터 그리고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갈망을 표현하시도록 허락해 드릴 것이다 — 롬 8:26-27, 약 5:17.
      1. 기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흐름이며, 사람과 하나님의 상호 접촉이다.
      2. 기도의 참된 의미는 우리 영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 자신을 흡수하는 것이다 — 엡 6:18.
      3.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사는 길은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 골 1:27, 3:4, 빌 1:20-21상.
      4. 우리에게는 우리를 주님과의 접촉 안으로 이끄는 그러한 기도, 곧 우리를 우리 영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게 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 딤후 4:22, 고전 6:17.
      B.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 안에는 그분의 말씀에서 나온 갈망이 있을 것이다 — 요 15:7, 요일 5:14-15.
      1. 우리는 주님의 느낌을 만지고 그분의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그분의 갈망을 가질 것이다.
      2. 그분의 갈망이 우리의 갈망이 될 것이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일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갈망에 따라 기도할 것이다.
      3. 주님은 이러한 종류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 데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Ⅵ.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 요 15:4-5, 고전 1:2, 9, 30, 12:27.
      A. 우리는 연합된 영 안에서 사는 것에 의해서만 진정한 교회생활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위해 이 연합된 영 안에 머물러야 한다 — 고전 1:2, 12:27.
      B. 교회생활은 서로 사랑하는 생활이다 — 요 15:12, 17.
      C.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함께 가지들이 된 이들 사이의 놀라운 교통에 참여한다 — 요 15:4-5, 요일 1:3-7.
    • 메시지5
      하나님의 장엄한 집에서부터 나오고 하나님의 장엄한 집을 위한, 생명의 사역이 수반되는 생명의 흐름을 누림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함
      +
    • 성경: 겔 47:1-12, 고후 3:6, 고전 9:11, 3:6, 9, 4:15, 3:2, 12
      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나오는 생명의 흐름을 누려야 한다 — 겔 47:1-12.
      A. 하나님의 궁극적인 움직임은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 하나님의 온 존재로 사람을 적심으로써 생명과 본성과 요소와 본질에 있어서 사람을 신화(神化)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이다 — 고후 3:18, 요일 3:2.
      B. 물은 문지방 아래에서 흘러나온다 — 겔 47:1.
      1. 물이 흐르려면 반드시 문지방, 곧 출구가 있어야 한다 — 비교 시 81:10.
      2. 우리가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주님을 더 많이 접촉한다면, 교회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게 하는 출구가 있을 것이다 — 찬송가 614장.
      C. 흐름은 동쪽을 향한다 — 겔 47:1.
      1. 하나님의 강은 하나님의 영광의 방향으로 흐른다 — 비교 민 2:3, 겔 43:2.
      2.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주의한다면, 생수가 교회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다 — 요 7:18, 고전 10:31.
      D. 물은 집의 오른쪽에서 흘러나온다 — 겔 47:1.
      1. 성경에서 오른쪽은 가장 높은 위치, 곧 첫째 위치이다 — 비교 히 1:3.
      2. 생명의 흐름이 반드시 우리 안에서 으뜸의 위치를 가져 우리의 생활과 일에서 통제하는 요인이 되어야 한다 — 계 22:1, 골 1:18하.
      E. 물은 제단 옆으로 흐르는데,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흐름을 누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처리와 완전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 겔 47:1.
      F. 생명의 흐름을 증가시키기 위해, 우리는 놋의 사람이신 주님께 측량을 받아야 한다 — 겔 40:3, 47:2-5, 계 1:15, 비교 요 7:37-39.
      1. 측량하는 것은 시험하고 점검하고 심판하고 점유하는 것이다. 완전한 단위인 천 규빗(비교 시 84:10)을 네 번 측량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 온 존재를 차지하시고 철저히 점유하시도록, 피조물인 우리가 주님께 철저하게 측량받아야 함을 가리킨다(사 6:1-8).
      2.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점검하시고 심판하심으로 우리를 점유하시게 허락해 드릴수록, 흐름은 더욱더 깊어진다. 흐름의 깊이는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측량받았는가에 달려 있다 — 비교 요일 1:5, 7.
      3. 주님께 더 많이 측량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생명의 은혜의 흐름에 규제받고 제한받으며, 결국에는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 안에 완전히 잠기게 되고,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에 의해 떠밀려 갈 것이다.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안에서 헤엄치는 강이 되신다. 우리는 한 면으로 우리의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참으로 자유롭다 — 겔 47:4-6.
      G. 강은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한다. 강의 흐름은 나무들과 물고기와 가축을 산출한다 — 겔 47:7, 9-10, 12.
      H. 강은 건조하고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죽음의 물을 치료한다. 이렇게 물을 주고 치료하는 목적은 생명을 산출하는 것이다 — 겔 47:8.
      1. 강은 늪과 습지를 치료할 수 없다. 늪 혹은 습지는 중립 지대, 중간 지대, 타협과 미지근함의 지대이다 — 겔 47:11, 비교 계 3:15-16.
      2. 생명의 흐름과 교회생활을 위해 주 예수님은 우리가 절대적이기를 원하시고 또 요구하신다. 절대적이 될 때 우리는 흐름 안에 있을 것이고, 이 흐름은 졸졸 흐르는 작은 시내가 아니라 우리가 헤엄칠 수 있는 강이 될 것이다. 그럴 때 강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날 것이다.
      Ⅱ. 우리가 생명의 흐름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유기적인 건축물인 하나님의 장엄한 집을 위해, 생명의 사역을 가진 씨 뿌리는 이, 심는 이, 물 주는 이, 낳는 이, 먹이는 이, 건축하는 이가 되기 위한 것이다 — 고후 3:6.
      A. 생명의 사역자는 영적인 씨를 뿌리는 씨 뿌리는 이이다.
      1. 고린도전서 9장 1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들을 심었다면”이라고 말한다.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씨를 가리킨다.
      2. 씨는 생명을 담고 있는 것이며, 영적인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의 영에서부터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씨 뿌리는 분으로 오셔서 생명의 씨이신 그분 자신을 인류 안으로 뿌리셨다 — 마 13:3, 37.
      3. 주님의 회복 안에서 새 언약의 사역자들인 우리는 씨 뿌리는 이로서 생명을 나누어 주어 다른 이들 안에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고 산출해야 한다.
      B. 생명의 사역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백성 안에 심어 주는 심는 이이다 — 고전 3:6.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새 창조물에 속한 하나님의 경작지, 곧 하나님의 농장이다 — 고전 3:9.
      2.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에 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참되게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C. 생명의 사역자는 그리스도로 사람들을 적셔 주는 물 주는 이이다.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 안에 심으면, 생명수로 그들을 적셔 주어야 한다 — 고전 3:6.
      1.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에서 물 주는 이를, 농장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가 있는 관개 시설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생수가 저장된 저수지를 우리 안에 갖고 있는 신성한 ‘관개 시설’이 되어, 하나님의 농장인 교회에 물을 주어야 한다.
      2. 우리는 생명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체험을 가져야 하고 그분을 살아 있는 방식으로 접촉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생수의 통로, 곧 신성한 관개 시설이 되어 생명수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 요 4:14, 7:37-39.
      D. 생명의 사역자는 낳는 이인 아버지로서 자신이 낳은 자녀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준다 — 고전 4:15.
      1. 낳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 줌으로써 영적인 자녀들을 산출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다른 이들 안으로 나누어 주어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낳을 수 있도록 신성한 ‘생명 배아’를 가져야 한다.
      E. 생명의 사역자는 먹이는 이이다. 먹이는 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인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
      1. 마실 젖이나 먹을 음식을 주는 것이 다른 이들을 먹이는 것이다(고전 3:2). 사도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공급한 것은 젖이었고, 그것은 분명 그들에게 영양분을 주었을 것이다.
      2. 사도들의 건전한 가르침은 생명 공급이 되는 건강한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을 양육하거나 치료한다 — 딤전 1:10하, 6:3, 딤후 1:13, 딛 1:9.
      F. 생명의 사역자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하는 건축자이다.
      1. 금은 신성한 본성을 가지신 아버지 하나님을 상징하고, 은은 구속의 일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보석은 변화시키는 일을 하시는 그 영을 상징한다(이것은 인간 본성을 상징하는 나무와 육체 안의 사람을 상징하는 풀과 생명이 없는 것을 상징하는 짚과 반대된다) — 고전 3:12.
      2. 아가(雅歌)는 합당한 교회생활 안에서 온전하게 된 믿는 이들이 변화시키시는 영과 동역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추구하는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을 묘사한다. 온전하게 된 믿는 이들은 추구하는 이들에게 삼일 하나님을 공급하여 그들이 변화되도록 해 준다. 이러한 변화는 삼일 하나님의 속성들이 그들 안으로 일해 넣어져 그들의 미덕들이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 아 1:10-11.
      3. 이것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건축하여 새 예루살렘을 완결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 고전 3:12, 계 21:18-21.
    • 메시지6
      그리스도 안의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추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되심
      +
    • 성경: 고후 4:4, 6-7, 3:18, 마 17:2, 엡 5:8-9, 계 22:4상, 5하, 21:23
      Ⅰ. “그들 안에서 이 시대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을 눈멀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고후 4:4.
      A. 이 시대의 신인 사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상과 생각을 눈멀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그들의 마음속에 비치지 못하게 하였다.
      1. 눈멀거나 너울로 가려진 이들은 자신이 어떤 것도 경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신은 사탄이다.
      2.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탄을 숭배하고 있다.
      3.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시대의 신에 의해 눈멀어 있다.
      B.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마음속을 밝게 하고 빛나게 하고 빛 비추는 그분의 영광의 복음이다 — 히 1:3, 고후 4:6.
      C.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다 — 딤전 1:11.
      D.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춘다. 이 영광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찬송을 받으신다 — 히 1:3, 엡 1:3, 6, 12, 14.
      Ⅱ.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고후 4:6.
      A.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추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시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해 주는 빛 비춤으로 귀결된다 — 고후 4:4, 6.
      B.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사랑스러운 한 인격이고, 이 인격의 얼굴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후 4:4, 6, 마 17:2.
      C.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표현되신 영광의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광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 행 7:2, 히 1:3.
      D.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빛을 더 비추실수록,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더 빛을 비출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은 먼저 우리 속으로 비춰 들어오고, 그런 다음 우리 속에서부터 비춰 나간다 — 요 1:18, 마 5:16, 빌 2:15.
      Ⅲ.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탁월한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 고후 4:7.
      A.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비치는 것을 통해, 믿는 이들은 탁월한 보배이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자 표현이신 그리스도의 빛나는 실재는 이제 우리 안에 있는 보배이다 — 고후 4:6-7.
      1.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비추시는 것 곧 분배하시는 것은 우리 안으로 보배, 곧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가져온다.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시다 — 고후 4:4, 6-7, 골 2:9, 3:4, 11, 고전 15:45하.
      2. 지극히 귀한 이 보배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며, 이분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공급의 신성한 근원이시다 — 빌 4:13, 고후 13:5, 4:7.
      B. 지극히 귀한 이 보배로 말미암아 질그릇들인 우리가 지극히 귀한 사역을 하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 되었다. 이러한 일은 부활 안에 있는 신성한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탁월한 능력은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고후 3:6, 1:9, 4:7.
      C. 우리의 비춤을 통해 영광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소중한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그들 안으로 분배받아 소유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처럼 그들도 지극히 귀한 이 보배를 담는 질그릇이 될 것이다 — 고후 4:4, 6-7.
      Ⅳ.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 고후 3:18.
      A.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보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주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 주님의 영광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이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그분 자신과 그분이 성취하시고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실재가 되게 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고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그분은 우리를 그분과 똑같이 만들고 계신다 — 눅 24:46, 히 2:9, 고후 3:18, 롬 8:29.
      C. 이것은 부활 안에 있는 생명 안에서 계속되는 과정이다 — 고후 3:18.
      Ⅴ.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들답게 행하십시오.” — 엡 5:8.
      A. 하나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다 — 요일 1:5, 엡 5:8, 요 12:36.
      B. 우리는 빛의 자녀들일 뿐 아니라 빛 자체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빛이다 — 마 5:14, 요일 1:5.
      C. 빛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옳고 그름의 영역 밖에 있다 — 요일 1:7.
      D. 우리가 빛의 자녀들답게 행한다면, 에베소서 5장 9절에 묘사된 열매를 맺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생활의 실재로 표현되실 수 있도록, 빛의 열매는 본성에서 선해야 하고 절차에서 의로워야 하며 표현에서 참되어야 한다.
      2. 선과 의와 참된 것 안에 있는 빛의 열매는 삼일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
      a. 선(善)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빛의 열매의 본성이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장 9절에서 선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 마 19:17.
      b. 의는 아들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로운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 롬 5:17-18, 21.
      c. 빛의 열매의 표현인 참된 것은 영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실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 요 14:17, 16:13.
      Ⅵ.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고 …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계 22:4상, 5하.
      A. 하나님과 어린양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이 영원 안에서 누리게 될 삼일 하나님의 축복일 것이다 — 계 22:4상.
      B. 어린양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빛 비추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비추심 아래서 영원토록 살 것이다 — 계 22:5하, 21:23.
  • 개요

    봄 국제 장로 훈련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짐으로 귀한 그릇 곧 충분히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경륜의 유일한 사역 안에서 우리의 사역을 완수함 (LSM 방침에 따라 장로 훈련 영상&오디오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 메시지1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습관,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습관을 세움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실재 안에서 삶
      +
    • 성경: 딤전 4:7-8, 딤후 1:6-7, 4:22
      Ⅰ.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할 집을 얻으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는 그분의 가정 행정인데, 이 집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그분의 영원한 계획이고, 하나님의 신성한 분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수단이다 — 딤전 1:3-4, 3:15, 롬 12:5, 엡 1:10, 3:8-9, 2:10.
      A.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둘레와 요소와 영역과 수단과 목적과 목표이시다. 사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모든 내용은 다만 그리스도이다 — 마 17:5, 엡 3:6, 눅 24:44.
      B.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한다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경륜이고,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이다 — 눅 24:45, 욥 10:13, 비교 엡 3:9.
      C.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여 우리 존재가 그분의 존재로 조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신성한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분배하시는 것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요 10:10, 14:6상, 고전 15:45하, 롬 8:2, 6, 10-11.
      D. 신약 사역에서 인도 직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하나님께서 주신 통제하는 계시라는 인도 직분이다 — 행 26:19, 잠 29:18.
      E. 하나님의 경륜과 다른 가르침은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한 인격을 참되게 감상하고 사랑하며 누리는 것에서 우리를 끊어지게 한다(고후 11:2-3).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의 다른 가르침(딤전 1:3)은 믿는 이들 가운데서 시기와 불화를 일으키며, 그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가르침 안에 머물라고 사도가 명령을 한 목적(목표와 의도), 곧 사랑과 반대된다(딤전 1:5, 요 13:34, 갈 5:13-14).
      F. 하나님의 신성한 분배는 믿는 이들을 신화(神化)하여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를 준비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끌어 오기 위한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그분 자신을 ‘사람화’하셨고, 그런 다음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심으로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를 ‘하나님화’하신다.
      G.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가지신 의도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목표는 매일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시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에 대한 ‘청사진’에서 사람은 온 우주의 중심이고, 사람의 중심은 그의 영이다 — 슥 12:1, 창 2:7, 잠 20:27.
      A.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며,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요 4:24, 고전 6:17.
      B. 하나님께서 그 영이 아니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이 없다면, 온 우주는 공허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전 1:2, 3:11, 욥 32:8, 12:10, 고후 4:13, 16-18.
      C.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사람의 영을 간과하고 무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사람에게 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 살전 5:23, 히 4:12, 비교 유 19.
      D. 그릇인 사람은 자신의 영을 사용함으로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받아들여, 그의 가장 깊은 속에서 생명이 강처럼 흐르고 흘러나옴으로, 하나님의 건축물 곧 하나님의 영원한 표현을 위한 귀한 재료들로 변화되어야 했다 — 창 1:26, 2:7-12, 22, 딤전 4:7-8.
      1. 하나님의 숨은 우리 사람의 영이 되었고, 우리의 영은 기름이신 하나님을 담고 우리에게 빛을 주는 하나님의 등이다 — 창 2:7, 잠 20:27.
      2. 사람의 영은 타락으로 인하여 깨진 등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는 회복을 통하여 생기를 주시는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으로 거듭나고 재건축되고 강하게 된다 — 창 2:7, 잠 20:27, 요 3:6, 계 4:5, 고전 15:45하.
      3. 사람의 존재 중에서 지배하는 중심 부분과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사람의 영이어야 한다. 자신의 영의 다스림과 통제를 받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 — 고전 2:14-15, 3:1, 14:32, 고후 2:12-15, 엡 3:16, 벧전 3:4, 단 6:3, 10.
      E. 하나님의 경륜의 전략적이고도 중심적인 지점은, 신성한 영께서 우리 사람의 영 안에 거하시고 이 두 영이 한 영으로 함께 연합된 것, 곧 연합된 영이다 — 요 3:6, 4:24, 롬 8:16, 고후 3:17, 딤후 4:22, 고전 6:17, 딤전 1:4, 고후 4:13.
      1.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 위대한 길은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함으로써 그 영을 따라 살고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 욥 10:13, 엡 3:9, 롬 8:4, 갈 5:25.
      2. 우리가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 우리의 영을 사용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을 접촉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 몸이 우리의 영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엡 1:17, 2:22, 3:5, 16, 4:23, 5:18, 6:18.
      3. 우리의 영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지을 수 없으며,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고, 우리는 우상들에서 지켜진다 — 요일 5:4, 18-19, 21, 요 14:30.
      Ⅲ. 우리가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를 받아들여 성도들이 생명 안에서 자라고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하는 이러한 분배의 통로가 되는 열쇠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 빌 1:25, 딤전 4:7-8, 딤후 1:6-7, 4:22, 행 6:10, 고전 14:32.
      A.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인 경건은 신성한 경륜을 위한 신성한 분배의 결과이며, 이러한 분배는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님을 단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살도록 우리 영을 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 딤전 1:3-4, 3:15-16, 4:7-8, 딤후 1:6-7.
      B. ‘훈련하다’라는 단어는 강제성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강해지고 주님 안에서 자라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견고한 습관을 세울 때까지 영을 사용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해야 한다 — 딤전 4:7.
      C.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 딤후 1:6-7.
      1. 디모데후서 1장 6절은 ‘하나님의 은사’를 언급하고, 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우리의 거듭난 영인 우리의 연합된 영, 곧 능력과 사랑과 맑은 생각의 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이다.
      2. 구원받은 사람들인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자본을 갖고 있는데, 이 자본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이다.
      3.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는 불이 있다. 사실상 우리의 영이 불이다 — 눅 12:49-50, 롬 12:11, 계 4:5, 잠 20:27.
      D. 우리의 영을 훈련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을 둘러싸고 있는 혼의 부분들인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처리해야 한다 — 비교 벧전 3:4.
      1. 능력의 영은 굴복되고 부활한 의지를 가진 영이고, 사랑의 영은 사랑이신 하나님으로 충만한 감정을 가진 영이며, 맑은 생각의 영은 새로워진 생각을 가진 영이다 — 딤후 1:7.
      2.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 예수님은 우리 혼의 목자와 감독이시다. 우리의 혼은 우리의 내적 존재, 곧 실제 인격이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내적 존재의 유익을 돌보시고, 우리의 실제 인격의 상태를 감독하심으로써 우리를 목양하신다 — 벧전 2:25, 시 23:1-6, 비교 히 13:17.
      3. 영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 혼의 부분들과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의 경륜의 실재 안에 사는 것에 매우 필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들의 혼을 견고하게 함으로써’ 하늘에서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우리 주님과 협력해야 한다 — 행 14:22.
      4. 제자들의 혼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1) 주님과 그분에 관한 일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견고하게 하고(고전 2:16, 빌 3:10), (2)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권익을 위한 마음을 갖도록 그들의 감정을 견고하게 하고(막 12:30, 롬 16:4), (3) 그들이 강하여 주님과 함께 머물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행 11:23, 골 1:10, 살전 4:1).
      E.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며, 이럴 때 우리는 내주하시는 영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비결로 누린다 — 고후 12:2상, 빌 4:11-13, 시 91:1, 살전 5:16-18.
      F.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이다 — 롬 8:6, 말 2:15-16.
      1.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둘 때, 우리는 내적인 생명과 평안의 느낌, 즉 능력과 만족과 안식과 해방과 생기와 적셔짐과 밝음과 위로의 느낌을 갖는다.
      2.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육체에 둘 때, 우리는 내적인 죽음의 느낌, 즉 약함과 공허함과 불편함과 불안함과 낙심과 메마름과 어둠과 고통의 느낌을 갖는다.
      3.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 있는 내적인 생명과 평안의 느낌에 따른 것이다 — 롬 8:6, 고후 2:13-14.
      G.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과 혼을 분별하는 것이다 — 히 4:12.
      1. 우리는 영에 속하지 않고 혼, 곧 자아에 속한 모든 것을 분별하고 부인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마 16:25, 비교 눅 9:25.
      2. 우리의 온 존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영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 롬 2:28-29, 1:9, 8:4, 12:11.
      H.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함으로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고 교회의 하락을 이기는 것이다 — 딤후 2:22.
      I.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인 그분의 권익을 위해, 곧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집을 위해 기도하는 것, 즉 개인적이고 친밀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 딤후 1:6-8, 딤전 1:3-4, 2:1-3, 8, 왕상 8:48, 유 19-21.
    • 메시지2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를 부르심
      +
    • 성경: 딤후 1:9, 롬 8:28-29, 엡 3:9-11, 골 1:9, 계 4:11, 마 7:21
      Ⅰ. 디모데후서 1장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름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A.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축복을 누리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이루도록 거룩한 부름 곧 특별한 목표를 위한 부름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 딤후 1:9, 롬 8:28.
      B. 하나님께 부름받는 것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분별되는 것이다 — 엡 1:11, 3:11, 딤후 1:9, 3:10.
      C.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언급된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그분의 계획이며, 이 뜻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여 그분의 생명과 위치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증거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D.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셨으며, 이제 그분의 목적은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 롬 8:28, 딤후 1:9, 3:10.
      E.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을 조망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이 아들의 자격을 얻어, 다시 말하면 아들의 생명을 얻고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이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시게 하는 것이다 — 요일 5:11-12, 롬 8:29.
      F. 구원은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에서 구원받는 것을 포함한다.
      1. 복음은 의미 없는 인생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우주의 의미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 계 4:11.
      2. 하나님은 위대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지만(창 1:26-28), 사람이 타락하여 인생의 의미가 사라졌다.
      3.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통해 우리를 구출하시고 우리의 본래 목적, 곧 우주의 의미로 되돌아가게 하신다 — 롬 8:28, 딤후 1:9.
      Ⅱ.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그분의 확대되고 확장된 표현을 위해,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어, 그들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똑같이 만드시는 것이다 — 엡 1:5, 9, 22-23, 3:9-11.
      A. 욥기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된 이중의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 둔다 — 욥 1:1, 10:13, 13:3-4.
      1.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이 담긴 그분의 영원한 의도로서,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곧 아버지로서 아들 안에서 그 영에 의해,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은 백성 안으로 분배해 넣으시어 그들의 생명과 본성이 되심으로써, 그들이 그분의 충만 곧 그분의 표현을 위해 그분과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 창 1:26, 딤전 1:3-4, 엡 1:22-23, 3:9, 19.
      2.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손실을 입히면서까지 다루시는 목적은, 사람을 창조하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도록 그들을 통하여 표현되시기 위하여, 그들이 가장 충만한 정도로 그분을 얻게 하는 데 있다 — 롬 8:28-29, 고후 4:16, 비교 렘 48:11.
      B. 사람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산출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현을 위해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 슥 12:1, 계 4:11, 19:7, 21:2.
      C.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에 따른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나타내도록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얻는 것이다 — 엡 1:9-11, 22-23, 3:9-11.
      D.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완성하시고 그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유일한 수단이다 — 비교 창 1:26.
      1. 교회는 신성한 아들의 자격 안에서 아버지의 생명과 본성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곧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다 — 엡 1:4-5, 요 17:22-24.
      2. 교회는 천사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려 주어 원수를 부끄럽게 하고 패배시킴으로 그분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하나님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 엡 3:10, 롬 16:20.
      3.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과 빛으로서 우리 안에 일해 넣어지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통일하기 위해 있다 — 엡 1:10, 22-23.
      Ⅲ.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삶을 살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해야 한다 — 골 1:9, 마 7:21.
      A.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그분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고 이루시기 위해, 그분의 뜻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셨다 — 계 4:11, 엡 3:9-11, 골 1:9.
      1.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으로서, 사람과 연합하시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 엡 1:5, 9, 22, 5:17.
      2.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충만이자 표현인, 그리스도를 위한 한 몸을 얻으시는 것이다 — 롬 12:2, 5, 엡 1:5, 9, 11, 22-23.
      B.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지식으로 채워져야 한다 — 골 1:9.
      1. 골로새서에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즉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에 관련된 것이다 — 엡 1:5, 9, 11.
      2.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아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계시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서 무엇을 하려고 계획하셨는지를 아는 것이다 — 계 4:11.
      a. 하나님의 계획은 신성한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든 것이 되시게 하는 것이다 — 마 17:5, 골 1:15-18, 3:10-11.
      b.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계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더 체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 골 2:16-17, 3:4, 15-16.
      3.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체험하며, 우리의 생명이신 그분을 사는 것이다 — 골 1:9, 15-18, 3:4.
      4.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안 결과이다. 우리가 이렇게 행하는 것은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며 행하는 것이다 — 골 1:10, 빌 1:19-21상.
      C. 우리가 오는 시대에 천국의 출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 시대에 반드시 우리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한다 — 마 7:21-22, 6:10, 12:50, 계 4:11, 롬 12:2, 엡 1:5, 9, 11, 5:17, 골 1:9, 4:12.
      D. “나에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갑니다.” — 마 7:21.
      1.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한 하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한다 — 롬 10:13, 12:2, 마 12:50, 엡 5:17, 골 1:9.
      2.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 요 3:3, 5.
      a.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신성한 생명의 출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요 1:12-13, 3:5-6.
      b.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신성한 생명의 생활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 7:21, 12:50.
      3. 주 예수님은 그분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많은 능력의 일을 행한 사람들을 책망하셨는데, 이것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인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했기 때문이다 — 마 7:23.
      4.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우리는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 비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 마 7:13-14.
      a. 좁은 문은 옛사람과 자아와 육체와 인간의 관념과 세상과 그 모든 영광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만 들어갈 수 있다.
      b. 우리는 비좁은 길을 걷는 동안, 비밀스럽고 보이지 않는 내적인 통제에 의해 제한을 받으며 이 통제 아래 산다.
      5.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주 예수님의 친척이다 — 마 12:50.
      a. 하늘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그분의 숙명으로 받아들이셨고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않으셨다 — 마 11:28-30, 26:39.
      b.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주 예수님을 돕는 형제이고, 그분을 동정하는 누이이며, 그분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어머니이다.
      6. 왕국 백성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천국을 땅으로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 마 6:10.
    • 메시지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짐으로 교사들과 군인들과 경기자들과 농부들과 일꾼들이 됨
      +
    • 성경: 딤후 2:1-7, 15
      Ⅰ. 하락의 시기, 곧 하나님의 백성 대부분이 떠내려가는 내리막의 추세에서도, 우리는 주님에게서 긍휼을 받아 계속해서 주님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의 남은 이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 — 고전 7:25하, 왕상 19:14, 18, 롬 11:5, 스 9:8, 느 1:3, 학 1:14.
      A. 오네시보로는 일반적인 추세에 저항하고 하락의 흐름에 대항하여 굳게 선 이기는 이였다. 그는 사도가 주님의 위임을 위하여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의 대사(大使)의 영과 혼과 몸을 상쾌하게 했다 — 딤후 1:16-18.
      B. 디모데는 충분히 온전하게 되고 준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함으로써, 한 지방에 있는 교회를 돌볼 뿐만 아니라 교회가 심하게 하락해 가는 것에 대항하여 선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과 같은 혼이 되어 진정으로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의 생활 방식을 생각나게 했다 — 딤후 3:13-17, 빌 2:19-22, 고전 4:17, 딤전 1:16, 4:12.
      C. 누가는 사랑을 받는 의사였고,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바울의 신실한 동반자였다 — 골 4:14, 몬 24, 딤후 4:11.
      D. 디도는 바울과 동일한 영과 동일한 보조로 행하며 교회들을 돌보았다 — 고후 7:6-7, 12:18, 딛 1:4-5, 3:12, 비교 딤후 4:10.
      E. 마가는 사역을 위해 바울에게 유용했다 — 딤후 4:11, 비교 행 15:37.
      Ⅱ. 디모데후서는 주님께서 오시기 전인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짐으로 신실한 사람들, 곧 교사들과 군인들과 경기자들과 농부들과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 내는 일꾼들이 되어야 함을 계시한다 — 딤후 2:1-7, 15, 느 8:10, 고후 12:9.
      A. 한 지방의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건강한 말씀을 맡게 되었다면, 그는 신실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그들도 주님께서 맡기신 아름다운 것을 갖도록 하여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 분배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딤후 2:2, 1:12-14, 딤전 6:20, 엡 3:2, 4:29, 벧전 4:10.
      1.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목양해야 한다 — 엡 4:11, 골 1:27-29, 비교 딤전 3:2, 4:11-16.
      a.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분배하여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신성한 진리를 가르쳐 사람들을 보양함으로써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엡 5:29.
      b. 하나님의 양 떼에게 하나님의 모든 의결 곧 하나님의 경륜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건축을 파괴하는 이들에게서 교회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은혜이신 삼일 하나님과 연합되게 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그분의 하나(oneness) 안에 함께 묶어 둔다 — 행 20:26-30, 엡 4:14, 딤전 1:3-4, 롬 16:17, 비교 겔 33:1-11, 34:25, 슥 11:7.
      2. 교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선한 사역자로서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자신의 영을 훈련하여, 교회생활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산다 — 딤전 4:6-7.
      B. 그들이 군인들로서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제사장 봉사가 군 복무, 곧 전쟁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사도가 그들의 사역을 그리스도를 위한 전쟁으로 여겼다는 것을 가리킨다 — 딤후 2:3-4, 민 4:23, 30, 35, 딤후 4:7.
      1. 주님의 사역은 군대가 나가서 싸울 수 있도록 나팔을 부는 것이다.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의 다른 가르침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사도들의 사역에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다 — 고전 14:8, 딤전 1:18, 민 10:9, 삿 7:18.
      2. 이 땅에서 주님의 권익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우리는 반드시 땅에 속한 모든 얽매이는 것을 제거해야 하며, 우리 사람의 생명을 신뢰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 딤후 4:7, 딤전 6:12, 비교 고후 5:4.
      3. 우리는 생명으로 충만하여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에 대해 깨어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 — 민 6:6-7, 9, 고후 5:4, 롬 5:17, 8:6, 11.
      4. 우리의 의지는 반드시 그리스도께 굴복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부활하여,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고인 다윗의 망대 같아야 한다 — 아 4:4, 비교 대상 11:22.
      C. 우리는 우리의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릴 때까지, 즉 하나님의 경륜의 유일한 사역 안에 있는 우리의 사역을 완전히 이룰 때까지, 반드시 경기자 곧 운동선수로서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상으로 받을 것이다 — 딤후 2:5, 고전 9:25-27.
      1.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영에 의해 우리의 몸을 복종시켜서 포로로 사로잡아, 우리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도록 노예로서 우리를 섬기게 해야 한다 — 롬 8:13.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엡 1:6)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은혜를 입도록 주님을 앙망함으로 우리의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음 시대에 아래와 같은 방면에서 우리의 썩지 않을 면류관이신 그리스도를 상으로 받을 것이다(고전 9:24-27).
      a.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면류관이실 것이다 — 계 2:10, 약 1:12.
      b. 그분은 우리의 의의 면류관이실 것이다 — 딤후 4:6-8.
      c. 그분은 우리의 거룩한 면류관이실 것이다 — 출 28:36-38, 29:6, 비교 벧전 1:15-16, 엡 5:26.
      d. 그분은 우리의 영광의 면류관이실 것이다 — 벧전 5:4.
      e.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동안, 타락한 사람이 생명나무에 가지 못하도록 막은 하나님의 바로 그 속성들이 지금 우리 안으로 분배되면서 그분께서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영광이 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각종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온 우주에 전시하기 위한 것이다 — 계 2:7, 창 3:24, 고전 1:30, 엡 2:10, 3:10.
      D. 교회는 하나님의 농장 곧 하나님의 경작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며, 모든 것에 적응하는 생명에 의해 농부로서 그분과 함께 일하여 그분의 건강한 말씀에 의해 생명의 씨를 사람들 안에 심고, 생명의 영으로 사람들에게 물을 준다 — 딤후 2:6, 고전 3:6, 9, 고후 6:1상, 눅 8:11, 요 7:38, 6:63.
      1. 하나님의 말씀은 한 알의 밀로서 생명이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분배하여 우리를 보양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불과 망치와 같아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우리의 자아와 타고난 생명과 육체와 정욕과 관념들을 부서뜨린다 — 렘 23:28-29.
      2.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비와 눈처럼 보내셔서 그분의 백성을 적셔 주셨는데, 이것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변화시키고 그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함으로 몸이 건축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 사 55:8-11, 요 17:17, 엡 5:26.
      3. 성도들을 접촉할 때, 우리의 동기는 오직 하나, 곧 그들이 주님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 딤전 5:1-2.
      E.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자르는 것은 (목수가 곧게 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 부분을 조금도 왜곡되지 않게 올바르고 곧게 밝혀 주는 것을 의미한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독을 예방하고, 죽음을 삼키며, 빗나간 사람들을 합당한 노선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밝혀진 진리의 말씀이 필요하다 — 딤후 2:15, 비교 행 26:18, 시 119:130.
    • 메시지4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무효화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셨고, 우리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다윗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함
      +
    • 성경: 딤후 1:10, 2:8, 행 2:24, 히 2:9, 14, 7:16
      Ⅰ.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 죽음을 무효화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셨습니다.” — 딤후 1:10.
      A.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무효화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멸망시키는 죽음(히 2:14)과 죽음을 삼키는 부활(고전 15:52-54)로 말미암아, 죽음을 아무런 효력이 없게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는 죽음을 패배시키셨을 뿐 아니라 무효화하셨다 — 딤후 1:10.
      3.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죽음을 무효화하시고 영원하고도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을 가져오셨다 — 히 7:16.
      4. 그분의 부활을 통해 죽음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었다. 죽음은 그 능력을 잃었고, 그 맛까지도 잃었다 — 히 2:9, 행 2:24.
      5.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무효화하실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인 마귀를 멸망시키셨기 때문이다 — 히 2:14.
      a. 주 예수님은 사탄을 이기시고 죽음을 무효화하심으로써 음부와 무덤 또한 패배시키셨다 — 계 1:18.
      b.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입증과 주님의 성공이었을 뿐 아니라, 죽음과 사탄과 음부와 무덤에 대한 그분의 승리였다 — 계 20:14.
      B. 주 예수님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무효화하심으로써, 그분의 부활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셨다 — 딤후 1:10.
      1. 디모데후서 1장 10절 후반부는 복음을 통해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
      2.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무효화하시고 영원하고도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을 우리에게 가져오셨다는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 딤후 1:10.
      3.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서 ‘생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어졌고(딤전 1:16)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은혜의 주된 요소이다(롬 5:17, 21).
      a. 이 생명은 죽음을 정복했으며(행 2:24), 또 죽음을 삼킬 것이다(고후 5:4).
      b. 생명은 우리의 영 안으로 분배된 신성한 요소, 곧 하나님 자신이다. 썩지 않을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 생명이 우리의 몸을 적시고 우리의 죽을 몸에 생명을 준 결과이다.
      c. 이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이 죽음과 부패에 대항할 수 있다 — 딤후 1:10.
      Ⅱ.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이시자 다윗의 씨이십니다. 나의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 딤후 2:8.
      A.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 딤후 2:8.
      1. 디모데후서 2장 8절에서 ‘살아나신’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신성한 생명과 그 부활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을 가리킨다.
      2. 사람이신 주 예수님에 관하여, 신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한다 — 롬 8:11.
      3.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에 관하여, 신약은 우리에게 그분 자신이 스스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한다 — 행 10:41, 살전 4:14.
      4.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스스로 살아나신 것은 그분께 이중 신분, 곧 사람의 신분과 하나님의 신분이 있음을 가리킨다.
      a.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자 부활로서(요 1:1, 11:25)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다(히 7:16).
      b.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음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c. 그분은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셨지만, 죽음은 그분을 가두어 둘 수 없었다.
      d. 오히려 죽음은 그분께 패배당했고 그분은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 행 2:24.
      5. 부활하신 날 이른 아침에, 주 예수님은 아버지를 만족하게 하시기 위해 승천하셨다. 성경의 예표에서 수확물의 첫 열매가 맨 먼저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처럼, 그분의 신선한 부활은 가장 먼저 아버지께서 누리시기 위한 것이었다 — 요 20:17, 비교 레 23:10-11, 출 23:19상.
      6.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부활 안에서 행하신 일의 또 다른 방면은 주(週)의 첫날에 일어나셔서 새 창조물을 발아시키신 것이다 — 고후 5:17.
      a. 그리스도께서 주의 첫날에 일어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온 우주가 새로운 시작을 갖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 요 20:1-9.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시대, 곧 새로운 시대를 도래하게 했다.
      c.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옛 창조물 전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으며, 그런 다음 주의 첫날에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d. 주님의 죽음은 옛 창조물의 종결인 반면, 주님의 부활은 새 창조물의 발아였다 — 고후 5:17.
      B. ‘다윗의 씨’라는 표현은 신성한 본성과 함께 높아지고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의 위엄 있는 인성을 가리킨다 — 롬 1:3-4.
      1. 사무엘기하 7장 12절부터 14절 상반절까지에 나오는 예언은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고 말한다.
      2. 달리 말하면, 사람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될 것이다 — 삼하 7:14상.
      3.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 있는 ‘네 씨’와 14절에 있는 ‘나의 아들’에 관한 말씀은 다윗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a.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3절과 4절에 있는 바울의 말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부활 안에서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이다.
      b. 이 말씀은 또한 마태복음 22장 41절부터 45절까지에 있는 주님의 질문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신 동시에 다윗의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실 수 있는지, 즉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을 지니신 놀라운 인격이신 하나님-사람이실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c. 이러한 절들은 사람의 씨, 곧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계시한다.
      d. 하나님 자신 곧 신성하신 분께서 사람의 씨, 곧 사람인 다윗의 씨가 되셨다.
      e. 이 씨는 하나님-사람 곧 여호와 구원자이신 예수님이며(마 1:18-21, 딤후 2:8), 그분은 다름 아닌 그분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눅 1:35).
      f. 사람의 씨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해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 롬 1:3-4.
      g.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조성되시고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조성되어, 하나님과 사람이 한 실체인 하나님-사람으로 함께 연합되었다.
      h.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분 자신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고자 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 요 3:6, 16, 롬 1:3-4, 벧후 1:4.
    • 메시지5
      하나님의 숨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이쉬고 내쉼으로써 충분히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이 됨
      +
    • 성경: 딤후 3:14-17
      Ⅰ.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는 그분의 단체적인 나타남을 위해 한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을 얻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사람, 곧 하나님의 숨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을 얻기 원하신다 — 요 1:1, 14, 딤전 3:15-16, 딤후 3:16-17.
      A.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산 혼이 되었다.” — 창 2:7.
      1. 사람의 몸속으로 불어 넣어진 생명의 숨은 사람의 영이 되었다 — 잠 20:27, 욥 32:8.
      2. 사람의 몸속으로 불어 넣어진 생명의 숨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생명의 숨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매우 가깝다 — 비교 창 2:7-9.
      3. 그러므로 영 하나님과 사람의 영 사이에는 전달이 있을 수 있으며,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다 — 롬 8:16, 고전 6:17.
      B. “예수님께서 …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거룩한 프뉴마를 받으십시오.” — 요 20:22, 원문 직역.
      1. 거룩한 프뉴마는 성령 혹은 거룩한 숨이다.
      2. 요한복음에는 놀라운 세 단어가 있는데, 바로 ‘말씀’과 ‘육체’와 ‘숨’이다. 말씀은 하나님이고, 육체는 사람이며, 숨은 그 영이다 — 요 1:1, 14, 20:22.
      3.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셨고, 그런 다음 부활하시어 거룩한 숨이 되심으로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을 위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공급하신다 — 요 1:14, 29, 고전 15:45하, 롬 5:10, 10:12-13, 비교 애 3:55-56.
      C.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 딤후 3:16상.
      1.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영 또는 숨이다 — 요 6:63.
      D. 이 모든 것이 계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숨을 지닌 충분히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우리의 영을 훈련하고 계속해서 그 영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이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 딤전 4:7, 갈 3:2, 엡 6:17-18상.
      Ⅱ. 하나님께서 내쉬신 성경은 가르치고 가책받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온갖 선한 일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되게 한다 — 딤후 3:14-17.
      A. 성경은 하나님의 숨이고, 이 숨은 그 영이며, 그 영은 생명을 주신다 — 요 6:63.
      1.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을 들이쉼으로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하고,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내쉼으로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 행 6:4.
      2. 충분히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은 영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해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들이쉬고, 그 영인 말씀을 공급함으로 하나님을 다른 이들 안으로 내쉰다 — 엡 6:17-18상, 행 6:10, 고후 3:6.
      B. 하나님 편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고, 우리 편에서 성경은 가르치고 가책받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네 방면에서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숨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1. 가르침은 계시와 동일하다. 가르치는 것은 너울을 걷어 주어 다른 이들이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경륜에 관한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엡 1:17, 3:9.
      2. 가책받는 것은 우리가 본 계시에서 온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볼 때마다 우리의 실수와 잘못과 결점과 죄들을 깨닫게 되고, 그 결과 가책과 책망을 받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혐오하고 부인하게 된다 — 비교 사 6:1-8, 욥 42:5-6, 마 16:24.
      3. 바로잡는 것은 가책받게 하는 것 다음에 오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어떤 사람을 옳은 길로 돌이키게 하는 것, 사람을 올바른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 비교 마 7:13-14, 약 5:19-20.
      4. 의로 교육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아 낸 의로 누리도록 신성한 교육을 받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올바르도록 신성한 징계를 받는 것이다 — 빌 3:9.
      C. 가르치고 가책받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기 위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내쉬신 결과로,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하게 되고 온갖 선한 일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된다 — 딤후 3:17.
      1.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사람, 곧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동참함으로써(요 1:12-13, 벧후 1:4)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고전 6:17)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2.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은 하나님-사람들을 산출한다. 우리는 계시를 받고 가책받고 바로잡아지고 의로 교육받기 위해 성경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삼일 하나님을 계속 들이쉬어야 한다.
      Ⅲ. 하나님으로 조성되기 위해 하나님의 숨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대적을 죽이기 위해 그 영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엡 6:17-18상.
      A. 사탄은 우리 밖에 있는 원수일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대적이다. 이 내적인 대적을 처리하려면, 우리는 항상 있는 성경 말씀을 기도로 읽어 그 영의 즉각적인 말씀이 되게 함으로써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 요 6:63, 엡 5:26, 계 2:7.
      B. 검과 그 영과 말씀은 하나이다. 성경 안의 항상 있는 말씀이 즉각적인 말씀(어떤 상황에서든 그 순간에 그 영께서 말씀하신 적용된 말씀)이 될 때, 그 말씀은 대적을 죽이는 검이신 그 영이 된다 — 히 4:12.
      C. 우리가 영 안에서 온갖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할수록, 우리의 존재 안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더욱 죽음당한다. 결국, 모두의 최악의 적이자 몸의 원수인 자아도 죽음에 넘겨질 것이다 — 비교 계 1:16, 2:16.
      D.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부정적인 것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우리는 영 안에서 온갖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말씀을 기도로 읽기를 통해 죽음당할 때 주님은 승리하신다.
      E. 우리는 죽이는 검이 되는 그 영인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생활과 사역 안에 보전된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세균들’을 죽이는 영적인 항생제로서 우리가 건강한 몸의 생활, 건강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F. 이기는 이들은 항상 주님께 나아가 기록된 말씀 안에 계신 살아 있는 말씀이신 그분을 접촉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 그럴 때 주님은 그들 안에서 분배하시는 영인 적용된 말씀이 되실 수 있다 — 계 3:8, 요 1:1, 5:39-40, 6:63.
      G.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 영으로 완전히 조성되어 그리스도의 신부와 새사람, 곧 죽이는 검인 하나님의 숨을 지닌 단체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들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난다 — 계 2:7, 22:17상, 19:13-15, 살후 2:8.
    • 메시지6
      귀한 그릇이 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함
      +
    • 성경: 딤후 2:20-22, 롬 9:21, 23, 고후 4:7
      Ⅰ.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1절에서 바울은 귀한 그릇들과 천한 그릇들에 대해 말한다.
      A. 귀한 그릇들은 신성한 본성과 구속되고 거듭난 사람의 본성 둘 다로 이루어지지만, 천한 그릇들은 타락한 인성으로 이루어진다 — 엡 2:2-3, 벧후 1:4.
      B. 로마서 9장 21절에서 바울은 귀하게 쓰일 그릇들에 대해 말하고, 23절에서는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긍휼의 그릇들에 대해 말한다.
      C. 우리가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긍휼의 그릇들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귀함과 영광이신 하나님을 담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D. 하나님은 우리가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채워진 귀한 그릇들이 되도록 우리를 선택하셨다 — 롬 9:21-23, 고후 13:14.
      E. 하나님은 열린 그릇을 원하신다 — 롬 9:23, 고후 4:7.
      1.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을 담고 그분을 표현하는 그릇을 창조하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그릇이 열리는 것이다 — 딤후 2:21, 롬 11:24.
      2. 그릇이 열려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지만, 그릇이 닫혀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된다 — 골 4:3.
      3.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 있는 그릇, 깨끗하고 비어 있고 열린 그릇이 되기만을 원하신다.
      4. 바울의 열네 서신서를 요약하면, ‘열린 그릇’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F. 우리가 천한 그릇들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면 귀한 그릇들이 될 것이다 — 딤후 2:21.
      1.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불의를 떠나는 것이며(딤후 2:19), 내적인 신성한 본성을 외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2. 우리는 불의한 모든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천한 그릇들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천한 그릇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3.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인 것들과 부정적인 사람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면 귀한 그릇들이 될 것이다.
      4.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서 ‘귀한’은 본성의 문제이고, ‘거룩해지고’는 위치의 문제이며, ‘쓸모 있게 되며’는 기능의 문제이고, ‘예비될’은 훈련의 문제이다.
      Ⅱ. 우리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 딤후 2:22.
      A.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제하는 원칙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 빌 3:12.
      B.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하나님의 보좌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 곧 하나님의 의라는 기초에 달려 있다 — 시 89:14.
      1. 거룩함은 하나님의 내적 본성에 관련되지만, 의는 하나님의 외적인 움직임과 길과 행동과 활동에 관련된다 — 엡 4:24.
      2.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올바르다 — 시 89:14.
      3. 하나님의 의는 정의와 의에 관련된 하나님의 행동에 있어서의 그분의 어떠하심이다.
      C. 신약에서 ‘믿음’에는 두 가지 의미, 곧 객관적인 의미와 주관적인 의미가 있다.
      1. 객관적인 의미에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구속의 일에 관한 신약의 계시 전체를 가리킨다 — 행 6:7, 14:22, 롬 16:26, 고전 15:14, 딤전 1:19하, 유 3, 20.
      2. 주관적인 의미에서 ‘믿음’은 믿는 행위를 가리킨다 — 눅 18:8, 막 11:22.
      3.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그분의 아들들이 되어, 그분의 생명과 본성에 동참함으로 그분을 표현한다 — 갈 3:26, 요 1:12-13, 벧후 1:4.
      4.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넣어져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되어, 그분을 표현하기 위해 그분의 온 존재를 공유하게 된다 — 요 3:15, 롬 12:4-5.
      5. 진정한 믿음은 우리 안으로 주입되시어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 예수님은 우리 안으로 주입되신 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믿음이 되신다 — 히 11:1, 3, 12:2.
      6. 디모데전서 1장 19절 후반부에 나오는 ‘믿음’은 객관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믿는 내용을 가리키지만, 이 절의 시작 부분에 있는 ‘믿음’은 주관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믿는 행위를 가리킨다.
      D.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다 — 요일 4:19.
      1.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신성한 사랑은 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분배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신 것에서 표현된다 — 요 3:16, 요일 4:9-10.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 요일 4:8, 19.
      3.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인 이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습관적으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요일 4:8.
      E. 신약은 하나님의 화평*과 화평*의 하나님을 모두 말한다 — 요 20:19, 엡 2:14, 벧후 1:2.
      * <회복역 성경>에서 ‘화평’과 ‘평안’은 모두 영어에서 ‘피스(peace)’로 같은 단어임—역자 주
      1. 화평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우리는 로마서 16장 20절과 빌립보서 4장 7절이 필요하다.
      2. 화평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순찰하신다 — 롬 15:33, 빌 4:9.
      3. 하나님의 화평과 화평의 하나님은 하나이다 — 살전 5:23.
      4. 우리의 체험에서 화평은 은혜에서 산출된 상태이다. 은혜는 실질이고 화평은 상태이다 — 고전 1:3.
      Ⅲ. 우리는 모두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딤후 2:22.
      A.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약에서 시작된 새로운 실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세기 4장 26절에서 인류의 셋째 세대인 에노스 때부터 시작되었다.
      1.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욥(욥 12:4, 27:10), 아브라함(창 12:8, 13:4, 21:33), 이삭(창 26:25),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신 4:7)을 통해 지속되었다. 구약 시대에 이들 모두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부르는 것을 실행했다.
      2. 신약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베드로가 처음으로 언급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 — 행 2:21.
      3. 사도행전 7장 59절에 따르면, 스데반은 돌에 맞고 있을 때 주님을 부르며 “주 예수님, 나의 영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4.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다른 이들이 구원받도록 도울 때, 그들이 “오, 주 예수님!”이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격려해야 한다 — 비교 롬 10:9-13.
      5.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비결일 뿐 아니라 주님의 풍성을 누리는 비결이기도 하다 — 엡 1:18, 3:16.
      B. 디모데후서 2장 22절은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1. 성경에서 순수하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순수한 마음은 하나님께 고정된 마음이다 — 마 5:8.
      3. 주님을 섬길 때, 우리는 순수하게 주님만을 위해야 하고 다른 어떤 것도 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한다 — 살전 5:23.
      4. 우리의 초점은 주님을 부르며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 딤후 2:22.
    • 메시지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인 건축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심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은혜가 되시어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을 공급하고 생명의 은혜의 건강한 말씀으로 말할 수 있게 하심
      +
    • 성경: 딤후 1:13-14, 2:1, 4:22, 딤전 1:10, 6:3, 고후 1:12, 12:9, 계 22:21
      Ⅰ. 주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심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은혜이신 그분을 누리게 된다. 이 은혜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인 건축을 위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을 공급하고, 생명의 은혜의 건강한 말씀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 딤후 1:13-14, 2:1, 4:22, 딤전 1:3-4, 10, 6:3, 고후 1:12, 12:9, 엡 4:16, 계 22:21.
      A. 디모데후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영을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하심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은혜가 되시는 것으로 끝마친다. 이 은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위한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한 자본이다 — 딤후 1:6-7, 4:22, 엡 2:7, 3:8.
      B. 디모데후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이신 놀라우신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은혜이신 그분으로 이어지고,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은혜이신 그분으로 끝마친다 — 딤후 1:9-10, 2:1, 4:22.
      Ⅱ.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 15:45),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고후 3:17),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딤후 4:22),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고전 6:17)
      A.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 영이신 주님, 즉 한 영으로 함께 연합된 두 영이, 세 부분으로 된 거듭난 믿는 이들과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영적 교통의 열쇠이다 — 롬 8:16, 요 4:24, 롬 1:9.
      B.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 영이신 주님, 즉 한 영으로 함께 일하는 두 영이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모든 방면의 비결이자 뛰어난 길이다 — 롬 8:16, 요 3:6, 딛 3:5, 엡 4:23, 고후 3:17-18.
      Ⅲ. 은혜는 순환하시는 삼일 하나님이며, 이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분의 온 존재를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고, 흘러 들어오게 하시고, 전달하시고, 운반하시고, 옮겨 주시고, 분배하신다. 교회생활 전체가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삼일성의 순환인 은혜에 달려 있다 — 고후 13:14, 벧전 5:10, 비교 히 12:28상.
      A. 신약에서 은혜의 첫 번째 사례는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이다 — 요 1:14, 16-17.
      1.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방문하러 오셔서 마리아 안으로 들어가 머무심으로, 마리아가 하나님이시자 사람, 곧 하나님-사람이 되실 놀라운 분을 잉태하도록 한 바로 그 본질이 되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 눅 1:28, 30, 35, 마 1:18, 20.
      2. 이 원칙을 볼 때,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셔서 우리 안에 머무시고, 우리 안에 태어나시고, 우리와 하나 되시고, 심지어 우리가 되시는 것이다 — 갈 1:15-16, 2:20, 4:19, 빌 1:21상.
      B. 은혜는 삼일 하나님의 어떠하심, 삼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것, 이 세 방면에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놀라우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심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어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은혜로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다 — 갈 6:18, 빌 4:23, 몬 25.
      1. 은혜는 놀라우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다 — 요 1:14, 17, 8:58, 롬 5:17, 21, 고전 15:10, 비교 갈 2:20.
      2. 은혜는 우리에게 주어지시고 우리 안으로 분배되신 놀라우신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는 믿음과 사랑이 더욱 넘쳐 난다 — 딤전 1:14.
      a. 우리에게 무언가가 부족하다면, 이 부족함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때맞추어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더 많이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 히 4:16, 롬 5:17, 고후 12:7-9, 벧전 5:5.
      b.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고 힘이 없을 때, 그때가 은혜이신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고 누릴 때이다 — 아 8:5-6, 히 11:21, 창 47:29, 31.
      3. 은혜는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하시는 놀라우신 그리스도이다.
      a. 은혜는 우리의 짐을 짊어지는 분이신 그리스도이다 — 고전 15:10, 58, 고후 12:9, 빌 4:6-7, 사 9:6.
      b. 영원하신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들, 곧 생활과 행함과 활동에서 자신을 멈추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그들의 생명과 인격과 대치자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들을 지지하고 지탱하고 강화하고 덮어 주고 보호하는 은혜이신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체험할 것이다 — 고후 12:9, 사 40:31, 겔 1:8, 시 17:8, 57:1, 63:7, 91:4.
      c. 우리는 교사(딤후 2:2), 군인(3-4절), 경기를 하는 사람(5절), 농부(6절), 일꾼(15절), 귀한 그릇(21절)으로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이 되기 위해(벧전 4:10, 엡 3:2, 4:29),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져야 한다(딤후 2:1).
      Ⅳ. 주님의 회복 안에 보존되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아름다운 것 곧 주님의 건강한 말씀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지켜야 한다.
      A. 디모데후서 1장 13절과 14절의 계시에 따르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틀림없이 주님께서 우리 안에 저장해 놓으신, 주님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을 포함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건강한 말씀을 가리킨다. 우리는 돈을 은행에 맡기듯이 주님의 건강한 말씀을 우리의 존재 안에 맡겨야 한다 — 딤전 6:20, 골 3:16, 시 119:72.
      B. 건강한 말씀의 본보기를 붙잡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완전한 복음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풍성을 담고 전달해 주는 달콤한 말씀으로 양육을 받음으로 건강한 말씀에 의해 산다는 뜻이다 — 딤후 1:13, 딤전 4:6.
      C.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함으로 그 영 안에서 행동하고 처신하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존재 안에 맡겨진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 영을 통하여 지켜질 것이다 — 딤후 1:12, 14, 행 5:20.
      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을 공급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건강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강한 말씀으로 말해야 한다(딤전 6:3). 그분의 건강한 말씀은 생명의 말씀(요 6:63, 행 5:20), 생명의 은혜의 말씀(벧전 3:7)이다.
      A. 생명의 은혜는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아들은 생명의 과정이시며, 그 영은 생명의 흐름이시다. 생명의 흐름이신 그 영은 우리 안에서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흐르시어 우리에게 은혜가 되신다 — 벧전 3:7, 요일 5:11-12, 요 7:38-39, 계 22:1.
      B. “그들이 모두 예수님을 칭찬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에 놀라며” — 눅 4:22.
      C. “제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해 드립니다. / 제 혀는 준비된 작가의 붓과 같습니다. / 왕은 사람의 아들들보다 더 수려하시며 / 입술에 은혜가 부어졌기에 / 하나님은 왕께 영원히 복을 내리셨습니다.” — 시 45:1-2.
      D.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 직분” — 엡 3:2.
      E.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 엡 4:29.
      F. “각 사람이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로서 서로 은사를 공급하십시오.” — 벧전 4:10.
      G.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시 119:11).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 가득 쌓아 놓은 선에서부터 우리의 입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선한 것들을 말하기 때문이다(마 12:34하-35).
      Ⅵ. “왜냐하면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우리의 자랑거리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단일성과 순수성으로 처신하였고 육체에 속한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여러분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 고후 1:12.
      A. 하나님의 단일성, 하나님의 단순성으로 처신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을 신뢰하거나 타고난 사람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순수성으로 처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처신하는 것이다.
      B. 은혜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하나님이고,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은혜를 받아야 하며, 심지어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아야 한다 — 요 1:16, 고전 15:10, 고후 12:9, 롬 5:17.
      Ⅶ. 우리가 성도들이기 때문에, 주 예수님의 은혜는 일상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우리 각 사람과 반드시 함께한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장과 영원한 표현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사람과 결합하시고 연합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계 22:21.
    • 메시지8
      “그대의 사역을 완수하십시오.”
      +
    • 성경: 행 1:17, 25, 딤후 4:5하, 딤전 1:12, 고후 4:1, 엡 4:11-12, 골 4:17
      Ⅰ.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오직 한 사역만 있다 — 고후 4:1, 엡 4:12.
      A. 유다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 것에 대해 말하면서, 베드로는 “유다는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이 사역의 한 몫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다 — 행 1:17.
      1. 사도들은 주님께서 ‘이 사역과 사도 직분을 대신하도록’ 선택하신 사람을 그들에게 밝히 보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 행 1:24-25.
      2. 사도행전 1장 17절과 25절에서 사용된 ‘사역’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증거를 짊어지는 사역을 가리킨다(8절).
      a. 사도들의 수는 열둘이었지만, 그들의 사역은 유일한 하나의 사역, 곧 그리스도의 몸의 원칙 안에 있는 ‘이 사역’, 단체적인 한 사역이었다.
      b. 모든 사도는 육체가 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모든 것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증거를 짊어지는 동일한 사역을 수행했다.
      B. 고린도후서 4장 1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긍휼을 받아 이 사역을 받았으니,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1. 고린도후서에서 사역은 신약의 사역자들의 단체적인 사역이다.
      a. 모든 사역자에게는 사역에서 각자의 몫이 있다.
      b. 이 단체적인 사역에서 바울에게 그의 몫이 있었고, 베드로에게 그의 몫이 있었으며, 디모데에게도 그의 몫이 있었다 — 딤후 4:5하.
      c. 이 모든 몫을 함께 더할 때, 우리에게는 ‘이 사역’, 즉 신약의 사역이 있다.
      2. 많은 사역자에게 한 사역, 즉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새 언약의 사역이 있다.
      3. 모든 사도들의 일들은 이 유일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것, 곧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C. 고린도후서 3장 6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1.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최종 표현인 그 영은 신성한 생명, 심지어 하나님 자신을 믿는 이들과 사도들 안으로 나눠 주시어, 그들을 새 언약의 사역자들로 만드신다.
      2.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삼일 하나님으로 조성된 것이다 — 고전 15:45하.
      D.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 딤전 1:12.
      1. 이 절에서 바울은 “그분께서 나에게 나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2. 바울은 주님께서 유일한 한 단체적인 신약 사역을 그에게 맡기셨다고 말한다.
      3.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그분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단체적인 사역을 맡기신 것에 대해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 엡 4:12, 16.
      Ⅱ. 앞의 절들은 신약에서의 사역이 단체적이라는 것을 계시하지만, 어떤 다른 절들은 사역이 또한 개인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A. 사도행전 20장 24절은 바울의 개인적인 사역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바울이 주님에게서 받은 사역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이 절에서 사역은 개인적인 사역이다.
      1. 바울의 사역은 그의 존재였다. 그와 그리스도는 하나 되었다 — 엡 3:17상, 고전 6:17, 고후 3:8-9, 4:1.
      2. 바울이 전파한 것은 그의 존재였다. 그는 바로 자신의 존재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했다.
      3. 바울은 그리스도와 하나였고 그리스도로 조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사역은 그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었다.
      B. 사도행전 21장 19절은 바울의 개인적인 사역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바울이 …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니”.
      C. 골로새서 4장 17절은 “아킵보에게는 주님 안에서 받은 사역을 주의하고 그것을 이루라고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아킵보에게 사역이 있었고, 동일한 원칙으로 우리 모두에게도 사역이 있다.
      D. 디모데후서 4장 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사역을 완수하라고 명한다.
      1. 디모데가 그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은 그의 사역의 분량을 완전히 채우는 것이었다.
      2. 이 사역은 말씀의 사역을 의미하며, 이 말씀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하여(엡 4:11-12) 모든 풍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엡 3:8)를 죄인들과 믿는 이들 모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3. 디모데후서 4장 3절과 4절에 예언되어 있는 하락의 추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역이 절실히 필요하다.
      E. 신약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의 봉사이고, 몸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지체에게 각자의 사역이 있다 — 엡 4:11-12.
      1. 지체들을 기준으로 하면 많은 사역들이 있다. 그러나 몸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오직 한 사역이 있다 — 딤전 1:12.
      2. 우리의 개인적인 사역은 단체적인 사역에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3. 몸에는 한 단체적인 사역이 있고, 몸의 모든 지체들에게는 각자의 개인적인 사역이 있다.
      4. 우리가 본 것처럼, 몸의 지체들의 모든 사역을 함께 더하면 단체적인 사역이 된다 — 엡 4:12.
      F. 다양한 각도에서 동일한 것을 말해야 한다 — 고전 1:10.
      1. 다양한 각도에서 동일한 것을 말하도록 많은 사람이 일으켜져야 한다.
      2. 우리는 주님께서 유일한 사역을 수행하는 더 많은 사람을 일으키실 것임을 믿는다 — 고후 4:1.
      3. 우리는 모두 이 사역에 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역은 다양한 기능, 다양한 각도, 다양한 방면을 지닌 하나의 사역이다 — 엡 4:11-12.
      4. 우리는 어떤 사람을 따르거나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것을 공급하고 있다.
      Ⅲ.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엡 4:12.
      A. 사도들과 신언자들과 복음 전파자들과 목자들 및 교사들(엡 4:11)은 12절에 언급된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있다.
      B.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은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직 한 사역, 즉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사역만 있다. 이것이 신약 경륜의 유일한 사역이다 — 고후 4:1, 딤전 1:12.
      C.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며, 그 사역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 엡 4:12, 16.
      D. “이것이 주님의 회복이요, 우리의 위임이자 부담이자 사역이다. 우리가 이 사역 안에서 한 부분을 갖게 된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 위트니스 리 전집, 1978년, 3권, 진리 메시지, 4장, 488쪽.
  • 개요

    국제 중국어 특별 집회 :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리며, 믿음을 지키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서 의의 면류관인 보상을 받음

    • 메시지1
      선한 싸움을 싸움
      +
    • 성경: 딤후 4:7상, 딤전 1:18, 6:12
      Ⅰ.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계시된 대로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세 방면이 있다. 여기에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과 달려야 할 길을 달리고 끝마치는 것과 믿음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
      Ⅱ.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 딤후 4:7상.
      A. 믿는 이들은 사도의 명령을 받아 선한 싸움을 싸운다 — 딤전 1:18.
      1. 사도가 그의 영적인 아들에게 준 명령은 긍정적인 방면으로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이고, 부정적인 방면으로는 다른 가르침들에 관한 것이다 — 딤전 1:3-4.
      2.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맞서 싸우라고, 즉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했다 — 딤전 6:12상.
      B.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전에 그를 두고 했던 예언에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했다 — 딤전 1:18.
      1.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의 다른 가르침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다 — 딤전 1:4.
      2. 이 전쟁은 은혜와 영원한 생명의 복음에 관한 사도의 사역에 따른 것으로서,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 딤전 1:11-16.
      3. 한 면에서 디모데는 다른 가르침들에 맞서 싸워야 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사도의 사역에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해야 했다 — 딤전 1:3-4, 18.
      4.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 곧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 딤전 1:18.
      C. 디모데전서 6장 12절 상반절은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라고 말한다.
      1. 믿음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2. 특별히 그것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 골 2:9, 고전 1:2, 12:27.
      3.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완전한 복음의 내용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 엡 3:6.
      4. 다른 가르침들 때문에 교회는 이미 하락했고 믿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맞서 싸우라고 명령했는데, 이러한 싸움이 곧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 딤전 6:12상.
      D. 디모데전서 6장 12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이어서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십시오. 그대는 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부름받았으며”라고 말한다.
      1. 영원한 생명은 사실상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다 — 요 3:15-16.
      2. 디모데전서 6장 12절 하반절에서 영원한 생명은 신성한 생명, 하나님의 창조되지 않은 생명이며, 이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3. ‘영원한’이란 신성한 생명의 시간적인 요소를 가리키기보다는 그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 요일 5:11.
      4.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신뢰하지 말고 이 신성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 비교 마 16:25-26.
      5.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음으로써 객관적으로뿐 아니라 주관적으로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운다 — 딤전 6:12하.
      6.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수의 간교함은 믿는 이들을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계속 분리시키는 것이다.
      7. 참된 믿는 이들인 우리는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요일 5:11.
      8.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을 것이다 — 딤전 6:12하.
      9.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와 디도서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반복하여 강조된다 — 딤전 1:16, 6:19, 딤후 1:1, 10, 딛 1:2, 3:7.
      10. 디모데전서에서 보듯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하여, 디모데후서에서 보듯이 교회 하락의 추세에 맞서기 위하여, 디도서에서 보듯이 교회 안에서 좋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 생명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E. 우리는 사탄과, 어둠의 왕국에 맞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마귀에게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걸어야 한다 — 마 12:26, 28.
      2.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마귀의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며, 사람의 사상들을 사로잡아 와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해야 한다 — 고후 10:3-5.
      F. 우리는 진리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 딤전 6:12, 요일 1:6, 2:21, 4:6.
      1. 진리는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다 — 요 1:1, 14-17, 14:6, 16-17, 15:26, 16:13, 17:17, 18:37하.
      2. 신성한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어야 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지켜야 한다 — 요 14:6, 18:37, 요삼 3-4, 8.
      3.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존중해야 하고, 진리의 길을 취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도 진리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 — 벧후 2:2.
      4. 우리는 진리가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고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 — 요일 1:8, 2:4, 요이 1-2, 요삼 3-4.
      5. 신성한 경륜의 완결을 위해 우리는 현재의 진리와 가장 높은 진리와 주관적인 진리들에 대해 절대적이어야 한다 — 벧후 1:12, 롬 8:3, 1:3-4, 12:4-5, 요 8:32, 14:6.
      6.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현재 상태보다 더 높은 것들을 가르치고 전파하기를 배워야 한다.
      7. 신성한 경륜의 완결을 위해 우리는 신성한 진리의 길에 대해 절대적이어야 한다 — 벧후 2:2.
      8. 교회들은 진리를 위해 싸우고 주님의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의 증거를 돌보기 위해, 우리의 가르침들을 분명하게 밝히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딤전 3:15, 6:12, 딤후 4:7.
    • 메시지2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림
      +
    • 성경: 딤후 4:7하, 행 20:24, 고전 9:24-26, 히 12:1-2상
      Ⅰ.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 딤후 4:7하.
      A. 바울은 주님께 사로잡힌 후에 하늘에 속한 경주를 시작했고, 그 경주를 마치기 위해(행 20:24) 쉬지 않고 달렸다(고전 9:24-26, 빌 3:12-14).
      B. 이제 마지막에 그는 승리에 찬 방식으로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습니다.”라고 선포했다(딤후 4:7하).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므로 바울은 주님께 의의 면류관을 보상으로 받을 것이다(8절).
      Ⅱ.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달려야 할 길을 달리는 것, 곧 경주를 하는 것이 포함된다 — 고전 9:24, 엡 1:11, 3:11.
      A.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 주신 여정을 찾아내야 하고, 신실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온 마음을 다해 우리의 여정을 계속 가야 한다 — 딤후 4:7하.
      B.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 주신 여정이 우리 모두가 달려야 할 경주이다 — 히 12:1.
      C. 우리는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해야’ 한다 — 히 12:1.
      1. 사도 바울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상을 얻기 위해 경주를 해야 한다. 이 상은 일반적인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의 보상이다 — 히 10:35, 고전 3:14-15, 9:26-27, 빌 3:13-14.
      2. 우리는 인내로 반대를 감내하며, 인내로 경주를 해야 한다 — 히 12:2-3.
      D. 우리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한다 — 히 12:2상.
      1.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 곧 믿음의 기원자와 개시자와 근원과 원인이시다 — 히 12:2.
      a. 믿는 이들의 믿음은 사실상 그들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믿음이 되신 그리스도이다 — 롬 3:22, 갈 2:16.
      b. 우리가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매력에 대한 반응으로서 우리가 그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 롬 10:17.
      c. 우리는 다른 모든 목표에서 돌이켜 주의를 집중하여 예수님을 주목해야 한다 — 히 12:1-2상, 아 1:4, 시 27:4.
      d.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생명 주시는 영(고전 15:45하)이신 그분은 우리 안에 그분 자신을, 곧 그분의 믿음의 요소를 옮겨 부으신다.
      2. 믿음은 실질화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 능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바라는 것들에 실질을 부여하여 실질화한다 — 히 11:1.
      a.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믿음의 영 곧 우리의 연합된 영을 사용하여, 우리가 주님에 관해 체험한 것들을 믿고 말해야 한다 — 고후 4:13.
      b. 믿음은 성령과 연합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 고전 6:17.
      3.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주시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시하고 바라본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들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 고후 4:18.
      a. 그리스도인의 삶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속한 삶이다 — 롬 8:24-25, 히 11:27, 벧전 1:8, 갈 6:10.
      b. 교회의 하락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보이는 것들로의 하락이다. 주님의 회복은 그분의 교회를 보이는 것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로 회복하는 것이다 — 요 20:25, 고후 5:7, 롬 8:24-25, 벧전 1:8.
      4. 예수님은 믿음의 완성자, 곧 믿음을 성취하시는 분이시자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 히 12:2.
      a.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주 예수님은 우리 안에 믿음의 요소와 능력이신 그분 자신을 계속해서 주입하신다.
      b.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가 땅에서 하늘에 속한 경주를 하고 하늘에 속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늘과 생명과 힘을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그분의 온 존재를 우리에게 옮겨 부으시고 주입하신다 — 고후 3:18.
      c. 우리가 끊임없이 그분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경주를 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성취하시고 완전하게 하실 것이다 — 히 12:1-2상.
      E.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예표를 통해 격려와 경고를 받아야 한다. 좋은 땅을 향한 그들의 여정은 우리의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예표한다 — 고전 10:1-13.
      1.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받고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계시 안으로 이끌렸다.
      2.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현시대에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왕국 시대에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충만한 누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이러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그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 빌 3:12-14, 마 25:21, 23.
      F.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정해 주신 여정의 마지막 부분이 이 여정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 비교 막 6:45-51.
      1.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정해 주신 여정을 찾아내어 신실하게 그 길을 가는 것이다.
      2. 우리는 올바른 노선에 있는 것에 기뻐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경주하고 끝마칠 것인가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G. 어떤 이유로든 우리의 혼이 지치거나 약해져서는 안 된다(히 12:3). 반대로 우리는 끝까지 경주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1. 지치는 것은 혼에 힘이 없어,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2.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경주자이다. “나를 두고 기뻐하지 마라, 내 원수야 / 나는 쓰러질지라도 일어나며 / 어둠 가운데 앉을지라도 / 여호와께서 내게 빛이 되시리라.” — 미 7:8.
      3. 우리는 포기하거나 우리의 혼이 지치거나 약해지지 말고, 다만 예수님을 주목하며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해야 한다 — 히 12:2상.
    • 메시지3
      믿음을 지킴
      +
    • 성경: 딤후 4:7하, 딤전 1:19, 3:9, 4:1, 6:12, 살전 3:2, 유 3
      Ⅰ. 신약에서 믿음은 객관적이며 또한 주관적이다.
      A. 객관적인 믿음은 우리가 믿는 대상, 곧 우리가 믿는 것들을 가리킨다. 이 객관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내용들을 포함한다 — 엡 4:13, 딤후 4:7하.
      1.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믿음’은 믿는 행위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믿음이다.
      2. 객관적인 믿음의 항목들은 다만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그러한 항목들, 다시 말하자면, 다만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에 관련된 그러한 항목들이다 — 요 3:16, 1:18, 요일 4:9.
      B. 주관적인 믿음은 우리의 믿는 행위와 관련된다 — 요 3:15-16.
      1. 이 의미에 따르면,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곧 주님을 믿는 것이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갖는 것에서 하나이다.
      C.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에서 믿음은 5절과 6절과 10절에서처럼 성도들이 믿는 것을 가리키는 주관적인 믿음일 뿐 아니라, 디모데전서 3장 9절과 4장 1절,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처럼 우리가 믿는 대상을 가리키는 객관적인 믿음이기도 하다.
      1. 믿음의 이 두 방면은 서로 관련된다.
      2. 우리가 믿는 것(주관적인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들(객관적인 믿음)에서 나오고, 우리가 믿는 것들 안에 있다.
      Ⅱ. “믿음을 지켰습니다.” — 딤후 4:7하.
      A. 여기서 ‘믿음’은 객관적인 믿음이다.
      B. 이 절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 곧 그분의 인격과 구속의 일을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함축한다 — 딤전 1:19, 갈 1:23.
      C. 믿음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 전체를 지키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체현이시자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에 관한 믿음이다 — 딤전 1:4.
      Ⅲ. 디모데전서 6장 12절 상반절은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라고 말한다.
      A. 믿음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위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B.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완전한 복음의 내용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 엡 1:9-10, 딤전 1:4.
      C. 다른 가르침들 때문에 교회는 이미 하락했고 믿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딤전 1:3.
      D.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맞서 싸우라고 명령했는데, 이러한 싸움이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 딤전 6:12상.
      Ⅳ. 디모데전서 6장 12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십시오. 그대는 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부름받았으며”라고 말한다.
      A.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신뢰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이자 신성한 생명인 이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 딤전 6:12하.
      B.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음으로써 객관적으로뿐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운다 — 딤전 6:12하.
      C.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을 것이다 — 딤전 6:12.
      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신성한 풍성에 참여하기 위해 믿음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다 — 딤전 1:19, 3:9, 4:1, 6:12, 딛 1:4, 유 3.
      A. 하나님의 경륜은 믿음 안에 있는 문제, 즉 믿음의 영역과 요소 안에서 시작되고 발전되는 문제이다 — 딤전 1:4.
      B.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타고난 영역이나 율법의 행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새 창조물의 영적인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 고후 5:17, 갈 3:23-26.
      C. 믿음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그분의 아들들이 되어, 그분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함으로 그분을 표현한다 — 요 1:12-13.
      1. 믿음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넣어져 몸의 지체들이 되어, 그리스도를 표현하도록 그분의 온 존재에 동참한다 — 롬 12:4-5.
      2. 이것이 바로 믿음 안에서 수행되고,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이다.
      Ⅵ. 우리는 순수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간직해야 한다 — 딤전 3:9.
      A.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들, 곧 복음을 구성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 롬 1:1, 3-4.
      B. 믿음의 비밀은 주로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이다 — 골 2:2, 엡 3:4.
      C. 믿음의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순수한 양심, 곧 혼합된 것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된 양심을 가져야 한다 — 딤전 3:9, 1:19.
      Ⅶ. 유다는 그의 서신서에서 “성도들에게 한 번 만에 영원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도록, 여러분에게 격려하는 편지를 써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 유 3하.
      A. 이 절에서 ‘믿음’은 주관적인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믿음이다.
      B. 여기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믿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곧 우리가 믿는 대상을 가리킨다.
      C. 유다서 3절에서 믿음은 우리의 믿음인 신약의 내용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누리는 구원을 위해 이 내용들을 믿는다 — 행 6:7, 딤전 1:19, 3:9, 4:1, 5:8, 6:10, 21, 딤후 3:8, 4:7, 딛 1:13.
      D. 어떤 교리가 아닌 이 믿음이 성도들에게 한 번 만에 영원히 전달되었다.
      E. 이 믿음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 딤전 6:12.
      Ⅷ. 우리는 모두 ‘믿음에서의 하나에 이르러야’ 한다 — 엡 4:13상.
      A. 이 문구에 언급된 믿음은 객관적인 믿음이다.
      B. 믿음에서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온전히 아는 것에 달려 있다 — 엡 4:13.
      C.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그분께 초점을 맞출 때에만, 우리는 믿음에서의 하나에 이를 수 있다.
    • 메시지4
      아가의 내재적인 의미에 따라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유지함으로써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함
      +
    • 성경: 아 1:2-4, 2:8-9, 3:9-10, 4:12-16, 6:10, 13, 7:11, 8:13-14
      Ⅰ. 한 편의 시인 아가(雅歌)의 주제는 탁월한 결혼에 이르는 사랑의 역사(歷史)로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준비되도록 개개인의 믿는 이가 여섯 가지 주요 단계에서 그리스도와 사랑의 교통을 나누는 점진적인 체험을 계시해 준다 — 계 19:7-9, 마 25:6-13, 계 3:18-22, 슥 4:1-6, 11-14, 요일 4:19, 시 110:3, 119:140.
      A. 아가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만족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린다(1:2-2:7). 주님은 그분을 추구하는 이가 그분과 개인적이고 다정하며 내밀하고 영적인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1:2, 4). 모든 영적인 원칙은 추구하는 이의 이기는 생활에 대해 말하는 아가의 이 첫 번째 단계에 담겨 있다. 이후의 공과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 공과들이 더 깊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B. 아가의 두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써 자아에서 벗어나도록 부름받는다 — 아 2:8-3:5.
      1. 아가 2장 8절과 9절은 부활의 생명력에 대해 말한다. 이 절들에서 그리스도는 ‘산들을 뛰어오르고 언덕들을 뛰어넘는’ 가젤이나 젊은 수사슴에 비유되신다. 산들과 언덕들은 어려움과 장애물을 가리키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막을 수 있을 만큼 높거나 큰 것은 없다. 우리는 산들을 뛰어오르고 언덕들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추구하고 알아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기 성찰에 빠지는데, 이 자기 성찰이 그녀를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벗어나 담을 쌓고 은둔하게 만든다(아 2:9하).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녀가 일어나 자신의 침체된 상태에서 나와 그분과 함께 있도록 그녀를 격려하신다(10-13절).
      3. 그리스도의 연인들인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아닌 부활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써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 수 있게 된다(아 2:14-15). 우리의 연합된 영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는데,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십자가와 하나 되어 자아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새 창조물 안에 있는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건축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된다(롬 8:2, 4, 29, 갈 6:15, 고후 5:17).
      C. 아가의 세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물로서 승천 안에 살도록 부름받는다 — 아 3:6-5:1.
      1. 승천 안에 사는 것은 계속해서 우리의 영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 안에서 생활할 때, 우리는 하늘에 계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 엡 2:22, 창 28:12-17, 요 1:51, 계 4:1-2, 히 4:12, 16과 각주 2.
      2. 그 영께서 우리 안에서 변화시키는 일을 하심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몸을 위하여 움직이실 때 타고 다니시는 그분의 운송 수단인 그분의 탈것 곧 그분의 ‘자동차’가 된다 — 아 3:9-10, 비교 고후 2:12-17.
      3.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으로 재건축되어, 예수님의 부활하고 승천한 인성이 우리의 외부 골격이 되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내부 장식이 된다 — 아 3:9-10.
      4. 그리스도의 연인은 부활 안의 새 창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으로 성숙되어, 그리스도의 내밀한 누림을 위한 동산이 된다(아 4:12-15). 그리스도의 연인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을 준비가 되었다(16절).
      D. 아가의 네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부활 후 십자가를 통하여 휘장 안에 살도록 더 분명하게 부름받는다 — 아 5:2-6:13.
      1. 그리스도의 연인은 휘장 안에 생활함으로써 천체로 변화된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새벽처럼 밝아 오고 달만큼이나 아름다우며 해만큼이나 맑다 — 아 6:10.
      2. 그리스도의 연인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성숙하여 (‘솔로몬’의 여성형인) 술람미가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결혼을 위해 그리스도와 어울리도록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되어 그분의 재생산과 복사판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 아 6:13, 고후 3:18.
      E. 아가의 다섯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주님의 일에 동참한다 — 아 7:1-13.
      1. 아가 7장 11절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사랑하는 분과 함께 이곳저곳에 머물며(마을들에서 묵음) 온 세상(들)을 위한 일을 수행하기 원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그녀가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종파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녀는 일을 공개해 다른 이들이 그곳에 와서 머물 수 있게 하고, 또 그녀도 다른 곳에 가서 머물 수 있다. 이것이 한 몸 안에서 한 일을 지키는 것이다.
      2.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고후 6:1상). 주님과 함께 일하려면, 우리는 생명이 성숙해야 하고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하며 우리의 일이 반드시 그분의 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골 1:28-29, 고전 12:12-27).
      3. 술람미는 솔로몬의 배필로서 일하며, 모든 포도원(아 8:11) 곧 온 땅에 있는 교회들과 믿는 이들을 돌본다. 우리는 반드시 온 세상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각 지방에 교회들을 세우고서 그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깨닫도록 이끎으로써 수행한 일이다(롬 16:1-24).
      F. 아가의 여섯 번째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휴거되기를 소망한다(8:1-14). 그녀는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기댄 채’ 광야(땅에 속한 영역)에서 올라오고 있다(5절).
      1.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기댄 채’라는 말은 야곱과 같이 그리스도의 연인도 주님께 엉덩이뼈를 맞고 타고난 힘을 처리받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 창 32:24-25.
      2.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기댄 채’라는 말은 또한 그리스도의 연인이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광야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그 압박이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함축한다 — 고후 1:8-9, 12:9-10, 13:3-4.
      3. 그리스도의 연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도장처럼 그분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에, 도장처럼 그분의 힘이 가득한 팔에 지녀 주시기를 구한다. 이 시점에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신이 무력하고 의지할 데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보존하시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아 8:6-7.
      4.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신도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해 달라고 그분의 동산들인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는 그분께 요청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이신 주님을 위해 일할 때, 언제나 그분께 귀 기울이며 그분과 교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아 8:13.
      Ⅱ. 이 시적인 책의 결론으로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사랑하는 분께 부활 능력(가젤과 젊은 수사슴) 안에서 속히 돌아오셔서 온 땅을 가득 채울 그분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왕국(향기 그윽한 산들)을 세우시기를 기도한다 — 아 8:14, 계 11:15, 단 2:35.
      A. 그러한 기도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연인 사이의 혼인의 사랑 안에서의 연결과 교통을 묘사하는데,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연인인 요한의 기도가 성경의 결론의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성한 사랑 안에 있는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계시해 주는 것과 같다 — 계 22:20.
      B. “그분께서 오실 때 믿음은 사실로 변하고 찬양은 기도를 대신할 것이다. 사랑은 그늘이 전혀 없는 온전함으로 완결될 것이고, 우리는 죄 없는 영역에서 그분을 섬길 것이다. 그날은 얼마나 놀랍겠는가! 주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23권, 노래 중의 노래, 6단락, 174쪽)
    • 메시지5
      그리스도에게서 의의 면류관인 왕국 보상을 받음
      +
    • 성경: 딤후 4:7-8, 18, 3:2-5, 고전 9:25, 빌 3:9, 시 45:13-14
      Ⅰ. 우리의 왕국 보상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조성되도록 생활에 있어서 깨어 있고 봉사에 있어서 신실해야 하는 그러한 비좁은 길에 머묾으로써,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오늘날에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출현하시는 것이며, 두 번째 오실 때에는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는 그분의 임재이다 — 딤후 4:7-8, 행 26:16, 롬 8:19, 살전 5:23, 살후 1:10, 요 14:21, 23, 마 7:13-14, 24:3, 45-51, 25:9, 13, 21.
      A.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사모하는 것과 주님 자신을 사모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 고전 2:9, 딤후 4:8, 요 14:21.
      B. 디모데후서 3장 2절부터 5절까지에 나오는 하락한 기독교에 대한 예언적인 그림에는 특정한 네 부류의 ‘사랑하는’ 사람들, 즉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급된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게 되면, 그의 온 마음, 심지어 그의 온 존재가 그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에 빠져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C. 교회가 승리하여 영광이 가득한 날이 오게 될 것인가, 아니면 하락하여 비통한 날들이 오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에 달려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하락하게 된 원인이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계 2:4.
      D. 교회가 승리하는 수준을 유지하도록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면류관과 왕국의 유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약 1:12, 2:5.
      E. 썩지 않을 면류관은 그리스도인의 경주에서 승리한 경주자에게 주님의 구원에 더하여 상으로 주어지는 영광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 고전 9:25, 벧전 5:4, 사 28:5.
      1. 은혜에 속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엡 2:8)과는 달리, 이 상은 은혜에 속하거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의에 속한 것이며 행위에 따른 것이다(마 16:27, 계 22:12, 고후 5:10).
      2. 의의 면류관은 주님의 은혜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의 의에 따라서 주어질 것이며, 그것을 상으로 주시는 분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이실 것이다 — 딤후 4:8.
      Ⅱ. 다음 시대에 우리의 의의 면류관이신 그리스도를 상으로 받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이 시대에 우리의 주관적인 의, 곧 우리가 살아 낸 의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 — 빌 3:9.
      A.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에게 의가 되시는 것에는 두 방면이 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갈 때,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도록 우리의 객관적인 의가 되신다 — 롬 3:24-26, 행 13:39, 갈 3:24하, 27.
      2.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의 주관적인 의가 되신다. 이 의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아 내고 참되게 표현한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삶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탁월한 상태를 가리킨다 — 빌 3:9, 1:21상.
      B. 의의 이 두 방면은 시편 45편 13절과 14절에서 왕후의 두 옷으로 예표된다.
      1. 한 옷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객관적인 의에 해당한다 — “그 여인의 옷은 금실을 넣어 짠 것입니다.” — 시 45:13하.
      a. 이 옷은 많은 고난을 통해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룸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도록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 교회의 의가 되신 것을 상징한다 — 고전 1:30, 눅 15:22, 렘 23:6.
      b. 왕후가 금을 두르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신성한 본성 안에서 나타나는 것을 상징한다 — 시 45:9하, 벧후 1:4.
      2. 또 다른 옷은 우리의 승리를 위한 주관적인 의에 해당한다 — “그 여인은 수놓아진 옷을 입고 왕께로 이끌릴 것이고” — 시 45:14상, 비교 계 19:8, 마 22:11-12.
      a. 이기는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왕후로서,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궁으로 취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분께서 그들의 주관적인 의가 되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시 45:13상, 요 15:4상.
      b. 또 다른 옷 곧 그 여인을 싸고 있는 두 번째 겹인 이 수놓아진 옷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결혼하기 위한 요구 조건을 이루기 위하여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을 옷 입고 결혼 날에 그리스도께로 인도될 것임을 상징한다 — 계 19:8.
      c. 수놓아진 의복은 우리의 성격 안으로 짜이시고 우리의 존재 안으로 수놓아지셔서 우리가 살아 낸 의가 되신 주관적인 그리스도이다.
      d. 이렇게 수놓는 것은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일을 상징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아 우리의 결혼 예복이 되게 하시려고 매일 일하고 계신다.
      e. 회복되었다가 타락한 교회는 대가를 지불하여 자신의 주관적인 의이신 그리스도를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신의 행위로 입을 수 있다 — 계 3:18.
      Ⅲ. “주님께서 … 그분의 하늘에 속한 왕국 안으로 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 딤후 4:18.
      A. 하늘에 속한 왕국은 의의 면류관과 동일한 것으로서,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마 13:43), ‘내 아버지의 왕국’(마 26:29),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엡 5:5),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벧후 1:11)이며, 이기는 성도들에게 보상이 될 것이다(계 20:4).
      B. 이기는 믿는 이들은 하늘에 속한 왕국, 곧 천국의 출현에 참여할 것이다 — 마 7:21.
      1. ‘의인들’ 곧 왕국의 아들들인 이기는 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 마 13:43.
      2. 이기는 이들은 하늘에 속한 왕국에서 그들의 주님과 함께 새 언약의 잔을 새롭게 마실 것이다 — 마 26:29.
      3. 이기는 믿는 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구약의 이기는 이들과 함께 잔치할 것이다 — 마 8:11.
      4. 이기는 이들에게 하늘에 속한 왕국은 즐거운 유업일 것이다 — 고전 6:9-10.
      5. 이기는 이들은 하늘에 속한 왕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받음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더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 눅 18:29-30.
      6. 이기는 이들은 하늘에 속한 왕국에서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여 자신의 혼을 얻고 혼을 구원하며 혼의 구원을 누릴 것이다 — 마 10:39, 16:25-26, 25:21, 23, 눅 9:24, 히 10:39, 벧전 1:5, 9.
      7. 이기는 믿는 이들은 하늘에 속한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다스리며 민족들을 통치할 것이다 — 계 20:4, 2: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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