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라이프 스타디 출판의 일의 역사에 관하여 란 캔거스 형제님과 가졌던 인터뷰의 첫째 부분을 실었습니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그 인터뷰의 둘째 부분을 게재합니다.

란 형제님의 이어지는 교통:

저는 라이프 스타디의 메시지를 편집한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1992년 1월에 리 형제님이 에드 막스 형제님과 저를 비롯하여 다른 형제들에게 텍사스 주 어빙에서 애너하임으로 이주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에 리 형제님은 제가 에드 형제님처럼 이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빙에 남아 제가 맡은 일을 그저 계속했습니다.

그 당시 리 형제님은 애너하임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와 히브리서 라이프 스타디에 관한 추가 메시지를 해방하고 있었고, 에드 형제님이 그 메시지들을 편집했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제가 라이프 스타디의 모든 메시지를 편집했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에드 형제님이 편집한 메시지들을 읽어 본다면 모든 메시지에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애너하임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리 형제님은 에드 형제와 제게 형제님의 서재로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리 형제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자리에 앉자 형제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더니 “형제님들은 여러분이 편집한 메시지들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은 소였습니다.

이 말은 제게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편집한 메시지들의 이름이 ‘생명 수업(Life-Studies)'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성경을 다루는 그 어떤 다른 작가나 교사도 정확히 이와 같은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어떤 이들이 이 이름을 차용하며 마치 이 이름을 하나님께 직접 받은 척 위장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종교적인 기독교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종교적인 기독교는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중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각 메시지 안에 생명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연구의 방면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리 형제님은 이것이 형제님에게 매우 큰 도전이었음을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형제님이 베드로전서 3장 18절과 같이 매우 난해한 절들에 담긴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영 안에서는 살아나셨다는 것과 주님께서 깊은 곳 즉 무저갱으로 내려가시어 그곳에 묶여 있는 악한 영들에게 그분의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리 형제님은 양면에서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일이 고된 수고였음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영을 사용하고 올바르게 기능하는 생각을 갖고 마음과 혼을 다하여 라이프 스타디의 어떤 메시지라도 읽는다면, 우리는 리 형제님이 전한 각 메시지 안에 특별한 부담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리 형제님이 주신 메시지들은 일반적으로 길지 않았고 대략 70분 내외였습니다. 형제님은 놀라운 것들을 교통하다가 “이제 제 부담에 이르렀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오, 이 모든 것이 형제님의 부담에 추가적으로 더해진 것이라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님은 보통 이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나중에 모든 메시지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제시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 메시지에는 부담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것을 깨닫는다면 자신을 훈련하여 전 메시지를 끝까지 읽을 것입니다. 또한 생명의 흐름을 만질 때 ‘이것이 부담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성도들은 핵심적인 내용을 만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세부적인 각 사항들을 흡수하는 데 너무 애를 쓰거나 흥미롭지만 사소한 세부 사항들 때문에 핵심에서 빗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리 형제님은 제가 어빙, 텍사스로 이주하기 직전인 1984년 겨울 훈련에서 신약 라이프 스타디를 완성했습니다. 1995년에 아가에 관한 훈련을 마지막으로 리 형제님은 성경 전체의 라이프 스타디를 완성했습니다. 에드 형제와 저는 아름다운 꽃을 사서 화병에 담아 리 형제님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우리는 형제님에게 그것이 라이프 스타디의 완성을 기념하는 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어떠한 과업입니까! 리 형제님은 그 나이에도 주님께 신실하였고, 제가 아는 한 그 어떤 주님의 종도 이룬 적이 없는 일을 이뤄냈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으뜸이시기 때문에, 부차적으로 리 형제님은 워치만 니 형제님의 사역에 대한 경의를 담아 성경 전체에 대한 라이프 스타디를 수행했습니다. 니 형제님 본인도 사역을 위해 훈련받음을 주제로 하는 자신의 글에서 우리가 전진하기 전에 반드시 현재까지 회복된 모든 것을 동화해야 하며 그제야 우리가 그 위에 무언가를 건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참조 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53권,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 5장, 91, 95, 101쪽). 이것이 바로 리 형제님이 한 일이었습니다.

라이프 스타디는 단지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고 저렇게 말했다."라고 하며 그저 니 형제님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리 형제님도 출판된 어떤 책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라이프 스타디에 실려 있는 성경의 진리와 신약에 계시된 것과 관련하여 “리 형제님이 말하길”이라고 말하지 말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우리가 리 형제님이 우리에게 주신 어떤 실지적인 교통을 언급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부분에서 리 형제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라고 합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리 형제님은 공로를 인정받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리 형제님은 다만 성도들이 이 진리의 항목들을 제시할 때 본인을 출처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순수한 계시를 근거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1975년 또는 1976년에 한 형제가 제가 일하고 있던 작은 방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형제에게 “형제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가 바로 이곳에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수고는 2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라이프 스타디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결정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