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무엇인가?

젊었을 때 나는 ‘은혜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이런 가르침에 따르자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은혜가 아니고 일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은혜이다. 그러나 신약에 따르면, 은혜는 사실상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이다(요 1:16-17, 고후 12:9).
사실 은혜는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신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이시다. 은혜는 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이 아니다. 은혜는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셔서 우리의 누림으로 체험되시는 삼일 하나님 자신이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은혜란 우리에게 체험되어지고 누려진 바 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신약이 계시하고 있는바 은혜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된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장 17절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은혜가 어느 정도 어떤 인격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은혜의 인격화(personification)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바울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말했을 때(고전 15:10) 이것을 깨달았었다. 바울에게는 은혜가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이었다. 바울 안에서 이 인격이 그로 하여금 수고하게 한 바로 그 은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하나님 자신이다. 은혜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이다. (신약의 결론, 1권, 128-129쪽




우리의 소망을 은혜에 둠

베드로는 … 우리의 소망을 온전히 은혜에 두라고 권한다(벧전 1:13). 이 소망은 거듭남에서 산출된 살아있는 소망이다(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에 온전히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을 두어야 한다. 이 은혜는 …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성이 될 혼의 구원을 가리킨다(5절, 9-10절). 은혜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에 의해 우리에게 왔다(요 1:17). 그것은 주님의 두 번째 오심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은혜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한다.
13절의 끝 부분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곧 드러나심(unveiling)에 관해 말한다. 현재 우리는 너울(veil) 아래서 주 예수님을 미리 맛봄으로 누리고 있다. 그러나 너울이 벗겨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너울 아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다고 그들에게 말해 주기 위해 노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누림은 감추어져 있으며 똑같은 체험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주 예수님이 드러나실 것이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주 예수님을 누려 왔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러남은 삼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성인 장래의 은혜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미리 맛봄으로 누리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완전한 맛봄으로 드러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미리 맛봄을 누릴 때 우리에게는 그런 소망이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에 우리의 소망을 온전히 둘 필요가 있다. (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100-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