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역을 받았으니” 이전 두 개의 호에서, 먼저 우리는 주님의 회복의 찬송가의 역사(23년 3월호)를 다루었고, 그다음 우리가 찬송가를 부를 뿐만 아니라 연구하도록 격려하는 기사(23년 4월)를 실었습니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훌륭한 찬송가가 갖춰야 할 특성들을 살펴본 후에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이 사역하시면서 높게 평가한 탁월한 몇 가지 찬송들을 조명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개인적으로 만졌던 특별한 찬송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찬송들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분발시켰거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조망을 고양하였거나 생명에 대한 더 깊은 체험 안으로 우리를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모이는 집회 중 우리가 누리는 몇몇 찬송가들은 우리 가운데 매우 사랑받는 곡이라는 것을 듣는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연구하면서 우리는 어떤 곡들이 다른 곡들보다 더 높고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들 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다른 찬송가는 여러 다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찬송가에 수록된 찬송들 사이에 다른 표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리 형제님은 “오, 내 얼마나 예수를 사랑하는지(Oh, how I love Jesus)”(영어 찬송가 70장)는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내 구주 예수 크신 사랑을”(찬송가 134장)은 훨씬 더 높은 수준이고 “넓고 깊은 주의 사랑”(찬송가 130장)은 가장 높은 수준의 곡이라고 언급했습니다(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를 말함, 7장, 95-96쪽). 이 말은 우리 찬송가에 수록된 낮은 수준의 찬송들이 좋은 찬송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리 형제님의 말은 단지 우리가 이미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으로, 몇몇 찬송이 다른 찬송에 비해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감상과 체험의 지경을 더 넓혀 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찬송의 특징은 무엇이며 우리의 찬송 중에 특별히 높은 수준의 찬송은 무엇일까요? 니 형제님은 훌륭한 찬송의 세 가지 요구 조건을 규정했습니다(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그리고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은 특별히 탁월한 찬송의 예를 들었습니다.

니 형제님에 따르면, 훌륭한 찬송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은 찬송이 반드시 진리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조건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몇몇 찬송들은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감정을 자극하지만 그 안에 교리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니 형제님이 지적했듯이, 몇몇 기독교의 찬송가들은 구원에 대한 갈망과 소망을 표현하지만 아무런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인 우리가 더 전진된 생명의 체험을 갖기 위해 적합한 기반을 놓으려면, 반드시 자기 자신이 참되게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모든 찬송은 적합한 찬송이 아니며, 그러한 찬송은 결과적으로 생명의 성숙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자라도록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측면에서 하자가 있는 찬송은 우리에게서 올바른 체험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볼 수 있도록 니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찬송을 부를 때 그들의 느낌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찬송 중에 잘못된 교리가 있을 때, 이것은 그들의 느낌을 스스로 속이게 하고 실재를 못 만지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적인 감동이 아니라 진리로 그분을 만나기 원하신다. 우리는 오직 진리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실재를 만지지 못한다. (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303-304쪽)

적합한 찬송의 두 번째 요구 조건은 찬송의 형식과 구조가 반드시 시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찬송은 시입니다. 찬송의 가사에 적절한 운율이 부족하거나 시적 운율이 적합하지 않거나 또는 찬송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가 시적이지 않고 단지 교리적이기만 하다면, 그 찬송은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없거나 부르는 사람의 내적 존재를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리에 하자가 없을지라도, 교리만으로는 가치 있고 적합한 찬송가를 만들 수 없습니다. 훌륭한 찬송이 되려면 반드시 일정한 시적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적합한 찬송의 세 번째 요구 조건은 반드시 영적인 충격력이 있어야 하며, 부르는 사람이 영적인 실재를 접촉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은 영적인 충격력이 가득하며 또한 시편 작가가 느꼈던 기쁨과 슬픔과 회개와 같은 참된 정서의 영적인 실재 안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예를 들어, 헌신에 관한 훌륭한 찬송을 부를 때 우리는 헌신의 정서 안으로 이끌려지고 감동되어 새롭게 자신을 헌신하게 됩니다. 니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한 편의 찬송이 우리에게 정확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찬송이라고 말할 수 없다. 찬송의 감정은 반드시 진실하고 영적인 실재를 만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307쪽)

니 형제님은 훌륭한 찬송의 세 가지 특징을 담은 몇 가지 예에 해당하는 몇몇 곡들과 그 놀라운 영향력을 짚어주었습니다. 니 형제님이 특별한 찬사를 헌정한 곡은 존 넬슨 다비가 작곡한 “들어보라 천천만만”(찬송가 110장)입니다. 이 곡에 대해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부른 찬송 중에서 이렇게 위대한 찬송을 찾기란 쉽지 않다.”(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308쪽)

이 찬송은 요한 계시록 4장과 5장에 제시된 승천하신 그리스도, 곧 죽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께 바쳐지는 우주적인 찬양의 장면을 시적으로 묘사하여 경외감을 일으킵니다. 광대한 모임에서 모든 입이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시인하며 모든 무릎이 그분께 꿇습니다. 우주적인 찬송이 울려 퍼질 때, 이 찬송을 쓴 사람은 그가 목격한 광경에 크게 기뻐 뜁니다. “온전하고 견고하네 / 영광스런 새창조 / 안식 기쁨 누리게 해 / 만족스런 새 창조”

이 곡은 장엄한 찬송으로 이 안에 담긴 진리는 우리가 면밀히 연구할 가치가 있고 시적 형식과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이 곡이 전달하는 영적인 실재로 인해 우리는 사랑하는 구주를 경배하는 우주적인 합창으로 이끌려 함께 찬송하게 됩니다.

니 형제님이 매우 높게 평가하는 다른 두 곡의 찬송은 ‘내 의지 능력 약하고’(찬송가 423장)과 ‘고난 받는 것이 내 길이라면’(찬송가 282장)입니다. 두 곡 모두 믿는 이들이 고난과 손실을 통해 주님께 순종하는 공과를 배우는 것에 관한 개인의 체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찬송가 423장을 쓴 사람은 자신에 대한 모든 소망을 잃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전진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에 대해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만일 여러분의 느낌이 시험을 받고 연단된 느낌이라면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을 거친 시를 만질 때 여러분의 느낌은 그 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314쪽)

마가렛 바버 자매님이 작곡한 찬송가 282장에서 자매님은 땅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과의 온전한 교통을 구했습니다. 비록 자매님의 마음은 상해 아팠지만, 영은 주님을 여전히 찬양했습니다. 자매님의 헌신은 완전한 순종을 산출했고, 이 찬송은 그녀가 주님의 생명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이가 되기를 구하는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주 은혜로 자아 벗어 버리고 / 생명 분배하는 그릇 되도록” 이 찬송에 대해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과의 교통에 있어서 이렇게 억지가 없고 지나치지 않게 쓴 찬송은 매우 드물다.”(워치만 니 전집, 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상), 15장, 315쪽)

리 형제님에 따르면, 기독교선교연맹의 창시자인 심프슨이 작곡한 그리스도와의 동일시에 관한 찬송은 ‘최고 수준’입니다(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를 말함, 7장, 96쪽). 리 형제님은 ‘주와 함께 못 박혀서’(찬송가 362장)과 ‘주와 함께 못 박힌 나’(찬송가 365장)을 이러한 찬송의 예로 들었습니다.

찬송가 362장에서 심프슨은 다음과 같은 찬송시를 썼습니다. “주의 부활 알았으니 죽음 두렵지 않네 / 주의 뜻을 순종하며 고난 두려워 않네 / 주가 나의 영 안에서 부활 능력 되시니 / 나는 기뻐 뛰며 가리 십자가의 좁은 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어렵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찬송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 근거하여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하나된 것을 체험적인 실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찬송가 365장은 이와 동일한 하나 됨을 탁월한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 죽을 때에 많은 밀알 거두네 / 접붙일 때 바뀌어져 쓴 열매가 달게 돼” 이 절의 가사는 부활 생명의 산출과 풍성함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시적인 표현을 통해 이 찬송은 날마다 체험할 수 있고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탁월함을 더 특별하게 감상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찬송을 연구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손으로 직접 찬송을 쓰는 시도를 할 때 우리는 훌륭한 찬송가가 지닌 특징들을 마음에 새기고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찬송가들 안으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이 쓰신 다수의 찬송에 우리의 연구의 초점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형제님이 찬송을 쓰는 작업을 새로운 단계로 상승시켰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찬송을 힘써 알고자 하는 수고를 축복하시어 그분의 가치를 알고 그분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진보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